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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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 출간된 이상한 정상가족은 이후 5년이 지나서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읽지 못했던 책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리뷰 속에서 범상치 않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가장 밝게 비춘 책이라고 생각한다.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그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관심 갖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인 나 자신도 이 책을 읽으며 뉴스에서만 보던 아동학대가 실상 내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없는 나는 결혼을 했지만 비정상가족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체벌에 대해서 따질 수 없었다.

내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온순하고 차분하고 착한 남자 선생님이셨다.

그 나이 여자아이들에게 놀림당하기 딱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우리는 그 선생님의 여린 모습을 만만하게 봤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단체 기합을 받을 때였는데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하셨다.

그리고 15센티 얇은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그것도 거의 갖다 대는 수준으로..)

우리는 모두 큭큭거리며 웃었고, 나중에 눈을 뜨고 보니 선생님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체벌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정말 너무나도 징그럽게 말을 안 듣는 자기반 아이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다.

아프기 보다 간지럽기만 한 그것은 수학 선생님의 출석부 스매싱 앞에서 아주 웃기는 모양새였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1 담임 선생님의 선하게 웃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선생님은 그 당시에도 우리를 어른으로 대접해 주셨고, 존중해 주셨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선생님들로부터 존중이라는 걸 받아 본 적 없는 여학생들에게 그는 물러터지고 순해빠져서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아무 탈이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관습을 버리고, 고치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대에 서 있다.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겪고, 산업화를 거친 세대와 태어나자마자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세대 간의 갈등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계속 갈등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세력과 그것을 조장하는 언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도 서로의 가치관이나 개념이 달라서 소통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은 매를 맞고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권리이다.

가정 안에서 시작되는 편견과, 불편함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들은 모두가 점검해 보고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학로 거리를 걷는 데 낙태 방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미혼부라는 말을 검색해 보았는데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라는 말은 왜 없는 거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낙태의 짐을 여성 혼자서 짊어지는 것이 마땅찮았다.

낙태 방지를 위해 길가는 여성들을 붙잡고 훈계를 할 게 아니라 사실은 남성들을 교육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낙태의 가장 큰 원인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무거운 짐을 모두 여성들에게 짊어지게 하고 낙태가 불법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싫었다.

 

지금은 미혼부라는 말도 사전에 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흡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나아가고 있다.

물론 희생을 치르고 바뀌는 법도 있고, 인지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는 희망스럽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지금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많고, 비정상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그들이 바로 정상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무너졌으면 시대에 맞는 가족관계를 공부해야 한다.

변화한 세상에 자꾸 옛 방식을 들이대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아닌가.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 대한 체벌이 어떻게 폭력으로 진화하는지를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족 공동체를 잘 이루면서 살아왔다. 그것을 21세기에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려면 가족이라는 개념을 혈연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들로 바꾸는 인식이 필요할 거 같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 나와 가장 많이 밥을 먹는 사람이 누군지 떠올려 보자. 그들이 바로 나의 식구. 나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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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가야 한다
정명섭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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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빤히 예상되는 이야기라도 어떤 필력으로 쓰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스릴은 다르다.

 

생일이 같은 두 남자가 있다.

양반 가문에 태어난 강은태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황천도.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가 전쟁에서 포로로 만나게 된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전쟁터로 내몰린 강은태와 주인집 아들 대신 노역을 나온 황천도.

그들은 20여 년간 후금의 포로로 잡혀 노예 생활을 했다.

그 노예 생활 동안 두 사람은 우정을 쌓는다.

그러다 조선의 왕이 바뀌고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진 뒤 속환되는 와중에 두 사람의 운명은 바뀐다.

 

남의 인생을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언젠가 밝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은 얼마나 불안할까?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해야 할까?

 

황천도에서 강은태로 돌아온 그를 알아볼 사람은 정말 없을까?

오랜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하게 된다.

게다가 적국의 노예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의 과거를 캐기 위해 안간힘을 쏟게 된다.

양반의 삶을 빼앗아 살게 된 노비의 자식은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기게 될까?

 

사대주의와 전쟁

삼전도의 굴욕과 신분제의 모순들

풍족해지는 상인들 앞에서 신분만 남아있는 양반들의 모습도 우습기 그지없다.

쥐뿔도 없으면서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 덕에 먹고살면서도 무시해대는 양반의 모습은 꼴불견이다.

처음부터 밉살스러웠던 고가수는 그 집요함에 놀라게 된다.

 

황천도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있었을까?

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 이후에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황천도의 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다른 인생을 꿈꿨던 그의 의지는 응원해 주고 싶었다.

 

사극 드라마 보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밌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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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H. R. 맥매스터 지음, 우진하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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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일으켜 세우기 위해 푸틴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사명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는 러시아를 두려움을 모르는 그런 국가로 내세우며 서구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기 위한 외교 정책들을 짜내기 시작했다.

 

 

배틀그라운드.

제목만 보면 게임이나 영화가 생각난다.

이 책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을 다루고 있기에 게임이나 영화로 놓고 본다면 국제 정세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모습을 한 달 넘게 뉴스와 각종 SNS를 통해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예견한 사람이 쓴 책의 첫 장은 바로 러시아다.

 

트럼프 행정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군인이자 역사학자인 맥매스터.

나는 그가 인터뷰하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는 군인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보다는 역사학자로서의 면모가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맥매스터의 배틀그라운드는 군인이면서도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세계정세로 정확도가 비교적 높아 보인다.

물론 미국인의 관점에서만.

 




푸틴이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는 상대방 국가를 흔들고 분열시켜 무너뜨리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러시아와 IRA가 SNS를 이용하여 미국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조장하고 있다.

푸틴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독일을 목표로 삼았다.

거짓 정보와 부인, 에너지 자원과 파괴적인 기술을 결합한 러시아를 미국과 유럽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전쟁으로 보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그것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며 상대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건 이번 선거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가족 간에도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생각 차이는 현저하게 달랐다.

그렇게 사회가 분열되고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해지면 누가 이들을 볼까?

전쟁을 벌이면 이득을 보는 쪽은 어디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예상대로 가고 있는 걸까?

참견쟁이 미국은 어째서 손 놓고 있는 걸까?

그저 무기만 팔아먹고 있는 걸까?

 

북한에 대한 맥매스터의 생각은 확고하다.

북한에게 자비는 없다. 이다.

맥매스터의 생각은 우리가 일본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북한을 견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일본이 또다시 망상에 빠지게 도와주는 길이라는 걸 생각지 않는 거 같다.

 

맥매스터의 모든 이야기를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정보만 취하면 된다.

배틀그라운드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알기에 좋은 책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하는 것이기에 그의 의견은 경청하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새겨들으면 될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을 거치면서 세계인의 경찰 노릇에서 몇 단계 내려왔다.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고 예전의 강력한 미국으로 돌아가려면 아주 많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그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벽돌 책이지만 어렵지 않아서 좋다.

배틀 그라운드를 읽는 동안에 우리에게도 이렇게 쉽게 국제 정세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위해, 한국식으로 국제 정세를 살펴보는 그런 사람이 쓴 책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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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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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연인처럼 혹은 광기 어른 사람처럼 일상성에서 탈출하는 탈영병이 되어라. 그 행복한 우연의 오타와 오역 속에서 당신은 때때로 바늘귀를 향해 뛰어오르는 낙타의 놀라운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오래 묵혀두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그분의 유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날게 하소서>라는 시에 선생님의 구술 해설을 덧붙여 서문을 완성했고, 열세 가지의 생각들이 담겼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의 방식에 놀랐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생각의 방향 등이 젊은 사람들도 넘기 못할 벽처럼 열린 마음입니다.

같은 걸 보고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은 저에게 또 다른 세상을 알려줍니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의 통나무를 잘라보고 찍어보고 깎아보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로 들어가는 통과사증을 받을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다.

 

21세기는 놀이와 상상, 그리고 창조적 힘으로 끝없이 삶을 허구와 이미지로 충만하게 하는 인간 - 호모픽토르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된다.

좁고 어둡고 갇힌 생각에서 넓고 밝고 열린 생각으로 나 자신이 넓어져 가는 기분이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분의 글에서는 편협함이 깃들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넌즈시 깨우쳐 준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에 담긴 생각을 읽어 가면서 나 역시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 생각은 이전의 생각과는 다른 것들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을 읽는 시간이 소중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아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어찌 보면 가르치지 않고 방치하는 게 창조성을 죽이지 않는 방법일 수 있어요. 생사람은 생각의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이거든. 생사람. 참 좋은 말이잖아. 견고한 틀과 사고로 무장한 사회와 조직은 생사람을 잡아요."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내게 '생각'의 힘을 준 책이다.

천 가지 색깔의 물고기 떼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 내 모습을 담가본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색을 몇 가지 색상으로 정의해서 가르치는 세상에서 색은 그저 빨강, 노랑, 파랑 등으로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알고 있다. 그저 빨강, 노랑, 파랑의 색들조차도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샘물을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사신 분 같다.

조용한 꾸짖음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어렵지 않은 글로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고 나니 안일했던 마음에 새로움을 채우고 싶어졌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을 퍼내야겠다.

새로운 생각들이 새 살처럼 돋아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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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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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지 않았어, 로버트. 넌 나를 믿어야 해."

 

LAPD 로버트 헌트는 하와이로 휴가를 갈 계획이었다. 그날 밤 비행기로.

하지만 반장은 그를 호출하고, 헌트가 도착했을 때 반장의 사무실엔 FBI가 있다.

전대미문의 살인범이 로버트 헌트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스텐포드 대학시절의 룸메이트. 루시엔 폴터.

잘린 여자의 머리 둘을 차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던 루시엔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자신이 배달하던 물건이 끔찍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헌터뿐이라고 생각해 그를 불러달라고 한다.

 




독자를 속이는 작가들의 스킬이 점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웬만하면 스릴러 독자들은 작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때문이다.

악의 심장도 그렇다.

처음에 범인은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뉘우치며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살인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의 진술은 그 사람을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혹시 다중인격자?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무참하게 깨졌다.

 

역대급 사이코패스들을 모두 합쳐 놓은 특급 사이코패스의 등장!

 

이자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합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모두요.

 

 

역대급 연쇄살인범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다음 페이지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이 살인범은 모든 장르 소설의 살인범들을 합친 슈퍼 울트라 초 특급 살인범이었다.

납치, 고문, 살인, 인간 피부 수집, 토막, 식인...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기록했다.

살인 백과사전을 만드는 범인이라니 읽고 있는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미국의 차기 슈퍼스타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어.

 

범죄심리학 전공자였던 두 사람.

한 사람은 LAPD 형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연쇄살인범이 되었다.

두 사람의 두뇌게임, 아니 심리 게임은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 누구에게? 헌터에게!

그래서 이 로버트 헌트라는 이름의 형사가 맘에 들었다. 첫 등장부터 젠틀한 이미지였지만 루시엔 같은 작자와 맞서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루시엔이 헌터의 영혼을 탈탈 털어대도 헌터는 잘 견뎌낸다. 정말 멘탈 갑이다.

아주 작은 사소함 마저도 모두 계산하고 계획한 뒤에 움직이는 루시엔.

그는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헌터와 FBI를 농락한다.

 

범죄자의 심리를 알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살인의 백과사전을 쓴 루시엔.

그가 헌터와 벌이는 심리 게임의 위력은 루시엔이 입을 벌릴 때마다 내 머리를 강타한다.

어디에서도 만나 본 적 없으나 이미 무수히 만나 본 소설 속의 살인마들을 모두 합쳐 놓은 루시엔.

그가 그 어떤 범죄자 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자신의 궁금증을 위해 벌인 일들 때문이다.

범죄연구라고 보기 좋게 포장했지만 그는 그저 살인마일 뿐. 그 어떤 것도 그를 위해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이토록 거부감과 함께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자는 처음이다.

이런 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80건의 살인을 25년 동안 저지르면서도 한 번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살인자.

매번 수법을 바꿔서 똑같은 방법을 쓴 적이 없는 살인자.

전국에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살육을 저지르는 살인자.

조력자를 두지만 때가 되면 가차 없이 해치우는 살인마.

자신이 짝사랑했던 친구를 첫 번째 피해자로 만든 살인마.

 

이 역대급 연쇄살인마를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만났다.

그래서 더 소름 끼치고, 정말 이런 자가 세상에 있을까 봐 겁난다.

 

작가 크리스 카터는 내가 좋아하는 북유럽 스릴러의 제왕 요 네스뵈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탄생시킨 로버트 헌터라는 인물 역시 해리 홀레처럼 점점 막강해질 거 같다.

LA에 다혈질 형사만 있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과 매일 대면하는 형사들의 고충이 어떨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 아닐까 싶다.

로버트 헌터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잘 나와주길 바란다.

<악의 심장>은 장르소설 맛집 북로드의 스토리 콜렉터 100번째 이야기에 걸맞은 인물을 독자와 만나게 해주었다.

 

루시엔 폴터는 사이코패스이자 소시오패스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이코시오패스라고 부르고 싶다.

다신 안 만났으면 좋겠다. 한니발 렉터 보다 더한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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