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와 늑대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연극과인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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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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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1-21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작가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19년 폴스타프님의 결산 기대하고 있습니다.🤗

Falstaff 2019-11-21 12:36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아직 40일 남았으니 좀 더 읽고 생각해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