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세 민음사 모던 클래식 7
러셀 뱅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민음사한테 아쉬운 것이 뭐 한두 개 인가마는, 내 경우엔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접은 것도 중요한 한 가지다. ‘모던 클래식’ 1, 2호를 장식한 <내 이름은 빨강>은 민음사와 이문열이 오랜 계약을 끝냄으로 인해 세계문학 시리즈 51, 52번이었던 <황제를 위하여>를 절판시킨 자리를 채우는 고임돌로 쓰임으로 해서 ‘모던 클래식’의 장례를 만방에 고하였다. 러셀 뱅크스, 라는 처음 들어보는 미국 작가의 책 두 권이 ‘모던 클래식’으로 나온 적이 있었으니 하나가 <거리의 법칙>이요 나머지가  다음 주 월요일 포스트를 올릴 <달콤한 내세>이지만 두 권 나 나란히 절판. 뱅크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엔 ‘모던 클래식’으로는 절대로 중쇄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데 만 원 건다.
  책의 앞날개에 은발에 흰 수염을 기른 러셀 뱅크스의 사진이 나오고 그의 약력이 씌어 있다. 1940년 매사추세츠의 가난한 노동자 집구석에서 장남으로, 1940년에 태어난 러셀은 뉴햄프셔에서 자라 집안에서 배출한 첫 번째 대학생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공부를 무지 잘했을 거 같다. 그러니까 없는 집에서 대학까지 보내지 않았겠나.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하고는 작가가 되려 했지만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 동안에 유수의 직장에 취직하는 대신 배관공, 신발 판매원, 창유리 절단공 등의 경력을 쌓았고, 이게 나중에 작품 곳곳에서 경험자 특유의 생동감 있는 묘사로 빛을 발한다 하니 젊어서 고생은 뭐? 사서도 한다고? 염병이다. 안 해도 되는 고생이라면 안 하는 게 훨씬 낫지. 미쳤냐? 그것도 사서 하게. 이이도 미국의 60년대에 대기업에 들어가 정글의 경쟁 속에 편입되었다면 돈은 벌었을지언정 작가의 꿈은 영영 날아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 작품 <달콤한 내세>는 미국 북동부 지방의 애디론댁 산맥 근처, 일찍이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에서 봤듯이 좀 야만스러운(아마 스칸디나비아에서 왔을) 인종들이 살던 뉴펀들랜드하고 가까운 미국-캐나다 국경지역이어서 그랬는지 근친혼을 감행했던 인종들이 조금 섞여 있는, 도시에서 멀고 먼 산악지역 샘덴트 마을에서 1991년 1월 27일 아침에 있었던 불행한 교통사고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말한 ‘도시에서 멀고 먼’은 지리적 거리로 말하면 뉴욕까지 승용차로 불과 여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8월 말에 벌써 짙은 가을의 냄새가 나며 겨울 내내 2미터 높이로 눈이 쌓인 숲 속이라는 자연 생태적 거리에 더 중점이 맞춰질 것인데 여기도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별의 별 일이 다 생긴다.
  먼저 소개해야 하는 등장인물이 이젠 거의 쓰이지 않는 전형적인 할머니 이름의 돌로레스 드리스콜 여사. 다 큰 두 아들의 어머니이고 1984년에 뇌졸중이 덮쳐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는 남편 에벗을 정성을 다해 돌보며 진심으로 사랑할뿐더러 그의 지혜로운 사고를 존경하는 신체 건강하고 마음 따뜻하고, 동네에서 두루 높이 추앙받는 인격의 소유자로 1968년부터 샘덴트 마을에서 스쿨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운전기사다. 그러니까 같은 노선의 스쿨버스를 23년째 하고 있으니 노선 인근에 자리한 모든 집안의 내력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가족들의 성격과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외모의 특징, 몇 주의 간격으로 부부싸움을 하는지 까지, 아울러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른 도로의 특성과 피해야 할 장애물의 생성과 소멸, 최적의 회전 반경과 속도 같은 것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이이를 제외하고는 스쿨버스의 운전기사를 생각해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야기의 시작이 1991년 1월 27일. 아침 온도 영하 8도. 눈 예보가 있으나 날씨가 추워 습기를 품지 않은 싸라기눈이 내릴 것 같다고 짐작하는 돌로레스에게 총명한 남편 에벗은, 북극에도 눈이 내린다고 한 마디 했는데, 처음엔 흐리기만 하더니 조금씩, 조금씩 눈이 내리다가, 수차례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드디어 끝내고, 이제 스쿨버스 안에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 같은 주정뱅이 램스턴의 세 아이들과, 베트남 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일반적인 참전용사와는 다르게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 지역의 모범이 되는 홀아비 빌리 안셀의 쌍둥이 남매와, 미스 아메리카는 모르겠고 미스 뉴욕 정도는 가볍게 차지할 거 같은 착하고 아름다운 니콜 버넬과 두 남동생, 경매로 사들인 바이더와일 모텔이 장사가 되지 않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리사와 웬델의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 션과, 비트족 출신임이 거의 틀림없지만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사는 목각 공예가 완다와 하틀리 오토 부부가 입양한 인디언 족 아들 베어와, 근친혼이 피해야 할 풍습이 아닌 지역에서 온 가족의 아이들 등 스무 명이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을 싣고 드디어 산길을 내려와 약간의 내리막 직선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속도를 올리고, 내리막이라 점점 가속되는 것도 충분히, 수천 번 경험했던 돌로레스의 눈앞에 개, 아니면 개 비슷한 형체, 그것도 아니라면 환영 같은, 그러나 분명 뭔가가 갑자기 휙 지나가는 순간, 돌로레스의 머릿속에서는 저 물체가 어떤 것이든지 50인승 버스로 그냥 치고 나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차마 살아 있는, 솔직히 말하자면 생물체인지 환영인지, 아니면 때마침 버스 앞 유리창에 와이퍼를 작동시켜야할 만큼 내리는 눈들이 바람에 날리며 만들어낸 형체인지 하여간 그것을 버스 정면으로 부딪힐 수 없어 핸들을 오른쪽으로 휙 꺾음과 동시에, 눈 내리는 아스팔트길에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콱 밟으니 당연히 대형버스는 그 자리에서 휙, 차체가 한 바퀴 휙 돌면서 내리막을 확실하게 시속 85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미끄러져 길 가에 허술히 걸쳐놓은 가드레일을 부수고 백 여 미터에 달하는 언덕으로 쏟아져 내려가며, 마침 여름 내내 모래를 파내고 생긴 웅덩이에 버스 뒷부분이 풍덩 빠져 많은 어린 아이들이 현장에서 즉사를 해버리고, 적은 수의 앞에 앉은 아이들은 극적으로 경상만 입은 채 빠져나왔으며 극소수는 목숨을 건지는 대신 척추가 부러져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근육을 쓰지 않으면 몸이 뻣뻣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남은 생애가 다 할 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도시 레이크플레시드로 나가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당한다.
  작품은 운전기사 돌로레스 드리스콜,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자동차 정비공장 사장 빌리 안셀, 멀리 뉴욕에서 와 피해주민들에게 사고에 대한 소송을 종용하고 진행하는 변호사 미첼 스티븐스,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가 된 니콜 버넬, 이렇게 네 명의 일인칭 시점으로 구성된다. 화자가 바뀔 때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이한 개인사가 등장해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재미를 배가하는데, 다시 돌로레스 드리스콜이 화자가 되는 마지막 장章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 소설이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로 귀결되며 당신은 약간 실망할지도 모른다. 미국식 결말이 뭐냐고? 그건 직접 읽어보시면 아시지. 아, 근데 이 책이 품절도 아니고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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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20-07-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내용 보면 엄청 흥미로운데 말여요, 절판인가요?
민은사 모던 클래식에서 새로운 작가도 알게 되고, 표지도 나름 이뻐서 좋아햇는데 그리 되었나요?

Falstaff 2020-07-03 11:51   좋아요 0 | URL
민음사 모던 클래식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을 받은 이후 그의 책을 무더기로 찍어냈습니다.
이후 품절된 책 몇 권은 다시 중쇄를 냈는데, ‘절판‘된 건 이제 내지 않는 거 같습니다. 시리즈의 1, 2번이 다른 시리즈로 옮긴 자체가 더 이상 이 시리즈를 계속하지 않겠다는 굳은, 변하지 않는, 초지일관한 의지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