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문제 창비세계문학 65
베시 헤드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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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어머니가 흑인 하인과 정을 통해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것도 1937년이라면 보통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여자가 원래 신경증 증세가 있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즉각 가톨릭 신자인 혼혈 유색인 부부에게 입양 시켜버렸다. 그러나 유전인자의 끌림이란 것 역시 쉽게 끊어질 성질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할머니는 종종 아이를 찾아보기도 했단다. 아이가 열네 살이 되던 해의 크리스마스에 학교는 아이를 양부모에게 보내는 대신 법원으로 끌고 가, 백인 어머니와 원주민 흑인 아버지 사이의 출생임을 처음으로 알렸으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 이후 남아프리카의 정치적 소요에 관심을 갖고, 힌두교인으로 개종을 했으며, 교사 생활을 조금 하다가 때려치우고 유색인 대상 신문기자 생활을 잠깐 한다.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정치활동을 하다 체포되기도 하고, 유명 예술가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젊어서 겪은 많은 우여곡절엔 결혼과 출산도 포함되며, 아들과 둘이서 보츠와나로 이주해 겪는 신산한 삶으로 정점을 찍는다. 보츠와나의 작은 마을에서 중학교 선생을 하다 교장과의 갈등으로 학교를 그만두면서 지역산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어머니로부터 유전형질을 물려받았는지, 아니면 유난한 삶의 우여곡절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신경증이 심하게 도져 정신병원에 몇 차례 입원하게 되니, 이게 작가 베시 헤드의 30대 시절이며, 작가가 쓴 장편소설 <권력의 문제>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겪어야 했던 당시의 고통이었다.
 책은 지역산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쓰니 여성, 흑백 혼혈, 아파르트헤이트, 가난한 지식인, 소외, 백인과 원주민의 갈등 등 존 쿳시가 주로 다루는 소재로 별다른 무리 없이 읽힐 것 같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읽기가 만만하지 않으며, 만만하기는커녕 심지어 어렵다. 나도 한 60쪽까지 읽다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막막해 책을 덮고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꽤 괜찮은 책을 읽지도 않고 던져버릴 뻔했다.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사서 읽는다면, 먼저 읽은 자의 선의로 말씀드리니, 한 50쪽까지 읽어도 오리무중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책 뒤에 달려있는 “작품해설” 2장章 ‘쎌로와 댄’(306쪽)의 첫 문단만 미리 봐도 책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쎌로와 댄, 그리고 그들의 부속 장치인 메두사와 이상한 여인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그리하여 어려움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는 걸 보장한다.
 아니다, 지금 가르쳐드리지.
 작중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소설의 처음부터 거의 끝부분까지 신경증 증세, 즉 미친 상태에 있다. 그래 그이는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는데, 애초에 공부한 것이 많은 지식인 계급으로 여러 불평등을 경험한 바 있어, 환상과 환청을, 독자는 (거칠게 말하자면)정신계의 최고 권력자인 선한 신과 악마로 규정해서 읽을 수도 있다. 즉 주인공의 정신세계가 거의 대부분의 독자 같은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것, 그이가 보고 듣고, 이의 영향을 받아 번민하고 결심하고 행위 하는 일체의 것이 자신의 에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것을 빨리 이해하면 무척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런데 신경증에 걸린 여인의 뇌 속에서 벌어진 일이 고통스럽게 표현되고 있는 가운데 가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삽화처럼 끼어들어, 작품을 쓴 1970년대 초반 남부 아프리카 보츠와나를 그리고 있다. 교장선생과의 갈등에 이은 해고, 지역산업 프로젝트에 기꺼이 합류시켜주는 인정 많은 백인 유진, 자신이 맡은 농사일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는 원주민 여인 케노시, 미국 출신 젊은 농업운동가 톰 등의 선한 인간들. 흑인 엘리자베스한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으면서도 그 때 이이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알고 선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던 선량한 백인 존스 부인 등.
 그렇다. 제목이 노골적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불평등은 근본적으로 권력의 문제라는 것. 그리하여 권력이 단 하나로 같아질 때 세상은 화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단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니 그 이름은 인간이라. 그리고 영숙이와 창식이가 그의 예언자이니.” (300쪽)


 결론이 좀 과하게 단순하지 않나? 정말? 확인해 보시라. 안 알려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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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0-01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처음에 진짜 읽기 힘들더라고요. ㅋㅋㅋㅋ 사실 읽다 보면 저까지 미칠 지경? ㅋㅋㅋㅋㅋㅋ 암튼 베시 헤드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고 사뒀어요.

Falstaff 2019-10-01 10:55   좋아요 0 | URL
오죽했으면 읽다가, 때려 치워? 말어? 고민하다 아 씨, 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으려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