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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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책읽기를 끝내고, 이제 독후감을 쓰려 화면을 열어놓았다. 난감하다. 책을 읽으면 독후감을 쓰고, 썼으면 그걸 남에게 보여주고 싶고, 이게 루틴으로 지켜지던 일상적 취미, 라고 여겼으며,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도 분명히 느낌이란 것이 (그것도 강하게) 있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1부, 1922년에 주인공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 유폐되는 판결을 받고 (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니나’라는 열 살 먹은 소녀와 친해지는 장면까지 읽으며, 에이모 토울스,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기에 이토록 유려하고, 아름답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까탈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버터냄새를 맡을 수 있게 유머러스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 1부 읽기를 마치자마자 이이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봤다. <우아한 연인>이라는 책이 있으나 현재는 절판이다. 중고책도 인터넷에선 발견할 수 없다. 내친 김에 책을 펴냈던 출판사 홈페이지까지 방문해서, 지금 장안에 <모스크바의 신사>가 절찬리에 읽히고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같은 작가가 쓰고 귀사가 찍은 책 <우아한 연인>의 중쇄를 심각하게 고려할 시기라고, 게시판 한 줄에 자국을 내고야 말았다.
 구 러시아의 마지막 귀족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는 않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1부 끝부분에서는 현악사중주단에서 2 바이올린을 연주해 먹고 살다가 결국은 유배형에 처해지는 또 다른 귀족 니콜라이 페트로프 공작이 역시 성탄 전야에 잠깐 등장하기도 하지만 32세 때부터 시작해 64세까지 모스크바의 고급 호텔에 유폐를 당하면서도 귀족 특유의 절제와 적응과 임기응변과 처세와 사교술과, 무엇보다 깊고도 넓은 교양과 지식으로 무장한 백작의 현명하고도 화려한 생존기야말로 책의 백미라 할 것이다. 여기쯤에서 내 양식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콕 집어 작가가 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서 유럽인이어도 마찬가지인데, 어쨌든 자본주의 시각에서 본 작가의 과거 귀족 계급에 대한 짙은 향수. 이게 어쩐지 발목을 잡았다. 물론 메트로폴 호텔, 모스크바에 있는 최고급 호텔 안을 무대로 하기 때문에 온갖 고급스러운 먹을 것, 마실 것, 행동 또는 행위, 에티켓을 포함한 복잡한 예절, 유물, 향수와 추억 등의 출현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럼에도 특정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정하는 것, 귀족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맞지 않을뿐더러 비싸기만 한 와인을 추천해주는 웨이터를 향한 경멸이라니. 무대가 1922년 부터 54년까지다. 물론 부르주아의 힘이 하도 막강해서 그렇긴 했지만, 이미 서쪽 유럽에선 자신의 귀족적 계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었음에도 (이미 망한 다음이라서 오히려 더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렉산드르는 자신을 ‘각하’나 ‘백작님’이라 호칭하는 데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 어느덧 인생의 황혼이 오면, 여보게 그냥 알렉산드르라고 부르게, 하는 세월이 오긴 하지만. 백작은 결국 옆 테이블의 젊은 커플에게 다가가 웨이터의 권유를 무시하고, 적절한 와인을 추천하고야 만다. 그리하여 나중에 백작이 경멸스럽게 ‘비숍’이라 칭할 웨이터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해 백작만큼 적절한 와인을 추천할 수 없기 때문에 당한 일을 일종의 치욕으로 마음 속 치부책에 적어두게 된다. 난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와 독자는 쓰고 읽으면서 비숍이란 웨이터, 나중에 차례로 부지배인, 수석지배인이 되는 인물을, 속에 든 거 없이 철저하게 규격화된 인간형으로 규정하고 (사실도 그렇지만) 백작과 정 반대의 자리에 터를 정해버린다.
 솔직하게 쓰자면 나도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음식엔 어느 와인이 어울리는지 정도를 알아두면 참 좋겠다. 조금 더 나가서, 집 앞 ‘홈 플러스’에 가 싸구려 칠레 와인이라도 한 병 사 마셔볼까? 뭐 이런 생각. 그러나 중심을 잡아야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와인은 무슨. 한 20년 전 쯤부터 와인 열풍이 부는 듯했지만, 역시 난 천성이 귀족들하고는 원래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지 무식한 쪽을 택하겠다. 삼겹살 수육에 소주 한 병이면 됐지 뭘 와인까지. 애초에 서양 와인 만드는 포도농사를 짓지 않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도 와인 선택에 능숙하지 않으면 2류 인생이라고 이해할까봐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대표적으로 와인을 이야기했을 뿐, 여전한 서양 귀족에 대한 동경 같은 걸 경계하는 수준으로 이해해주시라. 주인공이자 귀족 떨거지인 알렉산드르가 버틸 수 있는 힘은 할머니가 쓰던, 물려받은 책상 다리 안에 숨은 비밀의 공간에 담겨있던 금화였다. 아무 직업도 없고, 이제 더 이상 지역 농장에서 올라오는 소작료도 없이 다른 호텔도 아니고 메트로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예카테리나 대제의 옆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진 금화. 과거 제정 시대가 남긴 유물로 제정 시대의 인물이 소비에트 체제 안에서도 여전히 최고의 미각을 달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렉산드르는 고급 식당에서 웨이터 주임으로 일하게 되지만, 그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나날을 보내기가 무료해서 그런 거 같다.
 또 다른 것 하나는 혁명 정부. 마르크스가 가장 크게 실수한 것은, 인간본성을 선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 아닐까. 소위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해 새롭게 프롤레타리아를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사실 숱한 작가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읽고 들었던 내용이다. 파리의 작업실에서 개떡 같은 그림을 그리고 앉았던 피카소가 소비에트 정권에 무한한 지지를 보냈지만, 정작 소비에트에선 피카소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는 줄리언 반스의 지적. 이 책에서도 알렉산드르의 대학 동창이자 시인인 미하일 표도르비치 민디히가 등장해 아흐마토바, 불가코프, 마야콥스키, 만델시탐 등과 합세해 러시아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을 결성하고도, 협회가 작품에 가위질을 해대는 걸 참지 못해 황폐해지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작가동맹이 결성된 이후 불가코프는 단 한 줄도 작품을 쓰지 않았고, 아흐마토프 역시 극도로 적은 양의 집필만 유지하고, 심지어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알을 박아 넣는데 성공해버리고 만다. 에이모 토울스의 의도가 처음부터 그랬겠지만, 레닌과 스탈린 시대를 넘어 이후 흐류쇼프 시대 초기까지 인민들을 질식시키는 고단위의 경찰력으로 소비에트 공화국과 종사자들을 묘사하는데, 심지어 행정국장 오시프라는 작자는 그러면서도 서유럽의 문화와 위에서 얘기한 상류사회의 규범들을 익히기 위해 약 20년 간 백작 알렉산드르에게 과외공부를 받는 것으로 연출했다. 성분 좋은, 다른 말로 하자면, 보르도 와인이라고는 맛은커녕 구경도 하지 못한 농민, 노동자 출신인 ‘혁명 공화국 상류계급’들의 가슴 속에서마저 유럽의 상류사회와 사교에 관한 동경과 모방심리가 있었다는 걸 군불 때듯 은근히 일러주기에 이른 것. 혁명 후 세상은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각하가 메트로폴 호텔의 6층 골방에서 세월을 보는 동안 과거의 빈민, 농노, 노동자들도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시대로 바뀌어버렸다. 불행하게 소비에트 공화국의 정체(政體)가 비밀경찰 주도의 새로운 파시스트 체제로 변한 게 흠이지만. 공화국에서 KGB의 전신이었던 비밀경찰의 악행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대개 구체제의 상류계급과 지식인들이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무식한 인민들은 (1930년대 초기까지의 험난한 세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이나마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지 않았겠는가. 비록 빵 한 덩이를 얻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하는 불편이 계속되긴 했지만. 그래 레닌과 스탈린이 죽었을 때, 방부처리를 한 그들의 시선을 눈으로 확인하고 한 바탕 자기 설움 때문이라도 목 놓아 곡을 하고 싶었던 인민들이 수 킬로미터씩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박정희 장사 지낼 때 광화문 거리에 쏟아진 한복 입은 시민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숱한 인민들의 눈물바람을 본 ‘사실’이 있다.
 만일 소비에트 혁명 정권이 (아, 지금 25도짜리 진로골드소주 한 병, 맥주 500cc 말아서 마시고 왔다. 빨리 독후감 끝내야 한다. 큰일이다.), 할리우드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처럼 서른두 살의 로스토프 백작을 정원 가꾸는 조경사, 또는 일반 노동자로 살게 했다면 어땠을까. 내 생각으로는 백작의 천부적인 사회친화력과 달변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깊고 넓은 지식으로 나름대로 괜찮은(세상에 ‘행복’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남은 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까지는 그냥 책을 읽으면서 지극히 작은 부분, 예컨대 한 2% 정도의 이견. 그런데 미안하게도 너무 길게 쓴 거 같다. 이제 진실을 이야기할 차례. 이거, 명작. 내놓고 말하는데, 요즘 시대에 이 <모스크바의 신사>를 능가할 소설문학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좀 거슬리는 부분을 강조하게 만들었을 뿐이지, 만일 이 독후감을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나머지 98%의 감상, 진짜 무지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란 확신을 믿고 얼른 책 주문을 하시거나, 냅다 도서관으로 달려가셔도, 책값이나 에너지의 소실을 확실하게 능가하는 효용을 얻으시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언필칭,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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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0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으셨는지 그렇다면 리뷰 쓰셨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첫 단락에서, 아니 이 이름이 그 이름이??? 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아, 저도 이 책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폴스타프 님 별 다섯이라서 너무 행복하네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03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근데 제가 모던 클래식 열 권에 이 작품을 선정하지는 못했답니다. 본문에도 썼다시피 작품 전체에 너무 농밀하게 퍼져있는 버터 냄새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이 책 한 스무 권은 팔아준 거 같아요. 보는 사람마다 재밌다고 떠들고 다녀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