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서버 - 윈십 부부의 결별 외 35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9
제임스 서버 지음, 오세원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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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제임스 서버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책의 앞날개를 보면 마크 트웨인을 잇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작가라고 소개한다. 짧은 소개 글을 봐도 이이의 인생 자체가 유머....라기보다는 우화 같다. 세 형제 가운데 둘째였는데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활 쏘는 장난을 하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실명을 한다. 이 일을 기점으로 서버는 우울한 소년기를 맞이하게 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 그림을 끼적인 것이 나중에 괜찮은 삽화가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리하여 이 단편집 《제임스 서버》에 실린 서른여섯 편의 작품엔 소설책에서는 드물게도 작가 자신이 그린 삽화가 꽤 많이 들어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근데 위의 문단에서 서버를 가리켜 ‘유머작가’라고도 하고 ‘우울한 소년기’라고도 했다. 서버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을 하고 나중에 뉴욕에서 산 모양이다. 이 단편집의 무대 역시 콜럼버스와 뉴욕이 대부분. 거의 모든 작품이 조금 특별한 인물을 관찰한 기록이다. 특별? 그게 아니면 적어도 기이한 사람들. 주인공이거나 화자 ‘나’가 관찰한 등장인물은 대부분 뭔가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기이함, 책을 읽는 독자와의 다름을 서버는 유머로 치환시켜 놓지 않았나 싶다.
  첫 작품 <에마 인치, 떠나다>는 메사추세스 케이프코드 연안의 고급한 휴양 섬 마서스비니어드로 휴가를 떠나는 부부가 그곳에 있을 동안 요리사로 에마 인치 여사를 고용을 하고, 고용계약을 해지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호리호리한 몸매를 한, 기억에 특별히 남을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중년 여인이지만, 인치 여사가 커다란 갈색가방을 들고 열일곱 살 먹은 보스턴 불테리어 종인 늙어 죽기 직전의 개 ‘필리’를 안고 도착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보니, 요리사는 모든 이동을 자신의 두 발을 이용한 도보를 통하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하며, 언제 죽을지 모를 늙은 필리를 안거나 걸리거나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강박증 증세가 있는 여인이다.
  두 번째 작품 <토파즈 커프스단추 미스터리>의 주제는 놀랍게도, 고양이의 눈동자는 늦은 밤에 번쩍번쩍 빛나는데 왜 사람 눈은 그렇지 않을까,에서 시작한 부부간의 일상적인 다툼이 남편으로 하여금 고양이 눈과 같은 높이를 하게하고, 즉 네 발로 엎드려 있게 만든 다음 차 전조등을 비치는 실험을 야밤에, 진짜 도로에서, 부인께서는 한 방울의 알코올도 흡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생각해보시라 자정이 넘은 시간 깜깜한 밤에 남자가 네 발로 아스팔트 위에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들이 발견하자, 변명을 하기를 길 위에 토파즈로 만든 커프스단추를 떨어뜨렸다고 둘러댄다는 이야기다.
  서버가 만든 가장 유명한 우스갯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음식은 웨딩 케이크”라는 말이 있단다. 당연히 결혼을 경험한 남자들, 아니다, 여자들도 포함한 (거의)모든 결혼 경험이 있는 인류들은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겠지만 서버는 유독 힘겨운 첫 번째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품 속에 유별나게 드센 여자와 소심한 남자 커플이 많다고 역시 책 앞날개에 씌어 있는 바, <토파즈 커프스단추 미스터리>가 처음 읽을 수 있는 그런 류의 작품이다.
  단편소설이라고는 하나 단편이라기보다 콩트 수준에 어울릴 분량의 작품이 많아서 더 이상 책의 내용을 밝히기는 좀 면구한 느낌이 들어 그만두겠으나, 편편이 말 그대로 유머 또는 가벼운 고소를 흘릴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고, 가끔은 (역시 유머 코드를 그대로 포함한 채)생각지도 않게 굵직하게 각 시대의 ‘웃긴 모습’,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역적으로 웃기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생각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도 좋고, 나처럼 연이어 한 권을 몽땅 읽어도 괜찮겠다. 서양, 특히 미국식 유머이기는 하지만 100년 전에 쓴 작품도 있어서 이젠 극동의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유머코드이며, 그러기 때문이겠지만 배를 잡고 웃어야 하는 장면은 없다. 이이의 삽화를 보기만 해도, 아,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구나, 하실 수 있을 것.
  근데, 당신이 미국인이라고 가정하고, 당신은 그레타 가르보가 좋은가 아니면 도널드 덕이 더 좋은가? 왜 묻느냐고? 그거야 책을 읽어보시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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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10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반쯤 읽다가 말았는데, 우울한 유머 작가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웃기려고 읽었는데, 웃기기보다는 우울해져서 걍 책을 살포시 내려놓은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남은 절반을 다시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0-04-10 11:59   좋아요 0 | URL
예. 어느 하나 개운하게 웃기고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꼭 뒷맛이 떱떠름하니... ㅋㅋ

CREBBP 2020-04-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반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무슨 새 소리 강박증 생기는 얘기가 인상깊었어요.^^

Falstaff 2020-04-13 12:32   좋아요 0 | URL
기묘하게 분명 희극인데 뭔가 캥기는 게 꼭 들어 있어서 편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의식 속의 별의 별 것들을 다 나열했더라고요. 하여간 흥미있는 작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