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흙 문학과지성 시인선 280
조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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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의 세 번째 시집. 물론 처음 읽는 조은이다. 이름이 참 재미있다. 조은. 검색해보면 조은 DA, 조은 주택, 조은 푸드 육가공, 조은 성모 안과의원, 조은 타이 마사지 등이 나오고 이어서 시인 조은의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1960년 안동 생. 1988년에 데뷔하고 몇 권의 시집을 낸 이력밖에는 정보를 구할 수 없다. 특히 바이오그래피는. 하긴 그런 거 알면 뭐 하나. 시인이 시만 좋으면 그만이지.  조은의 시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시집을 샀고, 읽었다. 이 시인 역시 주된 관심사는 탄생과 삶과 죽음의 사이클.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이 쓴 또 한 권의 나와 맞지 않는 시집을 읽었다. 왜 시인들은 이리도 무거울까. 뭐 진짜로 만나면 내가 번쩍 들 정도의 체중밖엔 나가지 않겠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삶의 정체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우울과 죽음의 색조화장을 하게 되었는지 이젠 궁금증을 넘어 의례 그러려니 할 정도가 됐다. 중국에서 열린 시인대회에 참석해 중국의 유명 여류 시인한테 다른 건 몰라도 오줌발 하나는 지기 싫어 중국식 개방형 화장실에서 힘을 줘 오줌을 눴다는 시를 쓴 김민정이 그리울 지경이다. 하긴 지금은 만 61세지만 조은이 이 시집을 낼 당시의 나이가 43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직도 그렇다면 좀 문제지만.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시부터 누군가가 죽는다.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다
  동네 개는 모두 짖어대고
  불을 켜려 허둥거리며 나는
  재빨리 모르는 한 죽음에다
  나의 죽음을 겹쳐본다

 

  누군가 죽었다
  누군가 죽었다

 

  어둠의 노른자위에 있는
  나의 손 닿는 어딘가가 썰렁하다
  이곳 어딘가는
  세상을 버린 자와 닿아 있었다
  가쁜 소리를 내던 문도 숨을 멎었다

 

  한때 숨쉬던 흙덩이는
  오열 속에 해체되고 있으리라

 

  이웃들도 불을 켠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죽었다  (전문)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죽음의 사발통문.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시인이 들은 것은 울음소리다. 누구의 울음일까. 둘째 연에서 보듯 동네 개가 한 마리 짖으니 모든 동네의 개들이 이를 따라 짖는 걸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어서 이것을 들은 동네의 암캐 수캐들이 따라서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짖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사람 또는 개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 허둥지둥 불을 켜기 위해 손짓을 하는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고통을 깨우며’ 누군가가 죽었다고 지레짐작을 하며 거기다 자신의 죽음을 겹쳐버린다. 이 시에서 자신이 잠자고 있던 방은 이 시집 전체에 중요한 기재로 등장한다. 시인은 이미 죽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곳 어딘가, 시인이 몸을 뉜 방 어딘가 세상을 버린 자, 죽은 자와 닿아 있다. 문도 숨을 멎었으니 이젠 다시는 열리지 못할 것. 이 문은 다른 시 <문고리>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삼 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하략)

 

  숨을 멈춘 문은 문고리가 떨어져 이제 열고 닫히는 기능이 없어지면서, 소통의 장소인 문이 단절의 대명사인 벽으로 바뀐 것. 사람을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은 죽음 또는 묘혈로써의 문이 숨을 멎은 방이다. 이번에 시집 좀 읽으려고 여덟 권이나 사 놓았는데, 죽음이라, 다른 시집들도 이러려나.
  두 번째로 실린 시에는 새로운 시적 상징이 등장한다.

 


  한 번쯤은 죽음을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
  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전문)

 


  첫 번째 시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에서 죽음 또는 묘혈의 상징이 된 방에 그만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하게 들어왔다니까 두 마리인 듯하다. 방의 주인 ‘나’는 새들을 방관한다. 해치지도 않고 방해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둔다. 새가 정말로 방 안으로 들어온 경험이 있으신가? 투명한 창문이 아니라면 벽에 부딪히지 않는다. 좁은 방이라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큰 사무실에선 그렇다. 대신 투명한 유리벽에 온몸을 쿵쿵 박아 죽음에까지 이른다. 시인은 이 모양을 자신이 마치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 하는 것처럼 보고 있다. 새들이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결코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갈 수 없단다. 한 번쯤 죽음도 생각해보면 혹시 모르겠다면서. 그럼 새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기에 허락도 없이 방에 무단침입을 해서 쿵쿵 머리를 박고 있을까.

 


  새

 


  새가 내 머리 위를 불덩이처럼 맴돈다. 언제 저 새가 이 방으로 들어왔을까? 애써 침잠시킨 어두운 한 세계가 역행하고, 숨골이 활짝 열리는 열기. 어떻게 저 새가 이 방으로 들어왔을까? 웅크린 내 몸이 깔고 있는 지렛대 같은 어둠을 극도로 부풀리며 새는 활기차게 난다. 내 몸에서 번쩍 눈을 뜨는 먼지들, 전신을 뒤집으며 소용돌이치고, 휘청거리며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깜깜한 길 하나. (전문)

 


  ....란다. 세상을 버린 자와 닿아있는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깜깜한 길? 맞아? 그럴 리가 있나. 물론 조은의 시가 전부 이런 건 아니다. 이 시집에서도 더 눈에 띄는 건 탄생과 죽음이란 사이클의 연속, 죽음이 있는 곳에 탄생이 있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인 장면이긴 하다.
  조은의 시가 좋은 시라고들 한다. 하여튼 조은의 시가 시를 감상하는 재주가 없는 내게 와서 고생을 좀 한 건 확실하게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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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1 1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석을 해주신 부분들이 흥미진진한걸요? 맞지않았다고 하셔도 궁금해질만큼요ㅋㅋ시인은 아마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 때문에 침잠했었나 봐요.

Falstaff 2021-05-11 10:39   좋아요 3 | URL
ㅎㅎㅎ 잘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근데 전 시도 잘 몰라요. 요즘 시집을 대강 이런 식으로 읽더라고요. 그래 저도 모르게 시를 ‘감상‘하는 대신 따져본 거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