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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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가 토카르추크.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통해 처음 들은 작가. 당시 기사엔 시인이라고 소개했던 것 같다. 외국 시는 읽지 않는 습관이 있어 관심을 끊었는데 의외로 이이의 소설 몇 권이 시중의 종이 값을 올려놓아 찾아 읽게 됐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태고의 시간’, ‘게노베파의 시간’ ‘미시아의 천사의 시간’ 같은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다양한 색채를 주면서 오밀조밀하게 모여 폴란드의 작은 마을이 191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격랑을 여자들의 계보를 통해 그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옮긴이의 말에서 본 것도 같은데) 마르케스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되는 마콘도 마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중에 저절로 들게 된다. 비단 작품의 무대뿐만 아니라 신, 천사, 심지어 귀신과 이를테면 가구 같은 사물의 정령까지 동원하는 모습이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문학, 붐 문학적 요소를 많이 품고 있는 것까지 그렇다. 편집도 널럴하고 자그마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촘촘히 나열되고, 표현의 방식까지 재미있어 마음먹으면 휴일 하루에 책 다 읽고 독후감까지 쓸 수 있다.
  위에서 여자들의 계보를 언급했던 바, 제일 먼저 거론이 되는 이가 게노베파다. 서양의 옛 이야기 속에서 게노베파는 지금으로 보면 독일 땅의 영주 지크프리트의 아내로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면서 아내의 안위를 위해 남겨놓은 심복 골로의 위협과 계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절을 지킨 여인으로 이름이 높다.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하면 미하우 유제포비치 니에비에스키인 게노베파의 남편이자 물방앗간 주인 역시 러시아 군대에 의하여 강제징집 당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데, 토카르추크가 이야기하듯 신의 직업이 일종의 회계사 비슷한지라 한 사람을 인출해 가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한 명을 채워 넣는데 게으름이 없어 게노베파가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음 해에 태어나는 생명이 ‘미시아’. 미시아가 성장해 옆의 옆집에 사는 의욕적인 젊은이 파베우 보스키와 결혼해 딸 넷을 두고, 이중 맏이 아델카가 모든 태고 마을의 추억과 땅과 집을 두고 떠남으로 이야기를 마감하게 된다.
  미하우 니에비에스키 씨, 사실상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시아의 아버지의 성姓 니에비에스키는 폴란드 말로 ‘하늘의’ 또는 ‘천국의’라는 뜻의 형용사라고 한다. 발음이 쉽지 않아 애먹었는데, 중간쯤부터 이 이름을 ‘니 애비 애 새끼’로 발음하니 쉽게 읽혔다. 그저 참고만 하시라. 하여간 니에비에스키 씨는 세계대전에 참전해 (태고 마을 사람들은 이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있기는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질 않는 거다. 그 사이에 게노베파는 미시아를 낳고, 미시아가 벌써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는데도. 폴란드의 게노베파는 옛이야기 속 게노베파와 조금, 아주 조금 달라 물방앗간에 아르바이트로 임시 채용했던 잘 생기고 젊은 유대인 엘리와 서로 연정을 품게 된다.연정은 원래 파박! 하고 불꽃처럼 오는 법. 곧이어 본격적으로 후다닥 옷을 벗고 베드 씬을 벌이려는 순간 게노베파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엘리에게 남편이 죽었다는 확실한 소식을 듣기 전에는 자신의 몸을 만지지 않을 것임을 유대 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라고 요구하니, 다 된 줄 알았던 엘리의 몸과 마음이 어땠겠는가. 그런데 남편이 돌아왔다. 저 멀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폴란드까지 걸어오느라 일 년이 걸렸단다. 나 참. 이 정도면 작가 토카르추크의 뻥치는 스케일도 보통을 넘는다. 하여간 집에 돌아온 미시아의 아빠 미하우. 게노베파가 남편에게 처음 한 말이, “미하우, 그 어떤 남자도 날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래,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흘러 1928년 11월에 게노베파가 아들 이지도르를 낳았을 때, 유대인 총각 엘리는 게노베파에게 자기 아이라고 주장을 했다나?
  게노베파가 새댁이었을 때, 한 겨울에 어느 맨발의 거지 소녀에게 코페이카 동전을 하나 준 적이 있어, 이 아이가 이름을 ‘크워스카’라고 했고, 책에서 상당히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점점 나이가 들어 10대 중반부터는 태고 마을의 거의 유일한 창녀로 이름을 드높이면서도 나와 당신이 서로 동등하니 내가 당신 밑에 누워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결코 누워서 행위 하지 않았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러다가 결국 임신을 해 만삭이 되었을 때, 태고 마을의 서쪽에 위치한 성castle의 여주인 포피엘스카야 부인이 자기가 주인인 보호소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며 이 지역의 모든 땅과 숲이 자기 소유라고 하자 코웃음을 탁 치며 “전부 당신 거라고요? 작고 말라빠진 가여운 암캐 같으니라고……” 대꾸해 쫓겨나 다 허물어져 지붕도 없는 폐가에서 나은 아들은 ‘조용한 탄생’ 영어로 still born, 다시 한자어로 하면 사산死産하고 만다. 이렇게 주인공 주변의 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사산을 하거나 게노베파의 아들 이지도르처럼 뇌수종이라 조만간 죽을 팔자임을 판정을 받는 등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그래 태고 마을의 주인공 명맥은 저절로 여자들에 의하여 이어지는 것. 이후 크워스카는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갖게 되고, 숲과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신비와 섭리 같은 것에 달통하는데 또 한 명의 문제의 여인 ‘루타’라는 딸도 낳는다.
  이렇게 게노베파-크워스카 세대가 미시아-루타의 세대로 이어지며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잠깐의 황금기와 사회주의 폴란드의 경제적 궁핍에 이어 바웬사에 의한 자유노조 혁명과 민주화까지 태고라는 이름의 유럽 변두리 국가의 작은 마을의 흥망이 환상적 리얼리즘, 내 식대로 이야기하면 아몰랑주의적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독후감에서는 환상적 리얼리즘 식의 묘사에 관해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만일 이 요소를 뺀다면 토카르추크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반쯤 잃어버릴 것은 분명하다. 사회주의 정부에 의하여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성과 토지와 숲이 국유화되는 과정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았던 ‘이그니스 파투스’라는, 팔면체 주사위로 하는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 같은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직접 읽어서 알아보십사 하는 의미로.
  다른 거 다 빼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잖은가. 이름값만 갖고도 한 권 쯤은 읽을 만하다. 그 한 권을 읽고 나서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찾아볼까, 생각해보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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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1-2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몰랑주의‘의 작품은 읽어본적이 없어 이 작품은 자꾸 피하게 되지만 폴스타프님의 리뷰는 참 읽고 싶게 만드네요.

Falstaff 2020-01-28 13:56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말씀만 들어도 황감합니다.
재미있는 책입니다. 근데 선뜻 권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