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 을유세계문학전집 101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독일어 문화권에서는 센세이셔널을 일으킨 작가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이의 소설 작품들을 번역 출간했는데 이번엔 을유문화사에서 최신작 <망자들>(2016)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내놓았다. 좋은 일이다. 나는 <망자들>을 읽자마자 크라흐트의 데뷔작인 <파저란트>와 <제국>을 보관해 두었다. 올해 안에 적어도 한 권은 읽을 듯하다.
  그 정도로 매력적이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1930년대 초중반의 5월. 비 내리는 도쿄에 어둠이 깔리고, 이런저런 실수를 저질렀던 젊고 잘생긴 장교가 일본 특유의 의식인 할복자살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배를 스스로 갈라 죽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 카이샤쿠, 즉 할복하는 사람의 뒤에 서 있다가 큰 칼로 목을 내리침으로써 빨리 죽음에 이르게 도와주는 사람을 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소설의 일본군 장교는 무릎을 꿇은 채 아주 예리하게 벼린 단도를 자기 복부, 단전부분에 꾹 누르고 엎어진다. 그러나 장을 찌른 것 가지고는 곧바로 죽음에 이르지 않아 (대개 여기가 카이셰쿠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다시 고통을 무릅쓰고 똑바로 앉아 칼을 위쪽으로 북 치켜 올렸고, 그래서 위에 손상을 주었는지 덩이진 피를 입으로 물컹물컹 쏟아내며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 순간, 벽 속에 숨어 있던 무비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필름 돌아가는 소리도 약하지만 여전히 흘러나왔다.
  인화를 마친 필름을 가정용 영사기로 보고 있던 희대의 천재 아마카스 마사히코. 아홉 살이 채 안 되어 일곱 개의 언어를 마스터하고 산스크리스트어를 독학했으며 그랜드 피아노로 협주곡을 작곡하면서 하이네를 독어로 읽었던 어린 시절부터 손톱을 물어뜯었고, 손톱에서 피가 나고 너덜너덜해지자 이젠 발톱까지 물어뜯었던 아이는 성장해 정부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면에 장교의 배에서부터 양비귀꽃 같은 피가 솟구치는 장면에서 눈길을 거두고 만다. 혐오스러워서. 예전에 중화제국에서 행해지던 능지처참 장면을 사진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나도 있다.), 세상에는 재현하고 복사하면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동의한다). 아마카스는 이 필름을 자신이 직접 타이프 한 편지와 함께 베를린으로 보낼 생각이다. 진짜 느낌은 언어적 표현이나 슬로건 보다는 사진이나 영화를 중심으로 모습을 갖춘다는 신념에 따라, 할복 장면을 포함한 영화를 베를린에 보냄으로써 그쪽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체政體를 지지하려는 생각이었을까? 해석은 독자 마음이다.
  작품 속에선 영화와 편지를 보냄과 함께,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맞설 대안으로 유럽 영화의 대국인 독일의 감독, 아니면 오스트리아나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을 파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아마카스가 염두에 두고 있던 감독 가운데 한 명이 ‘에밀 네겔리.’ 최근에 그의 영화 <풍차>를 보고 사건의 부재 속에서 신성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감동을 받은 터이었다. 이런 차에 믿기지 않게 정말로 에밀 네겔리가 긴 항해 끝에 일본 고베 항에 발을 딛는다.
  키가 크고 마른 몸매에 준수한 용모를 지닌 에밀 네겔리(그러나 이미 대머리가 상당히 진행된 중년의 사내)는 스위스 사람으로 취리히에서 베를린으로 프로펠러 항공기를 타고 이동 중이다. 세계상世界像에 대한 확고하고 건강한 회의를 품고 있는 네겔리는 식사 또는 식도락을 즐기지 않는 타입으로 양분섭취 과정은 지겹고 가끔은 심지어 역겹게 생각해 소량의 저녁식사 전까지 커피만 마시기도 하는 인물로 포도당 섭취의 부족은 어쩔 수 없이 주변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짜증을 부리는 일로 나타나기도 하는, 조금쯤 대하기 피곤한 사람에 속한다. 독일인 약혼녀 ‘이다 폰 윅스퀼’은 일 때문에 지금 일본에 가 있지만 자신도 몇 달 후 일본으로 가게될 지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영화인 네겔리가 생각하기로 세계 영화 백년 역사상 천재가 딱 다섯 명이 있었다. 차례로 로베르 브레송, 장 비고, 알렉산드르 도브젠코, 오스 야스지로, 그리고 자신이란다. 앞의 네 명은 실제 인물이고 주로 무성영화 시대의 감독이다.
  베를린에 도착하니 앞에서 얘기한 아마카스가 보낸 편지와 영화와는 전혀 별개로 독일제국의 문화상 후겐베르크가 거대 프로젝트를 네겔리에게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화상과 만남의 자리에서 동석하게 된 영화비평가이자 유대인인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와 로테 아이스너는 뱀파이어와 유령에 관한 공포영화를 만들 것을 조언해주고, 자신들 역시 뱀파이어와 유령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낳고 자라고 공부하고 사랑했던 독일 땅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하는 말이, 영화 속 귀신은 반드시 잘 생기고 마른 동양인이어야 한단다. 즉 유럽에서는 유효기간이 끝난 브램 스토커 식의 드라큘라 대신 다른 존재의 죽음 같은 것을 찾아 일본으로 떠남으로 해서 처음에 후겐베르크가 제안한 거금 20만 달러의 제작비를 80만 달러까지 올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네겔리는 약혼녀가 있는 일본 땅으로 출항하게 된 것.
  어렸을 때 네겔리는 늘 어마어마하게 비싼 와이셔츠에 좁은 커프스, 금으로 만든 얇은 손목시계를 찬 아버지의 가는 손을 동경해왔다. 그러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라서 아버지는 평생 아들을 이름 ‘에밀’ 대신 ‘필립’이라 불렀는데 그게 유머로 서투르게 위장한 잔인함을 아들에게 투사한 행위라고 단정한 것은 먼 훗날 엘펜슈타인의 복음병원 임종실에서 아버지의 가는 손을 다시 붙잡았을 때였다. 일 년 전부터 이를 닦지 않아 공포스런 구취를 풍기며 죽음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에밀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고 고개 숙인 그의 귀에 무엇을 속삭이려 했을까. 자신이 들은 것은 분명히 “하”라는 외마디. 독일어 발음으로 ‘H?’ 그건 모르겠지만 에밀은 틀림없이 자신이 단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왔으니, 평생 단 한 번,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고, 그 저주는 백퍼센트 실현된다는 믿음이었다. 이런 사람이 오래 떨어져 살았던 약혼녀 이다 폰 윅스퀼과 일본의 천재적 영화인 아마카스 마사히코가 있는 일본에 도착하니, 그 순간 독자는 네겔리의 특별한 능력이 언제 발현될까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스토리 위주로만 읽으면 섭섭한 일이다. 글. ‘글’이라고 하면 ‘문장’의 집합일 터인데, 사실 개별적 문장이 감성에 호소한다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다 모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글’을 읽는 일이 대단히 즐겁다는 것. 뭐라 한 마디로 딱 이야기할 수 없지만, 아, 생각났다, 글이 대단히 유혹적이다. 뭔가 곧 드러날 것 같은 비의를 숨긴 듯한 글, 문장의 연속이 매력적이다. 그리하여 난 이 작품은 스토리가 반, 문장의 조합으로써의 글을 감상하는 것이 또 반이라고 감정했다. 필자와 독자 사이에 역자가 간섭을 했겠으나, 번역본을 읽으면서도 크라흐트의 미학을 감지하는데 문제가 없다. 이러니 어찌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지 않을 수 있었겠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7-3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꼭 읽어보려고요. 배경이 일본 도쿄라는 점도 흥미롭네요.

Falstaff 2020-07-30 09:55   좋아요 0 | URL
옙. 흥미로우실 겁니다. 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이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