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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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맨 처음 터득한 교훈이었다. 매끄럽고 익숙한 표면을 헤치면, 세상을 두 동강 낼 다른 무언가가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키르케.

섬에 갇힌 마녀.

길 잃은 선원들을 사로잡아 더 이상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별다른 특징도 없었던 그저 그런 마녀들 중에 하나였던 키르케.

신화에서 단 몇 줄로 요약해 버리는 인물.

 

매들린 밀러의 전작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고 리뷰를 쓰지 못했다.

밀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망설이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내가 알던 아킬레우스가 달랐듯

내가 알던 키르케에 대안 상식을 다 뒤집어엎어 버린 이 이야기 앞에서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나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

하지만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겐 신묘한 힘이 있었다.

키르케와 그의 동생들에겐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걸 제일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이 키르케였지만.

 

영악한 형제들과는 다르게 순수했던 키르케는 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혼자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신들과 신들의 관계.

신들과 인간의 관계.

외로웠던 키르케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인간 글라우코스를 불멸로 만들었다.

그렇게 불멸로 다시 태어난 글라우코스는 키르케를 멀리하고 발정 난 암캐처럼 님프들만 좇아 다닌다.

키르케의 운명은 모두에게 버림받는 운명인 걸까?

 

아무도 용기가 없나? 어느 누구도 감히 나를 상대하지 못하겠단 것인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기다렸던 셈이다.

 

헬리오스와 제우스의 협약으로 키르케는 섬으로 유배된다.

마법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은 제우스 팀과 티탄족 팀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키르케는 마녀 수업을 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서 내 마음이 다 쓸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운명의 남자가 그곳에 닻을 내린다.

키르케는 이미 아이아이에의 마녀라는 칭호를 얻고 있었다.

그곳을 가끔 찾는 뱃사람과는 다른 그에게 키르케는 마음을 연다.

오디세우스. 키르케의 운명의 남자.

 

나는 엎질러진 물을 두고 우는 여자일까 아니면 매정한 여자일까? 바보 같은 갈매기일까 아니면 사악한 괴물일까?

꼭 둘 중 하나일 필요는 없었다.

 

수 천년을 지나서야 우리는 키르케의 면모를 알게 됐다.

그녀에 대한 거짓과 부풀려진 사악함은 그 배경이 그들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로

그렇게 키르케의 이름은 더럽혀졌다.

 

어쩌면 저 위대하다고 말해지는 신들 사이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 바로 키르케가 아닐까?

 

천 년 동안 고립되었던 외로움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자신을 짓밟은 인간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하기를 택했던 그녀 키르케.

 

키르케를 읽으면서 나는 저 위대하다고 여겨졌던 신들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끝없는 질투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을 보았다.

신을 누가 관대하다고 했던가!

키르케는 그런 신들의 오만함에 희생당한 하급 신이었다.

그녀가 그 허울 좋은 신의 껍질을 벗어 버린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반성도 없이

스스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신들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이란 벌을 주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질투를 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궁리만 하는 것이니까.

 

 

 

 

키르케는 인간을 사랑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 모진 고문을 감내하듯이

키르케는 천 년의 세월을 섬에 고립되었다.

그걸 견뎌낸 그녀의 인내심은 신들에겐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매들린 밀러의 손을 거치면 다르게 태어난다.

그래서 이 탐험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잘 못 인식된 캐릭터 안에서 질식사했던 그들이 밀러의 손에서 다시 숨쉬기를 바란다.

키르케는

수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21세기에 진정한 의미로 다시 탄생했다.

마녀는 그 안에 신들까지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키르케가 유배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제우스도 두려워했던 그 힘을 키르케는 쓰지 않았다.

힘을 가지고도 그것을 쓰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인 힘을 이해하고, 그것이 불러올 참사를 이해했던 유일한 신. 키르케.

진정 인간을 사랑했던 신 키르케.

신들이 그녀를 마녀로 만들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신도 마녀도 아니었다.

그녀가 가장 원한 건 바로 인간다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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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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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길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증오와 가슴에 맺힌 응어리라고 한다. 아니다.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희망이다. 기생충처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상어 위에 매달린 미끼처럼 만든다. 하지만 희망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 희망이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고속도로 휴게실, 캠핑카, 달리는 차, 고속도로, 납치, 희망.

어딘가에 있다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그 부질없는 희망.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 펼쳐지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도처에 숨어 있는 이야기 한 편.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 여러 편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인지 모르게 된다.

디 아더 피플은 더더욱이.

 

다크 웹.

그 안에 그들이 있다. 디 아더 피플.

내 복수를 대신해주고 그에 대한 빚으로 그들이 원할 때 나도 누군가의 복수를 해줘야 한다.

모든 정상적인 것들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완벽하게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조직.

 

게이브는 그날 이상한 광고 전단지를 덕지덕지 붙인 자동차 뒷좌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딸 이지를 본다.

설마설마하면서 따라가지만 놓쳐버리고 집으로 전화했을 때는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아내와 딸은 무참히 살해되었고, 경찰은 그를 용의 자로 몰았다.

아무도 그를 믿어 주지 않았고, 그의 과거지사도 털렸다.

 

딸이 살아있다고 말해도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고속도로를 전전하는 운전자가 되었다.

딸이 사라진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3년 동안.

 

쵸크맨으로 신성같이 나타나 그 해 여름을 흔들어 놓았던 튜더.

애니가 돌아왔다로 작년에 무수한 의혹(?)을 남겼던 그녀가 그보다 더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이쯤 하면 여름의 전령쯤 되려나?

 

죄를 짓고도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 범죄자가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참히 죽이고도 사소한 벌만 받고 풀려나는 범인을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 디 아더 피플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모른체하는 편이 낫습니다.

당신도 온전하지 못할 테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게 그들의 모토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한데 모이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튜더만의 방식이 서서히 성립되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다.

뭔가 독자들이 다 읽고도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를 하나 심어 놓으므로써 내내 자신을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바로 튜더스러움이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이 어쩌다 사고를 내고

어쩌다 일상을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 모질게 그려졌다.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지.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맞는 말이라서 더 아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틈새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디 아더 피플은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정의를 빙자한 자들의 살인 게임일까?

알 수 없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냥 커다란 떡밥이 하나 던져진 거 같다.

몇 년 후에 살이 붙어서 돌아올지 모르는.

 

인간은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는 자신의 진정한 한계를 알지 못하는 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장 잔인한 행위는 가장 위해단 사랑의 소산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요?

답은 당신의 그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영원히 모르는 게 낫다.

이런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알고 싶으니까.

 

C. J. 튜더는 이번 여름에도 무더위를 시간순삭 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고 왔다.

이미 다음 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그녀의 왕성한 작품욕이 쉬이 가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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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왼편에 서지 말아주세요
김슬기 지음, 백두리 그림 / 봄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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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모두 '여전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다수와 어딘가 다른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그를 그 모습 하나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슬기.

2007년 10월 14일.

자고 일어나니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왔다.

안면 마비.

중학교 1학년이었다.

 

수많은 병원을 다니며 희망을 걸어봤지만 그녀의 희망은 매번 실망으로 끝났다.

원인도 알 수 없는 안면마비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니까.

 

중학교 1학년.

14살에 찾아온 그 일을 아이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녀에겐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가 있었다.

물론 다른 가족도 있었지만 그녀의 글에서 제일 많이 언급된 가족의 이름은 할머니와 엄마였다.

그만큼 슬기 작가가 의지하고, 그녀 곁에 제일 많이 있어 주었던 분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아픔보다도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 무신경한 사람들 대열에 나도 들어 있는 거 같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공감 불능력자들이 많은 거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은 아니었나를 되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나는 침묵했거나, 외면했거나, 모른척했었던 거 같다.

이유는 치졸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나의 무지였다.

 

아는 척하는 게 왠지 미안하고, 물어보기 겁나고,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슬기 작가의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같이 느껴봤다.

그녀가 무심코 받았을 많은 상처들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제대로 알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은 슬기 작가의 그림이다.

그녀의 아픔을 놀림감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그녀의 아픔을 돈벌이로 생각한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 마'는 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가르치는 말인데, 아프지 말라고 나한테 가르치는 건가 싶다. 저게 걱정할 때 쓸 만한 말이 맞나? 그리고 아프지 않는 게 내 맘대로 되나? 누구보다 아프면 나부터가 싫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아프지 않고 싶다고. 나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닌데...

 

 

 

보통 아픈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은 '아프지 마'라는 말이다.

이 말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슬기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에게 아프지 말라고 말하는 건 어떤 도움의 소리인 걸까?

앞으로 다른 위로의 말을 생각해 둬야겠다.

 

어떤 원인으로 발병한 건지

왜 치료가 안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아마도 본인 자신이 제일 답답했겠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글이 참 귀엽다.

귀엽다라는 표현을 쓴 건 이 글에서 원망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20대의 그녀지만 아직도 풋풋한 14살 소녀의 모습이 글에 담겨있다.

그래서 글들이 귀엽다.

원망과 분노가 아닌 귀여운 투정의 글이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와닿기도 했다.

 

사진 속 내 아픈 표정은 웃음이 될 수도 없지만, 추억이 될 수도 없을 테니까.

 

사진 찍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요청을 무시하고 대놓고 이상한 사진만 찍어 올린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꼭 이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자신들이 어떤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주었는지 알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나는 슬기 작가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이미 노출시켰다.

그건 그만큼의 자신감이 만들어 낸 일이다.

성형수술을 고려했던 그녀에게 의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은 정말 의사로서 그녀에게 해준 말이니 그녀가 그 말을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습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더 큰 상처를 숨기고 다니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답다는 것은 결국 슬기롭다는 것. 그 자체니까.

 

이름처럼 잘 살 거라 믿는다.

그녀의 글에 담긴 온기처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가족들의 사랑 안에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고통들이 씻길 거라 믿는다.

이 글이 많이 읽혀서 슬기 작가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 무심코 그녀의 왼편에 서게 되었을 때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슬기 작가님.

이름처럼 슬기롭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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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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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7명의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7가지 글을 쓴다.

독자들은 그들의 글을 매주 받아 읽는다.

구독자에게 보내는 7인 작가의 에세이.

그렇게 시작된 글들은 이렇게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7인 7색의 글들에 담긴 저마다의 개성이 읽는 '맛'을 가중 시킨다.

 

남는 건 모진 상처와 자괴뿐일 걸 알면서도 감정에 휩쓸려 파탄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서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D는 그런 '어른'이었다.

 

 

회전교차로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맴돌기만 한 김민섭 작가의 멀어진 친구가 김혼비 작가의 친구 D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때의 그 순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해본다.

절묘하게 앞뒤로 이어지는 이 고양이 이야기에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보는 친구들이 나온다.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어떨까?

파릇한 20대라면 나는 회전교차로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마도 친구 D를 닮으려 노력 중이다.

 

 

 

 

남궁인 작가의 글은 연신 재미지고 즐겁다.

아마도 7명 중에서 독자의 웃음을 책임지는 포지션을 맡았나 보다.

 

사실 나는 이 7명의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분들의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어떤 글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아는 분들이 있는 거 보면 분명 글을 읽은 적은 있는데 말이다.

다만 내가 요즘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는 게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분들의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그분들의 스타일을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다니 그래서 더 기쁘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 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김민섭 작가의 친구에 대한 글을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소설보다 에세이가 쓰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를 통해 본 작가들이 훨씬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속내를 엿 본 느낌이 즐겁다.

 

이 언젠가 프로젝트가 계속되길 바란다.

멤버는 바뀌더라도.

글을 향한 열망을 가진 새로운 멤버들이 독자와 바로 연결되어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글을 더 깊이 있게 써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무엇을 읽을까? 고민스러울 때 집어 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네가 어떤 글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하며 건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

 

누군가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나도 뭘 먹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라고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은 친구가 내 입맛에 꼭! 맞는 것을 찾아다 주었을 때 느끼는 그 행복감.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기분이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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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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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시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주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의 표상이 아닐까.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이 말처럼 미술학자 아내가 천문학자 남편의 도움으로 그림 속 우주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은 로마식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별자리의 이름은 거의 로마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과 그에 관한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파트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으로 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파트별로 다루어지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 번씩은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다.

얼핏 알았던 이야기들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금성은 비너스의 별이다.

관능적이고, 섹스어필한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이다.

 

비너스는 거의 누드화로 많이 그려지는 데 그것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의 플레이 보이 정도쯤이라고만 해두자.

 

원래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풍만한 몸매였다.

트위기 이후부터 비쩍 마른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니 트위기가 원망스럽다.

뱃살을 드러내기 위해 옷 속에 말총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 미니 패드를 차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든 뱃살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 거들 안에 몸을 욱여넣고 사는 시대인데 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깎여버리고 모양새를 너무 많이 다듬어 버렸다.

 

 

 

 

명화 속 UFO는 사실일까?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어떤 고대의 유물을 볼 때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관점과 사고로 분석해야 한다고 한다. UFO 그림들에 대한 오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UFO의 증거들을 많은 사람들이 고대에서부터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런 그림들은 종교적 의미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설명 없이 그림만 보면 정말 우주선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림만 보고 나도 깜빡 속았는데 그건 그런 현상을 좇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이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명화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보았지만 이처럼 뭔가 잘 정돈되면서 풍부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책은 처음인 거 같다.

표지부터 읽고 싶게 만드는 이 책은 많은 것들을 독자들에게 남겨 준다.

천문학에 대해서 아는 거 하나도 없던 나도 이제 10개의 행성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줄 수 있을 정도는 알게 됐다.

행성의 이름과 관련된 신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담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읽기 편했고, 읽는 동안 눈도 생각도 행복해졌다.

 

같은 걸 봐도 우리는 서로 다른 걸 본다.

이 책이 그렇다.

같은 그림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껴본다.

 

그동안 미술사나 명화에 관한 에세이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 책은 집에 두고 간간이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미술학자와 천문학자를 통해 본 그림과 밤 하늘과 우주.

정말 신선하고 풍부했다.

내게 다른 시선을 부여해 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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