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베스트셀러 미니북 20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레스코프의 단편집 《왼손잡이》를 읽고 이이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의 원작을 썼다는 걸 알았다. 물론 레스코프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원작이라면 냉큼 사 읽었겠지만 정작 눈에 띄지 않다가 소담출판사의 옛 버전, 새 책 같은 헌 책을 발견해 얼른 읽었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과 <쌈닭>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문고판 포켓북.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워낙 쇼킹해서 CD나 영상물을 듣거나 봤다하면 딱 한 번으로도 스토리를 잊기 힘들 것이라 믿는다. 내 경우엔 CD와 DVD, (유령장면과 경찰서 장면을 생략한)영화 버전 VHS 필름을 갖고 있는데, 아이고 남우세스럽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담하게 연출한 영화 버전이 제일 좋았다. 이 오페라에 관해서는 줄리언 반스가 쓴 <시대의 소음>에 잘 언급이 되어 있다. 작곡해놓고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움츠러든 채 살았는지, 비밀경찰이 정치범을 주로 새벽에 체포해간다는 걸 아는 작곡가가 잠옷 바람으로 연행되는 것이 싫어 밤마다 옷을 다 입고 잤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그 만큼 작품 자체가 소비에트 시절엔 쇼킹했다는 건데, 정작 원작을 발표한 때가 1865년, 1934년에 발표해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오페라에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진 것이 우습기도 하다. 평론가들은 ① 작품의 인기가 위대한 스탈린을 능가해서, ② 스탈린이 보기에 작품이 불량해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참나, 스탈린 새끼가 알기는 쥐뿔을 알았겠는가 말이지.
 책에서는 므첸스크 출신의 여자 두 명이 각기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당연히 카테리나 리보브나. 시골출신 아가씨로 망아지 같이 자유롭게 살다가 근처 큰 상인, 므첸스크에서 큰 상인이라 하더라도 러시아 상인 전체 계급으로 보면 최하인 3등급 규모의 상인에 불과하지만 하여간 지역의 큰 상인의 홀아비 장남 지노비 보리스이치 이즈마일로프의 두 번째 아내로 들어가 6년차가 되던 해에 제분소를 둘러싼 둑이 무너지면서 사건이 터진다. 자유롭게 자란 카챠 입장에서 결혼을 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입으면 만사가 장땡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는 것 없이 날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 먹고 낮잠 자고, 점심 먹고 또 자고, 글도 모르니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안다 해도 책도 없는 시골, 바람소리와 새소리, 일꾼들 일하는 소리 말고는 적막밖에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아이라도 있으면 애 키우는 재미로 세상 일 잊으며 산다지만 전처 몸에서도 아이 구경을 못했던 남편 지노비의 씨 주머니엔 쭉정이밖에 없을뿐더러 이젠 어느새 나이 오십이 넘어, 아 미치겠다, 별을 따려 해도 하늘을 봐야 따지!
 쇼스타코비치 버전에서는 제방 공사 감독하러 간 남편 때문에 젊은 며느리가 밤이면 밤마다 독수공방하는 것이 안 되어 자기라도 빈 방에 들어 며느리를 달래줄까, 흑심을 품기도 했던 시아버지 보리스 치모페이치 이스마일로프, 원작에서는 벌써 아흔 살이 넘은 완전 늙은이로 등장해 그딴 흑심 같은 건 품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가 너무 하긴 너무 했다. 아무리 사내가 짚단 한 단 들 힘만 있으면 그거 할 생각한다고 해도 아흔 살 넘어 가당키나 하겠어? 그리고 문제의 일꾼 세르게이도 딱 그 시점에 맞춰 보리스가 채용한 것이 아니라 벌써 일을 하고 있었으며, 시녀 아크시나는 초장에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사생아 한 명을 낳고 시작한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와 거의 같으므로 이하 생략.
 다른 한 명의 므첸스크 여인은 이름을 돔나 플라토노브나. 이름이 돔나이며, 나이는 사십대 중반 가량. 한 번 결혼했지만 남편이 갑자기 숟가락 놓는 바람에 대처인 페테르부르크에 터를 잡고 방물장수 겸, 중매쟁이 겸, 뚜쟁이 즉 포주 까지 기회가 닿는 대로 악착같이 돈을 벌려 하지만, 페테르부르크가 어디 만만한 도신가, 돈을 좀 모았다 싶으면 사기 당해 쫄딱 망하고, 모았다 싶으면 또 망해버리기를 여러 차례. 그리하여 이젠 살아있는 부처, 또는 도사의 경지에 오른 여인이다.

 

돔나 플로토노브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부칭이 플라토노브나. 즉 철학자 플라톤의 따님이다. 맞지? 제아무리 플라톤의 따님이라도 청상과부로 한 생을 살려니 고생이 오죽이야 하겠나. 물론 처녀 시절부터도 므첸스크에선 나름대로 껌 좀 씹은 전력이 있었으나, 자기 한 몸 먹고 살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거처를 옮긴 후에 본격적인 ‘쌈닭’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쌈닭 여사가 하는 짓을 잘 보면, 비록 자기는 시골 촌년 출신의 가난뱅이라도 계급을 불문하고 세상의 불쌍한 것들을 나름대로 보살펴주려 하고, 어린 것들을 사랑하는 무뚝뚝한 친절을 자기 입장으로 보면 활수하게 베푸는 것처럼 보인다.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철학은 상대가 누가 됐던 간에, ‘일단 살고 보자.’로 귀착된다. 사는 것, 생존하기 위해 기꺼이 돈 많고 늙은 장군에게 자기 몸을 팔 수도 있다는 것이 여사님의 생존철학. 이 쉬운 밥벌이에 눈이 멀어 기어이 구렁텅이로 빠져 헤쳐 나오지 못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살고 보자는데 뭐, 어떻게 더 당연한 말이 있을 수 있나. 단편 소설을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짓은 정말 싸가지 없는 일. 이쯤에서 오늘 독후감은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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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1-1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서평가 이현우씨 책 <아주 사적인 독서>에 보봐리 부인 소개하면서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인 이 작품도 같이 언급해서 알게 되었어요. 꼭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폴스타프님 글 읽으니 꼭! 읽어야겠네요. 무서운 여자같은데ㅋ 그림은 귀엽네요 ㅎ

Falstaff 2019-11-19 20:19   좋아요 1 | URL
이현우 씨는 아마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이야기한 거 같네요. 그럼요. 러시아의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좋은 단편입니다. 줄리언 반스에 의하면(시대의 소음), 스탈린이 자기보다 인기가 더 많은 오페라로 작곡한 쇼스타코비치한테 열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당시엔 대단했을 거 같습니다.
ㅎㅎㅎ 그림은 같이 커플링된 <쌈닭>의 주인공이고요.

coolcat329 2019-11-19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맞아요.^^ 그림은 <쌈닭>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