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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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가 향하는 곳이 아니라 발뷔 바케의 건너편 어딘가에 깃들어 있었다. 어두운 복도에서는 두려움의 냄새가 났고, 나는 마치 내가 그 냄새를 가져오기라도 한 것처럼, 올페르트센 부인이 그것을 알아차릴까 봐 걱정이 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대신 일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토베.

첫 근무지에서 도망친 토베.

그 뒤 어느 하숙집에서 하루 종일 잡일을 하고 기진맥진되는 토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토베.

너무 단조롭고 피곤한 일상이 스멀스멀 토베에게 들러붙어서 토베의 감정을 삼켜버리는 시간들...

 

2년 뒤에 원고를 가지고 오라고 했던 편집장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는 토베.

그를 만난 이후로 자신이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토베.

이제 그의 글을 읽어 줄 사람도 없고, 삶의 무게에 잡아먹힌 토베의 감정은 단 한 줄도 길어올리지 못한다.

 

한창 꿈꿀 나이에 생활과 일상에 발목 잡힌 토베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던 '낙'이 사라져갈 무렵

루트를 통해 알게 된 크로그씨에게 책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토베에게는 일상에 작은 기쁨이 생겼다.

 

나는 크로그 씨가 내 편집자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겁에 질린다. 나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아프고 나이 많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듯한 어떤 세계에 내가 가닿을 수 있기를 온 마음으로 바란다. 나라는 존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기 전에, 그보다 먼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시절.

별난 사람을 수집하던 크로그 씨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지고 토베는 또다시 현실에 갇힌다.

하지만 이제 하숙집을 떠나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뒤채의 계단을 오르다가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문득 이곳이 참을 수 없게 느껴지고, 이곳의 모든 기억들이 어둠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사는 한, 나는 외롭고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 토베에게는 직장 상사들의 성희롱이 탑재 되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게 된다.

여자는 학교 대신 결혼해서 애 낳고, 집안일이나 잘 하면 그만이라는 시대에서 토베는 18살이 되면 오빠처럼 독립하리라 마음먹지만 그 시대, 그 세상에서 여자의 독립이란 결혼뿐일 텐데...

 

에를링이 토베에게 다가온 첫 남자다.

여자 친구 대신 에를링을 사귀는 토베. 그는 토베랑 많이 닮았다.

토베에게 영화를 처음 보여 준 남자 에를링. 그에게도 토베처럼 다른 꿈이 있다. 토베는 그와 영화를 보러 갈 때 자신의 푯값을 내면서 독립적인 느낌을 누린다.

 

새로운 직장을 얻고 연극에서 할머니 역을 맡게 된 토베는 그 연극으로 인해 신문기사에 이름도 올린다.

곧이어 새로운 작품에 주인공으로 낙점도 되지만 이 일화에서 토베가 얻은 건 친구 니나였다.

토베의 집에서 토베에게 시를 쓰라고 응원하는 이는 오빠 에드빈뿐이다.

에드빈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였던 시절이었다.

토베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18살이라는 마지노선을 그었다.

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내었고, 저축을 했다.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자그마한 운이라도 따르는 법이다.

회사에서 축가를 쓸 기회를 얻고, 아버지가 토베의 시를 읽어 보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토베는 열심히 글을 쓴다.

동시 취급을 받던 토베의 시는 점점 토베만의 무엇을 가진 시가 되어간다.

 

코펜하겐 삼부작을 읽는 동안 <청춘>의 여러 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토베의 글엔 모든 감정이 담담하게 담겨 있기에 마치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 맛을 골고루 맛보는 느낌이다.

마침내 열망하던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토베는 시를 쓴다.

그녀의 타자기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그렇게 시인으로서의 준비가 되어갈 때쯤 '밀알'이라는 잡지에 그녀의 시가 실린다.

 




비고 F. 묄레르의 도움으로 토베의 시집이 출간된다.

<소녀의 마음>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낸 토베의 청춘.

<청춘>은 절망과 함께 행운도 찾아오는 시기다.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오는 '행운'을 거머쥔 토베 디틀레우센.

비고 F. 묄레르에게 연정을 느끼는 토베의 앞날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다음 편 제목이 <의존> 이라 왠지 마음에 걸린다.

우리가 알다시피 근 40년 가까이 차이 나는 묄레르에 대한 토베의 마음이 어떻게 이용당할지 알 수 없어서...

토베는 이용하기 위해 이용당해야 한다는 법칙을 알고 있었으니까 영리하게 대처하기를 바라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토베와 함께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나는 이후 토베에게 벌어질 일들이 마냥 즐겁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더한 무엇이 그녀의 고통을 시로 승화시키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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