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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ㅣ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풍아송風雅頌>이란 아름다운 제목 딱 하나만 보고 읽었다가 똥 밟은 책의 저자 옌롄커. 다시는 옌롄커가 쓴 책을 읽지 않겠다고 작심을 했었는데, 문학 전반에 걸쳐 현대 중국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옌롄커, 이미 쓰레기통에 버린 작가의 이름이 꼭 한 두 번은 나오더라는 말씀. (이 사람이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는구먼. 놀랠 '노'자여!) 그래 한 권을 더 읽어보고 결론을 내리려 마음을 바꿨고, 이 작자가 일 년에 장편 한 권씩은 써 낼만큼 다작이라서 어떤 책을 읽을지 조금 헤매고 있을 때, 이 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무지하게 야하다”는 평을 읽고,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결정했다. 게다가 헌책방에서 싼 값에 팔고 있기도 했으니 더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책을 읽으며, 약 250쪽의 길지 않은 장편인데,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소설이 한 권 있었으니,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명작 <채털리 부인의 연인>. 아, 고정하시라. 그 책이 생각났다는 것이지 감히 채털리 여사, 뚝심 있는 여성이 삶의 질곡을 걷어 차버리고 혼자 우뚝 서는 결단에까지 감히 비비려고 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왜 로렌스가 생각이 났느냐 하면, 이 책에서는 비록 현역이지만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의 와중에서 생식능력을 상실한 나이 많은 남편과 사는 젊은 아내가 서방질하는 장면을 책의 핵심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 ‘우다왕’은 시골 출신의 사병으로, 장인과 아내의 평생소원인 도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입대해 만 5년을 충직하게 복무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농민출신 군인들 역시 거의 모두 충실하게 복무하는 바람에 간부로 진급하지 못하고, 따라서 처자식을 도시로 옮겨주지도 못한 채 빌빌대던 중, 운이 따랐는지 사단장의 관사 당번병으로 들어가, 중국 군대의 당번병도 80년대 초반 한국 군대의 당번병과 마찬가지로 사단장(뿐만 아니라 작은 독립부대장까지) 가족의 삼시 세끼와 (심지어 사모님의 똥인지 뭔지 하여간 뭔가가 묻은 빤쓰를 포함해 무진장한)빨래와, 집안 청소와, 하이고 애새끼들 가정교사까지 몽땅 해야 했나보다. 설마? 하, 내가 거짓말을 할까. 80년대 초에 군역을 치룬 남자들 아무한테나 물어봐라. 내 말이 구란지 아닌지. 다행히 이 책의 사단장은 생식불능으로 아이들은 없었으니 고생은 좀 덜 했을 거다. 대신 사단장 사모님은 늙은 남편이 이미 ‘기쁨을 아는 몸’에 제공해줄 수 없는 기쁨까지 요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쉬운 얘기로 불륜인데, 그게 앞 문단에서 말했듯 서로 ‘기쁨을 아는 몸’(2015년 여름부터 '기쁨을 아는 몸'을 이렇게 거의 일반명사 비슷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경숙아, 고맙다!)을 위로해줄 잠깐씩의 엔조이라면 문제는 덜하겠지만, 어디 몸이란 게 그런가, 불행하게도 우다왕과 사단장 사모님 류렌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단장이 전국에 고위 군인들 모이는 회의인지 뭔지에 3개월 예정으로 출장을 떠나는 동안 사건은 벌어진다. 작년에 알베르 꼬엔이 쓴 소설 <주군의 여인> 독후감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사랑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유폐해버리는 주인공 남녀. 이들이 3개월이란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과 사랑의 확인으로서의 몸의 유희. 그리하여 둘은 점점 더 자극적인 엑스터시를 만들기 위해 날이 갈수록 충격적인 모멘트를 만들려 애를 쓰고, 더 지독한 애무의 기법에 탐닉하다가 까무러치기도 하고, 마오저뚱의 석고상을 깨뜨려버리고, 성서보다 세 배는 더 엄정한 마오 선집을 찢어버리기도 하는 등의 일탈을 저질러버린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내가 아무리 야한 이야기를 좋아하더라도, 이게 장황하게 되면 견디지 못하는 인종이다. 곧바로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에. 위에서 비비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말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극적인 갈림길에서 안타깝게도 저편으로 가버리고 마는 건, 과도한 분량을 ‘사랑이라는 감옥 속에서의 탐닉’에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느꼈다. 얼마 만큼이냐 하면, 오직 둘 뿐인 절망스러운 사랑의 감옥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직 절정에도 오지 않았는데, 아이 씨, 그만 읽기를 때려치울까, 싶었을 정도로. 이렇게 낮이나 밤이나 해대는데, 굳은 살 안 박였을까? 별 걱정이 다 들더라.
그래, 그래. 13쪽에서 제1장을 시작해 251쪽에서 에필로그를 끝날 때까지 작지 않은 활자로 널럴하게 편집한 짧은 장편임에도 우다왕과 류렌이 서로 엮이고, 만나고, 함께 침상에 오르고, 불타는 몸의 즐거움을 누리고,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20쪽부터 191쪽까지 할애했으니, 내가 책을 읽으며 지루해 했던 것이 잘못이냐? 물론 주인공들이 침상에서 기쁨을 찾으며 양념으로 당대 중국의 농민, 소시민, 중간층, 고위층 등 각 계급들의 희망사항과 상위 편입 욕망, 연줄 넣기 같은 중국문화에 대해서도 거론을 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이라고는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우다왕도,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렌도, ‘놀랄만한 선물’(이게 뭔지 밝힐 수 없다)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받게 된 사단장도, 행위의 결과물이나, 행위라는 전환기를 거쳐 새로 변모한 모습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 번 찌질이는 영원히 찌질이고, 한 번 바람난 여자는 잠깐의 바람기였을 뿐, 저 남쪽 종교의 경전에서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혼자 걸어가는 건 아예 바라지도 못함. 여기서 등장인물 가운데 아무도 채털리 여사와 비빌 수 없는 차이가 생기며, 옌롄커도 로렌스에 감히 비빌 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는 것.
이 책은 오직 하나, 사랑 혹은 몸의 즐거움이라는 감옥을 구경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몸의 감옥, 또는 사랑의 감옥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아니라, 왜 스스로를 유폐해야 했는지, 그리하여 유폐를 통해 어떤 전망이 생겼는지가 책의 초점이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이리 주장을 한 번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