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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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가 향하는 곳이 아니라 발뷔 바케의 건너편 어딘가에 깃들어 있었다. 어두운 복도에서는 두려움의 냄새가 났고, 나는 마치 내가 그 냄새를 가져오기라도 한 것처럼, 올페르트센 부인이 그것을 알아차릴까 봐 걱정이 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대신 일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토베.

첫 근무지에서 도망친 토베.

그 뒤 어느 하숙집에서 하루 종일 잡일을 하고 기진맥진되는 토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토베.

너무 단조롭고 피곤한 일상이 스멀스멀 토베에게 들러붙어서 토베의 감정을 삼켜버리는 시간들...

 

2년 뒤에 원고를 가지고 오라고 했던 편집장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는 토베.

그를 만난 이후로 자신이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토베.

이제 그의 글을 읽어 줄 사람도 없고, 삶의 무게에 잡아먹힌 토베의 감정은 단 한 줄도 길어올리지 못한다.

 

한창 꿈꿀 나이에 생활과 일상에 발목 잡힌 토베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던 '낙'이 사라져갈 무렵

루트를 통해 알게 된 크로그씨에게 책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토베에게는 일상에 작은 기쁨이 생겼다.

 

나는 크로그 씨가 내 편집자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겁에 질린다. 나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아프고 나이 많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듯한 어떤 세계에 내가 가닿을 수 있기를 온 마음으로 바란다. 나라는 존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기 전에, 그보다 먼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시절.

별난 사람을 수집하던 크로그 씨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지고 토베는 또다시 현실에 갇힌다.

하지만 이제 하숙집을 떠나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뒤채의 계단을 오르다가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문득 이곳이 참을 수 없게 느껴지고, 이곳의 모든 기억들이 어둠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사는 한, 나는 외롭고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 토베에게는 직장 상사들의 성희롱이 탑재 되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게 된다.

여자는 학교 대신 결혼해서 애 낳고, 집안일이나 잘 하면 그만이라는 시대에서 토베는 18살이 되면 오빠처럼 독립하리라 마음먹지만 그 시대, 그 세상에서 여자의 독립이란 결혼뿐일 텐데...

 

에를링이 토베에게 다가온 첫 남자다.

여자 친구 대신 에를링을 사귀는 토베. 그는 토베랑 많이 닮았다.

토베에게 영화를 처음 보여 준 남자 에를링. 그에게도 토베처럼 다른 꿈이 있다. 토베는 그와 영화를 보러 갈 때 자신의 푯값을 내면서 독립적인 느낌을 누린다.

 

새로운 직장을 얻고 연극에서 할머니 역을 맡게 된 토베는 그 연극으로 인해 신문기사에 이름도 올린다.

곧이어 새로운 작품에 주인공으로 낙점도 되지만 이 일화에서 토베가 얻은 건 친구 니나였다.

토베의 집에서 토베에게 시를 쓰라고 응원하는 이는 오빠 에드빈뿐이다.

에드빈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였던 시절이었다.

토베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18살이라는 마지노선을 그었다.

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내었고, 저축을 했다.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자그마한 운이라도 따르는 법이다.

회사에서 축가를 쓸 기회를 얻고, 아버지가 토베의 시를 읽어 보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토베는 열심히 글을 쓴다.

동시 취급을 받던 토베의 시는 점점 토베만의 무엇을 가진 시가 되어간다.

 

코펜하겐 삼부작을 읽는 동안 <청춘>의 여러 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토베의 글엔 모든 감정이 담담하게 담겨 있기에 마치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 맛을 골고루 맛보는 느낌이다.

마침내 열망하던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토베는 시를 쓴다.

그녀의 타자기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그렇게 시인으로서의 준비가 되어갈 때쯤 '밀알'이라는 잡지에 그녀의 시가 실린다.

 




비고 F. 묄레르의 도움으로 토베의 시집이 출간된다.

<소녀의 마음>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낸 토베의 청춘.

<청춘>은 절망과 함께 행운도 찾아오는 시기다.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오는 '행운'을 거머쥔 토베 디틀레우센.

비고 F. 묄레르에게 연정을 느끼는 토베의 앞날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다음 편 제목이 <의존> 이라 왠지 마음에 걸린다.

우리가 알다시피 근 40년 가까이 차이 나는 묄레르에 대한 토베의 마음이 어떻게 이용당할지 알 수 없어서...

토베는 이용하기 위해 이용당해야 한다는 법칙을 알고 있었으니까 영리하게 대처하기를 바라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토베와 함께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나는 이후 토베에게 벌어질 일들이 마냥 즐겁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더한 무엇이 그녀의 고통을 시로 승화시키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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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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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게 칼을 쥐여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열세 번째 줄을 나무에 새겨 넣었다. 열세 번째. 돌이켜보면 그때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할런 코벤의 신작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예전에 <밀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절판된 이후 이번에 비채에서 새롭게 단장해서 출간된 책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을 몇 권 읽었는데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잘 안되는 이야기에 더해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는 게 코벤의 매력인 거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는 어릴 때 소꿉친구였을 때부터 사귀어온 엘리자베스와 벡이 자신들만의 추억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괴한들에게 아내가 납치되고, 벡은 야구 방망이로 구타당하고 호수에 빠지면서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지고 8년 후에 이메일 한 통을 받는 벡.

이메일에는 링크가 담겨 있었고, 죽은 엘리자베스와 벡만 아는 암호로 지정된 시간에 링크를 클릭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녀는 화면 속에 몇 초간 더 머물렀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해." 나의 죽은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첫 페이지부터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코벤의 필력이 마지막 장까지 계속된다.

장례까지 치른 아내가 살아 있다니!

그리고 그 이메일을 받은 이후부터 벡에게 시련이 따라온다.

아내가 죽은 호수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로 인해 엘리자베스 사건이 다시 조사받게 되고 벡은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경찰과 FBI에게 쫓기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를 하던 의사에서 갑자기 도망자 된 벡.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도망자가 되는 순간부터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숨어있던 비밀들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온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지루한 인생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헌신적인 의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유령을 보았고, 죽은 자의 이메일을 받았으며,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로 전락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고, 경관을 폭행했으며, 악명 놓은 마약상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실로 파란만장한 일흔두 시간이었다.

 

 

발을 들여서는 안되는 곳에 발을 들인 이들.

자신들의 자리에서 일탈을 범한 자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8년이라는 시간은 과연 속죄의 시간으로 적당한 걸까?

 

죄 없는 자는 숨어 살아야 하고

죄 있는 자들은 만인이 우러러보는 삶을 산다.

그렇게 살면서 자신이 가장 끔찍하게 아끼는 누군가를 잃게 되지.

 

복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코벤은 시시하게 복수극을 쓰는 작가는 아니었지.

코벤식 복수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진짜 기가 막히다는걸.

 

쇼나와 타이리스의 우정이 돋보였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쇼나처럼 친구를 위해 옳으면서도 강단 있는 조언을 해주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타이리스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돈'이 세상의 전부가 된 세상에서 '가치'를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생각거리를 주는 이야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다들 정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녀만 쓸데없는 고통을 당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역시 그녀가 사랑한 사람들의 죗값을 그녀의 고통으로 치른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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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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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탱자 하나가 멀새고 먼 시간을 눈뜨게 하듯이 작은 한자 하나가 천만리 멀고 먼 공간을 향한 바람이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아무리 진군나팔을 불고 총검을 높이 세워도 마음의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집단기억을 틀어막을 수 없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 <너 어디로 가니>를 읽었다.

책을 읽다가 '만약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고 지나왔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거 같다.

 

우리의 학교가 지금처럼 진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자들이 가진 여성 혐오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자를 혐오하지 않았다.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우리는 배워서는 안 될 것을 배웠고, 그것이 세뇌되어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33년에 태어나셨으니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이 한창일 때 학교를 다니셨다.

조선말을 쓰면 서로 감시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나눠둔 열 장의 딱지 중에 하나를 빼앗긴다.

많이 뺏긴 아이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을 감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게 만드는 이 치졸한 방법을 아이들의 놀이처럼 학교에서 시켰으니 천진한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자연 끊임없이 감시하고, 고자질하고, 조심하는 병이 들 수밖에...





군용가방을 아이들의 책가방으로 썼던 일본.

우리의 보자기 책보가 계속 발전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책가방을 가지고 다닐까?

우리가 36년 동안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고, 광복 후에서 되돌릴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으니 이 36년이라는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자꾸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늘 그렇듯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는 자꾸 잠자고 있는 무언가를 깨우는 느낌이다.

내 안에 한국인만 가지고 있는 우리의 얼을 선생님의 글들이 알람처럼 깨우는 중이다.

 

<너 어디로 가니>에는 한중일을 아우르는 글들이다.

천자문으로 시작해서 온돌까지 나아가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샛길 이야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부족한 상식을 채우는 느낌이다.

 

일본은 어린아이들을 무작스럽게 동원했다.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이라도 군국주의를 위해서라면 모두 동원해야 했겠지..

이제는 사라진 국민학교라는 말에 그런 엄청난 뜻이 담겼다니 국민학생으로 살았던 시절이 갑자기 끔찍해진다.

황국신민을 단련시키기 위한 연성도장 국민학교.

이 말을 해방 이후로 1996년까지 썼다니 정말 분통이 터진다.

우리가 잊고 말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식민지에서 당한 것도 어떻게든 거름으로 삼아 뭔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고통스러웠던 역사 아래에서도 새로 써나갈 미래를 발견하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존재하는 거다. 강물에 구멍 뚫어 놓고 보면 얼음장 밑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2차 대전에 관한 영화 중에 <독일, 창백한 어머니>가 있다.

이 영화는 그저 평범했던 독일인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이 남기고 간 아내와 아이들이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혹독하게 나치의 잔악함을 증명하는 영화들만 보면서 그들에 대한 증오를 배우는 동안 대다수의 선량한 독일인들이 그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미워하고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질서를 원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게 한다.

그것이 역사의 빈틈을 보게 하는 것이다.

 

<한국인 이야기>를 1편만 빼고 모두 읽었다.

읽으면서 내가 알지만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들 앞에서 많이 당황했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에는 끝도 없이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그분의 말씀을 다를 각도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참 많이 아쉽다...

 

앞으로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줄 '어른'을 언제 또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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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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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자 붙은 거 좋아하는 사람, 공짜 좋아하는 사람, 횡재 만나고 싶은 사람, 머리 굴려서 행운을 잡으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홍천터미널에서 헤매는 이등병밖에 못 돼.

 

 

오랜 세월 사형수들의 상담가였던 양순자 선생님의 글을 이제야 읽었다.

마침 요즘 내 마음이 부표처럼 떠돌고 있던 참이었다.

마치 호탕한 큰 언니가 내 고민을 들으며 나를 깨우치는 거 같았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풍족하지 않니?

지금 사는 모습 그대로도 좋지 않니?

지금 있는 그대로도 행복하지 않니?

지금 너 그대로도 충분하지 않니?

 




"굴곡을 겪어보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만족할 수는 없겠지요. 왜 그렇게 올라가는 쪽만 쳐다보았는지 모르겠어요. 거기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삶에 굴곡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굴곡을 견뎌낸 택시 기사분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뱁새가 황세 쫓아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다들 위만 올려다보니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것인데, 알면서도 자꾸 남들과 비교하는 나를 본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요즘 내 안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조용해졌다.

 

나는 지금 잘 버리고 지우고 있는가?

 

이 글이 10년 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양 선생님은 그때 이미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계셨던 거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에 새겼을 그 무수한 후회와, 참회의 기록들이 그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듯이 이제야 이 글을 읽는 나에게도 그 영향을 나눠주셨다.

 

인간 보험은 들어두셨나요?

 

사람은 어려울 때 그 진가를 안다고 했다.

입에 혀처럼 굴거나 간이라도 빼줄 거 같은 사람들이 내가 어려울 때 젤 먼저 꽁무니를 뺀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런저런 보험을 잘 들면서 정작 인간보험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거 같다. 는 생각과 동시에 그럼 나는 누군가의 보험이 되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다른 건 모르겠다.

그저 내가 사는 동안 누군가의 보험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거 같다.

 

매 페이지마다 버릴 글이 없다.

나의 사소한 고민들이 글을 읽으며 날아가 버린다.

그게 뭐라고!

 

<어른 공부>

사실 고만고만한 어르신이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진솔한 이야기가 구어체로 되어 있어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곁에 두고 마음이 무겁거나, 자꾸 욕심이 생기거나, 누군가가 미워질 때 읽어야겠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다 보면 내 마음의 짐이 절반은 덜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 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신 분 같다.

그래서 살아있는 글들이 그분이 가신 뒤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나 보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의 사형수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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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랜더 1
다이애나 개벌돈 지음, 심연희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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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돌 사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평범한 삶은 싹 사라지고 폭행과 협박과 납치와 이러 저리 떠밀리는 삶이 이어졌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전쟁 동안 서로 떨어져 지냈던 클레어와 프랭크는 두 번째 신혼여행을 떠난다.

간호사로 전쟁터에서 수많은 부상자를 치료했던 클레어와 장교로서 근무했던 남편 프랭크.

전쟁이 끝나고 조금씩 예전의 여유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1945년 하일랜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클레어와 프랭크는 그 지역 근처 환상열석에서 마녀들이 의식을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몰래 구경을 간다.

동네 여인들이 모여 그곳에서 그들만의 의식을 연다.

그리고 클레어는 그 의식이 열리는 환상열석 근처에서 어떤 식물을 발견한다.

역사학자인 프랭크는 여행지에서 그곳의 역사와 자신의 조상들에 대한 역사를 배우기에 바쁘고, 클레어는 식물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한참이었다.

다음날 환상열석 근처의 식물을 채집하러 간 클레어는 그대로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

 

200년 전으로...





클레어는 200년 전의 하일랜드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프랭크의 조상인 잭 랜들과 처음 마주친다.

프랭크와 닮았지만 묘하게 다른 랜들에게 강간을 당하려는 순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다.

 

스코틀랜드인들에게 구조된 클레어는 그들 중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하게 되고 그들의 보호로 받으며 리오흐성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곳에서 클레어는 치료사라는 신분을 유지하며 다시 환상열석으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자신이 처음 돌봐줬던 부상자 제이미와 자꾸 엮이게 된다.

클레어는 다시 자신의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아웃랜더>

드라마 때문에 이름은 들어봤지만 원작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꽤 많은 시리즈가 출간되어 있었다.

어떤 현상에 의해 200년 전의 과거로 가게 된 여인이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젠틀한 남편의 조상은 얼굴만 닮았을 뿐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고, 자비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손에서 그녀를 구출한 사람들은 그녀를 잉글랜드의 첩자라고 의심한다.

그 와중에 대책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클레어와 제이미의 이야기는 뜨거운 수위를 자랑한다.

 

1991년 출간되었다는데 왜 이제껏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호기심 때문에 책 읽는 중간중간 드라마도 봤는데 드라마보다 원작이 훨씬 좋다.

역사물과 로맨스와 시간 여행의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웃랜더>시리즈를 외면하지 못할 거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지만 읽기 시작하면 쉴 틈이 없다.

 

1700년대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시대 상황과 클레어와 제이미의 로맨스와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이 책을 하나의 장르로 묶어 버릴 수 없게 만든다.

 

제이미, 제이미는 현실이었다. 아니,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현실 이상의 존재였다. 심지어 1945년의 프랭크와 함께했던 나의 삶보다 훨씬 더. 제이미는 다정한 연인이자 동시에 믿을 수 없는 불한당이었다.

 

 

랜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클레어와 제이미는 결혼으로 맺어진다.

살기 위해 한 결혼이지만 클레어는 점점 제이미에게 빠져든다.

이러다간 현재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에 살 거 같다.

 

클레어가 간호사가 아닌 평범한 주부였다면 과연 그곳에서 살아남았을까?

이참에 어디에 떨어지든 살아갈 수 있는 필살기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클레어 참 복받은(?) 여자다.

현재에는 제이미가 있고, 미래에는 프랭크라는 남편이 있으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 모든 세계를 아우르는 남편은 도대체 누가 될까?

 

곁에 두고 계속 읽어도 재밌을 <아웃랜더> 시리즈.

이 책을 자신의 가게 앞에서 팔면서 손님들과 내기를 했지만 한 번도 내기에 진 적이 없다는 다이애나 개벌돈.

그녀의 자신감만큼 당당한 재미를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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