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7
에벌린 워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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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치가 넘치는 영국작가 에벌린 워Evelyn Waugh. 이이의 작품 가운데 한국어로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것이 같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시리즈로 나와 있는 <한 줌의 먼지>, 딱 하나 더 있다. <한 줌의 먼지>에서 영국의 부르주아 계급 안에서 벌어지는 분탕질을 송곳 같은 해학으로 확 비틀어버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웃음이 비질비질 나오게 만든 바 있어, 이번에 다시 민음사에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찾아 읽었다.
 워Waugh가 1903년 태어나 영국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특이하게도 스물일곱 살 때인 1930년에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다. 거기다가 더 특이하게도 가톨릭으로 개종한 다음에 에벌린은 아내 '에벌린 가드너'와 이혼을 해버리는데 이거 교회법으로 가능한가? (지금 가톨릭 환자 증세가 농후한 술친구한테 전화해봤다. 가능하단다. 혼배성사를 하지 않은 배우자하고는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다고. 이거 하나 가르쳐주고 술 사라 한다. 가톨릭은 이게 문제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거.) 하여간 이렇게 에벌린과 이혼한 에벌린은 위에서 얘기한 <한 줌의 먼지>처럼 주머니 속에 든 송곳 같은 유머 코드를 점점 지워내기 시작한단다. 그래 풍자와 송곳 유머가 절묘하게 섞은 작품을 썼던 시기를 “초기의 에벌린”으로, 가톨릭 개종 후 아마도 1940년대에 들어선 시기부터는 “후기의, 진지한 에벌린 워”라고 일컫는다고 작품해설에 쓰여 있다. 작품해설은 당연히 책을 팔기 위해 좋은 얘기만 해야 하니까 좀 감안해서 읽는다면, 초기와 진지한 에벌린을 구분하는 시점, 또는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다시 찾은 브라이드헤드>라고, 이게 진지한 에벌린의 첫 작품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그거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아무 상관없다. 독자는 그냥 읽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앞 부분엔 <한 줌의 먼지> 비슷한 풍자 코드가 깔려 있어 그 양반 참 뭘 아는 인간일세, 감탄 돋게 만들지만, 본문만 566쪽의 장편이 뒤로 갈수록 점점 진지 모드로 디크레센토 되면서, 심지어 마지막엔 어떻게 되느냐 하면, 바로 “로만 가톨릭 만세!”
 프롤로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향토방위군 중대장 ‘나’가 서른아홉의 나이로 영토 방위훈련을 하던 도중에 브라이즈헤드 성 근처에 도착하는 걸로 시작한다. 이 향토방위군의 장면은 저 뒤에 에필로그에 다시 나와 이제 브라이즈헤드 저택 안으로 직접 들어가 지난날의 회오에 잠기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럼 본문은? 작가 에벌린 워와 생년 생월이 같은 ‘나’ 찰스 라이더가 옥스퍼드에 입학하여 참으로 개성 있는 악동친구 서배스천(‘세바스찬’의 멋 부린 국어표현)을 알게 되고, 이 친구의 런던 저택과 더불어 지방에 있는 브라이즈헤드를 방문해 서배스천의 어머니, 형, 두 여동생과 안면을 익히고, 좋은, 좋아도 너무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어느날 서배스천의 어머니로부터 “어쩜 사람이 이렇게 천연덕스레 악랄할 수가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구나. 네가 그토록 많은 점에서 그렇게 다정했으면서 그다음에는 어찌 그리 무심하게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 가정과는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문제는 '나'가 서배스천의 음주에 관대한 때문이었다.
 젊은 서배스천은 천생 자유의 별자리를 타고 세상에 떨쳐졌던 것. 어머니의 가톨릭 적인 엄격과 규율과 기타 등등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서배스천에게 한도 끝도 없는 술을 들이켜게 만들었다. 일찌감치 알코올중독에 빠져든 것. 서배스천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리를 거두고, 귀국해서 영광을 누리는 대신 따뜻하고 풍광 좋은 이탈리아에 말뚝을 박아버리고, 말뚝을 박은 김에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성과 살림을 차려버렸다. 아버지는 왜 아내의 주변을 박차고 나와버린 것일까.
 소설은 앞부분에서 옥스퍼드 일, 이학년 학창시절의 젊음과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젊음의 낭비 같은 것으로 시작해 가문의 몰락, 글쎄 몰락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과격하겠지만 영국특유의 한사상속(한사상속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참고하시압.)이 끝난 첫 세대에서 마치멘 가문이 대가 끊기는 약 20년간을 그리고 있다. 학창시절의 젊음, 청춘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허망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참 공감할 수 있는 유머 코드를 섞어 서술하고 있으며, 이건 결혼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물론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비록 내가 쥐뿔도 아는 게 없지만) 훌륭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는 거 같은데, 뒤로 갈수록 특히 한 죽음을 앞에 두고 점점 엄숙, 진지해져가는 것이 (단연코 한 아마추어의 개인적 감상으로는) 안타까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역자 백지민으로 말하자면, 이름으로 봐서, 또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운운하는 걸로 봐서 여성 같아서, 요새 시절이 어느 시절이라고 여자 남자를 가리겠느냐만,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주변에 있는 남자한테 감수를 한 번 쯤 받는 것이 좋을 듯싶다. 난데없이 중대장의 “종복”이 나온다. 종복從僕은 남자 종, 즉 노예를 의미하는 바, 참 좋지 않은 단어. 요새는 그런 거 말고 ‘당번병’이라고 쓰고, 군인들끼리는 그냥 ‘따까리’로 호칭한다. 난 번역과 오역을 판정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아 번역의 질 같은 건 건너뛰고, 한국어 문장이 읽기에 아주 좋은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작가 에벌린 워의 문장이 긴 편이라서 그런 듯 보였지만 그래도 역자는 좀 더 한국어 문장에 힘을 써야 할 듯. 네가 뭔데 이따위 지적질이냐 한다면, 난 소비자이자 독자로, 내가 읽기에 역자가 퇴고에 충분한 힘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그게 참 아쉽다고 말하겠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좀 야박하게 쓴 거 같은데, 그리 쓴 것처럼 읽힐 수 있는데, 분명하게 말하노니, 재미있는 소설이며,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을 선택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품질을 갖추었으며, 역자의 한국말 문장 역시 요새 출간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서는 결코 안 좋은 수준이 아니다.
 작가 연표를 보면 초기에 <모략>, <92일>, <특종> 같은 책이 보인다. 이런 것들도 얼른 번역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에벌린 워. 요새 말로 “흥미 돋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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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11-2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이 작품은 개인 취향 꽤 탈 작품 같아요. 폴스타프 님 처럼 재미나게 읽으실 분들도 있곘지만 ‘이게 뭐냐!‘ 할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듯합니다. 지나치게 장황항 느낌이었어요. 암튼 저는 이 책 절반쯤 읽다가 끝내 포기하고 도서관에 반납했거든요. (책 샀으면 엄청 후회했을 거 같아서 다른 분들도 참고하라고 댓글 남깁니다....)

Falstaff 2018-11-21 11:06   좋아요 1 | URL
앗, 그러셨습니까.
작품 구조가 서배스천, 줄리아 등의 가족, ‘나‘의 직업과 아내와의 관계, 서배스쳔의 아버지, 이렇게 독립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 권에 담으려 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저도 장황하다는데는 동의합지요.
이 양반은 초기 작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중/후기 정도고요. 본문 마지막에 얘기한 <모략> <92일> <특종>이 전부 초기 작품인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