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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이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얼굴은 많이 봤는데 정작 이이가 쓴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서 읽었다. 뭐 이런 것도 인연이다. 원 제목은 <La Classe de Neige>, 영어로 하면 <The Snow Class> 우리말로는, 애매하다. 1999년 출판사 열린책들이 전미연의 번역으로 이 책을 처음 냈을 때의 제목이 <스키 캠프에서 생긴 일>이었다가 2000년에 양장본으로 바꿔 내면서 <겨울 아이>라고 바꿨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냥 <스키 캠프>나 <겨울 캠프>라고 했으면 딱 좋았을 뻔했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 1957년 닭띠 남자. 책을 썼을 때가 1995년, 서른여덟.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진다는 ‘페미나 상’을 받았단다. ‘페미나’상, 이름이 이상해서 검색을 해보니, 1903년 시작한 공쿠르 상의 심사위원이 전부 남자들이었던 것에 대한 반동으로 1904년에 22인의 여성작가들만을 심사위원으로 초빙하는 문학상을 제창했으니 이름하여 Prix Femina, ‘페미나상’이라 했단다. 다만 수상작은 여자가 쓴 작품이건 남자가 쓴 작품이건 구분하지 않았다고.
상을 받았건 안 받았건, 그건 독자에게 그리 큰 의미는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별점을 세 개 정도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러나 뒤로 갈수록 어, 이게 좀,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흠. 비록 번역을 거치기는 했지만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을 통해 작가는 밝히지 않은 특정 사건의 외형을 만들게 하면서 불안정하게 만든 외형마저 안전하지 않은 두 발 또는 세 발의 수레 위에 올려놓게 하는 문장들의 조합, 즉, 놀라운 구성을 갖춘다. 만일 별점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책에 무려 다섯 개, 즉 만점에 해당하는 별점을 부여하고 싶지만, 책을 읽고 ‘즐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취향이라, 책의 주제가 내가 극히 피하고 싶어 하는 방향이라 굳이 하나를 빼 네 개의 별을 준다. 그러니 카레르가 주로 다루는 분야를 좋아하시는 분에겐 대박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주인공은 꼬마 니꼴라. 1년 반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를 떠나 갑작스럽고 황급하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할 당시에도 아버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외과 의료기구 외판원이어서 큰 상담을 위해 장기 출장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초등학교는 겨울을 맞아 스키 캠프로 떠나기로 결정을 한 상태. 그러나 열흘 전 다른 도시에서 스키 캠프로 출발한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정면충돌해 많은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냥 하나의 사건이므로 그냥 계획대로 스키 캠프를 진행하기로 한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니꼴라의 아버지. 아버지는 학교로 쳐들어가 담당교사에게 출발 다음날 자신이 직접 니꼴라를 캠프를 여는 산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통보하고 그대로 한다. 그래 산장 앞에다가 니꼴라를 내려주고 작별 키스를 하고 아버지가 다시 방문판매를 위해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첫 장면이다.
니꼴라는 전에 아버지, 동생, 이렇게 삼부자가 놀이동산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재미난 회전 열차를 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시에는 나이가 맞지 않아 타려면 아버지하고 함께 타야 했지만 아버지는 동생 혼자 남겨두고 기구를 탈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불만에 차서 이유를 물어본 니꼴라에게 아버지는, 자기가 직접 어느 의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소년을 납치해 온몸의 장기와 눈알을 적출하고, 남은 몸통을 절단해 풀숲에 버리는 인간 사냥꾼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결코 동생을 혼자 남겨둘 수 없노라 했다. 이때부터 니꼴라는 소년 납치와 장기적출, 사지절단이라는 공포, 환상, 은근한 선망 같은 것을 시작했고 그것이 요즘 읽은 엽기적인 동화 내용과 섞여 삶 속의 혼돈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느 노부부에게 죽은 원숭이의 다리가 생겼다. 이 원숭이 다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 했다. 그래 먼저 영감이 지붕을 수리할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다니는 공장의 생산부장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아들이 거대한 톱니 사이에 끼어 점점이 흩어져 죽었으니 장례를 지내라고 돈을 내놓았는데 그게 딱 지붕을 수리할 수 있는 금액의 돈이었단다. 아내가 남편을 쥐어뜯으며 하필이면 그런 소원을 빌어 아들을 죽게 했느냐고, 내 소원은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달라, 아직 제대로 수습도 못한 아들의 시신 쪼가리들이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꾸물대며 기기도 해서 붉은 피를 묻히며 집 안으로 꿈틀대며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어쩔 수 없이 노부부는 마지막 소원으로 이것들을 당장 없애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단다.
물론 당신도 알고 있던 엽기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아이들은 이런 엽기와 비상식적인 공포가 사라지면서 소년기가 끝나고 청년기가 시작되는 거다. 주인공 니꼴라는 장기적출과 신체절단 등의 엽기적 공포의 절정에 있는 소년으로 이제 아버지에 의하여 하루 늦게 스키 캠프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알아챈 것이 자기 배낭이 떠나버린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외과 의료기구와, 의족과 의수와 함께 실려 있다는 거. 하여간 이런 가지가지 곤란한 처지를 당한 주인공 니꼴라는 교사와 현지 캠프 선생들과 학년 짱을 먹고 있으나 20년 후에는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붉은 포도주병과 스테인리스 칼이 담긴 구겨진 포장지에 싸인 소시지를 먹고 마시는 거구의 부랑자가 되는 오드칸의 보살핌을 받아 그나마 적응을 하는데, 아뿔싸, 캠프에서의 첫날밤에 난생 처음 몽정을 하고 만다.
아직 새벽이 오려면 한참 남은 깊은 밤, 비뇨기 외에 어떠한 다른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는 다리 사이의 작은 기관에서 분출한 해파리의 분비물 같은 느낌의 액체, 이것을 니꼴라는 오직 자신에게만 빚어진 초자연적이고 불길하고 저주받은 무엇으로 생각, 생각이라기보다 몰두하여, 그토록 추운 밤, 맨발로 산장의 ‘어두운 터널 같은 복도를 걸어 현관을 여니, 그곳은 눈의 나라였다.’ 니꼴라는 눈 덮인 공터를 가로질러 여태 맨발인 채 도로로 접어들어 캠프 교사 파트릭의 (몇 번을 확인하고 확인했지만 진짜 이렇게 씌어있다.) ‘잠겨있는 차’에 들어가 운전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극적으로 아랍의 왕세자 같은 파트릭에게 구조된다.
이렇게 작가 카레르는 숱한 기호를 작품 속에 뿌리고 있으나 기호들을 몇 개나 뿌렸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불친절하여 별로 힌트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짧은 소설이고 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해석의 방법이 대단히 많은 특이한 작품이다. 물론 해석은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그렇게 다른 해석들 모두 다 옳은 해석이다. 그것이야말로 전적으로 독자의 것일 터이니.
여담으로 덧붙이면, 나는 이 책처럼 끝나는 소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