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이평 지음 / 부크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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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이라는 공간 속에서 매일 저녁 9시에 사람들에게 글을 배달한다.
이 매일이라는 말에 작가의 성실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 성실함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조언을 하고,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관계는 내가 생각한 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역지사지, 사람은 역으로 지랄해줘야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 지 안다

이 문장 앞에서 속이 후련했다.
늘 지랄을 떠는 사람은 가끔 자기 같은 사람에게 지랄을 들어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아무래도 자아 성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대화나 만남은 피곤하다.
자기주장만 하기 때문이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내 생각만 옳고, 내 말만 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의 나를 소환해서 물어보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 .



사실 나는 말없이 들어주는 타입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만 하고 별말이 없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얘기를 안 듣고 내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건 아마도 반대 의지였나 보다.
내가 그만큼 들어줬으니 이젠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이제는 그 반대의 길을 가려 한다.
그동안 많이 떠들었으니 이젠 귀를 기울이자.



 


인생을 살면서 자존감을 낮추게 되는 일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스스로 저항한다면 단단히 자존감을 무장할 수 있다는 소리예요.

 

 


스스로를 반성하고, 고민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나온 글에는 무수한 공감이 빗발친다.
하나의 글에 나를 비추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의 잔잔한 글들은 결국 단단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 글이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글이라면 더더욱.



 


꿈을 이루는 데 나를 방해하는 것. 그것은 시련이 아니다. 정말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안정감이자 권태로움일 것이다. 평화로울 때 마음이 가장 무력하고 고요할 때 기습당하기 쉽다.



매일매일 글을 올리며 마음을 갈고닦았을 사람의 삶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렇게 매일 하루를 돌아보고 관계를 돌이키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글들이 전달해 주는 온기가 도움이 되었다.



그 어떤 관계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을 냉정으로 해석하고, 나쁨으로 인정된다 해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그 시간을 나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



실속 없고, 지속되지 않을 관계를 위해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하고, 애정을 쏟느니
책이나 읽고, TV나 보고, 영화나 보면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더 낫다고 생각한 지 오래됐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얄팍하지만
그 얄팍함 때문에 외롭지 않고, 신경 쓸 일 없고, 방전될 일 없다면
그 얄팍함이 나를 살리는 길임을 깨달은 지 오래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의 평온함이다.



내가 평온하면 그 평온함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평온할 테니.



관계를 정리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나다움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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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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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집에 가든 그 주인에게 폐를 끼칠 운명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픽윅 클럽의 수장 픽윅. 시인의 감성을 가진 스노드그래스, 아니라는 말을 못 하는 윙클과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터프먼.

이 네 신사분들의 여행기는 첫날부터 사기꾼 징글 씨를 만나면서 그 앞날이 고단하다는 걸 예견할 수 있다.

가난한 신사 징글을 일행으로 받아들여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모두가 첫날의 고단함으로 뻗어서 잠들었을 때 터프먼과 징글은 호텔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한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징글의 옷 차람 때문에 터프먼씨는 윙클씨의 옷을 징글에게 입히고 무도회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징글은 한 여인에게 치근덕대다가 그녀를 맘에 들어 하던 장교에게 결투 신청을 당한다.

 

 

아침이 되자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이름을 호명 받은 윙클씨는 술김에 자신이 실수를 했나 보다 생각하며 결투장으로 간다.

비밀리에 결투를 하는 걸 보면 결투가 법으로 금지된 지 얼마 안 된 시대였던 모양이다.

결투 당사자가 윙클씨가 어젯밤에 만난 그 윙클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신사들의 여행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징글씨는 징글징글하게 신사들과 엮이면서 터프먼씨에게는 사랑의 상처를

픽윅씨에게는 체면을 구기는 상처를 남긴다.

 

 

 

 

픽윅씨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사람이 속으로 피를 흘리면 자신에게 위험하지만 속으로 웃으면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법이다.

 

 

이 이야기의 매력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당시 시대적 상황도 알 수 있고, 당시 사람들의 생각들도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옛사람들이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때의 삶이 그랬던 거겠지만.

법과 정치도 지금과는 다르지만 어느 면에서는 정말 한치도 틀리지 않다.

디킨스 시대와 21세기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성이 직접적인 것에서 간접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일 뿐.

 

 

신사 중의 신사 픽윅씨는 하인을 얻기 위해 하숙집 바델 부인에게 너무 신사적(?)으로 얘길 하는 바람에 그녀가 청혼을 한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그렇게 오해한 바델 부인은 그 시대 여자들이 그 상황에서 늘 그렇듯이 픽윅씨의 가슴으로 쓰러지며 기절한다.

이 일을 계기로 바델 부인은 픽윅씨를 혼인 빙자 혐의로 고소한다.

픽윅씨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픽윅씨의 하인으로 일하게 될 새뮤얼 웰러는 원래 구두닦이였다.

나는 이 인물이 이 작품에서 가장 맘에 든다. 꽤 현실적이면서 기민한 캐릭터라 이 어리버리한 신사분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샘도 징글의 하인이라고 자칭하는 자에게 속아서 픽윅씨의 명예를 크게 실추 시킨다.

 

 

이 여행기의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 같은 픽윅씨가 젊은 신사들과 함께 여행하며 겪는 일들에서 픽윅씨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다.

처음엔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신사들이 거들먹 거리며 세상 구경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적는 단순 여행기로만 생각했지만

그 시대에서 올바르게 사는 법을 신사분들이 잘 보여 주고 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은 비단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명예까지 지켜주려는 마음이 이해되면서 이 여행기의 진정한 의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이 신사분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유쾌한 여행기로 시작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는 역시 풍자 속에 날카로움과 진실과 섬뜩함을 두루 담아 놓았다.

 

 

 

1,256페이지의 두께이지만 읽는 동안 지루함은 없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짝꿍과 함께 읽은 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의 글을 단편들만 읽다가 이렇게 긴 글을 읽은 기분이 즐겁다.

픽윅 클럽 여행기 속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들에서 디킨스의 매력을 풍요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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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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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치웠다.

내가 그를 죽였다ㅡㅡㅡ.

 

 

 

가가 형사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내가 그를 죽였다.

제목처럼 내가 그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범인이 많아서 머리를 최대한 돌리고 돌려야 했던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또! 범인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아서 부록을 뒤지게 만든 이야기였다.

 

진실됨도 없고, 작가로서의 실력도 점점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호다카.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이제는 빚만 지고 있는 호다카.

그가 떠오르는 샛별 시인 마와코와의 결혼식에서 급사를 하고 만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주변인들은 모두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혼자 생각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와코를 담당하던 편집자이자 호다카를 잠시 담당하면서 그와 연인 관계였던 유키자사 가오리는 호다카와 미와코를 소개해 준 사람이다.

호다카와 동창이고, 그의 사무실을 책임지며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봐주는 스루가 나오유키. 한 아파트에 살던 마코토를 흠모했지만 결국 호다카에게 빼앗긴다.

미와코의 친오빠이자 그녀와 맺어서는 안되는 관계를 맺었던 간바야시 다카히로는 호다카에게 여동생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형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날카롭고, 그리고 깊이가 있는 눈매였다. 내면에 그 자신이 만들어 낸 확고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 눈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 세계로 빨아들이려는 강력한 힘이 그의 온몸에서 오라처럼 분출되고 있었다.

 

 

유키자사 가오리, 스루가 나오유키, 긴바야시 다카히로 세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 이어지는 이야기는 처음엔 세 사람을 번갈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다 두 명으로 범인이 줄어들고, 나중엔 셋 다 무죄인 거 같고 제3의 인물이 있는 거 같다.

그러나 범인은 그들 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을 돌아가며 만나면서 탐색하고 끈질기게 질문을 퍼붓는 가가 형사가 있다.

 

사실.

호다카는 죽어도 싸다고 생각되는 인간이었으며 나는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범행을 토스하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그냥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살해당한 사람들 중에 정말 죽어 마땅한! 자였기에.

 

지난번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서처럼 범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범인은 당신입니다.

 

여태까지 들었던 이야기는 다 재미를 위한 이야기였을 뿐.

범인은 결정적인 증거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가가는 "범인은 당신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를 가리키며 끝난다.

 

범인은 독자들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누군지 알지만!

누구라고 콕! 집어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기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는!

그 트릭을 또 써먹은 게이고에게 또 당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가가 형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트릭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범인을 찾기 위해 쭉~ 달려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대서 오는 순간적인 당황스러움.

누군지 알지만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이다.

 

다음 번 이야기에서는 제발! 범인의 이름을 꼭! 말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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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블랙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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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

 

프라이데이 블랙은 단편 소설집이다.

12편의 이야기 중 가제본으로 나는 4편의 이야기를 읽었다.

판타지스럽고, SF스러운 이야기들에 담긴 편견과 차별의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뱉어진 말들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소름 끼치게 현실처럼 보인다.

신나게 환상 속을 탐험하다 갑자기 현실로 끄집어내진 것처럼.

 

핀켈스틴의 5인.

 

"내게 그 이름을 말하란 말이야. 난 들어야겠어." 그가 방망이를 들었고, 두 백인의 몸이 그에 반응해 움찔했다. 그는 방망이를 내리쳤다. 방망이의 외피가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늑대가 되는 것이다. 방망이가 외쳤다. 넌 여태 양이었지만 이제 늑대가 된거야.

 

 

핀켈스틴 도서관 밖에서 체인톱으로 흑인 아이 다섯의 머리를 자랐다는 혐의로 기소된 조지 윌슨 던.

그는 동료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그 어떤 범법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평결을 받는다.

그로 인해 흑색도를 가진 사람들은 복수에 나섰다.

 

이매뉴얼은 착실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핀켈스틴 5인의 참상에 가슴 아프고 분노하지만 자신의 삶을 흐트러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흑색도를 조절한다는 뜻은 착한 흑인, 문제없는 흑인,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선량한 흑인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매뉴얼은 결국 방망이를 손에 쥐게 된다.

사회는 교묘하게 그를 외면하고, 분노는 재빠르게 그 자리를 꾀어 찼다.

핀켈스틴 5인의 이름을 외치며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늑대들.

누가 진정한 늑대인가!

 

그 시대

감정적인 태도는 당당하지 않으며, 최고의 자질은 진실됨과 당당함과 총명함이다. 나는 내 한계 내에서 최대한 진실되고 당당하다. 감정적으로 행해진 진실-흐리기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초래한 주요인이었다.

 

단기 대전.

장기 대전.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인간은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

감정과 배려와 애둘러 표현하는 그 방법들 때문에 커다란 전쟁을 겪은 이후 인간은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너의 자연출생이 실수였다는 사실, 그리고 네 어머니의 모성이 초래한 무분별 때문에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말린의 인성 체계가 하나로 몰려 결합하는 바람에 외곬-인성자로 태어나자 두번 째 아이는 자연 출산을 감행한 결과 벤이 태어났다.

그러나 벤은 유쾌에 중독된다.

아무리 유쾌를 맞아도 그 기분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어쩜 벤은 인간의 모든 것을 느끼는 중인지 모른다.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법.

벤은 땅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머랜드

 

내가 하루에 천만 번, 이천만 번 가짜로 폭파되는 편이 진짜 아이가 살해되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보다 내겐 더 낫다. 누구든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한 번도?

 

지머랜드는 체험 학습관 같은 곳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월드 같은 테마파크다.

제이는 그곳에서 악당 역할을 맡아 사람들의 살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단골도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본 취지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에 관한 학습이다.

그로 인해 재판을 받고 그 체험에서 뭔가를 깨닫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항상 그 이상을 원하고, 도덕적인 깨달음은 금세 까먹고 만다.

하지만 제이는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곳에서나마 가장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결국 나이 제한을 없애버린다.

이젠 아이들도 그 살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지머랜드는 그런 곳이 되었다.

 

 

프라이데이 블랙

 

블랙 프라이데이는 사람들을 각기 다른 식으로 휘어잡는다. 가족들에게 특히 힘들다. 그들은 내가 듣는 말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블랙 프라이데이.

최대의 쇼핑 기간이지만 이곳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쇼핑 좀비들의 천국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누가 죽어나가도 상관없는 시간.

나는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려 가장 멋진 코트를 상품으로 받아서 엄마에게 선물하려 마음먹고 있다.

이 쇼핑몰에서 나만큼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왜?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 상황을 블랙 코미디처럼 묘사한 이 신세계는 정말 끔찍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4편의 단편들은 흑인으로서 차별과 편견과 오해를 몸에 장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분투기를 매번 연상시킨다.

다인종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 미국.

그곳에서 흑인들은 최하층민의 타이틀을 달고 살아내고, 버텨내고, 인내하고, 끈질겼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추세다.

올해 처음 읽은 롱 웨이 다운의 그 감각적인 이야기가 아직도 촉촉하게 가슴에 남아있다면

나나 크와메의 프라이데이 블랙의 단편들은 초현실적인 이야기에 자신들의 역사와 감정과 분노와 억울함을 강도 있게 담아냈다.

판타지처럼, SF처럼 읽어지는 이야기들은 굉장한 은유를 품고 있다.

 

현실에서 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이야기들 앞에서 색다른 감정이 생긴다.

백인들에 의해 그려진 흑인들의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흑인들에 의해 그려진 흑인들의 모습은 수류탄을 잔뜩 짊어지고도 안전핀이 빠지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자꾸 성가시게 건드려서 그 어떤 하나라도 터지기를 유도하는 비열한 백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읽고 나면 어딘가 짠하고

왠지 서글프고, 토닥여주고 싶고, 멍 때리고 싶고, 한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야기들을 자꾸 곱씹게 만든다.

 

단순한 생각으로 읽었다가 엉덩이를 세게 걷어 차인 기분이다.

문학에서 그들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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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튜트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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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에 지옥문이 열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소설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1, 2권으로 출간 된 이야기 중 1권을 읽었다.

 

팀 제이미슨은 경찰이다.

어떤 일로 그는 자신의 터전을 바꿔서 뉴욕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떠나지만 출국 하려는 순간 연방 경찰에게 자리를 양도하고 두둑하게 한 몫 챙겨서 비행기 대신 히이 하이킹을 선택한다. 그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운명이 그를 뉴욕이 아닌 곳으로 이끌었고,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묶으려던 그는 난데 없는 '야경꾼' 모집 광고를 보고 덜컥 신청해버린다.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야경꾼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찰이 되었지만 어떤 일로 인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했던 팀.

그는 경찰은 아니지만 밤에 순찰을 돌며 경찰을 보조 하는 일을 맡는다.

팀이 이후에 어떻게 루크와 연결될지는 2부에서 나올테지만

팀이 도착하기 전 천재 소년 루크의 집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침입해서 그의 부모를 죽이고 루크를 데려간다.

 

루크는 SAT시험을 치뤘고, 곧 MIT에 입학 할 예정인 열두 살 아이였다.

루크는 자기 방처럼 꾸몄지만 자기 방이 아닌 곳에서 눈을 뜨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만난다.

염력과 텔레파시를 가진 아이들.

 

TP. TK로 분류된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이용해 무슨일을 꾸미는 조직.

정부 조직인지, 사조직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매일 검사를 받는다.

위치 추적기를 심고, 실험용 주사를 맞고 피를 뽑히고, 수조에서 물고문을 받는다.

말을 잘 들을땐 그곳에서 화페대신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받지만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구타를 당한다.

 

아무도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실험용 기니피그니까.

 

그들은 말한다.

너희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국가를 위한 봉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기에서의 일은 깡그리 삭제되어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루크는 염력이 조금 있지만, 그것이 그의 큰 장점은 아니었다.

루크의 큰 장점은 바로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겨우 열두 살이었지만 그의 지식 수준은 왠만한 어른들의 수준을 넘었고, 그것이 이 곳에서 그가 탈출 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긴 캔자스도 아니고 행복섬도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이상한 나라지. 한밤중에 누가 내 방에 들어와서 나를 토끼굴에다 밀어 넣었어.

 

분노가 치민다.

열 대여섯 살 미만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의 힘을 이용해 테러에 사용하는 그들의 행태가.

멀쩡한 가정을 하룻밤 사이에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놓고 아이를 납치해서 온갖 실험을 자행하는 그들이.

자신들도 자식을 키우면서 도대체 어떤 사명감(?)이 있기에 그런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어떤 아이들은 자포자기 해서 술이나 담배를 찾는다.

어떤 아이들은 끝까지 반항한다.

어떤 아이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아이들은 탈출을 꿈꾼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직 한 아이만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한적한 마을 듀프레이라는 곳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곳엔 팀이 야경꾼으로 일하고 있다.

 

1부가 맛보기였다면

2부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루크와 팀이 만나면 무적이 될 거 같은 나의 예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 덕에 루크는 텔레파시 기능을 덤으로 탑재했다.

이제 남아있는 친구들을 구출하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수하러 갈 것이다.

 

간절하게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2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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