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순박한 마음>을 다 읽고 책 끝의 '옮긴이의 말'을 보니까, 놀라워라, 이런 문장이 있다.

 

 “플로베르의 작품은 초기 습작을 제외하면 여섯 권에 지나지 않는다.”


 얼른 내가 읽은 플로베르를 세어봤다. 이 <순박한 마음>, 책의 앞날개에 쓰인 대로 원제목이 <세 가지 이야기>가 여섯 번째 플로베르였다. 초기 습작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는 말씀. 책의 발간 순으로(위키피디아 참고) 하면 이렇다.


 <보바리 부인>  1857
 <살람보>  1862
 <감정교육>  1869
 <성 앙투안느의 유혹>  1874
 <세 가지 이야기>  1877
 <부바르와 페퀴셰>  1881


 <세 가지 이야기>, 우리 제목으로 <순박한 마음>이란 책에 (사실 단편집은 『순박한 마음』, 해당 작품은 <순박한 마음>, 이렇게 써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막 쓸 테니 알아서 읽어주시면 좋겠는바) 마지막 이야기에 <헤로디아>가 나온다. 그러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살로메>를 1893년에(초연은 96년에) 냈으니 와일드보다 16년 빨리 헤로디아의 친 딸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을 만든 셈이다. 뭐 꼭 ‘일곱 베일의 춤’이 아니면 어떤가. 춤을 췄고, 의붓아버지가 의붓딸이 춤추는 모습에 미쳐서 자기 재산의 절반과 나라 땅의 절반을 뚝 떼 주겠다고 하는 거, 그렇지만 살로메는 쟁반 위에 요카난의 머리를 담아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거까지 같으면 그냥 와일드보다 16년 앞섰다고 해도 무방하지 뭐.
 이 <헤로디아>는 쥘 마스네가, 역시 이 책에 실린 <구호성자 쥘리앵의 전설>은 카미유 에르롱쥐Camille Erlanger가, <보바리 부인>은 엠마누엘 봉드빌Emmanuel Bondeville이, <살람보>는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가 미완성 오페라로 만들었고, <보바리 부인>은 무려 8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단다. 책을 겨우 여섯 권 낸 작가로는 진짜 대단한 성과라고 해야 하겠다. 지금 같으면 판권만 가지고도 한 평생 즐기면서 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플로베르의 전편을 다 읽어본 인간의 특권으로 좀 잘난 척을 하자면, 나도 알고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바리 부인> 하나만 읽고 플로베르는 졸업한 줄 알던 족속이긴 하지만, 

 

플로베르 하면 숱한 사람들이 <보바리 부인>을 연상하고 다른 작품들도 그와 비슷하리라고 지레짐작을 하기 십상일 거 같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정말 다양한 상상력을 그의 작품들에 쏟아냈다. (난 <감정교육>은 재미없게 읽어서 그건 별도로 하자.) <보바리 부인>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상상도 하지 못한 플로베르의 다른 면모를 일별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서,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기점으로 눈에 띄는 플로베르란 플로베르는 모두 읽어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공연할 수 없거나, 정말로 공연하기엔 매우 불편한 희곡의 형태를 갖춘 소설로 결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예상외의 모습에 경탄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나는 서슴없이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꼽았었다.

 

 다음에 큰 기대를 한 상태에서 <감정교육>을 읽고 플로베르한테 잠깐 감정이 생겼었다가,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살람보>를 읽게 된다. 이 작품은 난데없이 1차 포에니 전쟁 이후의 로마도 아니고 카르타고를 무대로 벌어지는 내전을 다뤘다.

 역시 새로운 플로베르의 모습으로 41세,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절정기에 달한 그가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의 웬만한 도서관은 다 뒤졌을 만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 소설을 썼다. 전쟁 이후 카르타고에 남은 성난 용병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카르타고의 집정관 간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전. <보바리 부인>을 플로베르라고 생각한 나는 여지없이 코피 터졌던 기억이다.

 

 다섯 번째 플로베르는 <부바르와 페퀴셰>.

 

 미완성 작품이긴 하지만 대단한 완성도를 지니지 않았는가 싶었다. 조카딸의 파산을 면해주기 위해 전 재산을 다 쏟아 붓고, 자그마한 도서관애서 나오는 미미한 돈에 의지해 가난하고 고독한 말년을 꾸리던 작가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썼음직한 참 쓸쓸한 희극이었다. 이 작품은 몇 년 후 은퇴해서 시간이 남아돌면 꼭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마지막 플로베르 <순박한 마음>에는 표제작과 위에서 잠깐 언급한 <구호 성자 쥘리앵의 전설>과 <헤로디아>가 함께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내가 제일 좋게 읽은 건 표제작 <순박한 마음>. 단언하는데, <순박한 마음>은 21세기인 오늘, 프랑스가 아닌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발표한다고 해도 여전히 독자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고 그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따뜻한 심상을 확인하게 해줄 수 있다. 즉 보편적 인간애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는 말씀.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1876년 4월에 어머니의 고향 퐁레베크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퐁레베크라는 도시에 사는 오뱅 부인과 하녀 펠리시테를 등장시킨다. 청춘과부 오뱅 부인과 처녀로 늙어 죽는 펠리시테. 이 외로운 커플들 사이에 어김없이 발생하는 삶의 비극들. 남편이 죽고, 첫사랑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돈 많은 늙은 여자한테 장가들고, 딸이 죽고, 아들도 죽고, 홀로 늙어가는 하녀의 위안이지만 친절하지 않았던 늙은 앵무새도 죽고, 기어이 오뱅 부인도 먼저 가고, 펠리시테도 평생 누었던 침상에서 숨을 거두는 이야기. 이렇게 건조하게 말하니까 그냥 그런 소설이겠거니 할 수도 있으나 정말 읽어보면 그 쓸쓸함이라니. 줄리언 반스는 이 <순박한 마음>을 영국에서 읽고, 어느 날 도버해협을 건너 플로베르가 살았던 프랑스 각지를 돌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의 박제를 찾는 노정을 기록했으니 그게 바로 <플로베르의 앵무새> 아니겠는가. (내 말은 믿지 못하더라도 줄리언 반스는 믿겠지.) 참 마음에 와 닿는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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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9-2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박한 마음>은 짧지만 참 좋죠. 저도 이 작품 참 좋아해요. 제목도 왠지 좋고. 근데 저도<감정교육>은 1권까지만 읽고 2권을 못 읽고 있어요. <성 안투안느의 유혹>이 그렇단 말이죠? 꼭 읽어보겠습니다. 참, 추석 연휴 소주와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휴 때 몇 병 드셨는지 나중에 계산 좀.... ㅋㅋㅋㅋㅋ

Falstaff 2018-09-21 12:39   좋아요 0 | URL
<성 앙투안느....>는 아마 극과 극일 겁니다.
제 경우에 좋았다는 얘기라서요, 언제나처럼 책임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옙. 고맙습니다. 한 바탕 잘 때려먹고, 쐬주도 장하게 마시고 오겠습니다.
잠자냥님도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어디 길게 여행이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