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제목처럼 이 책에서는 '자아'라는 개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예를 들어 '자아'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그렇다고 '자아' = '이것' 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8가지 예로든 사람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미친 사람'이다.

우린 이 사람들을 그저 '미쳤다'로 믿고 더 생각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 정신병자. 이 단어들이 주는 감정은 더 이상의 소통을 불허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코타르증후군 환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까?

 

 

자아의 존재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는 코타르 증후군이다.

뇌 관점에서 보면 이 병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신은 살아있지만 뇌는 죽었다고 믿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니 살아있지만 존재하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자아의 재료

알츠하이머는 이 병을 최초로 연구했던 박사의 이름을 붙인 병이다.

치매.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면서 불같은 성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환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 모두 과거에서 온 망령들이다. 스스로가 현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정신병일까?

 

자아의 지도

'나'를 이루는 것의 가장 원초적인 것은 몸이 아닐까? 그 몸이 더 이상 내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데이비드는 자신의 한 쪽 다리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상상은 그것을 자르고 싶게 만든다.

BII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낯설어한다. 쉽게 말해 이물질로 여기기 때문에 잘라내고 싶어 한다.

눈에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들어가면 눈도 못 뜨고 괴로워하는데 바로 그런 고통을 매시간 느끼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자아의 빈자리

 

자기 자신의 측면으로만 과도하게 주의가 집중되고, 다른 것들은 주의를 받지 못한 채 그냥 존재한다.

 

 

조현병은 자아의 빈자리다. 그걸 채우면 다시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챕터를 읽으며 조현병과 알츠하이머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츠하이머가 기억을 잃어 자신을 잃어가는 거라면, 조현병은 어떤 경험이 자기를 중심으로 증폭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와 정서

비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 걸까?

세라처럼 요가를 통해 몸을 느끼면서 극복할 수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병일까?

몸에서 분리된 느낌과 정서적 무감각을 몸을 느끼는 연습으로서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라는 자신의 병을 일찍 알아서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나처럼 숨 쉬는 공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닿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들은 그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으니까...

 

자아의 멈춤

자폐증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폐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럼 같은 거 아닌가? 문제가 되는 건 쪽수의 문제가 아닐까?

자폐인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타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나야말로 문제아인 것이다.

이리 생각하면 자폐인에 대한 이해가 조금 쉬울까?

 

최소한의 자아

유체이탈, 도플갱어 같은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보다 그저 문학 속에서 이해하는 게 내겐 더 쉽다.

우리 뇌는 속기 싶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건 어떤 이유일까? 어떤 이는 뇌를 쉽게 속일 수 있고, 어떤 이는 뇌를 속이기 어렵다.

정신력과 관련된 걸까?

이 부분은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뇌의 문제라는 건 알겠지만 아마도 문학 속에서 만나는 유체이탈과 도플갱어에 대한 이미지를 버리고 싶지 않은 나의 자아 때문인 거 같다.

 

 




무한의 자아

황홀경 발작은 주변을 완전하고 명료하게 느끼면서 자신이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1, 2초의 짧은 발작이지만 느끼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 더 오랜 시간을 경험한 것처럼 느껴진다.

'섬엽'이 관여한 발작으로 이 섬엽이 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인증이 보인다.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하면 황홀경 발작을 일으킨다.

섬엽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환각제는 황홀경 발작과 비슷한 걸 느끼게 만들고 이런 느낌들은 시간을 잊게 만든다.

 

위에 열거한 이야기는 모두 뇌에 관한 이야기다.

뇌에 문제가 생길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예전에는 그저 정신병으로 간주해버렸지만 이제는 이 문제들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왔다. 물론 이 뇌의 문제를 인지했다고 해서 실생활에서 만나는 고통스러운 환자들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들은 도움이 된다.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제목이 참 많은 걸 이야기한다.

나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곧 자아를 상실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뇌의 한쪽에 자리한 아주 작은 단백질 덩어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자아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자아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뇌는 속이기 쉽다. 뇌를 속이는 일은 곧 나를 속이는 일일까, 아닐까?

뇌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뇌'에 대한 경이로움이 쌓여가는 거 같다.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들어 본 병증으로 설명하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병이야말로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아'라는 개념 찾기가 언제쯤 완벽한 지도를 그리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은 이유가 있어서 살인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찾을 것이었다.

 

앤 버지스는 FBI에 프로파일러를 만든 장본인들 중 한 명이자 유일한 여성이었다.

간호학 교수로서 병원에서 강간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연구해서 체계적으로 확립한 최초의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FBI에 발탁되어 연쇄살인범들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프로파일러는 상당한 신임과 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초창기 프로파일러는 그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저 어설픈 심리학자나 심령술사 정도로 인식되었던 그 시기에 프로파일링의 기초를 닦아 나간 사람들의 노력에 깊이 감명받았다.

 

FBI 건물 지하 깊숙한 곳, 저자가 방공호라 불리는 곳에서 끔찍한 사건들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생각하는 모습들은 읽는 나조차도 답답하고 숨이 막히게 만들었다.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하고 종잡을 수 없었던 범인의 윤곽을 그려내는 프로파일링이 성공을 거두어 범인을 잡게 되는 과정들이 초반에 그려진다.

 

그때까지 나는 피해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느라 사건에 또 다른 쪽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잔혹하거나 포악하거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제쳐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의 말을 들었을 때, 범죄의 속성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한 사건의 두 측면으로서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모두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해자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형언할 수 없는 극악한 행위를 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오갔는지 알아야 했다.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성폭력이 성적인 행동 자체에 대한 행위라기보다 권력과 통제에 대한 행위라는 사실이었다.

 




프로파일링이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간대에서 연쇄살인마 역시 체계적이지 못했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책을 읽으며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생기고 그들이 범죄자들의 데이터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범죄자들도 같이 성장한 느낌이다.

그들도 똑같이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에 대해 연구를 했다.

우발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았던 범죄자들이 점점 그들의 수법을 진화시키고, 지능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자리매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은 어떤 사람이 사고하는 양식(사고 패턴)이 예측 가능하고 수량화 가능한 방식으로 그의 행동을 이끈다고 보는 접근 방식이다. 따라서 비협조적인 범죄 현장이라도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분석을 하면 가해자의 동기에 대해 가능성 높은 설명을 도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 범죄를 저질렀을 법한 사람의 구체적인 유형을 끌어낼 수 있다. 다른 말로, 범죄 현장을 읽는 법을 더 잘 알면 그 현장을 남겨 놓고 간 범죄자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성범죄에서 가장 감당하기 힘든 부분은 바로 아동 성범죄다.

이 이야기에 실린 [내 친구 미시]는 눈앞에서 친구의 납치를 목격한 오팔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먼저 잡혀서 자동차에 던져졌던 오팔은 미시를 잡기 위해 범인이 한눈을 판 사이 차에서 빠져나와 도망친다.

눈앞에서 미시가 잡혀가는 광경을 보고도 숨어서 꼼짝하지 못한 오팔의 기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버지스는 요청을 받고 오팔을 만나 그림으로 목격자 진술을 듣는다.

오팔이 그린 그림들과 아이가 한 말들을 토대로 버지스는 오팔의 두려움과 고통을 감지한다.

미시를 아는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고통이 예상되지만 눈앞에서 친구가 납치된 모습을 목격한 아이는, 혼자만 도망쳤다는 그 사실을 평생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현실에서 모두 뒷전이 되고 만다.

범인이 잡혀도 그 고통은 미시를 알던 사람들에게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나 하나의 접근만으로 우리 스스로를 한정하지 말아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서로 다른 배경, 관점, 경험 등 모든 것을 사건에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프로파일링 방법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팀으로 함께일 때만 가장 일을 잘할 수 있었다.

 

 

프로파일링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여럿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다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프로파일링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한 사람의 의견이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의 의견을 수립하는 것이 유연한 사고를 기르는 방법임과 동시에 복잡한 범인의 생각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신참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이 부분의 버지스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이런 연쇄살인범이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 그리고 사건 현장의 처참한 모습들을 매일 봐야 한다면 너무 고통스러울 거 같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들은 강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들이어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요원들은 일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스위치를 돌렸다. 그러나 버지스는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교감하면서 그 분석을 통해서 사건의 통찰력을 얻었다. 그야말로 최강의 멘탈을 소유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형사라는 직업보다 프로파일러에 더 매력을 느끼던 터였다.

형사가 일선에서 끔찍한 현장을 직접 본다면 프로파일러는 그보다는 덜 심할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분석은 언제나 꼼꼼해야 하고, 더 자주, 더 많이 자료들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범죄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프로파일러는 매력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를 읽으며 그러기에는 강한 멘탈을 소유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범인보다 강한 정신력과 유연한 사고, 열린 마음 그리고 '정치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일을 하기 힘들 거 같다.

앤 버지스는 이 모든 걸 가지고 있는 분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우위에 둘 수 있었던 것도, 범인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피해자와 교감하는 능력도 모두 그녀가 한 수 위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윌리스 사건을 보면서 언론이 범죄와 범인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다시 확인했다.

요즘 언론은 사건의 묘사를 너무 자세하게 한다. 그 자극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범인에 대해서는 똑같은 범죄자임에도 다른 묘사를 한다.

그 가증스러움이 범죄를 즐기는 이들에게 어떤 환상을 품게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시기인 거 같다.

 

평소 범죄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분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를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를 읽으며 많은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일이 원활해지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소통'의 부재야말로 많은 고통을 불러오는 촉매제가 아닐까...

 

가해자 역시 만들어진다.

그들이 느낀 최초의 고통으로부터 회복되지 못한 자아가 범죄를 키운다.

그 과정에서 '소통'의 부재는 더 많은 범죄를 미래로 불러들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위선이라는 도덕적 일탈을 하는 이유는 주로 상대의 눈치 없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1930년대 소도시에 사는 중산층의 삶은 어떨까?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절판된 적 없다는 이 책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소도시에 살며 귀족 집안의 토지관리인인 남편과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주인공은 날마다 일기를 쓴다.

하루의 일과를 일기로 마무리하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읽어 가다 보면 매우 분주한 한 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사건건 토를 다는 요리사, 이랬다저랬다 하는 프랑스 가정교사,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딸 비키

늘 뚱한 표정으로 신문이나 보다가 잠드는 남편 로버트, 사춘기를 겪는 듯 보이는 아들 로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전혀 소용없는 말을 툭 던지고 가는 남편의 고용주 레이디 복스

소도시의 삶이 결코 조용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관습에 묶여지내는 주인공에게 일기를 쓰는 시간만큼은 가식이 없다.

그래서 하루 동안 쌓인 감정의 찌꺼기와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기장에 토해낸다.

일기도 재밌지만 일기 중간중간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그녀의 '메모'와 '의문'이 더 재밌다.

 

의문 : 사시사철 지방에 살면서 대화의 기술을 쌓는 게 가능할까?

의문 : 현대의 아이들은 현대인이 되기 싫은 걸까? 그렇다면 현대의 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의문 : 나도 희곡을 쓸 수 있은 걸까?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을까?

자주 그러듯 여기서 절로 드는 의문 : 문명의 오락거리와 양심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솔직함을 결합하기란 불가능할까?

메모 : 가끔 <타임스>에 편지를 써서 이 논제에 관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견 일치를 본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 그래 봐야 생각뿐이지만 철저하게 파헤친 수많은 연구들보다 훨씬 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주제인 것 같다.

메모 : 남자는 식탁 앞에 앉는 일과 잠자리에 드는 일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일을 미룬다는 것이 여자와의 큰 차이점이다. 싸구려 문구점에서 자주 세일하는 '지금 당장 하라'는 표지판을 사서 남편에게 내밀어 볼까 싶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가정의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





사소한 일 하나까지 남편의 결제를 받아야 하고,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의 눈치를 보며, 풍족하지 않은 가정을 이끌어 가려는 주인공의 노력들이 지루하지 않게 재치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표현되어 있다.

늘 아무도 모르게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지만 다른 사람은 뽑히는데 주인공은 안 뽑힌다.

그 이유가 아마 사회적으로 포용되는 글의 범위를 주인공이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

일기를 이렇게 쓰는 거 보면 기고한 글들에 자신의 속 마음이 담겼을 터, 그녀의 예리하면서도 풍자적인 글들이 그 당시 사회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거 같다.

 

100년 전 영국 여인의 일상들은 낯설지만 익숙하고

답답하면서도 활기차며

은근 받은 만큼 돌려주는 모습들이 통쾌하다.

 

주변인들을 관찰하는 시선이 날카롭고 그것을 자기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책을 읽는 동안 혼자 킥킥거렸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재치와 예리함을 배운다.

100년 전 일기지만 2023년에도 배울 것이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자의 삶은 거의 변한 게 없으니까.

 

누군가의 속마음을 본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이 일기는 정말 일상의 소소함을 적고 그 안에서 느낀 것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고민하며 끝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점이 가장 사랑스럽다.

 

 

일상 페미니즘.

한 영문학자가 이 책에 붙인 말이다.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이 일상 페미니즘이 그 어떤 페미니즘의 이슈보다 더 알차게 다가온다.

그러니 꾸준히 사랑받은 것일게다.

 

2편은 런던에서의 일상 일기다.

런던 대도시에서는 어떤 일기로 자신을 표현할지 무척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생 시즌2 : 15 미생 (리커버 에디션) 15
윤태호 지음 / 더오리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년 만에 새로 출간된 <미생> 시즌 2

오과장과 김대리, 장그래가 떠난 영업 3팀에 홀로 남은 천과장.

그리고 팀이 와해되어 버린 장백기의 철강 팀이 영업 3팀으로 합류한다.

자존심이 상한 장백기와 CIC를 꿈꾸는 천과장. 두 사람의 간극은 어떻게 좁혀질까?

 






웹툰이 아니라 드라마로 <미생>을 알았던 터라 만화로 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장백기의 좌절과 천과장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15권의 이야기는 뭔가 허전한 부분에서 채워지기 직전으로 가는 길목 같다.

 

기품, 습관을 변화시키는 건 수많은 시도를 거쳐야 가능하다. 기품, 습관이 바뀌지 않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중요하여 익숙하고 안전한 태도를 다시 꺼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손실을 각오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고 그토록 중요했다면 지금 당신의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원 인터내셔널을 나와서 온길 인터내셔널로 옮긴 오과장과 김대리 그리고 장그래는 그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대기업에 있을 때와는 다른 조건들이 그들의 입지를 좁히고, 갑에서 을이 된 모습들이 장백기와 천과장과는 다르게 그려진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지만 아직은 서로 연결을 짓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은 천과장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장백기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려 하는 온길 팀.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이 만화에 있다.

 

그냥 하늘이 뻥 뚫려있어요. 가려 주는 것 하나 없이. 만약 그런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면, 세상 가장 무서운 말은 '자유'일 거예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뛰어야 하는 영업맨과 사내 독립 기업을 꿈꾸는 천과장의 영업 3팀의 활약이 기다려진다.

천과장을 말없이 응원하고 힘을 주는 아내의 모습이 더 감동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많은 걸 느끼게 해준 <미생 15>

 

직장인들의 애환과 전쟁터와도 같은 회사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 <미생>

각 챕터마다 바둑의 수를 보여주며 다음 챕터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만화도 시즌 2가 나왔으니 드라마도 함께 시즌 2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태닝 오일을 떡칠하고, 필립 로스가 잭슨빌의 가구 할인점인 줄 아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면? 그런 사람이 다른 인생을 원한다면? 어떻게 A라는 인생에서 B라는 인생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B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까?

 

출판사 편집 보조로 뉴욕 생활에 적응 중인 플로렌스.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그래도 잘나가는 축에 끼었지만 뉴욕에서는 어림없는 부류.

자신이 알던 세상 보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하고 어쩔 줄 모르는 플로렌스.

작가가 되고 싶지만 글에 자신이 없고, 자신에게 무언가가 빠졌다는 걸 아는 플로렌스.

그러나 늘 그 현실을 빠져나가고픈 플로렌스.

그녀가 빠져나가고 싶은 것은 그녀의 인생 전체였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은 더 비참한 플로렌스 앞에 은둔 작가인 모드 딕슨의 조수가 될 행운이 찾아온다.

더 이상 뉴욕에 미련이 없는 플로렌스는 당장 모드 딕슨을 만나러 떠난다.

모드 딕슨은 필명이었고, 헬렌 윌콕스가 모드 딕슨이라는 필명 뒤에 숨은 진짜 이름이었다.

 

어딘지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헬렌은 거침없으며 까다로운 성격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차기작을 위해 모로코로 여행을 간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다.

플로렌스는 병원에서 눈을 떴고, 사람들이 자신을 헬렌 윌콕스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헬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번쯤 지금 인생이 아닌 성공한 인생을 꿈꿀 때가 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플로렌스는 잔챙이다. 욕심은 있지만 야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소하고 찔끔찔끔 거리는 복수는 할 줄 알지만 크게 일을 벌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그녀가 헬렌을 만나고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디테일 하나까지 닮으려 애쓰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주인공이 가증스러운 이유는 '아닌 척', '도덕적인 척', '양심 있는 척'을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뿜어내며 정면 돌파하는 헬렌이 오히려 가식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마조마하면서 겁나 짜증 났다.

 

"아, 정말 얘 왜 이러니?"

 

이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럼에도 책 읽는 걸 멈출 수 없어서!

 

남의 떡이 항상 큰 법이다.

그런 줄 알고 덥석 물어 버리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법이다.

플로렌스는 자기 앞에 온 기회를 덥석 물었다.

그러나 그걸 지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 좋아. 플로렌스는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깨부순 다음 필요하면 나중에 고치는 거야.

 

어째서 알렉산드라 앤드루스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비교하는지 알 거 같다.

어딘지 안쓰러우면서도 겁나 답답한 주인공 플로렌스.

그러나 그녀가 헬렌의 기운(?)을 받아서 점점 달라져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와 함께 엎치락뒤치락 하는 반전의 재미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그 대가를 치르면서 쟁취해야 할 그것은 과연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한 사람은 그 부메랑을 온몸으로 받아 냈고, 한 사람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되돌아올 부메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진실은 결코 입을 다물지 않으니까...

 

내 안엔 누가 있을까?

플로렌스? 헬렌?

둘 다 아니길 빌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