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식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8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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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M.C. 비턴의 죽음 시리즈 08번째 이야기는

대식가의 죽음이다.

 

만으로 갑작스러운 돌풍이 몰려와 배들을 거칠게 흔들었다. 돌풍은 경찰서 문 주위에 어지러이 피어 있는 장미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더니 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뒤집어 놓고는 로흐두를 달려 내려가 왔던 때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다.

바람은 토멜성 호텔로 쏜살같이 날아간 것 같았다. 그는 미신 비슷한 생각에 몸을 떨었다.

 

 

로흐두의 토멜 성에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한 남녀들이 인솔자와 함께 도착한다.

한동안 조용했던 마을은 각자의 짝을 찾기 위한 남녀들이 도착함으로써 활기를 띤다.

프리실라는 모자란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스스로 웨이트리스가 되고, 그렇게 평화롭고 달콤한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불청객이 찾아온다.

 

피타 고어.

체크메이트의 사장 마리아의 동업자인 그녀는 엄청난 대식가다.

그런 그녀가 아름다운 조카와 함께 토멜성에 도착한다.

엄청나게 먹어대고, 아무 남자에게나 껄떡대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마리아가 일부러 떼어 놓고 온 피타였다.

 

그녀의 도착과 동시에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엄청나게 먹어대는 모습에 사람들은 음식 먹을 생각도 못 한다.

거대한 여자의 먹는 모습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요리사인 숀에게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리아가 짝지어 놓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다들 주어진 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짝에게 관심을 보인다.

대식가의 죽음.

제목에서 피타의 죽음은 예견되고

이번에도 역시나 해미시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자가 있다.

프리실라는 호텔일에 지쳐 스트레스가 넘치고, 해미시가 여자들에게 헤프게 구는 모습에 짜증이 난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바야흐로 뭔가 진전이 있을 거 같은 찰나에 피타가 시체로 발견되고, 해미시는 블레어를 제치고 사건에 뛰어든다.

 

여태껏과는 다르게 해미시는 블레어에게 공을 돌리지 않는다.

갑자기 야망이 생긴 건가?

덕분에 총경은 해미시를 승진시킬 기회를 잡고 그를 경사로 승진시키고 그의 수발(?)을 들 초짜 경찰을 보내준다.

 

세상에 살해당하기를 구걸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피타 고어일 것이다!

 

 

모두가 용의자처럼 보이지만 알리바이가 있다.

피타에 대한 혐오감은 그녀를 아는 모두에게 있었다.

매번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잡아내는 해미시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도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하는데 아무래도 해미시에겐 살인범을 잡는 행운이 깃든 모양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불법도 저지를 수 있는 해미시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당신은 전문가라고 보기에는 어렵잖아요.

.

당신은 고작 시골 마을 경찰이에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재미있어요. 아마추어 살인이 오로지 또 다른 아마추어에 의해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는 거 말이죠.

 

 

해미시에게 충격 발언을 남긴 귀족 부인의 말은 해미시에게 어떤 타격을 주었을까?

영국 귀족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뭔가 고상하고 우아한 척을 하는 속물들을 보는 재미가 이 시리즈의 또 다른 매력이다.

고지의 남자 해미시 맥베스.

또 한 건의 살인을 해결하고 승진에 부하직원까지 생긴 해미시의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이 될까?

 

이 대식가의 죽음에는 다음 편 미리 보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꽤 신박한 느낌을 남기고 끝난다.

다음 편에 대한 미끼로 미리 보기를 넣다니 꽤 재밌는 발상이었다.

헤미시 맥베스 시리즈가 점점 더 좋아지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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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구하기 - 삶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는 무기력한 방관주의자를 위한 개입의 기술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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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조차도 내가 아는 이야기들 뿐이라서.

사실 모든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이다.

다만 실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못하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매번 읽을 때만 반짝거릴 뿐 곧 잊히고 만다.

 

이 책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나도 못 구하는 내 인생 과연 이 책이 구해줄까?

아니 게리 비숍이라는 사람이 구해줄 수 있을까?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의 성공이 게리 비숍을 유명하게 했다지만 그 책 역시 읽어 보지 않았기에 나는 저자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뭔가 느낌이 왔다.

 

                            

언젠가 누가 이런 질문을 했다.

"모든 인간의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요?"

내가 대답했다.

"헛짓거리요."

 

 

인간의 중심엔 헛짓거리가 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대답이다.

 

이 신선함은 계속된다. 마치 말하듯이 적은 글이라 강의를 읽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니 지루할 틈이 없다.

 

인생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담겨있다.

내가 그저 삶이라고 생각하고, 팔자라고 생각했던 내 인생은 나의 과거가 만들어낸 나의 무의식이었다.

 

스펀지는 닿은 것을 흡수해버린다. 전체가 액체로 꽉 찰 때까지 말이다. 그런 다음 마르도록 가만히 두면 어떻게 될까? 딱딱해진다. 혹시라도 속에 남은 것이 있다면 뭐가 됐든 그대로 갇혀버린다.

 

 

이 스펀지 이론이 나를 다시 말랑한 스펀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동안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나의 스펀지는 다시 말랑말랑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스로를 틀에 가둬두고, 그 이상의 것들을 허용하지 않은 건 바로 '나' 였으니까.

 

유연해지자고 생각하면서도 과거의 학습으로 통해 자꾸 미래를 규정짓는 습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무궁무진한 미래가 한시적인 틀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핑계는

결국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눈앞의 어두운 장막이 거둬진 기분이 든다.

뭔가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그 시작하려는 마음을 시간, 나이, 경험, 경제, 잡다한 사유로 스스로 막아버렸던 나는

호기심 많은 아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계속하며 책을 읽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자문을 구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해주고 싶다.

 

이 책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잔소리가 없다.

그저 나.

온전한 나를 생각해볼 시간을 줄 뿐이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면 누가 내 인생을 구해줄까?

 

결국 내 인생을 구하는 건 나 자신이다.

 

무의식 속에서 틀을 형성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잊고

무한한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현재의 나에게 씌워진 고삐를 풀어라.

 

죽음은 삶의 일부다.

내게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 인생에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그 관문에 들어서기 전에 내 앞에 던져지는 수많은 경험들을 과거의 습성으로 날려버리지 말자.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해결을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짐이 되었던 것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다정한 선배가 진심 어린 충고를 나에게 해주는 기분이다.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닌데 책을 읽은 것만으로 에너지가 생긴다.

 

나도 잘 몰랐던 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시기에 이 책을 만나서 나를 조금 빨리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내 인생은 왜이럴까? 라는 우울이 나를 덮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내가 어디에 있던, 어떤 모습이던 그걸 만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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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라이크 어스
크리스티나 앨저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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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버지는 그녀들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다. 내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을지 모르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보다 큰 그림을 봐야 될 수도 있겠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넬은 10년 만에 고향땅을 밟는다.

군인에서 강력계 경찰로 살아왔던 아버지는 넬에게 자상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7살 때 아버지와 함께 캠핑을 다녀온 넬에게 집에서 살해된 어머니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아버지의 파트너였던 리가 찾아온다.

1년 전 있었던 살해 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FBI인 넬의 수사 협력을 요청한 것이다.

머리에 총을 한 방 맞고 사지가 절단된 시체가 포대에 쌓인 채로 부자 동네의 화단에서 발견된다.

끔찍한 사건을 조사하면서 넬은 왠지 이 살인사건이 아버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의 용의자였던 모랄레스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강력계 반장이자 아버지의 절친이며 넬의 대부인 도시는 모랄레스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한다.

 

아, 신고해봤자 경찰은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알고 보니 서퍽 카운티 경찰은 악명 높은 경찰 집단이었다.

아버지가 속한 경찰 집단은 비리로 얼룩진 조직이었다.

게다가 넬은 아버지의 변호사를 통해 아버지에게 해외 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달 1만 달러가 계좌에 입금되고 있었다.

도대체 이 작은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살인 사건 현장에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살인자가 떠나고 한참 지난 후에도 공기 중에 들러붙어 있는 어둠 같은 것. 나는 그것을 잘 안다.

넬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아버지가 살해된 여성들을 감시해왔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게 임대한 아파트에 어떤 여자가 살고 있다가 사라진 사실도 알게 된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아버지와 무슨 관계일까?

 

마약과 섹스, 파티와 불륜, 고위층의 스캔들은 스릴러 소설의 단골 소재다.

이 작은 마을은 여름 동안 부자들의 별장으로 이용된다.

그곳에서 화려한 파티를 여는 백만장자가 있고, 그의 파티에는 거물급들이 모였다.

아가씨들이 불려와 고위층에게 여흥을 제공하는 파티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리고 살해된 여성들은 그 파티에 참석한 매춘부들이었다.

 

돈.

모든 일의 끝엔 결국 돈이 있었다.

돈 때문에 쉬운 길을 택했던 사람들.

서로의 방어벽이 되어 가장 정의로워야 했던 조직은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그곳에서 홀로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고자 했던 자의 끝은 죽음뿐이었다.

 

정재계의 유력 인사들은 섹스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가 낱낱이 밝혀지는 세상을 마주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후련했던 감정이었다.

 

넬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심리소설 같은 스릴러이다.

어릴 때 기억과 아버지의 비밀과 어릴 때부터 지켜봐왔던 주변인들의 실체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넬은 수사관으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잊지 않는다.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가 최근 들어 많이 나오는데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 가운데 넬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함이 있다.

 

아무리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라 해도 쉽게 아버지를 의심하기는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인데

몇 가지 사실들에서 아버지를 추론해 내는 넬의 심리가 다른 수사관들과는 다른 면이었다.

끝까지 죽은 친구를 변호하던 도시도 인상적이다. 자기가 그럴 처지는 아닌데 말이지.

 

여성들의 연대.

 

이 이야기의 주체는 바로 여성이다.

넬을 중심으로 여성 피해자들과 연관 있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단과 넬의 상황을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FBI 선배 세라.

소도시의 검시관으로서 사건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넬의 편에 서서 시신을 검사하고 중요 사실들을 넬에게 알려주는 밀코스키.

끊임없이 정의를 찾아다니는 기자 마셜.

이들의 활약은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정확히는 비리 경찰들의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그녀들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화려한 액션이 없어도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이야기는 그래서 실감 나는 이야기가 됐다.

어디에나 비리는 존재한다.

탄탄하다고 믿는 조직에서도 비리 집단은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 비리 집단에서도 그것과는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외롭지만 혼자라도 그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연쇄살인마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썼던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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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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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결정적으로 달라진 세 가지 마음 자세.

첫 번째. 먼 훗날의 대단한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

두 번째. 내 어두운 면을 사랑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세 번째. '더 커다란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인생은 결코 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여울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물론 그의 글이 참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이 책은 리커버에디션이다.

2017년 첫 출간된 책이다.

 

지나간 나를 돌아보며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들이 정겹게 마음으로 울려온다.

덕분에 내 지나온 시간들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 몰랐지만 마치 세상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아는 체했던.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

여기서 10년이 더 흐르면 그때는 지금의 나를 그렇게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내 삶'과 '내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사이의 거리 조절인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들이 많지 않다.

그저 시간에 쫓겨 하루하루를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한 달 살이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는 시간은 정여울이라는 작가를 알아가는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기분'의 고삐를 내 '이성'이 틀어쥐지 못하는 순간에 실수나 불상사가 생긴다. 기분에 좌우되는 삶이 아니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멋진 기분을 창조할 줄도 알아야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이 말에 공감한다.

알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말이다.

난 항상 기분에 좌우되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비극적 주인공으로 생각해서 어둠 속에서 틀어박혔던 세월도 꽤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멋진 기분을 창조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앞으로는 성장해야겠다.

10년 후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잘했다고 칭찬해 줄 수 있게.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편견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빼앗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더 멋진 삶의 기회가 스쳐가는 것도 모른 채 그 곁을 지나치곤 한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나의 편견들을 다시금 정리해 본다.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상황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쳐 알지도 못한 편들기를 했었다.

그것들이 결코 좋은 모양새로 내 인생에 기록되지 않았음을 알린다.

 

노년이 아름다운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지혜를 젊은이에게 전해주는 메신저'의 모습을 보일 때다. 훈계조나 명령조로 젊은이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로 빛나는 모범을 보이는 노년이야말로 세상의 귀감이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이 든 내 모습이다.

그리되려면 아주 많은 것들에게 귀 기울이고, 더 마음을 열고,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한다.

내가 갈 길이 멀어 보여서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내 평소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 준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이다.

 

글들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어둡고, 불안하고, 습한 기운이 아니라 온기와 희망과 사랑의 기운들이 느껴진다.

 

말끔한 사람.

글에서 느껴진 정여울 작가에 대한 느낌이다.

 

정갈한 글들이 내게 조근조근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속 깊은 친구에게 지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듯.

 

정여울 작가의 글에 이승원 작가의 사진이 나를 잠시 다른 세상으로 끌어당긴다.

요즘처럼 갑갑한 나날들에 이 책이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주었다.

왠지 내가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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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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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루트 비어, 훔친 풍선껌, 도둑 키스, 열두 살짜리치고는 몹시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던, 어지간한 것들은 다 알고, 모르는 건 기다리기만 하면 어렵잖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무엇보다도 내 곁에 언제나 아이린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열두 살.

풋사과 같은 나이.

소녀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금기시되는, 용납 받지 못할, 당당하지 못할, 호기심.

엄마와 아빠가 캠핑을 떠나고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친구 아이린과 뜨거운 여름을 보내던 캐머런.

그날 아이린과 캐머런은 풍선껌을 훔쳤고,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날 캐머런의 부모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소녀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부모를 잃었다고 자책한다.

할머니와 이모의 보살핌이 있었지만 절친 아이린은 사립 학교로 떠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던 소녀는 여름마다 찾아오는 수영 선수 린지에게 자신에 대한 확인을 받는다.

대도시에서 절반을 살고 나머지는 아버지의 일에 따라 각 도시를 돌아다니는 린지는 캐머런에게 레즈비언에 대한 강의를 해준다.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서였다.


대도시로 돌아간 린지는 가끔 전화로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캐머런에게는 너무 먼 곳의 이야기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콜리.

모델 보다 더 멋진 콜리를 몰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캐머런의 마음을 눈치챈 제이미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캐머런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고 있었다.

언제나 그런 일들은 자신이 젤 늦게 아는 법이다.

담담한 문체로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이야기다.

한 소녀의 성장기에서 빠져나간 부분을 본다.

솔직해질 수 없는 사실을 품고 홀로 가야 하는 모습.

첫 키스 상대였던 아이린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거리를 두고,

친한 친구였던 제이미에게 정체성을 들킨 소녀는 몰래 짝사랑하는 콜리 곁에 맴돈다.

캐머런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 있을까?

1989년에서 1993년의 시기에 동성애는 지금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다.

개방적인 나라 미국이었지만 몬태나주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캐머런에겐 아주 외로운 싸움일 터였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자잘한 원칙이며 성경 구절, 인생 조언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디서 온것인지, 왜 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인지 의문을 품기를 그만두었음에도 짓눌리는 기분을 느꼈다.



캐머런은 콜리의 배신으로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이모와 목사님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곳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제인 폰다와 애덤을 만나 절친이 된다.

한때 동성애자였던 릭 목사와 그의 이모 리디아는 그곳을 총괄한다.

비록 한적하고 쉽게 찾아가기 힘든 곳에 위치해있었지만 축복받은 풍경이 그나마 캐머런을 위로해 주는 곳이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던 시기.

로키산맥 인근의 몬태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12살에 부모님을 잃은 캐머런은 이모와 할머니의 품 안에서 수많은 영화 비디오를 보면서 자랐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배울 필요는 없었다.

캐머런은 늘 마음 가는 대로 가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캐머런의 그녀들은 모두 상처를 주고 떠났다.

같은 걸 느꼈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을 안으로 숨겨 버렸다.

사회에서 용납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낼 용기가 없었던 거겠지.

하느님의 약속에서의 나날은 제인과 애덤으로 인해 숨 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을 그냥 졸업해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애당초 그것은 병이 아니었고, 절대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고, 고쳐지지도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캐머런과 제인, 애덤은 도망치기로 한다.

그곳에서 도망쳐서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마크는 노력했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실패했어. 왜냐하면 애초에 그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마크는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부위를 잘라버리자고. 정말 좋은 생각 아니야?



기도로, 면담으로, 하느님을 위해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려고 노력하는 그것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캐머런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걱정했던 학대나, 추행이나, 인격모독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무지한 것은 바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 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의 가르침과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믿지 않고 의심한다면 지옥에 갈 거라는, 우릴 아는 모든 사람이 우릴 부끄러워할 거라는,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우리의 영혼을 포기해버릴 거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키라든지 귀 모양처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이게 억지로 변화를 일으키려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한 것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고,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믿게 만들어요.


때리고, 상처 주고, 억압하고, 화내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인정하지 않는 것.

그 모두가 폭력이었다.

원제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이런 걸 의미한 거 같다.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쓸데없는 것들을 주입시키는 행위.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는 행위.

스스로를 낙오자로 만드는 행위.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캐머런 주변에 있는 어른이라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 모른다.

예전에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나는 그를 응원했었다.

어쩜 그는 멀리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내 주위에서 나랑 가까운 누군가가 캐머런이라면 나는 응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또 다른 사람에게는 타인을 제약 없이 이해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우애와 사랑을 선사할 만한 감수성을 얻는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란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애써야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인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선택을.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는 책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이미 많은 동성 커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나도 지금 당장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마주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냥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로 했다.

그냥.

그가. 그녀가 필요로 하는 우정을 나눠 줄 감수성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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