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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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 해서 선택한 책. 솔직히 말하면 헌책방에서 발견하지 않았어도 구입했을까는 조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공쿠르 상 수상작 가운데 내 수준으로는 과도한 문학성 또는 전위적 작품들이 비교적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서, 이 상 수상작들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상 수상작들을 많이 읽어봤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거. 공쿠르 상에 관해서는 내가 선무당이었나 보다.
 60억 현생인류가 복닥복닥 모여 사는 지구에는 참 다양한 성격들이 모여 있다. 루이즈라는 이름의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었다. 적당한 키에 마른 몸매의 금발 중년. 우리나라 사람들 하는 이야기로 사주에 ‘고’가 끼었다라고 한다. 여기서 ‘고’란 외로울 고孤를 의미한다. 이런 팔자로 대표적인 건 “깊은 밤에 소복 입고 베 짜는 사주.” 청상과부의 사주다. 이 책의 주인공 루이즈는 소복 입고 베 짜는 것하고는 종류를 좀 달리해야 할 거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하고 별 인연 없이 살다가 스물다섯 살에 덜컥 임신을 한 몸으로 치매노인 쥬느비에브 노파를 간병하던 중, 노파의 화가 아들 프랑크의 친절한 주선으로 중절수술을 할 예정(당신 같은 처지라면, 독신에 겨우 밥벌이를 하는 그런 상황이면 말이에요, 보통은 아이를 낳지 않아요. 문란한 당신 사생활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하지만 삶은 파티가 아니라고요. 아기를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요?)으로 프랑크 씨가 비용까지 다 지불하였으나, 약속한 날 잠에서 깨지 못하고 약속을 놓쳐버려 딸 스테파니를 낳았다. 스테파니는 엄마가 보모, 가사도우미를 하던 집의 주선으로 좋은 고등학교로 전학했지만 불성실한 학교생활과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해 땡땡이를 연이어 치는 바람에 퇴학 처분을 받고 만다. 딸 하나 둔 상태로 자크란 남자와 결혼했지만 자크는 뒤뜰에 심어놓은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금은보화를 가져오는 대신 경마를 비롯한 도박에 손을 대 빚만 잔뜩 만들어놓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집도 은행에 뺏겨버리고 만다. 이젠 텅 빈 손으로 차이나타운의 가장 지저분한 원룸 아파트에 유일한 ‘백인’ 입주민으로 떨어진 상태. 스테파니는 일찌감치 가출을 해버려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산다. 성격도 남들과 어울려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활기차게 지내는 대신 자신의 모든 내적, 외적으로 거의 완벽한 벽을 둘러 쳐놓고 스스로 외로운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 실제로 언젠가 앙리-몽도르 병원의 의사가 루이즈에게 “망상성 우울증”이 있다고 판정한 바 있다.
 뛰어난 엘리트 둘이 서로 사랑해 가정을 이루었으니 여자는 변호사 미리암이고 남자는 음악 프로듀서 폴. 둘이 결혼했으니 건강한 부부 사이에서 자연스레 딸 밀라를 낳고, 산후 우울증에 잠깐 시달리다가, 아무래도 하나만 키우면 너무 외로울 거 같아서 아들 아당을 또 낳는다. 결과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빠져버리는 미리암. 아직 부부 가운데 누구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단계도 아니고, 경력을 이어가지 못한 채 그냥 전업주부로 머물고 있는 미리암에게 일을 권하는 로펌도 나타날 확률이 없었다. 자꾸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미리암. 심각한 자존감의 결여로 하루하루 사는 게 미칠 지경일 찰라,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생 파스칼이 자기와 함께 일 해볼 생각 없느냐고 제의를 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채용할 의사가 있다는 것. 대학 동기인 파스칼은 미리암이 얼마나 총명하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인줄 알고 있었으니까. 미리암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취했고, 남편 폴이 집에 오자마자 보모를 들이자고 이야기를 꺼내 시답지 않은 긍정을 얻어낸다. 그리하여 이력서,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완벽하게 구비한 보모를 고용하니 이이가 바로 위에서 얘기한 우울녀, 루이즈.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을 검색하면 첫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나도 소개한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첫 문장이 어디서 본 거 같다. 전에 어느 프랑스 작가는 이렇게 첫 문장을 썼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상당히 임팩트 있는 첫 문장.
 시작부터 루이즈가 미리암-폴 부부의 아들 아당을 심하게 폭행해서 뼈마디가 비틀어진 채 시체처리용 검은 비닐에 들어가게 하고, 큰 아이 밀라 하고는 “사나운 짐승처럼 맞서” 싸운 끝에 말랑한 손톱 아래 살점이 박히고, 폐 또는 목에 칼을 맞아 목구멍에 피가 가득한 상태로 숨을 꿀럭이다가 운송 도중 죽음에 이르게 해버린다. 경악스러운 결말을 작품의 제일 앞에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루이즈가 이 가족의 (천사 같지는 않지만 순진무구한)두 아이에게 저지른 살인을 강조하는 것.
 그러나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아동 살인이라는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루이즈가 거대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는 장면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살인의 죄가 조금이나마 경감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외롭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격리처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숨기지 못하는 개인을 향해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시선이 가 있음을 발견한다. 전남편, 은행, 원룸 아파트 소유주, 이웃, 같은 보모 그룹 등등과 심지어 바로 얼마 전까지는 자기 가족의 범위 안에 흔쾌히 루이즈를 받아들이던 미리엄-폴 가족들로부터 그녀는 단 한 뼘의 자기가 설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독자는 책을 읽어감에 따라 순서대로 발견하게 된다.
 망상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루이즈가 이들 가족의 범위 안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리엄과 폴 사이에 다른 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단정해버린다. 오직 유일하게 자신이 찾을 수 있었던 탈출구.
 물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바로 옆에 도사린 커다란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작품. 해석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니까. 공쿠르 상 수상작 치고는 참 쉽고 흥미로운 시선이다. 그래서 얼른 읽히기도 한다. 작가가 모로코 출신의 젊은 여성. 공쿠르 상치고는 아주 드물게 여성을 수상자로 뽑았다 해서 약간의 구설에도 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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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10-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ㅠㅠ 이 책.. 정말... ㅠㅠㅠ할많하않..입니다.

Falstaff 2018-10-05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