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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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태닝 오일을 떡칠하고, 필립 로스가 잭슨빌의 가구 할인점인 줄 아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면? 그런 사람이 다른 인생을 원한다면? 어떻게 A라는 인생에서 B라는 인생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B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까?

 

출판사 편집 보조로 뉴욕 생활에 적응 중인 플로렌스.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그래도 잘나가는 축에 끼었지만 뉴욕에서는 어림없는 부류.

자신이 알던 세상 보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하고 어쩔 줄 모르는 플로렌스.

작가가 되고 싶지만 글에 자신이 없고, 자신에게 무언가가 빠졌다는 걸 아는 플로렌스.

그러나 늘 그 현실을 빠져나가고픈 플로렌스.

그녀가 빠져나가고 싶은 것은 그녀의 인생 전체였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은 더 비참한 플로렌스 앞에 은둔 작가인 모드 딕슨의 조수가 될 행운이 찾아온다.

더 이상 뉴욕에 미련이 없는 플로렌스는 당장 모드 딕슨을 만나러 떠난다.

모드 딕슨은 필명이었고, 헬렌 윌콕스가 모드 딕슨이라는 필명 뒤에 숨은 진짜 이름이었다.

 

어딘지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헬렌은 거침없으며 까다로운 성격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차기작을 위해 모로코로 여행을 간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다.

플로렌스는 병원에서 눈을 떴고, 사람들이 자신을 헬렌 윌콕스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헬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번쯤 지금 인생이 아닌 성공한 인생을 꿈꿀 때가 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플로렌스는 잔챙이다. 욕심은 있지만 야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소하고 찔끔찔끔 거리는 복수는 할 줄 알지만 크게 일을 벌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그녀가 헬렌을 만나고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디테일 하나까지 닮으려 애쓰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주인공이 가증스러운 이유는 '아닌 척', '도덕적인 척', '양심 있는 척'을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뿜어내며 정면 돌파하는 헬렌이 오히려 가식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마조마하면서 겁나 짜증 났다.

 

"아, 정말 얘 왜 이러니?"

 

이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럼에도 책 읽는 걸 멈출 수 없어서!

 

남의 떡이 항상 큰 법이다.

그런 줄 알고 덥석 물어 버리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법이다.

플로렌스는 자기 앞에 온 기회를 덥석 물었다.

그러나 그걸 지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 좋아. 플로렌스는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깨부순 다음 필요하면 나중에 고치는 거야.

 

어째서 알렉산드라 앤드루스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비교하는지 알 거 같다.

어딘지 안쓰러우면서도 겁나 답답한 주인공 플로렌스.

그러나 그녀가 헬렌의 기운(?)을 받아서 점점 달라져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와 함께 엎치락뒤치락 하는 반전의 재미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그 대가를 치르면서 쟁취해야 할 그것은 과연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한 사람은 그 부메랑을 온몸으로 받아 냈고, 한 사람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되돌아올 부메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진실은 결코 입을 다물지 않으니까...

 

내 안엔 누가 있을까?

플로렌스? 헬렌?

둘 다 아니길 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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