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 기대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건데??

이 명료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가끔 이 결과까지 가는데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고 따분해서 덮어 버리고 싶은 책도 있지만
지루하면 왠지 모를 오기에 결과를 더욱더 기대하게 되며 책을 읽게 된다.

절대로 이해될 수도 없는, 동정할 수도 없는 범죄나 사건을 맞딱들었을 때
우리는 '왜'에 집착한다. 왜를 알고 나면, 그래서 사건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그건 그래서 벌어진 거래. 그러니까... 우리는 안심하자. 원인을 제거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꺼야'
(요즘 신문 사회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무섭고 끔직한 사건들의 '왜'를 재구성한 추측성 기사들을 보면 우리는 얼마나 '왜'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_-+ 가끔 '왜'가 재구성이 안되는 인면수심같은 인간들은 '사이코패스'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며 저들은 돌연변이라며 돌연변이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만다)

그러나 이 책 <처녀들, 자살하다>를 보면서 '그래서 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건대?"를 예상하고 읽었다면 크게 낙심할 꺼다. 그 결과로 가는 과정이 따분하거나 지루해서는 아니다.

미국 백인 중산층 동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직업은 뭔지, 가족의 분위기는 어떤지 모를 거 하나도 없지만 아는건 개뿔도 없는, 작은 동네에 사는 리즈번 가족은 딸만 다섯이다. 모두 다 10대.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동네 소년들을 설레지만, 청교도적인 교육관을 가진 리즈번 부인 때문에 소년들의 속앓이는 깊어진다. 어느 다른 가족과 다를 것 하나도 없이 평범하기 그지 없던 리즈번 가족은 1년만에 붕괴한다.
막내 시실리아가 어처구니 없이 자살을 하면서 이 붕괴는 시작된다.
유서한장 없이 삶을 마감한 시실리아때문에 다른 가족들은 곤란을 겪게 된다.

화자는 우리다.
10대의 리즈번가의 자매들을 짝사랑했던 동네의 소년들은 그녀에 대한 호기심과 책임감을 지울 수가 없어... 몇십해가 지난 후.. 막내 시실리아의 죽음 이후 리즈번가 자매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화자가 단순히 관찰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리즈번가 처녀들의 죽음 더욱더 의문점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속시원히 이야기 해 줄 사람들은 몇십년 전 입을 영원히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이 '그래서 왜... 이 자매들이 모두 자살한건대?'
다른 친절한 작가라면 속시원히 설명해 줄 결말을 독자 스스로가 찾게 만든다.

왜 막내가 자살한거지? 막내가 자살했는데... 언니들은?
언제나 따라다니는 시선에 그 나머지 자매들은 행복할 수도 즐거할 수도, 더욱이 우울해할 수도 없다. 자신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대는 슬픔을 공유한 다른 10대의 자매들 밖에 없다.
낙엽이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을 수 있는, 혹은 눈물 짓을 수 있는 감성의 나이에 그들은 슬픔을 공유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_-+
계속해서 다른 자매 슬픔의 반을 나눠야 하는 리즈번가의 딸들의 선택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바로..  시실리아를 따라 자살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가족이라는 감옥에서 왜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는지
자신들의 슬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네명의 어린 처녀들이...
어디로가 무엇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백인 중산층 사회에서 보호(?)받으며 사는 것도 힘들어하던 소녀들이 아니던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어색해진 외모로 중년의 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도망'보다는
자실이라는 소극적인 저항을 통해서, 소년들의 가슴에 별로 남았다.(차라리 그 편이 낫을 수도..)

이 책을 보며 명료하지 않은 결말 때문에 꽤 오래 끙끙앓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내린 그들의 자살 이유다.
내 나이가 더 들면 또 다른 결론이 나오려나...
나이가 들면서 가끔 읽고 싶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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