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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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overstory는 우리말로 “삼림의 덮개를 형성하는 엽군”을 이야기한다. 저 광활한 열대우림 또는 온대 밀림의 지상 60미터 이상의 스카이라인. 초록의 지평선을 만드는 거대 나무들의 이파리 파도. 그것을 ‘오버스토리’라고 한다. 이 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명체들의 집합으로의 숲과, 숲을 구성하는 거대나무와 이들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수억 종의 생명체들에 대한 한 인간의 찬사이며 송가이자 반성문이다. 지구 혹은 숲의 나이로 보면 순식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을 멸종시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아주 가까운 시간 안에 자신들마저 죽음을 향해 질주하게 만드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비지구적, 비생명적 행위에 대한 질타이다.
  리처드 파워스는 이 책으로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때가 2019년 2월이니까 이 책이 2018년 맨-부커 상의 최종 후보, Short list에 올랐을 때 판권 계약을 했을 터이니 출판사 은행나무는 매우 훌륭한 작품을 좋은 가격으로 확보했을 것 같다. <오버스토리>는 퓰리처상을 받을 자격이 넘치고도 넘친다. 모든 것을 자본화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가 사는 지구의 가장 건전한 하층구조, 숲과 잡목과 고목과 균류와 기타 미생물들을 무조건적으로 파괴하기를 멈추지 않는 지금 시대를 사는 모든 비문맹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7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꼼꼼하게 읽게 만드는 글의 힘. 책을 읽는 내내 추상적으로 짐작하고 있던 것에 대해 확실한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등장인물 또는 교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 일,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에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학문인 보험통계학을 전공하고 이제 학기말 시험만 끝나면 마지막만 학기를 남겨두게 되는 올리비아 벤더그리프. 70년대 한국어로 이런 학생들을 ‘졸업반’이라고 했다(천승세, <낙과를 줍는 기린> 참조). 올리비아의 취미는 마리화나, 코카인 흡입 등이며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데이비와 결혼해버린 것을 후회해서 오늘 경제학과 선형분석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을 이용해 법정에서 데이비를 만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왔다. 역시 마리화나에 취한 몽롱한 상태. 기숙사 꼭대기 방에 올라 샤워를 한 후 나체로 침대에 누워 전등을 끄기 위해 싸구려 소켓 근처를 더듬다가 움켜쥐었고, 하필이면 때 맞춰 소켓의 벗겨진 피복 사이로 아직 습기가 마르기도 전인 올리비아의 몸속으로 맹렬한 전기가 쏟아졌으며, 올리비아는 죽는다.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아래층에서 TV를 즐기던 학생들은 의례 올리비아의 이상행동쯤으로 생각하고 피식 웃기만 했다.
  70초 후, 갑자기 과부하가 걸린 두꺼비집, 요새 언어로 브레이커가 작동해 스위치가 내려가 전기가 나가고, 놀랍게도 올리비아의 심장이 처음에는 작게 그러다가 점점 크게, 점점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고, 오늘 이혼했지만 늘 그랬듯이 한 번 더 싸우고 화해의 잠자리를 하기 위해 기숙사에 들른 전남편 데이비에 의하여 발견되어 올리비아는 70초 동안 죽었다가 부활한다. 70초. 자신의 모든 인생 가운데 겨우 70초. 그러나 죽음을 발견한 올리비아는 마리화나와 기타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약물을 변기에 쏟고 물을 내려버린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동안 기숙사에 홀로 남아 길고 긴 사색에 잠긴 올리비아. 그리고는 며칠 후, 1990년 1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이제 학교를 휴학하겠다고, 열여덟 살이 된 이후 거의 처음으로 따뜻한 목소리로 뜻을 전하고 차를 몰아 서쪽으로 길을 나선다.
  할인매장 주차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매장에 설치한 TV를 통해 캘리포니아 주 솔러스의 몇 천 년 된 나무를 베지 못하게 시위하는 장면을 발견한 올리비아, 나는 서쪽으로 가야해, 생명체의 40억년 동안 가장 경이로운 산물들이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 라고 굳게 믿고 도착지를 정한다. 오하이오 평야지대를 지나가던 올리비아의 차창 밖으로 홀로 거대하게 서 있는 밤나무가 보인다. 거기 쓰인 간판. “공짜나무작품.” 그리하여 거대한 밤나무가 서 있는 집으로 가 이름 없는 예술가 니컬러스 호엘을 만나게 된다. 노르웨이에서 이민 온 고고조부가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힐에 무수하게 늘어선 밤을 따 구워먹으며 아일랜드에서 온 빨강머리 처녀 비 포위스에게 청혼, 결혼한 후 오하이오에 이주해 와 여섯 개의 밤알을 심어 유일하게 남은 나무. 미국 동부에서는 밤나무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발생해 모든 밤나무가 멸종되었으나 고고조부가 주머니에 넣어 가져와 땅에 심온 밤나무는 이곳에서 우람하게 커갔고, 고고조부, 고조부, 증조부, 조부, 아버지까지 76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달 밤나무의 사진을 찍어 놀라울 정도의 슬로우 샷이 탄생하게 된다. 이 집안의 상속자. 그러나 집과 땅은 그 사이 악마나 악마의 졸개와 비슷한 거대 농장회사에 팔려 두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하는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땅에 묻고 함께 솔러스를 향해 출발한다.
  1948년 마오의 군대가 들어오기 바로 전의 상하이, 후이족 무슬림 출신 중국인이자 예술학자, 훌륭한 서예가이며 무엇보다 큰 상인인 마 쇼잉은 아들 ‘마 시 수인’에게 집안의 보물인 옥반지 세 개와 루오한(羅漢 또는 阿羅漢)의 초상화 두 점을 건네주고 이제 아들이 살 곳, 먼 먼 동쪽에 있는 대륙, 미국으로 보낸다. 마 시 수인은 미국에서 시 수인 마가 되었다가 윈스턴 마로 최종 결정이 되고, 젊은 시절에 중국에 선교사로 갔었던 백인의 딸 샬럿과 결혼해 딸 셋을 두었으니 첫째가 ‘미미 마’다. 아이들이 다 성장해 집안의 보물인 옥반지와 두 점의 초상화를 미미에게 물려준 윈스턴 마는 어느 날 나무에 기댄 채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쏘아 죽어버린다. 좋은 실력의 엔지니어이자 과장이 된 미미는 12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포틀랜드의 숲을 보며 일상을 즐겼던 것인데 어느 날 한 순간 숲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하여 포틀랜드 시청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중 검거돼 베트남 전 참전 상이군인이자 비행 사고로 낙하 중에 반얀나무에 걸려 목숨을 구한 더글러스 파블리첵을 알게 되고,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회사의 이미지를 흐린 대가로 해고를 당한 후 더글러스와 함께 대륙을 횡단해 솔러스에 도착, 아름다운 올리비아를 만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애덤 어피치는 일찌감치 인류는 끔찍하게 지구에 유해해서 이 종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되고, 곧 세상은 건전한 지성이자 집단의 지성인 군락과 군집으로 돌아갈 것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그건 자라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못해 대학에 진학해서는 심리학을 전공해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행동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려고 솔러스에 간다. 거기서 거대한 나무의 지상 30미터 높이에 있는 가지 위에 널빤지 두 장을 이어 붙이고 농성중인 올리비아와 니컬러스를 만나 숲과 나무의 보전을 위한 운동에 접어들게 된다.
  올리비아와 이이를 사랑하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남녀로서도 있겠고 동료로서도 있겠고, 아니면 자연 보존 운동을 하는 이이의 사고방식에 관해서도 있겠는데, 어쨌든 이이를 사랑하는 네 명이 젊은 시절에 벌였던 치열한 생명 운동. 그리고 여태 소개는 하지 않았지만 한 평생을 걸고 생명과 나무와 숲에 자기 인생과 생명을 걸고 연구를 하는 과학자, 살면서 저절로 나무와 생명에 관한 눈을 뜨게 되는 부부와 인도인 부모를 둔 한 불구의 천재 등이 등장한다. 말 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욕심내지 않고 이쯤에서 그만 하겠다. 이야기하지 않고 남긴 무수한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 장엄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책을 읽어보실 분들께서 직접 발견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니까. 인간 종種은, 인간 종은, 인간 종은 미안해하고, 불편한 것을 참고, 겸손해야 할 필요가 넘치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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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6-01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왠지 손이 안가서 안 읽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평소 제가 관심있게 보는 주제인데 왜 외면했는지 폴스타프님 덕분에 다행입니다. 😊

Falstaff 2020-06-01 12:25   좋아요 1 | URL
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랜만에 아주 꼭꼭 씹어 소화시킨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