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유영규 외 지음 / 북콤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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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 당신은 조력자살로 생을 끝내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 줄 수 있는가?

Q 2. 본인이 결정만 한다면 조력자살이 가능할 때 당신은 조력자살 하겠는가?


2016년과 2018년에 걸쳐 2명의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쳤다

그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8770km를 날아 스위스로 갔다

이 책에서는 그 한국인의 자취를 찾아보고 당시 함께 동행했던 한국인 케빈(가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울러 스위스 현지에서의 조력자살 과정, 취재의 배경과 국내 현실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취재의 결과물로써 의미가 있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력자살도 허용하고 있다

2006년 스위스 연방대법원이 안락사를 최종적으로 인정하며 논란은 일단락 됐다

영화 미 비포 유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남자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 하기 위해 영국을 떠나 찾아가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 스위스에는 디그니타스(DIGNITAS)와 이터널 스피릿(Eternal Spirit)과 같은 단체들이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고 있다


2018년 호주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세의 나이에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를 찾았을 때 조력자살을 도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 같은 곳도 있다.


당시 구달 박사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데도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행을 알리기도 했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이 각각 47, 60명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흔적을 찾아서


20191월 스위스 현지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출신 40대 남성 박정호(가명)를 알게 되었다.

말기 암 환자였던 그는 한 달간 준비한 끝에 스위스로 향해 삶을 마감했다.

박정호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 취리히까지 동행했던

친구 케빈(가명)의 존재도 알 수 있었다.


케빈과 박정호는 20년 지기 친구다.

오랜만에 박정호에게서 전화가 왔고 극심한 통증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며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케빈은 친구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느끼고 마지막 여행에 동행하기로 한다. 타인의 자살을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친구의 부탁이 너무나 간절했다고 한다. 케빈은 스위스에서도 끝까지 친구의 선택을 말렸지만 박정호는 그의 결심대로 삶을 마감했다.


이 책에는 취재진에게 보낸 케빈의 편지와 박정호가 케빈에게 돌아가서 읽어보라는 편지가 실려 있다. 그 편지를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케빈이 보낸 편지의 앞부분 일부를 읽어본다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스위스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앞서간 제 친구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친구의 용기를 사회적으로 헤아려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22p (부분)




이 책이 안락사를 비롯한 존엄한 죽음을 다룬 책들 가운데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또한 그 사실 하나에 솔깃해서 이렇게 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이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거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머나먼 외국까지 가야하는가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는 2018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으로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멈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멈추고자 하는 조력자살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안락사나 존엄사와 같은 용어는 익숙할지라도 조력자살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책에서는 그 용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엄사

한국에서 말하는 존엄사법은 2018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심폐 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의 연명의료를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원치 않을 경우 이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소극적 안락사적극적 안락사까지 존엄사로 보는 관점에서 연명의료 중단은 가장 낮은 단계의 존엄사라 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말기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가 아닌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매우 좁게 정해놓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

식물인간 상태처럼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 같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앞에서 언급한 존엄사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다.


적극적 안락사

말기 환자나 식물 인간 상태의 환자에게 영양 공급이나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의사 등 타인이 치명적인 약을 처방하거나

주입함으로써 생명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조력자살(또는 의사 조력 사망)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 의사에게서 치명적인 약이나 주사를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로 적극적인 안락사로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신들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에 안락사라는 단어를 악용한 까닭에 조력자살‘(적극적) 안락사를 엄격히 구분해 사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안락사에 대한 미세한 구분이 없고 이에 따른 법률적 논쟁의 여지도 없으므로, 이 책에서는 조력자살 역시 안락사와 같은 개념으로 두고 쓰기로 한다.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다 비슷비슷한 말 아닌가 싶었지만

환자의 상태와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확연히 다른 개념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죽음에 대한 현실적인 법의 권한이나 한계에 따라 그 쓰임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스위스의 조력자살


이 책은 한국인 사례를 통해 존엄사 또는 조력자살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 와중에 그 많은 유럽 국가 가운데 왜 하필 스위스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그 점에 대해 스위스 조력자살의 법적 배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의 역사는 근대 계몽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스위스 연방 정부도 20세기 초 자살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았고, 자살을 돕는 것 역시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러 문제로 인해 일부 처벌 조항을 담은 형법 115조가 1942년 제정 되었다.

115조의 핵심은 이기적인 목적즉 조력자살이 영리 목적에 있었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자살을 도운게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디그니타스의 창립자 루드비히 미넬 리가 검찰에 기소되었을 때 혐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조력자살로 이끌었느냐가 아니라 영리목적의 유무에 있었다.

스위스에서 외국인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근거 역시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는데 있다.

참고로 한국은 자살방조와 자살교사는 죄로 규정한다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나 법조항 체제 하에서 과연 이런 제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싶은 대목이었다


디그니타스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속사정은 어떠할까


스위스에서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2년간 3027명의 외국인이 디그니타스를 통해 생을 마감했고 다른 단체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특히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안락사 금지 주변국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디그니타스가 자살관광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외국인 조력자살이 사실상 가능해진 것은 1998

디그니타스가 설립된 이후부터다 그렇다고 그때 법이 바뀐건 아니다


1982년 스위스에서 가장 큰 조력자살 단체인 엑시트가 설립되었고 이 단체는 자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며 회원수가 11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것은 전국민의 1.2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점차 조력자살 단체가 커지면서 스위스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0115월 취리히주 의회는 조력자살 자체의 금지와 함께

외국인 조력자살 역시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했지만 취리히주 시민의

85퍼센트, 78퍼센트 반대로 기존 법안이 유지 되었다

이런 법안이 나오게 된 이유는 외국인 조력자살 과정에 따르는 검시와

화장장 운영비 등이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외국인 조력자살이 증가할수록

스위스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디그니타스를 보는 스위스 당국의 시선이 좋지 않은 이유라고 한다

이점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문제였다


2017년 디그니타스는 검찰에 기소 되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회원들에게 회비와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디그니타스를 통한 외국인 조력자살 비용


최초 가입비 200스위스프랑(대략 25만 원)

매년 최소 연회비 80스위스프랑(대략 10만 원)

별도 비용

의사 진단, 약 처방, 사후 장례 및 행정 처리 비 등 1500스위스프랑(대략 1326만 원)


참고로 디그니타스는 전세계 89개국 9000여 명의 회원을 둔

스위스 비영리단체로써 매년 200여 건의 조력 자살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책의 모태는 201936일부터 313일까지 서울신문이 보도한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연재 기사라고 한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엄사라거나 고독사 같은 말들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 가리키는 현실을 파헤쳐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죽음을 맞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나는 생각 한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은 조력자살에 대해 긍정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당장 현실을 바꿀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당장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을 넘어 더욱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존엄한 죽음을 위해 사회적 토론의 장이 마련되는데 이 책이 그 촉매제 역할이었으면 한다.


소개되고 있는 많은 내용 가운데 극히 일부분을 파편적으로 소개해 보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 많은 말들 때문에 영상이 얼마나 길어졌을지 안봐도 뻔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지만

이제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대비와 죽음 이후의 일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더 많은 몫을 감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나도 답해보도록 한다


Q.1 당신의 지인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끝내기 위해 떠날 때

동행을 제안 받는다면 함께 가 줄 수 있는가?


내 대답은 망설임 없이 동행 한다가 되겠다

이런 상상을 몇 년 전에도 해봤던 터라 충분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내가 당사자가 된다면 누군가에게 동행을 부탁할까에 대해서는 아직은 반반이다

혼자 돌아갈 사람을 생각하면 혼자 떠나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서다


Q.2 본인이 결정만 한다면 조력자살이 가능할 때 당신은 조력자살 하겠는가?


현실적인 경제적, 절차적 문제가 없다면 나는 특별한 질병이 없다해도 원하는 때에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조력자살의 방법을 택하겠다

나는 그게 인간다움을 지킨채 맞을 수 있는 죽음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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