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후감을 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좋다고 장안에 소문이 나긴 했는데 몇몇 이유로 오츠가 쓴 다른 책을 먼저 사서 읽어본 적이 있다. <사토장이의 딸>. 뭐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그래 이 책도 뭉개다가 늦게나마 손에 들었다. 호, 우리말 문장도 생각보다 잘 읽히고,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2부에 들어서자마자 뒤통수 확 후려 맞고(내가 원래 순진한 독자거든), 하여간 재미있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런데도 독후감을 쓰기가 쉽지 않다.
  캐롤 오츠는 데뷔한 후 56년 동안, 중편과 단편은 별개로 하고, 장편소설을 58편 출간한 다작의 여왕. 전에 읽은 <사토장이...>도 900쪽이 넘는 장편이었다. <카시지> 역시 660쪽에 달하는 긴 작품이다. 그러니 글 쓰는 거에 관해서는 가히 도가 튼 사람일 텐데 내가 감히 따따부따 할 내공이 되겠는가. 그냥 쓴 대로 읽고, 읽은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할 밖에.
  뉴욕 주 북부에 카시지라는 도시가 있다. 물론 가상의 도시고, 카시지Carthage는 보통 트로이의 명장 아이네이스가 여왕 디도의 구애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를 찾아 정처 없는 항해를 떠난 ‘카르타고’를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 속에 카르타고가 안고 있는 역사적, 혹은 신화 문학적 함의가 들어 있는지는 각자가 따져봐야 할 것인데, 구태여 끼워 맞추려고 하면 세상 어느 것인들 그렇게 하지 못할 건 없을 터.
  주인공 이름이 크레시다 캐서린 메이필드. 1986년 4월 6일생. ‘크레시다’는 트로이 전쟁 당시의 최고 예언자 칼카스의 딸 크리세이드의 영어식 이름. 책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건 제논의 역설. 즉 실생활 속의, 화살은 절대로 과녁에 박히지 않는다는 엉터리 수학적 무한성. 크레시다의 아버지 이름이 제노. 뭔가 크게 한 바탕 전쟁과 학살이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의 이름인데, 정작 전쟁과 학살에 참여하는 인물은 크레시다의 언니 줄리엣의 약혼자 브렛 킨케이드 상병이다.
  이 책을 잘 이해하려면 앞부분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힌트를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제노와 아를렛 메이필드 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크레시다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자폐증’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한 단계 위인 ‘아스퍼거증후군’일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지만 더 이상 확인해보지 않은 전력이 있다. 즉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특성이 있는 인물.
  크레시다의 경계성 인격 장애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 작품의 개연성은 단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물론 작가가 수시로 독자에게 이런 기본 조건을 납득시키고 있으니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아를렛과 제노 메이필드 부부의 두 딸 가운데 맏이는 예쁜 것으로, 막내는 똑똑한 것으로 캐시지 지역에 소문이 났다. 대개 예쁜 사람들이 마음씨도 착해(내가 반대 경우의 여자와 30년 넘게 같이 살고 있어 잘 아는데) 줄리는 독실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일찌감치 공부도 잘하고, 잘 생겼고, 거기다가 만능 운동선수인 브렛 킨케이드에게 청혼을 받아 약혼을 한 상태. 동생 크레시다는 똑똑은 하지만 인격 장애가 정말 있는지 감탄보다는 조롱에 익숙하고, 천성은 착하지만 남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즉,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가득한 캐릭터란 뜻.
  또 한 명의 주인공 브렛 킨케이드는 1990~91년 걸프전에 참전한 그레이엄 킨케이드 중사와 애설 사이의 외아들. 아버지 그레이엄은 브렛이 여섯 살 때 돈을 벌어온다고 집을 나가 마지막으로 요세미티에서 그림엽서를 보낸 이후 소식을 끊어버린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시절 속에서 아버지가 군인-형제, 군인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형제 같은 관계가 된 이들과 무람없이 지낸 것이 추억 속의 음각화로 남아, 자신 역시 군인-형제가 있는 중사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나이를 먹어갔다. 십여 년이 흘러 뉴욕주립대 플랫츠버그 캠퍼스에서 재무, 마케팅, 경영 수업을 듣다가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자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입대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브렛을 제외한 친구들 거의 모두는 입대취소를 결정한다. 2002년에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갈 사람들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으로 구성된 미국 하층민이란 걸 이미 알았고 국방부마저도 이를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층민으로 구성된 이라크 주둔지의 사병들의 세계에서 백인에다 대학까지 다니다가 군대에 지원한 브렛이 제대로 적응하기는 매우 곤란했던 모양이다. 킨케이드는 주둔지 키르쿠크에서 먹시, 브로카, 머핸, 라미레즈와 함께 조를 이루어 작전을 수행 했다. 주 업무는 전투이고 남는 시간, 사실 전쟁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전투가 아니라 ‘남는 시간’인데, 하여간 여유시간을 이용해 이들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애’들을 집단 윤간하고, 장면을 목격한 여자애의 가족들을 ‘처리’, 즉 몰살을 한다. 기념으로 살아 있는 소녀의 얼굴을 스위스 군용칼로 도려내고, 의료용 가위로 새끼손가락을 절단 후 살해하고, 브로카는 이를 휴대전화로 사진 촬영을 해 기념으로 보관했다. 이들 미군의 시각으로 볼 때 ‘미친’ 킨케이드는 이런 행위를 군 당국에 고발하지만 친구들, 소위 군인-형제들은 그에게 머저리 고자질쟁이이며 보복당할 거라고 경고를 하더니 진짜로 우군에 의해 고의로 터진 수류탄 파편에 치명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후 퍼플하트 훈장 하나를 받고 의병제대를 하고 만다.
  크게 말하자면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크레시다의 실종을 다룬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실종된 날, 크레시다는 언니 줄리와 파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자신이 오랜 세월 짝사랑했던 브렛을 만나기 위해 늦은 밤에 건달, 술꾼들이 모이는 울프스헤드 호숫가의 술집 로벅인으로 갔다가, 그와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브렛이 모는 랭글러를 타고 호수 주변을 달리다, 신경정신 치료약과 알코올을 함께 복용한 브렛의 혼몽한 의식 속에서 작은 사고가 나고, 그녀는 사라져버린다. 어떻게 된 걸까. 조수석에서 크레시다와 같은 B형 혈액이 몇 방울 떨어져있고, 역시 크레시다와 같은 검정 머리카락 몇 올이 발견되었으나 며칠, 몇 주가 지나도 크레시다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곁가지 다 치워버리고 크레시다의 실종에만 초점을 맞춰 읽으면 독자는 편하다.
  근데 나는 이라크 최대 유전지대 키르쿠크에서의 에피소드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문제였다.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한 영화 <디어 헌터>를 자주 소환하게 된 것. 조이스 케럴 오츠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이라크 전 참전 미국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스스로 최고의 아내감인 줄리와 파혼을 하고, 알코올 중독자 비슷하게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전 약혼녀의 여동생을 강간 살인한 것처럼 보이고, 자기가 진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강간 살인을 오로지 죽기 위해, 사형당하기 위해 자백하고, 중죄인 남자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일. 반면에 저 대서양과 지중해 너머 키르쿠크에서는 한 가족의 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가 거구의 미국인 네 명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것을 부모와 오라비와 자매가 눈으로 보아야 했으며, 딸 혹은 누이의 왼쪽 귀 밑에서 턱 쪽으로 얼굴이 절개당할 때도 차마 눈을 뜨고 있어야 했으며, 그들의 기념품으로 자신들의 새끼손가락을 잘라준 후 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츠는 현장을 묘사만 했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브렛이 이라크 여자 아이가 강간 살해당할 당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원죄적 죄책감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러나 그의 시각 역시 완전히 가해자의 시선이라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해자, 가해국의 작가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카시지>보다 딱 한 발자국 더 나가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들추어내, 적어도 공론화시키려 하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시도가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건 아니건 간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사리안 2020-05-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나이에 본 <디어 헌터>의 러시안룰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중심인물들 외의 배경은 완전히 의식 밖으로 밀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 글 읽으며 생각해보니 반전이라는 큰 메시지 하나로 퉁쳐버리기엔 베트콩에 대한 묘사도 찜찜하고 근본적인 모순은 모른 척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0-05-21 19:49   좋아요 0 | URL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잘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케이 2020-05-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진 않았지만, 디어헌터에 대해 쓰신 내용에 너무 공감합니다. 가해한 국가의 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연민과 동정 이상의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나봐요. 피해자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할 것 아닙니까. ㅜㅜ 아... 이 소설 저 읽어보려고 했는데 강간씬이 나온다는 걸 사전에 안 이상 읽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05-22 12:00   좋아요 0 | URL
아, 씬, 장면에 관한 세밀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단어만 써서 설명을 할 뿐입니다. 근데.... 오츠가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기는 하고요.
<디어 헌터>야말로 진짜 미국적인 작품이라 생각해요. 이 책도 역시 미국 소설이고요. 공감하신다니 고맙고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