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선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천상병 지음, 박승희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문학을 전공했던 후배가 천상병과 박재삼을 매우 좋아했었다. 후배는 내가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한강물에 몸을 던져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즈음엔 ‘퇴행’이란 정신질환에 시달려 만날 동네 꼬마 아이들하고 같이 뛰놀며 놀았다고 들었다. 자신의 기질에 퇴행 비슷한 것이 들어 있어서 천상병과 박재삼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거꾸로 천상병과 박재삼을 너무 좋아해 퇴행으로 발전했는지 구분이 가지 않아서, 살며 이때까지 한 편의 천상병과 박재삼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읽는다.
 첫 번째 시, <편지>.



 편지



1

 아버지 어머니, 어려서 간 내 다정한 조카 영준이도, 하늘나무 아래서 평안하시겠지요. 그새 詩人 세 분이 그 동네로 갔읍니다. 수소문해 주십시오. 이름은 趙芝薰, 金洙暎, 崔啓洛입니다. 만나서 못난 아들의 뜨거운 인사를 대신해 주십시오. 살아서 더없는 덕과 뜻을 저에게 주었읍니다. 그리고 자주 사귀세요. 그 세 분만은 저를 욕하진 않을 겝니다. 내내 안녕하십시오.


2

 아침 햇빛보다
 더 맑았고


 全 世界보다
 더 복잡했고


 어둠보다
 더 괴로왔던 사나이들,


 그들은
 이미 가고 없다.

  《현대문학》 1971. 8 (3쪽. 전문)



 왜 이 시를 읽으며 울컥,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죽은 부모를 회상하며 감성팔이 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러니 돌아가 하늘나무 아래 이미 터를 잡은 부모에게 쓴 편지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조지훈, 김수영, 최계락. 이 세 명의 시인, 살면서 천상병에게 덕과 뜻, 즉 격려와 기회를 주고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들을 보낸 아쉬움을, 자신을 욕하지 않을 세 시인을 동시에 잃은 상실을 이리 노래한 것 아니었을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시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고, 멸시하고, 폭행하려고 할 것 같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가득 배어 있는 시라서 나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든 것 같다.
 사람은 다 혼자다. 시집 전편에 걸쳐 나오듯 천상병은 1967년 동백림사건 이후 늘 가난과 병마와 실업에 시달려왔다. 시 <광화문 근처의 행복>에서 보듯 다정한 나의 친구 소설가 오상원(들)에게 돈을 얻거나 술을 얻지만, 만성적인 이런 행동도 시인 스스로에겐 즐겁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괜히 시인이라 명왕성 근방에서 방금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이라 생각하지 말 것. 시인이라서 오히려 더 자존감에 심한 상처를 냈을 수도 있으니. 이 와중에 그래도 자신을 귀찮게 여기거나 욕하지 않을 딱 세 명의 시인들을 보내는 마음이었다면, 오죽이나 황망했을까.
 이 시선집엔 작고한 인물에 대한 추모가 많은 편이다. <편지>에서 조지훈, 김수영, 최계락을 추모했고, 이외에도 <金冠植의 入棺>, <哭 申東曄>, <金宗三 씨 가시다>, <哭 鄭龍海>에서 각 시인, 문화인을 추모한다. 그러나 역시 시집을 관통해서 흐르는 정서는 가난이다. 가난은 천상병의 트레이드 마크이고, 본인 말대로 그의 직업이자, 밥벌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난을 노래할지언정 징징거리지 않는다. 나는 징징거리지 않는 가난이 좋다. 징징거리지 않는 병과 고통의 노래가 훨씬 더 아름답다. 내가 <호마이카 상>을 쓴 김태정을 애정하는 이유다.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시인》, 1970. 7  (8쪽. 전문)


 가난이 직업이다. 독자가 시인을 이해하기론, 가난한 상태를 시로 만들어 잡지 《시인》에 기고해 원고료를 버는 직업에 종사한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그저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갑도 아니고 갑에 두둑이 든 상태면 좋고, 거기다가 해장을 했는데도 집에 갈 버스 삯이 남았으니, 함포고복이면 그만이란 태평가를 노래하다가, 이리 한 평생 지내 돌아보니 세상 별 거 있나, 괴롭지 않으면 그게 인생인가, 하여, 평생 예금통장을 만들 필요 없는 햇빛만 잔뜩 받았어도 그런대로 산 인생, 이젠 여기에 잠들었노라, 새겨주기 바란단다.
 천상병의 시를 읽다보면 나이 50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노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1930년 생. 쉰 살이면 1980년. 노년에 들면서 이제 주위의 잔잔한 일상들이 시가 되는 시기를 맞는다. 많은 노 시인들 역시 시의 주제가 일상 또는 회상으로 바뀌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천상병은 50년대부터 첫 시 <편지>의 세 번째 등장하는 시인 최계락과 함께 당시의 신성rising star으로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최계락은 시와 더불어 동시, 동화작가로 이름을 낸 이다. 천상병 역시 친 자식 없이 나이가 들며 점점 아이들과 유대가 깊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건 천상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기초상식이지만 이 시선집을 이야기하면서 빼놓고 가면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천상병, 하면 제일 앞에 놓아야 할 작품은 역시 <귀천>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귀천>을 인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단연코 <천상병 시선>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런 이유에서 이 시를 옮겨놓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려 했다. 시집에도 스포일러가 있다면, 해당 시집의 가장 대표적인 시를 옮겨놓는 행위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귀천>은 너무 널리 알려져 굳이 숨길 이유가 되지 않는다. 라고 쓴 후에 나도 대표작 <귀천>을 배껴 놓으려 했다가, 아무래도 양심상 그렇게는 못하겠다. 대신 대한민국 국가대표 애주가로 명성을 높인 천상병의 다른 시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감하자.



 술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잔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46쪽. 전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9-07-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천상병 시를 읽으신다는 그 사연에 울컥합니다...

Falstaff 2019-07-17 10:59   좋아요 0 | URL
다 인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