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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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지. 모르는 일은 모르는 법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그래도 꾹 참으면 그 사건은 언젠가 우리 안에서 통증을 날리고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비취 같은 보석이 된다.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해도 우리의 분단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건 안다.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피난 온 국민당 정부.

그들을 따라 대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할아버지 세대.

중국 본토에서 그들은 전쟁을 치렀다.

일본과 싸우고 공산당과 싸운 사람들, 언젠간 고향 땅을 밟을 날만 기다린 그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죄는 정의로 포장했다.


한마을을 몰살시킨 할아버지는 이십여 년이 지나 대만 자신의 가게에서 살해된다.

할아버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손자 치우성의 시선으로 말해지는 이야기는 내가 몰랐던 대만의 근대사와 그들의 상처를 예씨 집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살인범을 찾으려는 예치우성의 성장기와 그 시대의 향수들이 글 곳곳을 채우고 있다.

스릴러라기보다는 역사소설 같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서는 혼란스럽다.


이 책을 읽는 시간 동안 우리의 한국전쟁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이 땅에서 밤에는 공산당이 낮에는 국군이 저질렀던 일들이 중국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런 일들에서 얻어지는 상처와 고통은 고스란히 민초들의 몫이었다.


손자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던 할아버지의 과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고통이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그때는...


복수의 이야기일까?

그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 걸까?


"우리는 말단이었지. 그 전쟁은 애들 싸움 같았어."

"정말 그랬지. 뭐가 뭔지도 모르는 꼬마들이 총을 들고 서로 쏴됐어."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야."

"응, 다 지나갔지."



왜 그랬을까?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꼭 그래야만 했을까?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의 놀음에 하수인이 되어 아무런 원한도, 이유도 없이 서로에게 총을 쏴됐다.

많은 사람을 죽였다지만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를 죽여야 했던 시절이었다.


예준린은 누군가에겐 은인이었고, 누군가에겐 살인자였다.

그 시대는 누구나 다 그랬던 걸까?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

예치우성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대만의 모습을 보았다.

가까운 곳에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보지 못한 세계로 시간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다.


류(流).

흐르다. 귀양보내다.의 뜻이 있다.

두 가지 뜻을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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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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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적' 감각이든 '진짜' 감각이든, 외부 세계의 무언가에 의해 자극되었든 아니면 별다른 이유 없이 또는 외부적 감각 없이 두뇌 혼자서 발화하여 생겼든, 모든 감각은 진짜로 경험된다.

 

세계적인 신경학자 베로니카 오킨의 <오래된 기억들의 방>은 그녀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기억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면서 쓴 글이다.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이 기존에 배우고 익혔던 것들에서 탈피 '진짜'를 연구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실 다양한 사례들을 읽으며 기억이라는 게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가짜'라는 걸 알지만 진짜처럼 느껴지는 기억들이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은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서 마주친 적 있는 병들이거나 처음 알게 된 증상들도 있다.

인간은 감각 경험의 이해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는 걸 이 책이 알려준다.

뇌 자체가 기억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알려주지만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사례들을 통해서 세워진 이론이라서 좀 더 이해하는 바가 다른 책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트라우마가 기억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가 제일 흥미로웠는데 체계적이지 못한 기억 네트워크가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어릴 때 바다에 빠진 경험이 있다.

엄마, 아빠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바다로 빠져서 인지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물에 떠있기만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데 나는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면서 엄마랑 아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았다.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아!"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9살 때의 기억은 그 이후 허리 이하의 물에만 나를 가두었다.

그날 아빠의 친구분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수영은 못하고 튜브만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튜브는 파도에 쓸려서 점점 바닷가로 밀려갔다.

어제 물에 빠졌던 기억이 남은 나는 내가 바닷가로 밀려간다는 생각은 못 하고 물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잡아가려 한다는 생각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인데 저 앞에서 엄마는 동생들을 돌보며 나한테 소리쳤다.

"일어나! 그냥 일어나면 돼!"

내 바로 앞에 있는 아줌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 아줌마의 발목쯤에 물이 차 있었던 게 눈에 보였지만 나는 내 엉덩이가 바닷가에 닿은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튜브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엄마가 다가와서 튜브에서 나를 들어 올려 내려놓았다.

바닷물은 내 발바닥을 겨우 간지럽히고 있었다.

 

엄마의 기억은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로 남았고

내 기억은 내가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음으로 남았다.

나는 수영을 배우라는 사람들의 말이 무섭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는 수영을 배우고 싶지 않다.

물은 내게 영원히 무서운 존재니까.

 

우리의 기억에서 장소는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억해 낼 때 언제나 장소를 먼저 떠올린다.

어떤 중요한 일을 떠올릴 때 '그때 내가 어디에 있었지?'라는 그 기억을 되새기기에 좋은 출발점이다.

 

살아 있는 두뇌인 신경의 끊임없이 징징대는 소리에서 기억들이 만들어진다.

 

 

나는 돌잡이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다.

내가 그때 얘기를 하면 모두가 부모님에게 얘기를 들었거나, 비디오를 봤을 거라고 말하는데

그때의 기억은 영화 필름처럼 내게 각인되어 있다. 마치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영혼이 육체의 행동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처럼.

그리고 꽤 좋은 기억력을 가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기억은 흐지부지되었다.

그것은 나쁜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뇌의 속성 때문인 거 같다.

 

누구나 인생의 블랙홀 같은 시점이 있고, 그 기간 우리의 뇌는 기억을 흩트려놓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나, 시간들은 그렇게 통째로 사라지거나, 흐려지거나, 모호해진다.

그래서 기억하기보다는 잊기를 선택하고 그렇게 좋은 기억력은 점점 좋은 잊힘으로 바뀌어가는 거 같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봤던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와 기억들을 책에 담긴 사례와 비교해 보며 스스로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해봤다.

쉽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내가 이해한 만큼 유익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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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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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곁에 두고 내 감정 상태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보면서 나를 단련시키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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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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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권위자 김선현 저자가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로서 지난 세월 현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 준 그림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일 - 관계 - 돈 - 시간 - 나 자신으로 나누어 그림과 함께 그 그림이 주는 효과를 이야기합니다.

 

빨강은 아드레날린을 촉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칸딘스키의 그림을 추천합니다.

저는 기분이 가라앉고 처지는 날, 외출하기도 싫고 어딘지 아픈 느낌이 드는 날은 빨강 립스틱을 발라주면 왠지 생기 있게 보이고 마음도 금방 달라져서 나가고 싶기도 합니다. 단지 빨강이 저한테 잘 어울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빨강이 가진 힘이 저를 달라지게 한 거라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네요^^

 

노랑은 긴장을 풀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고갱의 기도하는 여인의 그림을 보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자꾸 집착이 들 때는,

원래의 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 관련 책들을 자주 접하려 노력하다 보니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익숙합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그림들도 많습니다.

그림들마다 저자가 부여하는 느낌이나 치료 목적의 이야기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나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어떤 그림 앞에서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림은 보는 사람의 이해가 가장 중요한 거 같습니다.





저는 표지의 그림 때문에 이 책에 욕심을 냈습니다.

프레더릭 레이턴의 '불타오르는 6월'

표지의 화사한 색감과 편안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왠지 설정스러운 그림을 넋 놓고 보다 보면 편안함은 곧 불편함을 수반해야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게 삶의 모습이니까요.

누군가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누군가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모델의 수고로움과 화가의 노고가 시간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네요.

 

#프레더릭레이턴에디션

#미술치료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거든요

 

 

 

나 자신에게 객관적이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나에게 지적을 하면 그것을 빠르게 인정하는 방법을 열심히 실천 중입니다.

인정하기 싫어서 변명을 하다 보면 변명을 위한 변명을 하게 되고, 계속 그러다 보면 좋은 관계도 서먹해져 버리니까요.

어쨌든 맘에 안 들어도 내게 있는 모습이고, 상대가 그것을 파악했다면 그건 내 잘못이니까요.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수한 것을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리스크를 줄여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다양한 그림들 앞에서 왜 이 그림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읽어 갑니다.

때로는 그 그림 속에서 나만의 설명을 찾아 내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그림들이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이 책은 곁에 두고 내 감정 상태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보면서 나를 단련시키기 좋은 책입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가 직접 보면서 느끼는 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러기 힘든 그림들을 편하게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요즘 저는 병원과 집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그런 시간에 이 책의 그림들과 글들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탁월한 표지 선정으로 인해 저는 '불타오르는 6월'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당분간은 저 표지 그림으로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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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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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충격을 먹고 살아온 우리가 아니냐.

 

초록색 인종. 그것은 전쟁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평화롭고 어진 종족이다. 인간처럼 노동의 땀을 흘리지 않고서도 태양빛만 있으면 살아가는 놀라운 초(超) 생명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결전은 아직도 아슬아슬한 느낌을 남기고 있다.

인공지능이 이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세돌이 이기기를 응원했었다. 아직은 인공지능에게 지고 싶지 않은 인간의 자존심이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라는 부제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번호를 매겨서 짤막하게 나눠쓴 글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알파고는 왜?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는 없을까?

 

인공지능 뒤에 숨은 이야기가 꼬부랑 고갯길을 자꾸 넘나든다.

 

 

지금까진 로봇 뒤에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로봇 앞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시대가 오게 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단순히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세돌과 서양의 모든 기술과의 대결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앞으로의 세상에 "인仁"을 새겨 넣어 미래를 이끌 한국인.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에 대한 무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너 어떻게 살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거 같을 때 이 책이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가 될 거 같다.

어떻게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는지 읽으면서도 감탄스럽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쉬워서 좋고, 명확해서 좋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줘서 좋다.

이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두 권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참 뿌듯해진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한국인 이야기.

나 자신을 찾는 길을 찾은 거 같아서 좋다.

어쩜 이런 생각들을 들을 기회가 자주 없어서 세상이 나와 다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렇게 어려운 부분도 쉽게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시니 그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운 느낌이다.

 

미래 세상과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 등이 어렵게 생각되는 사람들

첨단을 걷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뒤처진 기분이 드는 사람들

미래 세상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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