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2016년 겨울, 한길사에서 간행한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한국어 번역본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출판사가 일단 1권을 찍어 시장에 내놓았더니, 적절한 마케팅에다가 제목도 자극적이어서 그러했는지 너도 나도 <나의 투쟁>을 읽기 시작했으며 줄줄이 갈채와 상찬이 터져 나왔다. 이런 책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하는 법. 내가 아직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은 이유와 같다. <채식주의자>와는 달리 1년 만에 <나의 투쟁>에 관한 호들갑은 잠잠해진 거 같다. 드디어 책을 읽어볼 때가 됐다. 마침 중고책 가게에서 거의 새 책을 칠천 원에 팔기에 주저하지 않고 집어 들었다.
 글쎄. 문학이라고는 한 학기도 공부해보지 않은 내가 이리 유명한 책에 관해 뭐라 섣불리 평할 자격은 없지만, 그것도 분명하게 없는데, 그래서 다만 한 마디 하자면, 나하고는 맞지 않는 책이란 것. 2부로 된 1권의 분량만 667쪽. 이게 끝이 아니라 비슷한 분량의 책이 6권까지 가고 2019년 5월 현재 딱 절반인 3권까지 번역해 나왔다. 그러니 완독을 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가닥도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읽다가 중도무이 될 터라면 1권 2부까지 지루한 책을 다 읽을 필요도 없다. 내 셈법에서는 그랬다. 그래 1권 1부까지만 읽고 덮었다. 방금 전에.
 내놓고 자전 소설이다. 주인공 이름이 작가와 같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이제 내일 모레가 마흔 살이 될 작가가 그의 소년시절부터 기억나는 대로 써 놓았다. 자전소설이라고 해서 정말 객관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옮겼다고 짐작은 마시라. 원래 기억이라는 건 기억하는 사람이 임의대로 재편, 연출해 남은 것들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니. 그래서 소위 ‘자전소설’이야말로 거짓말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소설을 말한다. 그걸 심리학 용어로 인지부조화라 이야기해도 좋다.
 크나우스고르는 이 책을 쓰면서 등장인물 대부분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기괴한 일을 저질렀다.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면 자전소설의 경우에 실명을 쓰는 것이 통용될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일반적으로 기괴하지 않을까? 물론 원고를 등장인물에 보내 실명을 사용할 것임을 통보하고, 수용하지 못할 경우엔 가명을 쓰겠다고 고지를 해서 두 명의 이름만 가명으로 적었다고 하니 할 말은 없는데, 나 같으면 절대로 실명을 사용하는데 동의해주지 않을 거 같다. 이런 책 뒤의 이야기를 감안하더라도 책에 들어 있는 사건, 사고, 행위들이 전부 객관적 사실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당시 있었던 일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의와 토론을 해서 내린 결론일지라도 결론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 터인데 심지어 작가 혼자의 과거 회상에 의한 기록을 어떻게.
 책이 시작할 때 책 속 자기 아버지보다 일곱 살을 더 먹어서 서른아홉 살이 된 노르웨이 사람 크나우스고르는 나이 어른 세 아이를 키우며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소리 지르고, 주변을 어지럽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서 한 시도 빼지 않고 작가의 시선 속에 들어있기를 요구한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성격의 작가는 슈퍼마켓 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며 고함을 지르는 아이한테 달려가 양 어깨를 꽉 쥔 채로 고함과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함께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앞뒤로 흔들고 있다. 그림이 그려지시지? 스웨덴을 비롯한 선진국이란 나라의 공통점은, 부부가 함께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데 있는 법이니까, 아빠가 아이 셋을 데리고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는 장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터. 하지만 턱수염이 덥수룩한 늙은 아빠가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거칠게 흔들면서 함께 악을 쓰는 모습은 아무리 스웨덴이 북구의 야만인들이 살던 땅이라 하더라도 좀 그렇기는 하겠지. 원래 아이를 볼래, 여름 땡볕 아래서 파밭을 맬래, 하면 백이면 백 다 파밭을 맨다고 할 만큼 아이 보는 일이 어렵기는 한 거지만. 그래 작가이자 주인공 크나우스고르는 책에서 처음으로 자기 입으로 “나의 투쟁”이라고 단정하는 게 바로 아이 셋을 돌보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대강 한 60쪽 까지를 말하는 건데, 아 작가가 나의 투쟁이라고 하는 건 살면서 누구나 부대껴야 하는 여러 난관들을 칭하는 거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삶이라고 하는 건 투쟁의 연속.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형제, 자매간 부모의 사랑을 두고 투쟁을 시작해서 세상의 모든 절차를 밟아나갈 때 한 번도 빠짐없이 쉽지 않은 매듭을 지어야 하니까.
 작가가 이렇게 말했단다.
 “누군가가 『나의 투쟁』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지루하고 재미없게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선 그 어떤 타협이나 절충을 찾아볼 수 없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내 뜻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671쪽)
 1권의 1부까지만 읽었다는 건 앞에서 썼다. 1부 중간쯤 읽을 때, 지루해서 아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가 1부 마지막 부근에 가니까 읽을 만해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중도에 멈춘 건, 마저 읽으나마나 어차피 완독을 할 수 없는 작품을 뭐 한다고 읽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종 6권이 나와 그 책을 읽을 때면 1부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을 것임을 내가 알기에. 아울러 내겐 이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쪽이었음을 기어이 고백하고 독후감을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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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2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책이었는데, 아예 시도를 하지 않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제목이 참... 자극적이네요.

Falstaff 2019-05-22 10:27   좋아요 0 | URL
제목 때문에 뻑 가서 주머니 턴 독자도 아마 꽤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