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0
캐서린 앤 포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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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집은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가 쓴 세 권의 책, 1972년 판 <처녀 비올레타>, 1950년 판 <순교자>, 1934년 판 <아시엔다>를 옮긴 것이다. 세 권의 중단편선에 있던 작품을 적절하게 배열하여 1편 <꽃피는 유다나무>, 2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3편 <기울어진 탑>으로 다시 배열해놓았다. 원본이 되는 세 권의 책, 각각의 표제작은 1편 <꽃피는 유다나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출판사 현대문학이 나름대로 타당하게 분류를 했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랬겠지. 아니면 세 권의 책을 860쪽이 넘는 한 권으로 묶지는 않았을 듯하니. 적어도 세계문학 단편선에 관한 한 출판사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만족을 주니까. 게다가, 캐서린 앤 포터, 이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정작 읽어보니 우리나라 번역문학 수준이, 이런 소설가를 2017년 12월 29일이 돼서야 처음 번역 출간했다는 거 하나 가지고, 야만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직접 읽어보시든지.
 생소한 작가라서 이이의 인생을 조금 살펴보자. 1890년에 텍사스에서 출생, 1980년 메릴랜드에서 졸. “지극히”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남부 사회에서 불우한 유년기 보냄. 열여섯 살에 남부 출신 마초 존 헨리 쿤츠와 결혼해 8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함. 남편(새끼)한테 얻어 터져 뼈가 부러지고 유산까지 하는 바람에 당시에 흔치 않던 이혼을 감행하고 남부를 떠나 사회활동 시작. 다섯 명의 남자와 결혼해 다섯 번의 이혼을 거치는 동안 무명작가에서 퓰리처상에 빛나는 인기작가가 됨. 행운은 언제나 불행과 합동으로 들이닥치는 법이라 그동안 결핵과 임질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기도 하고 스페인 독감으로 염라대왕 전殿에도 잠깐 다녀옴. 덴버와 뉴욕,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까지 종횡무진하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함.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등 안 돌아다닌 곳이 없고, 멕시코에선 혁명에 참가하기도 했다는데, 설마 혁명 수뇌부는 아니었겠지.
 이 정도면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작가다. 그러나 부럽지 않다. 불우한 유년기와 완고, 고루한 남편에게 얻어터지던 틴 에이지 어린 신부 시절은 포터의 나머지 생애 내내 깊은 낙인으로 찍혔을 테니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치가 떨렸을까. 이 책에 실린 스무 편의 작품의 무대는 그녀의 삶을 보냈던 멕시코, 텍사스 흑토지대의 농장, 유럽, 루이지애나 등 다양하다. 포터의 데뷔작은 <마리아 콘셉시온>. 책에 첫 번째로 실린 단편이다. 1922년 뉴욕에서 썼다고 작품의 마지막 괄호 안에 적혀 있다. 마리아 콘셉시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남편 후안이 동네 처녀 마리아 로사와 불륜을 벌이는 꼴을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소품으로 무대를 멕시코의 작은 도시로 설정했다. 멕시코에서 혁명이 벌어지자 남편 후안은 혁명군인지 정부군인지 하여간 군대에 징집되어 나가면서 옆구리에 마리아 로사를 차고 떠나, 아이 하나를 둘러메고 탈영해 돌아와, 우리말로 하자면 ‘두 집 살림’을 하는 얘기.
 내가 읽어본 남부 출신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카슨 매컬러스, 윌라 캐더, 존 스타인벡 정도인데, 책 뒤에 달린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이 되었다시피 캐서린 앤 포터야말로 텍사스 저 촌구석 출신임에도 무대가 세계각지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유년기와 첫 결혼시기를 매우 불행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거를 지닌 작가들 가운데 흔히 자신의 고통에 천착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포터는 과거 경험을 소외당하고, 약하고, 피해를 입는 여러 개별적 영혼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아울러 많은 작품에서 마리아-해리-미란다, 이 세 명으로 이루어진 남매가 쉬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각별하다. 형제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 마리아-해리-미란다 커플은 늘 직접 행위자로 여러 작품에 동시 출현을 하며, 독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들 중 미란다와 작가 포터를 한 인격으로 볼 수도 있고, 사실 또 그렇게 된다(‘되더라’라고 쓰자).
 짧은 이야기도 많고, 중편, 긴 중편(혹은 경장편)으로 구성된 작품 하나하나, 재미없는 소설이 없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가슴 속에 약간 아리지 않는 것도 없다. 혹시 모르겠다. 작가가 작품 속에 오롯하게 자신을 담을 때 독자가 이런 느낌을 받는지. 굳이 비교해 서열을 두어 동무님들에게 권한다면, 저번에 읽은 현대문학사 세계문학 단편선 32권 <진 리스 - 한잠 자고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 외 50편>보다 이 책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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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3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 리스> 단편집 보다는 이 책이 좀 더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전 이 책 절반정도만 읽고 멈춘 상태인데! ㅋㅋㅋ 폴스타프 님은 한번에 해치우셨군요!

Falstaff 2019-05-31 10:04   좋아요 1 | URL
옙.
전 한 방에 몇 십 권의 책을 사놓고 초간 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서, 순서를 지켜야 하거든요. 못된 버릇이지요. ㅠㅠ

목나무 2019-05-3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이 단편집 수록 작품들 다 좋아요. ^^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계속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이런 작가도 알게되니 말이죠. ^^

Falstaff 2019-05-31 11: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현대문학을 급칭찬하게 됐습니다.
다음 달엔 그레이엄 그린을 읽을 겁니다. 그 책도 기대하고 있습지요. ^^

목나무 2019-05-31 11:35   좋아요 1 | URL
저 그레이엄 그린 다 읽었는데 좋아요!
특히 저는 앞부분에 실린 글들이 좋더라구요. 첫번째로 실린 단편(아이들이 집을 부수는 내용)은 진짜 인상깊었어요!
담달에도 즐독하셔요. ^^

Falstaff 2019-05-31 12: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