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조공 서문문고 314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지음, 손은주 옮김 / 서문당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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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독일인 극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이지만 이이의 재능을 알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 1862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작은 마을 오버잘츠부른에서 작은 호텔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직조공으로 1844년 6월 4일에 발생했던 ‘슐레지엔의 직조공 폭동’에 직접 참여했었다고 한다. 어려서 이 일을 경험/목격한 아버지로부터 직조공 폭동에 관하여 자주, 많이 들어와서, 게르하르트는 이 유명한 극작 <직조공>을 아버지 로베르트 하웁트만에게 헌정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웁트만이 극작가를 꿈꾸었던 건 아니다. 예나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이이는 취리히 대학에서는 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술교육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좀 더 체계적인 탐구를 위해 대리석의 나라 이탈리아로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성공을 이룬 분야는 극작이니, 이 양반이 재주가 없는 게 농사짓는 일 말고 도대체 뭐가 있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나도 찬란한 이름만 알았지 이이의 작품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도무지 어떤 책이 나와 있는지 알아야지. 그러다가 우연히 <직조공>을 발견해 두 번 생각하고 말고 없이 선뜻 사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슐레지엔 직조공 폭동에 대하여 알아두면 희곡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독일의 슐레지엔 지방은 아마와 목면 공업의 중심지. 때는 과학의 세기라고 하는 19세기로 접어들어 기계식 직조기가 도입되어 직조공들의 인력이 남아돌기 시작한다. 인력의 과잉공급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임금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왔고 그게 도를 넘어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참담한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고 슐레지엔의 페터스발다우 직공과 가족들 5천여 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의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가장 악랄한 공장주 츠반치거에게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다가 공장과 집, 가구들을 다 때려 부수면서 사건이 커진다. 물론 거의 모든 자생적 민란이나 폭동은 정규군에 의해 작살 나는 것이 공식이고, 인근 랑엔비라우까지 진출했던 슐레지엔의 직조공들도 공식에 어긋남이 없이 프로이센군에게 괴멸됨으로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있던 마르크스는 폭동은 프로이센 정부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부르주아를 상대했던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하웁트만의 <직조공>은 이 ‘자발적 폭동’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있는데 다만 폭동을 유발한 악독한 공장주 츠반치거 역을 ‘드라이시거’라는 가상의 인물로 바꾸었다. 이런 ‘자발적’ 노동쟁의에 관한 논의는 황석영의 <객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방면에서 매우 활발하게 등장했기 때문에 별로 새롭게 읽히지는 않았다. <직조공>도 다른 콘텐츠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와 그의 하수인)에 의한 임금/노동력 착취와 불평불만 (1막), 직조공 가족의 비참한 생활과 반항의 싹 (2막), 불만 세력의 규합과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분노 (3막), 쟁의 또는 폭동의 시작과 확장 (4막), 결말 (5막)이라는 전형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4막을 읽을 때까지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1980년대 후반에 너무도 많이 읽어 익숙한 운동권 문학을 몇십 년 만에 다시 읽는 것 같은 식상함이 없지 않았는데, 5막에 가서는, 이 희곡이 아직도 생명력을 갖고 하웁트만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자리매김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얼핏 읽으면 19세기 말 유럽 전역을 배회하던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의 기운이 작품 속에 가득한 것 같고, 그래서 프로이센 정부도 작품 발표 후 1년 동안 공연금지 처분을 내렸겠지만, 결국에 독자들은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고 만다. 결론은 기독교, 인도주의, 반反혁명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폭동으로 자본가와 공장을 때려 부수기는 했지만 이미 시작부터 괴멸을 예약해둔 상태라는 건 앞에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 폭동의 괴멸을 통해, 일반 독자들은, 이런 형태의 “바위를 향해 날아드는 달걀”이 언젠가는 바위를 쪼갤 것이란 확신, 신념을 주장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나, 아니었다. 기독교와 인도주의, 반혁명이라면 또 자본가나 권력과의 화해의 기미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 뿐이다. 실제가 그러하듯이. 말 그대로 우울한 미래비전의 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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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서문문고는 폴스타프 님께 상줘야 할 거 같아요. ㅎㅎㅎㅎ

Falstaff 2021-01-06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근데 제본이 별로예요. 뒤표지에 직조공 폭동이 1984년이라고 쓰여 있네요.
이런 시리즈에 가끔 재미난 것들이 섞여 있더라고요. 주의해서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1-0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안 읽고 리뷰만 읽어도 배부릅니다.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직조공 폭동이요.
더 알고 싶지만 책이 어려울까봐 저어됩니다 ^^

Falstaff 2021-01-06 20:27   좋아요 0 | URL
아하, 책이요,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즉각 이해되는 수준인데, 시대가 21세기라서 굳이 읽어야 하는지는 조금 그렇습니다. 별 하나가 빠진 이유? 하여간 뭐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