줄리어스 시이저 - 전예원세계문학선 305 셰익스피어 전집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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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만 보고 전혜원에서 출간한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습게 알지 마시라. 번역을 한 신정옥은 1932년생으로 올해 아흔을 맞은 우리나라 셰익스피어 문학의 거장이다. 신정옥이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을 모두 마쳤을 때가 1989년, 지금부터 32년 전. 당시부터 한 20년 동안 셰익스피어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음악으로 말하자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가 모든 디테일에서 최고라 일컬어지는 녹음이 없고, 말러의 교향곡처럼 전곡 모두 최고로 치는 지휘자의 녹음/녹화가 없는 것과 같이, 한 전작 시리즈가 셰익스피어 모든 작품의 대표적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내 경우엔 이 신정옥 번역의 전혜원 세계문학선을 거의 우선적으로 선택하고는 한다.
  신정옥은 이북 출생으로 경북대(학사), 이화여대(석사), 외국어대(박사)를 거쳐 명지대 영문과 교수, 퇴임 후에 명예교수로 있다. 이이는 특히 영어 극문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공을 인정받아 숱한 상을 휩쓸었으며, 한국 셰익스피어학회장을 역임했으니 이이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이 중요한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제 삼십 년, 한 세대가 지난 번역이어서 새로운 작업이 뒤를 이어야 하겠지만, 이 숙제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신정옥의 번역이 여전히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16세기 근/중세영어 원작은커녕 현대영어로도 읽어본 적이 없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놓고 “신성(神性)에 가까운 언어 천재성”이니, “인류 역사에 빛나는 불멸의 극시인”이니 하는 말로 상찬, 또는 감격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가 생산하고 내가 읽어본 비극 명작들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모습을 드러냈는지 일찍이 깊게 공감했고, 이런 공감은 다른 작품들, 예컨대 이번에 읽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통해서도 여전하리라 믿었던 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줄리어스 시이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영어식 표기. 카이사르는 ①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지역인 갈리아 지역을 분할해 그곳의 거친 갈리아인과 게르만 인들을 복속시키는 과정과 ② 삼두정치의 파트너였던 폼페이우스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어 저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외치며 기어이 폼페이우스를 멸망시키는 과정을 스스로 써서 <갈리아전기>와 <내전기>를 쓴 역사가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쥔 서기전 44년 3월 15일 며칠 전을 드라마의 시작으로 삼았으며, 사료의 내용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바탕으로 했단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말하자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로마에서 활약했던 강도단 두목이 시간만 나면 열독 했던 책으로, 영웅들의 동전 앞뒷면과 같은 이중성, 멋있는 앞모습과 더불어 추레한 뒷모습까지 다 보여주는 데 작품의 매력이 있다. 로마의 1대 황제가 되려다 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플루타르코스의 붓끝을 피해가지 못했던 바, 사자 같이 용맹하고 여우같이 꾀 많은 영웅이긴 했지만 당시엔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뇌전증(간질병) 환자였던 것과,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던 장애, 미신을 과하게 신뢰했던 것들도 모두 기록해놓았다. 플루타르코스의 붓은 오직 한 명,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로마의 첫 번째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만 피할 수 있었다. 아무리 플루 선생이라 하더라도 대 로마의 초대 황제한테 함부로 혀를 놀릴 수는 없었던 것. 그렇게 했어도 그가 이른바 로마 5현제 시절을 살다 가지 않았더라면 편하게 죽지도 못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영웅전>에서 소개한 카이사르의 모습을 그대로 희곡에 옮겨 놓았는데, 엉뚱하게도 <줄리어스 시이저>의 주인공은 그를 시해한 브루투스다.
  그럼 셰익스피어가 만드는 인간들을 보자. 첫 장면은 분명히 개선하는 카이사르다. 카이사르가 아직 내전에 돌입하기 전에 굉장히 유명한 개선행진을 했던 적이 있는 바, 로마인들을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지독하게 괴롭힌 갈리아 독립군 대장이자 지금은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인 베르생제토릭스(베르킨게토릭스)를 포로로 잡아 (개선의 경우엔 포로를 방면하여 로마에 볼모로 두거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끌고 와, 그동안 로마가 이 영웅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수많은 로마 시민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한 적이 있다. 하여튼 개선 행진을 마치고 원로원에 든 카이사르에게 누군가가 왕관을 바친다. 그걸 납죽 받아들면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될 것. 이것을 뻔히 아는 카이사르가 그 길을 따르겠는가. 그는 왕관을 건네는 손길을 손등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세 번 왕관을 바치고, 세 번 거절하는 장면을 카시우스와 브루투스가 이야기한다.

 

  “안토니우스가 왕관을 바치는 것을 보았어요. (중략) 그는 왕관을 물리쳤죠. 그런데 말입니다, 물리치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여간 갖고 싶어 하는 기색이 아니었어요. 이윽고 안토니우스가 그걸 다시 바쳤죠. 카이사르는 다시 물리쳤었구. 그러나 제 생각엔 카이사르가 왕관을 놓치기가 대단히 아쉬운 듯 보였습니다. 그러자 안토니우스가 세 번째 바쳤지요. 카이우스는 세 번째 물리쳤습니다. 거절할 때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거친 손으로 박수를 치는가 하면 땀이 밴 모자를 허공에 던지며 카이사르가 왕관을 거절한다고 지독하게 냄새나는 입으로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카이사르는 숨이 막혀서 거의 질식한 듯 기절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지 뭡니까.”

 

  카이사르가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등의 손에 암살을 당하고, 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안토니우스는 같은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로마시민들에게 웅변한다.

 

  “야심이란 이보다 더 냉혹한 마음에서 생기는 법. 그런데도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 하오. 어쨌든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이오. 여러분은 보셨을 거요. 루페르쿠스 제전 때 내가 세 번씩이나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바쳤지만 세 번 다 거절한 것을. 이게 야심이오? 그런데도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야심을 품었다고 말했소. 분명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이시오. 내가 브루투스의 말씀에 대항하는 건 아니오. 다만 아는 바를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오. 여러분은 한때 카이사르를 분명 사랑했소.”

 

  당연히 당시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카이사르가 초대 황제가 되어 후대 철없는 황제들, 옥타비아누스는 건너뛰고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는 빼주자), 네로같이 미치광이 독재자의 길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와 비교하면 원시적이긴 하지만 공화정을 유지하려는 개혁파 집단인 브루투스, 카시우스들이 더 정의 의 편이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웅변에 마음이 간 로마 시민들은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를 추방하기에 이르고 로마는 다시 내전 상태로 돌입한다.
  그리하여 카시우스-브루투스 연대와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연대의 내전이 끝나는 시점까지를 그리고 있다. 사극의 내용은 다들 아시고 계실 터이니 생략한다.
  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는 반면, 희곡은 무대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의 공연을 위해 쓰인다. 희곡으로 전쟁 장면을 읽게 되면 늘 보던 활극이 좁은 무대에서 펼쳐질 수 없어서 매우 초라하게 읽힐 수 있는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독자가 머릿속에서 무한정한 스케일의 전쟁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스스로 연출자가 되어 자신만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대의 무대를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명불허전. 새삼스레 셰익스피어의 일독을 권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다음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로 점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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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01 09: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신정옥‘ 교수 버전으로 세익스피어 희곡 여러 권 읽었어요. 다른 역자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책 만듦새가 뭔가 뽀대가 안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 같더라고요. 옛 번역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고요.

전 세익스피어 희곡 중에서 역사극은 참.... 다 읽기는 했는데 몇 년 지나면 다 헷갈리고 뒤섞이고 기억에서 희미해지는지 모르겠어요;; 폴스타프 님 등장하는 시리즈가 <헨리 4세> 시리즈였던가요?핫스퍼 나오는... ㅋㅋㅋㅋ

Falstaff 2021-07-01 10:04   좋아요 5 | URL
맞아요, 이 책은 디자인과 편집 기획 때문에 독자들이 잘 찾지 않는 거 같습니닷!

옙. 헨리 4세. ㅋㅋㅋ 근데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저도 하여튼 조만간에 (언제가 될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