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범우문고 235
민태원.이육사 지음 / 범우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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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은 작품 <청춘예찬>이 아니라, 하드웨어로의 이 책 《청춘예찬》에 대한 평가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은 대부분 당대 최고의 명문일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읽고 공부하고 시험문제에도 나와 풀어본 <청춘예찬>. 이 수필을 읽어보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머리가 채 커지기도 전에 주위에서 이런 저런 수필집을 권하고는 했다. 수필집의 제목을 밝히기도 송구할 정도의 높은 학문, 숭고한 종교적 성찰, 흉내 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로 이름이 높은 분들이 쓴 수필집을 몇 권 읽기는 했다. 그러나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거다. 이토록 높은 성가를 즐기며 서울 시내 종이 값이 하늘을 찌르게 만드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이 어째 내 눈에는, 내가 읽기로, 이제 겨우 대가리에 쇠똥이 벗겨지기 시작한 내가 인식하기로, 한낱 신변잡기나 잡문 또는 낙서, 아니면 괴문서처럼 읽히는 거였다.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동시에, 사실은 잘난 척 말고는 별로 하는 일 없는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두뇌활동을 사색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한 것에 불과한 책을 읽고 도대체 배울 것이 없는 잡문이라 결론을 지었다. 이후 수필은 안 읽겠다고 결심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결심한 바를 지켜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수필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변영로의 <명정 사십 년>에 이어 이번에 민태원의 <청춘예찬>. 며칠 후 양주동의 <문주반생기>도 계획에 있다. 수필. 내 생각으로 가장 쓰기 어려운 산문이 수필 같다. 아무나 그저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은 수필이라고? 천만의 말씀. 어떤 글이 수필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정의도 내리지 못하겠다. 우리는 위대한 수필의 나라에 살아왔지 않은가. 나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할 높은 직위의 공무원을 뽑는 과거 시험에 무려 9백 년 동안 좋은 글씨로 쓴 멋있는 수필을 요구해왔던 해동수필국. 그러니 어떤 것이 수필이라고 내가 굳이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
  <청춘예찬>. 이런 것이 수필이다. 물론 낡았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라는 표현이 신선한 은유였던 시절에 쓰인 수필이니. 그러나 청춘, 생명을 불어넣는 따뜻한 봄바람의 시절을 이렇게 강건한 문체로 화려하게 쓴 글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글쓴이 민태원. 갑오농민전쟁이 있었던 1894년생. 약관 20세에 매일신보에 입사해 사회부장까지 하고 기미독립만세운동 이듬해인 26세 때 동아일보로 옮기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와세다 대학에 유학한다. 서른 살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서른두 살에 중외일보 편집국장으로 다시 옮기는 매우 바쁜 사회활동을 한다. 서른여섯 살에 중외일보가 폐간됨에 따라 잠시 실직을 하다가 만주의 친일신문인 만몽일보 창간에 그만 발을 딛어 한동안 친일인사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민태원이 친일신문의 창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성원의 면면을 알고 난 후에 곧바로 발을 뺐으며, 이에 문학평론가 윤고종은 오히려 뼈저리게 느끼던 일제의 압박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항거에 몸을 바친 애국문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민우보(민태원의 호 牛步)는 신문기자로서 일제의 거듭하는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필봉을 굽히지 않았고……”라고 썼다. 그가 1935년에 폐결핵으로 사망을 했으니 친일행위를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듯한데 그건 역사가의 해석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초간이 1976년. 민태원의 작품으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일어 중역한 <애사哀史>, 부아고베의 <철가면>을 역시 일어 중역한 <무쇠 탈>과 <죽음의 길>이라는 번역 소설 등이 있고, <어린 소녀>, <음악회>, <천야성> 같은 소설을 창작, 발표한 바 있으나 해방 후 격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필 세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모두 망실되었다고 한다. 그래 이 책에는 민태원의 세 편의 수필 <청춘예찬>과 <월남 선생의 일화> 그리고 잡지 “개벽”의 의뢰로 충남지방의 특징에 관해 쓴 글 <추억과 희망> 이렇게만 실려 있다. 다 합해봐야 30쪽도 되지 않으니 그래도 한 권이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이육사의 수필 열세 편을 함께 실었는데, 아뿔싸, 육사의 수필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육사 시집》에 전편을 이미 실린 것들이다. 그러니 이 책은 온전히 민태원의 세 수필만 읽기 위한 것이 됐다.


  이제 다시 세월이 흘러 민태원의 작품을 읽어보려 하면 이 책이 아니라 당연히 ‘현대문학’에서 나온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 할 것이다. 《민태원 선집》은 범우사가 《청춘예찬》을 찍고 34년이 흐른 2010년에 출간한 것으로 수필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망실됐다고 생각해온 민태원의 창작 소설 세 편과 김옥균 평전 비슷해 보이는 <오호 고균거사嗚呼 古筠居士 - 김옥균 실기>까지 실려 있으니 굳이 내가 읽은 범우사의 옛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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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2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예찬의 저자로만 알았지 정작 민태원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덕분에 자세히 알고 갑니다. 소설까지 낸 바 있다는 것도요.
그러니까 저는 범우사의 <청춘예찬>이 아니라 현대문학에서 나온 <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겠군요.
수필이란 그저 붓가는대로 쓴 글이 아니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적어도 자기만의 통찰이 있어야 하고 그 통찰과 사유의 결과가 담겨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이미 한대로, 쓴대로 말고 ‘자기만의‘ 무언가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나,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글 같진 않아요.

Falstaff 2020-06-26 11:28   좋아요 0 | URL
이 분이 너무 일찍 가고, 남긴 저술이 몇 개 없었던 모양입니다. 소설 역시 당시 소설들이 그래야 했듯이 계몽적 요소가 많이 들어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분의 책을 읽을 만할까,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청춘예찬>이 명문이라 그것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읽으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월남 선생의 일화> 같은 거는 국한문 혼용이지만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좀 쉬울 정도라 아예 사전을 열어놓고 읽어야 할 정도입니다.
수필을 쉽게 알고 막 써낸 수필집 때문에 오랜 동안 멀리 해왔습니다. 어떤 것이 잘 쓴 수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에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통찰과 사유의 결과를 알아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에휴.... 끝이 없습니다. 걍 소설이나 읽고 마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