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 2018년 공쿠르상 수상작
니콜라 마티외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소설가. Wikipedia에서 검색해보니, 1978년 6월생, 2014년 데뷔작인 미스터리 범죄소설 <짐승에겐 전쟁뿐 Aux animaux la guerre>으로 히트를 쳐 프랑스 3채널에서 6부작 시리즈로도 만들었으며, 두 번째 작품인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로 2018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단다. 그 외에는 별로 특기할 사항이 적혀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작품 발표의 간격을 감안하면 올해 쯤 혹시 새 작품 하나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내 희망사항이다. 나는 이이의 데뷔작을 읽어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아직 번역본도 나오지 않았다.


  1992년 7월에 열다섯 살. 1977년 5월생인 소년 ‘앙토니 카사티’가 주인공이다. 모두 네 부로 되어 있다. 1992년부터 2년 간격으로 1998년까지, 네 번의 여름을 그렸다. 각 부의 표제로 대중음악의 제목을 달아놓았다. 1부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2부는 건스앤로지스의 "You Could Be Mine", 3부는 프랑스 힙합 그룹 쉬프렘 NTM의 곡인 "La Fièvre:열병", 월드컵에서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의 레블뢰 군단이 우승을 하는 4부가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인데, 아쉽게도 내가 서양 대중음악에 관심이 없어진 이후에 발표한 곡들이라 왜 이런 노래들을 표제로 사용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을 읽어가면서 뭐 그러려니, 어떤 의미이겠거니,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마티외가 프랑스 북구 보주 주 에피날에서 태어나 인근 소도시에서 성장해 그런지 소설은 프랑스 북동쪽에 있는 가상의 소도시 에일랑주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진행된다. 먼저 에일랑주 시에 관해 약간의 소개가 필요하다. 오랜 동안 사실상 에일랑주를 먹여 살려온 프랑스 최고의 철강업체 “메탈로르”가 세계적인 불황을 맞아 드디어 용광로의 불을 끔으로 해서 급기야 에일랑주는 깊고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한 시절에는 전 프랑스를 통틀어도 이 유서 깊은 회사에서 직공으로 일할 사람이 없어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 지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 공장을 운영해도 모자랄 판국이었지만 이제 이민자들은 흑인과 더불어 프랑스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계급으로 전락해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에일랑주에서도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토종 프랑스인이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극도로 침체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퇴직을 선택하고 정부나 전 회사가 제공해주는 기술교육을 받은 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저임금을 받는 단순기능직에 재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취업 희망자는 많은 대신 일자리가 워낙 없어서 재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사소한 말썽에라도 휘말리면 당장 해고당해 매일의 호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떨어진다.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렇게 퇴직 후 직업교육을 받고 지게차 운전기사로 재취업을 했다가 해고당한 인물 가운데 파트릭 카사티 씨가 있었으니, 이이가 우리의 주인공 앙토니 카사티의 친아버지다. 작중 상당히 중요한 조연이다. 지금, 그러니까 책의 1부에서의 직업은 각종 집수리를 해주고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인데, 책 속의 첫 번째 여름인 1992년 7월 역시 집수리 업계의 성수기인지라 잔디 깎기나 수영장 청소 정도는 외아들 앙토니에게 맡겨야 할 정도였다.
  이때 앙토니의 나이 열다섯. 땅딸한 몸집, 꾀죄죄한 행색, 265 사이즈 발과 얼굴을 뒤덮은 여드름도 모자라 눈이 극심한 짝짝이라서 마치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눈길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보이는 그저 그런 아이. 학교에서는 꼴찌에 뚜벅이, 여자 친구 하나 없고 별일 없이 지내는 일조차 버거워 보이지만, 열다섯이란 나이의 소년은 이제 가정에서 어머니의 영원한 웬수 사이로 접어들었고, 틈만 나면 아버지의 권력 밖으로의 일탈을 꿈꾸는, 그러나 무엇보다 여성에 관해서, 특별히 해부학적 관점에서 펄펄 끓는 리비도를 다스리기 힘들 때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여성분 계시다면 이순원의 <19세>, 적극 추천한다. 그리하여 이 여름에도 호수 건너편에 있다고 말만 들었던 누드 비치를 엿보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어,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하고 근육도 탄탄하며 얼른 보면 스물두세 살처럼 보이는 사촌 형을 꼬드기는 것으로 무려 670쪽의 장편소설은 시작한다.
  그래 둘은 수상 클럽 레오라그랑주에 몰래 들어가 보트를 무단으로 꺼내 타고 호수, 1년 전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에 롤랭 씨의 아들이 빠져죽은 호수를, 도중에 들켜 클럽 직원들의 추적을 받으며 죽자고 건너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드디어, 아무도 없는 텅 빈 누드 비치에 도착한다. 인생이 원래부터 다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할 나이니까. 문제의 사촌. 4부까지 등장하지만 전형적인 조연으로, 현재 직업은 학생, 부업은 마리화나 판매지만 사실 뭐가 직업이고 뭐가 부업인지는 본인 스스로도 헷갈린다. 왜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누드 비치에서 누드 여성은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반면 에밀랑주 시의 최고 계급의 자제들과 마리화나를 매개로 친분을 맺게 되고, 급기야 당일 밤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청을 받는다. 마리화나를 듬뿍 가져온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경찰당국에 의하여 마리화나 집중 단속이 불과 얼마 전에 벌어져 지금 대마 풀 한 포기 보기도 어려웠던 실정이니 그럴 만하기도 했다.
  둘은 흔쾌히 초대를 수락했는데, 특히 잘 사는 애들 가운데 ‘스테파니 죠수아’라고 하는 여자애를 보고 앙토니가 홀딱 반해버렸다. 2부에서 보면 죠슈아 씨는 시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현재는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시의 법관, 검사, 변호사, 은행가, 고위경찰 등등 중요한 모든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는 수상클럽을 관리하는 협회의 회장으로 있는 사람이니 만일 극심한 마리화나 공급부족 현상이 없었다면 앙토니는 바라보지도 못할 계급간 차이가 있었을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스테파니는 비슷한 부류의 알렉스와 해 볼 거 다 해 본 사이. 그러나 수시로 헤어지고 다시 화해하고 그런 사이. 문제는 파티가 벌어지는 저택이 너무 멀리 있어 자신들의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턱도 없어, 앙토니의 아버지가 아끼고 아끼는, 그러나 일 년에 한 번 탈까 말까 하는 오토바이 야마하 YZ의 신세를 져야한다는 것에 있다. 하여튼 중간과정 생략하고 말하자면 야마하를 타고 파티에 끼어서 마리화나 피우고, 술 퍼마시고, 심지어 혈관확장제 흡입까지 해서 홀랑 까무러쳤다가 아침에 깨보니 아랍인 출신 깡패 두목 비슷한 하신이 야마하를 훔쳐간 것. 이제 앙토니의 앞날엔 아버지한테 얻어터져 인생의 종막을 고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까지 읽으면 늦게야, 그것도 별 임팩트 없이 등장하는 모로코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자 믿음 없는 무슬림인 하신 부알리 역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줄은 꿈에도 모른다. 집 밖에서는 잔인한 폭력배요 그들의 두목이긴 하지만 집 안에선 늙고 허약한 아버지의 명령에 거역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휘두르는 정의의 채찍, 곡괭이 자루에 머리통이 터져도 깩 소리 한 번 않으며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전형적인 아랍인 아들이다. 비록 아버지 말렉 부알리 씨가 일자리를 찾아 모로코에서 프랑스 시골 촌 도시까지 흘러든 별 볼 일 없는 남자인 것을 아들이 충분히 알더라도 말이지. 이 아이는 세계 최고급이라고 자부하는 모로코 마리화나를 전 유럽에 유통시켜 그 웬수놈의 돈을 왕창 벌 생각을 가득 품고 있는 야심가. 그러던 어느 날, 훔친 오토바이를 팔아넘길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앙토니의 말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주부인 엄마 엘렌이 억지로 앙토니를 끌고 말렉 씨를 찾아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당신은 나를 모욕했소, 라고 말렉 씨가 엘렌에게 반응한 다음인 것을 당연히 모르는 상태로 현관문을 연 순간, 비쩍 마르고 늙은 아버지한테 작신,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얻어터진 후, 앙토니 집 앞에 문제의 오토바이, 이미 엉망으로 찌그러진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휘발유를 뿌린 다음 확 불태워버린다. 훤한 대낮에. 이렇게 시작한다.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과거에는 화려했으나 이제 형편없이 몰락한 도시의 전체적인 음울한 분위기와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 또 하나는 이 속에서 사춘기를 맞고 성장해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 열아홉 살이 되어 군대에 가고 서로 성적 교섭을 맺고 어느 새 사용하는 언어에서 욕설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도 모른 채 스물한 살이 된다. 그들의 절절했던 소원, 에일랑주를 뜨고 말거야, 라는 각오가 그리 만만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 장면들을 담담하게 써놓은 마티외. 이 가벼운 비극이 작품의 주제가 된다. 물론 돈 많고 어여쁘고, 처음엔 어찌됐건 간에 나중엔 공부도 잘하게 되는 부잣집 따님들은 결국 대학생이 되고 많은 급여를 받는 안정된 직장인이 되어 에일랑주를 떠서 파리로, 캘리포니아로, 캐나다로 뜨는 데 성공을 하지만, 결코 세상엔 예외라는 것이 흔하지 않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8-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 작품이 별 다섯 개군요?! 저는 초반 조금 읽다가 좀 시시한 거 같아서 일단 덮었는데. ㅎㅎㅎ 다시 잘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0-08-03 10:27   좋아요 0 | URL
그냥 평범합니다. 쇼킹한 것도 없고 시시하다는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10대 아이들이 흔히 쓰는 욕설이 초반에 많이 나와서 그건 좀 거슬리는데요, 우울한 도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더라고요. ㅎㅎㅎㅎ 근데 제가 뭘 알아야지요.

잠자냥 2020-08-03 10:37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것처럼 비속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ㅎㅎㅎ 아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한데.... 공쿠르상에 낚인 것인가... 하면서 일단 책을 덮었습죠. ㅎㅎㅎ

Falstaff 2020-08-03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본문에 썼다시피, 아이들이 나이 먹어가면서 욕설 비속어의 빈도가 낮아집니다. 지들도 대가리가 커가는 것이겠지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