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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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오르부아르>로 공쿠르 상을 받은 르메트르의 장편. 세간에 ‘인상적인 스릴러’ 소설로 이름이 높은 작품으로 <오르부아르>와 마찬가지로 임호경이 번역을 맡았다. 임호경은 이번엔 ‘옮긴이의 말’에서 많이 팔리는 책을 번역해 돈을 많이 벌게 된 ‘개이득’같은 개발랄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스릴러라는데 동의한다.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오르부아르>와 같다. 처음에 한 순간 사건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이 해당 사건에 매몰되어 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 르메트르가 기본적으로 스릴러 작가라 일단 살인사건을 저지른 후에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과학수사대’ 같은 수사/형사 드라마의 정형화된 플롯을 사용했다는 건 자연스럽게 봐야 하리라.
 1991년에 열두 살이니 1979년생. 프랑스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셍틸레르 변두리에 ‘보발’이라는 소도시에 열두 살 먹은 주인공 앙투안 쿠르탱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홀어머니라니까 아버지는 천국의 즐거움을 거부하지 못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소위 진짜 생물학적, 디옥시리보 핵산을 전해준 아버지는 실내 교향악단으로 유명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새장가 들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란다. 앙투안이 직접 슈투트가르트로 가서 친아버지를 본 적도 딱 한 번 있는데, 둘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를 소 닭 보듯 했고, 이후로는 편지 한 장 없이, 달마다 혹은 분기마다 따박따박 교육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고, 서양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꼭 유행 지난 선물 꾸러미를 소포로 받는 한 해의 사이클을 돌리고 있었단다. 때는 드디어 프랑스 시골마을에도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이 들어와 사내아이들을 운동장과 광활한 숲 속의 망아지 상태에서 집구석 소파 위의 도시광부로 만들기 시작할 때였음에, 우리의 앙투안은 어머니 쿠르탱 부인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파 위의 도시광부 그룹에 진입하지 못한 채 홀로 생퇴스타슈 숲에서 삼 미터 높이의 나뭇가지 사이에 아지트 비슷한 자신만의 집을 지으며, 즉 빌빌대며 놀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바로 옆집 데스메트 씨 집의 막내아들 여덟 살 먹은 레미가 나무 위의 집으로 향하는 일종의 엘리베이터까지 만든 앙투안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언제나 졸랑졸랑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데스메트 씨의 집엔 오디세우스의 프랑스어 표기인 윌리스란 이름의 잡종 개를 키웠는데 이 개가 외톨이 주인공 앙투안의 소년시절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인 것을 정작 데스메트 씨는 몰랐었다. 그래 사달이 벌어진다.
 어느 날, 피아트 또는 시트로앵이 과속으로 달리다가 윌리스의 정면과 충돌했고, 윌리스는 불행하게도 현장에서 즉사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전신 골절을 입은 상태로 고통에 휩싸인 채 데스메트 씨 마당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이를 내려다보던 데스메트 씨는 집으로 들어가 엽총을 가지고 나와 윌리스의 복부에다 한 방을 발사해 나름대로 안락사를 시키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입구를 끈으로 막은 채, 그냥 쓰레기더미 옆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거친 성격의 데스메트 씨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리였지만 그때부터 어린 앙투안의 눈에는 쉬지 않고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으며, 심사가 극도로 비틀린 소년 앙투안은 숲으로 들어가 자기가 짓고 있던 나무 위의 아지트를 몽땅 부숴버리고 말았다. 이때 졸랑졸랑 우상 앙투안 앞으로 달려오던 레미. 앙투안은 엉뚱하게 레미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너희 아빠가 왜 그랬어? 엉,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그리고는 분노에 휩싸여 벌떡 일어나 원시적인 엘리베이터를 지지하던 작대기를 집어 들고 새파랗게 질려버린 레미의 관자놀이를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러버렸다. 딱 한 번. 작대기가 어린 레미의 관자놀이에 닿자마자 ‘빡!’하는 충돌음이 약 10 데시벨 정도로 발생했고, 레미는 눈을 뜬 채 그대로 넘어졌으며, 긴 말 하지 않고, 죽었다.
 이후 상당한 부분은, 글쎄 내가 읽기로는 작가의 관점에서 본 어린 앙투안의 고뇌가 오래 이어진다. 나름대로 레미의 시신을 성공적으로 숨긴 앙투안은 자신이 체포되어 적어도 20년 정도 감옥에 가야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197쪽까지, 책의 거의 삼분의 이 분량을 고뇌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떠오르는 작품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가 저절로 떠오르는데, 포르피리가 없는 라스콜리니코프. 거기다가 이제 겨우 열두 살 먹은 살인범이라니.
 2부는 다시 12년이 흘러 앙투안이 스물네 살 먹은 인턴 과정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시점. 어느 새 청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과거 자신의 순간적 잘못에 대한 죄의식에 싸여 우울한 젊은이로 성장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가능하지만 결코 아이는 만들지 않겠다는 필생의 신념을 세운다는 건 독자라면 저절로 이해가 간다. 자신의 고향 보발 시에 다시는 걸음을 하지 않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았으나 아직도 어머니 쿠르탱 여사가 고향에 살고 있으니 일 년에 몇 번을 다녀가지 않을 수 없을 터. 12년 전에 자신을 살인범으로 만든 최초의 원인은 피아트 혹은 시트로앵에 의하여 저질러진 교통사고였듯이, 이제 세월이 흘러 외과의가 되기 바로 전 단계에 접어든 앙투안 앞에 또 한 번의 교통사고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역시 잘 쓴 대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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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1-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떡밥의 유혹이란...

당장 달려 나가 사야 하나요.
궁금하네요 증맬루.

Falstaff 2019-11-11 14: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헌책방에 한 번 들러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