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그 형제들 2 - 청년 요셉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 살림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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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과 그 형제들》의 두 번째 이야기. 요셉은 어느 새 열일곱 살의 미소년, 그것도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인간의 자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했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우아함이고, 우아함의 본질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중간에 있는 법. 그러나 거친 목축시대의 아름다움이란 창백한 지성이 만들어낸 생각이요 꿈일 뿐 아니었을까. 이 미소년은 열 명이나 되는 형들과 달리 양을 돌보는 목자 일에 매달리는 대신 현명한 가정교사이자 아버지 야곱의 이복형제인 것처럼 보이는 엘리에젤로부터 글 읽기와 쓰기, 주님에 관한 비의秘義 같은 것을 배우기에 이른다. 주님이 모든 식물과 동물을 만든 연후 가장 늦게 사람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셉은 거침없이 대답한다. 첫째가 어떤 인간도 창조에 동참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고, 두 번째가 쇠파리조차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점을 통해 인간에게 겸손 하라는 뜻이며, 세 번째가 모든 준비를 갖춘 후 손님인 인간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라고. 스승이 하나를 알려주면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를 갖춘 요셉은 열을 아는 총명함까지 지니고 있다. 다만 두 번째 이유를 통해 알아야 했을 “인간의 겸손”이 치명적으로 결핍된 채.
  요셉의 총명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숫자, 특히 별자리와 시간에 관한 것에 특출한 명민함을 보인다. 1초와 1분, 1시간, 하루, 일 년을 태양력과 태음력과 관련할 줄 알고, 그리하여 1,460년이라는 긴 시간까지 양력과 음력을 확장하여 이들 사이의 수에 의한 연결을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이며, 가외로 꼭 알아야 할 질병과 이의 치료법, 지구상의 여러 민족에 관한 지식까지 섭렵하는데, 이것들은 훗날 가장 위대한 나라 이집트에 정착해 농경과 치수, 의료에 혁혁한 위력을 발휘할 기본 자질로 작용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 《요셉과 그 형제들 - 청년 요셉》은 요셉의 17세 시절에 벌어졌던 사건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이집트에서의 활약은 아직까지는 그저 짐작일 뿐.
  모두 열두 명의 형제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자 정실부인의 장남이며 아름다운 외모에 총명한 두뇌를 소유했으나 결코 겸손하지 못했던 요셉. 동복의 아우 벤야민을 제외한 열 명의 이복형제들은 소와 양, 염소를 몰며 황야를 떠돌다가 파종을 하거나 수확을 할 때는 태양 볕에 피부를 태워가며 농사일을 해야 했던 시절, 성스런 테레빈 나무 그늘에 앉아 엘리에젤로부터 글쓰기와 읽기, 그리고 형제들 눈에는 잡담일 뿐인 교훈과 지식을 배우기만 하면 되는 요셉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여기에 요셉은 또한 형들의 행동거지를 모두 근엄하고 경이로운 정신의 아버지에게 일일이 고해바치는 고자질쟁이임에야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 처음에는 ‘점토서판을 읽는 자’라는 별명으로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미움을 산 연후에는 ‘꿈꾸는 자’로 불리기에 이른다. 요셉은 또한 힘만 세고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황야의 거친 형제들을 ‘선과 악을 모르는 자들’ 심하게는 ‘개대가리들’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으니 형제들의 요셉에 대한 미움은 어쩔 도리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여기에 아버지 야곱은 대놓고 한 명의 아들을 위해 열 명의 형제를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노골적으로 요셉만 총애하고 또 총애해 이미 열 명에 이르는 레아와 첩들이 낳은 아들들의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
  이미 전에 레아가 낳은 맏이 르우벤은 정처 라헬의 몸종이자 아버지 야곱의 첩인 빌하와 동침한 것이 들통이 나 장자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있고, 둘째와 셋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고을을 학살, 약탈한 것 때문에 이미 야곱의 눈 밖에 나서 아직 장자의 자리를 비워두어, 열 명에 이르는 거친 형제들은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장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야곱이 요셉만 특별하게 아끼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심지어 요셉 당사자에게도 확실하게 보이는 터라, 요셉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들이 그들 자신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단단한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열 명의 거친 형들도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와는 달리, 요셉 자신을 본인들보다 더 사랑하겠거니 라고 여기면서 스스로의 초년 사주를 망칠 준비를 한다.
  기억해두면 좋다. 열 명의 이복형제들은 얄밉고, 성격 고약하고(오해다.), 안하무인이며, 교만하기 짝이 없는(진실이다.) 요셉이 자신들을 제치고 장자의 자리에 올라, 자신들의 경배를 요구하는 일을 참을 수 없어 한다.
  이 집에 일종의 보물이 있다. 야곱이 결혼한 날 죽을 때까지 사랑한 라헬이 입었던 웨딩드레스, 베일 달린 케토닛 파심. 몇 년 전 요셉이 접신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 야곱은 좋은 선물을 하겠다고 요셉에게 언질을 준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야곱과 요셉이 장기를 두다가 요셉이 일부러 장기를 져주며 약속했던 선물을 달라고 집요하고, 귀여워 도무지 거절할 수 없게 졸라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가문의 보물, 라헬의 것이었지만 결혼 첫날밤에는 라헬의 언니 레아가 입고 신방에 들었던 케토닛을 받는다. 세상 어려운지 모르고 커 온 요셉은 곧바로 이 옷을 입고 자랑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세겜에서 목자 일을 하고 있던 형들까지 정말로 아버지가 요셉에게 그 옷을 주었는지 확인하러 사흘 길을 달려와 직접 보고난 다음 극심하게 실망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요셉은 소위 로열 블러드. 아브라함-이사악-야곱에 이은 적장자. 적장자 또는 축복받은 자들은 어떤 통로든지 앞날에 대한 예시를 경험하는데 요셉의 경우에는 꿈으로 현시가 된다. 첫 번째 꾼 꿈은, 양을 돌보다가 하늘을 바라보고 풀밭에 누웠는데 황소만 하고 머리에 뿔이 달린 독수리가 자신을 어금니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거였다. 이때 요셉은 비명도 지르지 않는데, 들판에 사람이 없어 아무도 비명을 듣지 못해서이고, 숨이 막혀서이며, 무엇보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아서, 그만큼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거였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독수리는 암피엘 천사의 모습으로 변신해 하늘나라로 진입, 제불(제6 하늘)을 거쳐 일곱 번째 테라스인 아라보트에 도착해 급기야 주님을 배알하기에 이른다. 하느님께서 이르기를;
  “여기 있는 이 자에게 내 손으로 36만5천 번의 은총을 내려 위대한 자, 숭고한 자로 만들겠다. 너에게 열쇠를 맡길 테니 아라보트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일을 네가 알아서 하라. 그렇게 되면 너는 모든 무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가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요셉은 이 꿈 이야기를 동복동생 벤야민에게만 하고, 현명한 꼬마 벤야민은 요셉으로부터 다른 누구에게도 이 꿈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겠노라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그걸로 끝. 열 명의 형들과 자신까지 다 모여 추수를 하던 중 점심 먹고 잠깐 자는 동안 꾼 꿈을 그대로, 그 자리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요셉.
  “형제 열한 명(어린 벤야민 제외)이 추수를 하는데 제가 가운데 있고 열 명의 형들이 저를 중심으로 원을 이루어 둥그렇게 추수를 해 곡식단을 쌓았어요. 일을 마치고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까, 제 곡식단은 곧게 서 있고, 형들의 곡식단들이 전부 요셉의 것에 절을 하고 있더라고요.”
  형들, 꼭지가 돌아버렸다. 그러나 차마 한 대 쥐어박지도 못했다. 그랬다 하면 요셉이 또 야곱에게 고자질을 할 것이고 자신들은 더 곤란한 지경으로 떨어질 테니. 반면에 천진한 악동 요셉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추수하는 장소에 들러서 형들한테 격려 좀 해주라고 해 다음 날 당장 타작마당 차일 친 곳에 도착한다. 다들 엄한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쭈볏쭈볏 하던 차에 요셉이 분위기를 잡는답시고 또 어젯밤 꿈꾼 이야기를 한다.
  “하늘에 해와 달과 열 개의 별이 떴는데, 다 내 별에 절을 하더라고요.”
  분위기 눈치 챈 야곱이 요셉을 꾸중한다. 물론 립 서비스. 속으로는 무척 기쁘지만 다른 형제들을 위해 야단치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열 명의 형제들은 추수를 마치자마자 아버지에게 자기들은 집 안에서 별 볼일 없는 쭉정이들이니 세겜에 가서 양이나 치겠다고 이별을 고해버린다. 나중에 사달이 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야곱은 형제들 간 화해를 시키기 위해서 요셉 혼자 나귀를 타고 세겜에 가서 형들에게 절을 하고 선물도 주고 오라고 명을 내린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환상에 빠져 있는 요셉이 장자 상속권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화려한 예복 케토닛 파심을 입고 범 같은 형들이 무려 열 명 씩이나 있는 세겜으로 행차를 하니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토마스 만은 형제들을 변호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동안 과하게 이복형제들에게 비난이 집중되어 왔다고 하면서 그들의 끝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내와 속으로만 삭여둔 차별, 편애 같은 것에 동정을 보낸다.
  읽으면서 점점 흥미로워진다. 구약성서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러나 원시 종교들과 신들에 관한 묘사와 종교에 대한 사색 부분이 길게 이어지는 건 신이 존재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믿는 독자가 전혀 수긍하지 않으며 읽기엔 징글징글하게 장황한 느낌이 든다. 다음번 3책 《요셉과 그 형제들 - 이집트에서의 요셉》은 곧바로 스토리로 접어들어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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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약성서보다 훨씬 재미있다니..... 재미없다는 소리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9-02 12:4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역시 독해력은 잠자냥님 당할 사람이 읎어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