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동서문화사 월드북 39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황금가지>. 프레이저 필생의 역작. 작업이 워낙 방대하여 작가 스스로 내용을 요약한 축약본. 축약본이라도 나로 하여금 닷새에 걸쳐 정독하게 만든 흥미진진하고 사색할 만하고, 즐거이 다른 분들께 일독을 권하게 하는 걸작. 이런 '책 읽는 즐거움'을 경험한 것이 생전에 몇 번이나 되었는가!

 그러나 주의하시라. 인류학 또는 신화학이 나하고 맞아서 이 책을 이리도 찬미하는 것. 만일 당신이 프레이저가 평생을 바친 이 학문과 맞지 않는다면, 비록 이 책이 유려한 문장과 번역으로 만들었을지라도 한 얘기 또 하고, 비슷한 얘기 보태고, 거기에다 한 번 더 반복하고, 반복한 것과 비슷한 얘기 다시 하는데 질릴 것이고, 책 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도 여전히 같은 부분을 읽고 있는 듯한, 두꺼운 책 읽을 때의 곤혹스러움을 아주 제대로 경험하실 수 있을 것이다. 자, 이 정도면 주의줄 것은 줬으니, 내 말을 믿고 책을 읽어볼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당신 뜻에 달렸다. 아울러 읽고난 다음에 후회를 할 것인가, 뿌듯해 할 것인가도 역시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어떤 얘기를 먼저 해야 하는가. 이 점이 참 곤란했다. 제목 '황금가지'는 분명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가 죽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러 지하 명부를 방문할 때, 손전등 대신 쥐고 가던 황금가지를 얘기하는 것으로, 이 책은 그놈의 우라질 '황금가지'가 도대체 어떤 것이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밝히는 긴 탐색에 다름 아니다. 또 하나는 아도니스 신화. 산돼지에 물려죽은 아도니스. 지하 명부로 떨어진 아도니스를 찾아 아프로디테가 명부로 내려가 페르세포네와 담판을 지어, 두 라이벌이 1년의 1/3씩(또는 1/2씩) 나눠 갖기로 한 것에 대한 의미. 책을 관통하는 순환고리, 죽음과 부활, 수확과 파종에 대한 인류학과 신화적 해석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난 어떤 얘기를 먼저할까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공평하게 결정하기를, "둘 다 얘기하지 말자". 왜냐하면 지금 쓰는 독후감의 목적은 다른 때와 다르게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 <황금가지>의 일독을 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실 분이 정말 읽고난 다음엔 어차피 다 아시게 될 것이라서.

 글을 쓰는데는 언제나 어려움이 따른다.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니까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문제가, 그럼 독후감으로 뭘 얘기할 건데? 하는 점. 제일 중요한 두가지를 다, 처음부터 인간살이에 있어본 적도 없는 '공평'이란 이유로 말하지 않기로 하고,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써놓는 것도 아니라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그럼 뭐가 중헌디?

 이 책은 인류학과 신화학에 관한 것이다. 신화학? 띄어쓰기 한 번 하면 '신 화학'. 새로운 화학? 그럼 주기율표에 뭔가 더 보태졌나? 그렇다. 당신은 모르겠고, 내 뇌에 각인되어 있던 인류사적 주기율표에 대단히 특이하고 강력한 합성원소 하나가 보태졌다. 인류사의 또 다른,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발전 단계. 주술-종교-과학에 이르는 흐름을 관장하는 새로운 원소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거다. 문제의 새로운 원소는 아직도 여전히 주술-종교-과학 이후에 도래할(어쩌면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난) 다른 형태의 인류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책 <황금가지> 영업은 할 만큼 한 것 같다. 그럼 책에 나오는 재미난 것 좀 더 얘기한다고 구박받지는 않겠지.

 289쪽에 말레이 반도의 어떤 부족이 행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주술적 처방'에 관해 써놓았다. 그게 대단히 아름다워서 소개한다.


"이제 막 떠오른 달이 동쪽 지평선에 붉게 떠올랐을 때, 바깥에 나가 달빛을 받으면서 왼쪽 엄지 발가락 위에 오른쪽 엄지 발가락을 포개고 오른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는 화살을 쏜다. 내가 화살을 쏘면 달빛이 흐려지리라.

 나는 화살을 쏜다. 그러면 햇빛도 흐려지리라.

 나는 화살을 쏜다. 그러면 별빛도 흐려지리라.

 그러나 내가 쏜 것은 해도 달도 별도 아니다.

 마을의 그 아가씨, 그녀의 마음 한가운데이다.

 꼭! 꼭! 그대의 영혼이여, 이리와서 나와 함께 걷자.

 오라, 내 옆에 앉으세요.

 오라, 나의 베개를 같이 베고 잠 자리.


 이것을 세번 되풀이하여 부르고 그때마다 휘파람을 분다."


 왜 왼 엄지발가락을 오른 엄지발가락으로 누른 상태에서 이런 노래를 불러야 주술이 먹히는 걸까? 오른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달빛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말들을 세번 외칠 때 왼손은 어디다 두고 있었을까? 왜 한국에선 아들 낳고 싶으면 애 만들 때 아빠가 오른 엄지발가락에 잔뜩 힘을 준 상태에서 사정을 하라고 농담할까? 혹시 말레이 반도의 주술이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문화권에서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어째서 난 이 아름다운 노래를 읽으면서도 이따위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을까?

 아, 나의 고뇌는 갈수록 깊어져만 간다.


 농경시대로 접어든 주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주술은 강우(혹은 제우制雨)능력이다. 비는 주술사가 얘 비구름아, 이제 비를 좀 뿌려라, 해서 내리는 것이지 자연 현상으로 내릴 만해서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비를 충분히 내리게 하고, 과하면 더이상 내리지 않게 하는 게 주술사 또는 주술사가 진화해서 생긴 왕의 능력이었다. 주술사(또는 왕)가 나이먹어 힘이 좀 빠진 듯 보이면 종족들의 손에 의하여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이들의 팔자였는데, 그걸 지금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유난히 재미난 강우 주술 하나를, 읽다가 배꼽이 빠질 것 같았던 걸 소개한다. 비가 오는 거,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현상. 인간의 몸에 합법적이고 가장 자주 물을 쏟아내는 것, 그중에 적출할 수 있는 것이 남성의 비뇨기. 근데 그걸 그냥 적출, 싹둑 잘라내는 거냐고? 에이, 천만에. 다음을 읽어보시라.

 "디에리 족은 할례 때 젊은이에게서 잘라 낸 포피 또한 비를 부르는 힘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부족총회'에서는 가뭄을 대비해서 언제나 얼마 가량의 포피를 비축해둔다. 그것들을 늑대나 얼룩구렁이의 기름과 함께 싸서 조심스럽게 감추어둔다. 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포장을 펴보아서는 안 된다. (강우)의식이 끝나면 포피는 효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땅에 묻는다." (제 5장 날씨의 주술적 조건. 110쪽. 괄호는 내가 쓴 주석)

 웃겨 죽는줄 알았다. 할례, 포경수술할 때 잘라낸 포피를 뚫고 물, 즉 오줌이 나왔으니까 그것도 강우주술의 재료로 썼다는 거다. 그걸 책에선 동종주술이라고 하는데(그게 뭔지 궁금하시면 책 읽어보시라), 수년간 뭔가를 싸고 있었던 포피를 잔뜩 모았다가 잘 써먹은 인간을 나도 한 명 안다. 이건 실화고, 이런 야만이 벌어질 수 있는 대한민국 집단은 군대밖에 없다. 내가 복무했던 주둔부대 바로 옆의 의무대에 고등학교 동창이 하나 있었다. 나보다 두달 가량 고참이었는데 군대가서 만났다. 걔네 군의관 한 새끼가 얼마나 내 친구를 괴롭히고 두드려 패고 했는지 얘가 이를 뽀도독 갈더니 사단 병력 가운데 지원자는 누구나 다, 빠짐없이 무료로 할례를 해주고 디에리 족의 주술사처럼 인간의 포피를 냉동실에다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 날을 잡아 냉동실 문을 연 친구가 그걸 들고 식당 조리실에 가서 참기름을 잔뜩 친 후라이팬에다가 들들 볶아 귀한 맛소금에다 후추가루 까지 살살 뿌려, 진로소주 한 병 곁들인 다음 문제의 군의관 새끼한테 소고기 맛난 특수부위라고 구라를 치고 상납을 했다. 젓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꼭꼭 씹어보니, 씹는 맛이 기가 막힌지라,

 "이게 소고기 어디 부위냐?"

 "그게 제가 휴가나가서 집 앞에 정육점에다 얘기한 거거든요. 이름은 잊었는데 소 한 마리 잡아도 한 줌 나올까 말까하는 진짜 특수부위랍니다."

 "그래? 거 쫀득쫀득하니 맛이 괜찮구먼."

 하면서 내 친구한테 너도 한번 맛이나 봐라, 란 얘기 한 번 없이 혼자서 그 많은 흠흠흠... 조껍데기를 다 처먹더란 거다. 그 다음 부턴 제대할 때까지 한 대도 안 맞았다나? 그랴, 무료할례를 그렇게 많이 해주었으니 내 친구가 복 받은 거다. 나? 아니다. 난 직장생활 해서 번 내 돈 내고 떳떳하게.... 깠다.


 근데 성탄절이 왜 12월 25일, 동지 부근에 있는 줄 아셔? 1월 6일까지 성탄 트리를 달아놓는 이유는?

 다 책에 나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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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명작이죠. 게다가 흥미진진하기까지. 이런 작품이 정말 고전입니다요. 프레이저 이 양반 정말 대단함. ㅎㅎ

Falstaff 2020-09-01 10:11   좋아요 0 | URL
옙. 말이 필요없는, 꼭 직접 구입을 해서 책장에 꽂아 놓아야 하는 책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