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악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1
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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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명색,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성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의 321번째 발간한 책이다. 스무 살에 죽은 한 프랑스 청년이 열일곱 살 먹었을 때 탈고한 작품 <육체의 악마>가 이중 한 자리를 채웠으니 대단하다 할밖에. 심지어 졸라, 뒤 가르, 그레이브스도 자기 이름을 올리지 못한 시리즈 목록에 말씀이야. 작가 라디게가 1903년생. 이 또래가 어떤 의미인가하면, 1차 세계대전엔 나이가 어려 참전하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에는 스스로 지원하지만 않으면 싸우기에 늙어서 참전하지 못하는 면피 세대라는 거. 1차 대전이 1914년 8월에 발발해 1918년 빼빼로 날, 11월 11일에 끝난다. 당대 숱하게 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거덜낸 전쟁은 이 세대들에게 “그것은 말하자면 사 년 동안의 긴 여름방학이었던 것이다.”(7쪽)
 소설은 이렇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사건은 전쟁 중인 1917년에서 18년 종전 때까지 집중적으로 벌어진다. 주인공 화자 ‘나’의 나이 16세이던 시기의 만 1년. 자기보다 서너 살 많은 마르트란 아가씨를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한다. 남자 나이 16세, 고 1 정도가 되면 오래전 이순원의 <19세> 독후감에 썼다시피 투시력이 생기는 특별한 나이. 여자가 아무리 두터운 외투를 입었다 해도 척 보면 속살을 훤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얘기, 기억하시려나? ‘나’의 눈이 마르트를 발견한 순간 숙명적인 사랑을 발견하며 당연히 사랑의 허리하학적 최종 목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뿔싸. 19세 아가씨 마르트는 이미 ‘자크’라는 참전 군인과 약혼을 한 상태이며, 조금 후 자크가 1주일 휴가를 받아 온 틈을 타 정식으로 결혼해버린다.
 이렇게 순진하게 끝낼 거 같으면 소설이 되지 않을뿐더러, 전쟁이 “사 년 동안의 긴 여름방학”이 되지도 않는다. 총사망자 2천만 명, 부상자 2천2백만 명의 참사가 생긴 긴 여름방학 동안 ‘나’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으로 마르트에게 접근하건만, 마르트 생각엔 자신이 ‘나’에 비하면 할머니 같아 보인다. 16세와 19세의 차이는 그만큼 큰 거다. 게다가 당시 유럽(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 러시아까지 지역불문하고)에선 대강 나이 차가 근 스무 살 가까이 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16세 남자아이가 사람 같기나 했겠어? 마르트의 남편 자크도 서른을 훌쩍 넘겼으니 마르트의 생각도 그리 많이 어긋나는 건 아닐 터. 하지만 ‘나’는 죽음의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낸 마르트를 유혹하는 데 기어이 성공하여, 주인 없는, 아니, 주인은 죽음의 사육제를 향해 떠나 비어버린 신혼의 침상을 탈취한다.
 비록 16세지만 ‘나’는 한 번도 전쟁과 희생자와, 잠재적 희생자인 마르트의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벌이고 있는 (16세에 불륜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애정행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불륜행각이 벌어지는 장소가 마른 강가 부근의 작은 도시. 마른이 어딘가. 파리 외곽의 마른 전투, 1차 세계대전 가운데 가장 치열했으며 그만큼 사상자를 많이 발생시킨 악명 높은 전쟁터가 바로 마른 아닌가. 라디게 또는 ‘나’ 속에는 그러나 전쟁에 대한 의식은 전혀 없다. 그냥 남의 눈에 띄면 좋을 거 없는 연애상태. 그러면서도 쉼 없이 마르트의 몸을 갈급하게 구하는 충동과, 남녀 사이에 당연하게 발생하는 모종의 갈등과 질투. 이런 것들을 그냥 죽죽 써내려간다.
 작품을 발간한 것이 1923년 3월. 작가는 그해 연말에 파리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육체의 악마>는 대박을 터뜨린 모양이다. 책 뒤편의 작품해설을 보면, “갑자기 얻은 높은 명성을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문학적 공백 덕분이라고 보는 평자도 적지 않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릇된 견해였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단다. 그러나 내가 읽어보니 이 책이야말로 전쟁 후 문학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서구적으로 대두된 “잃어버린 세대”적 측면을 빼면 남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나야 완전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하지만 문화 진공 시대에 맞춤하게 불어온 냉담과 혼돈, 그리고 조금의 자유, 그것도 책임이 결여된 자유 말고는 별로 발견할 것이 없지 않은가 싶다. 물론 해설에는 문장의 간결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걸 번역문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결론은, 양심이 있는 관계로, 일독을 권하지 못하겠음. 단, 이 의견이 문학적으로 무식한 한 아마추어의 한계이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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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7-11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 읽고 나서 할 말도 별로 없더라고요. 장 콕토 <앙팡 테리블>도 비슷한 느낌이었고요.

Falstaff 2018-07-11 10:36   좋아요 1 | URL
앗! 멋진 답글입니다. 잠자냥님 말씀 믿고 <앙팡 테리블>은 그냥 패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저 이런 답글 무척 좋아합니다. 추천 말고 비추 도서 소개요!! ㅋㅋㅋ

따오리 2023-05-0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교과서를 기대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