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9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덩치만 컸지 어수룩한 사내. 캐나다의 황량한 뉴펀들랜드 섬에서 폭풍과 바람과 더불어 살다가 뉴욕까지 흘러들어온 가족의 둘째 아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마초적인 훈육과 조금은 야비한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형에게 숱한 비아냥거림과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스스로 실패자의 길을 가는 젊은이로 성장한 코일. 빨래방에서 우연히 만난 흑인 청년 파트리지의 주선으로 영세한 지역신문사에 들어가 임시직 기자 활동을 할 때까지 앞으로 계속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될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숱한 직장을 거치며 뉴욕의 뒷거리를 배회하는 우울한 청춘이었던 그가 비록 대학을 중퇴하여 웬만큼 글줄이나 쓸 줄은 알았지만 그동안 별다른 독서도 없었고, 글을 쓸 일도 없어 처음 쓴 기사 첫 꼭지부터 머리도 좋고 운도 좋은 청년이자 이제는 상관이기도 한 파트리지의 냉정한 수정용 ‘붉은 펜의 학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한 모임에서 아담한 체구에 예쁜 용모를 지녔으나 이미 걸레처럼 너덜너덜한 아가씨 페틀을 만나 무턱대고 결혼을 하고, 딸 버니와 선샤인을 차례로 낳는다. 그럼에도 아내 페틀은 여전히 향락을 좇아 다른 남자들과 연애행각에 날 새는지도 모르다가, 결국 두 딸을 낯선 남자의 차에 태우고 몸을 실으면서 “이혼 서류는 우편으로 보내줄게.”라고 선언하고 떠나버린다. 어린 두 딸을 변태한테 팔아넘기고 그 돈을 움켜쥔 채 꿈의 땅 플로리다로 폭주하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언덕 아래로 구르는 와중에 목뼈가 부러져 죽고 만다. 아내가 죽기 바로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거 같던 간암에 걸린 아버지가 치료의 가망이 없어 보이자 바르비투르산 염, 즉 수면제를 다량 복용해 자살을 해버렸는데,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초대한 유일한 친척인 고모가 뉴욕에 도착한 때는 이미 코일이 아이 둘 달린 홀아비 신세가 돼버렸을 때였다. 실내 천갈이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고모가 조카에게 와보니, “냉담한 눈과 요염한 포즈만 봐도 하이힐 신은 잡년임을 알 수 있는” 페틀이 그래도 생명보험에 가입을 해놓아 코일과 딸에게 많지는 않지만 상당한 액수의 보험금을 남겨놓았던 거였다.
 이때 고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생 혼인하지도 않고, 그래서 자식 하나 없는 고모가 뉴욕이란 정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자의 삶을 사는 덩치만 큰 자기 핏줄, 혈육에게 조상의 땅 뉴펀들랜드 섬으로 돌아가자고 제의한 것은 왜일까. 고모는 폭풍과 바람과 빙산과 물범과 대구의 땅, 남자는 언젠가는 얼음이 자박자박한 바다에 빠져 죽고, 여자는 언젠가는 과부가 되고야 마는 거대한 바위섬보다 뉴욕의 자본주의가 더 황량하고 살벌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조카 코일에게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 40년이 넘어 고모는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가 아직도 살아있고, 불과 열두 살 때 물범 사냥을 하다가 바다에 빠져죽은 의붓아버지의 손자인 코일의 가족을 솔가하여 기어코 뉴펀들랜드 섬으로 떠나고야 만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야 본문이 펼쳐진다. 뉴펀들랜드. 젊은이에게 두 가지의 기회만 주어지는 땅. ① 토론토나 밴쿠버, 또는 뉴욕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화재가 난 잿더미 속의 칼날 같은 성격으로 바뀐 뒤에야 돌아오는 기회와, ② 조상 대대로 거의 빠짐없이 그랬듯이 언젠가 셔벗 같은 바닷물 속에 거꾸로 박히거나, 배와 함께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기회. 어쨌거나 세상 어디라도 사람은 살아가는 법. 우리의 코일과 고모와 두 딸, 버니와 선샤인 역시 험한 환경 속에 처박혀도 그곳의 투박하지만 정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뉴욕과 죽은 아내이자 엄마인 페틀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이런 과정이 바로 소설의 본문이자 결론이라 할 수 있을 듯.
 500 쪽에 약간 모자라는 장편이지만 재미있어 빠르게 읽힌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 애니 프루의 간결한 문장이 마치 기사문 같아 정확한 뜻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독자도 결국은 어떤 결말로 끝낼지 중간쯤 벌써 환하게 눈치 채게 만드는 스토리의 전개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만든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짐작하는 결론을 향해 어떤 식으로 한 발 한 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확인하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집단이다. 애니 프루는 이런 독자들의 일반 취향에 딱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주인공에게 어렵고 난처한 초반부를 제공하고 나서 한 계기를 만들어 환경을 바꾸게 만들고 선량한 주변인들의 도움과 숨겨왔던 성실함으로 그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성공적으로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다시 만드는 일. 전형적인 미국 영화를 보는 듯 일종의 틀에 맞춰 가공한 작품을 읽은 느낌.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난다. 세상의 어느 땅에도 안식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진리에 대해, 애니 프루는 한 번쯤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10-2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버전으로 읽었던 책이네요.

영화도 있는데 영화에서 사람들이
집을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Falstaff 2019-10-29 13:23   좋아요 0 | URL
옙. 전 이번에 문둥이가 새로 번역을 한 줄 알았습니다. 순진하기는 참... ㅋㅋ
저도 독후감 쓰고난 다음에, 2001년에 케빈 스테이시, 줄리안 무어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만들었다고 어느 분께서 귀띔해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