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데이 블랙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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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

 

프라이데이 블랙은 단편 소설집이다.

12편의 이야기 중 가제본으로 나는 4편의 이야기를 읽었다.

판타지스럽고, SF스러운 이야기들에 담긴 편견과 차별의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뱉어진 말들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소름 끼치게 현실처럼 보인다.

신나게 환상 속을 탐험하다 갑자기 현실로 끄집어내진 것처럼.

 

핀켈스틴의 5인.

 

"내게 그 이름을 말하란 말이야. 난 들어야겠어." 그가 방망이를 들었고, 두 백인의 몸이 그에 반응해 움찔했다. 그는 방망이를 내리쳤다. 방망이의 외피가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늑대가 되는 것이다. 방망이가 외쳤다. 넌 여태 양이었지만 이제 늑대가 된거야.

 

 

핀켈스틴 도서관 밖에서 체인톱으로 흑인 아이 다섯의 머리를 자랐다는 혐의로 기소된 조지 윌슨 던.

그는 동료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그 어떤 범법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평결을 받는다.

그로 인해 흑색도를 가진 사람들은 복수에 나섰다.

 

이매뉴얼은 착실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핀켈스틴 5인의 참상에 가슴 아프고 분노하지만 자신의 삶을 흐트러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흑색도를 조절한다는 뜻은 착한 흑인, 문제없는 흑인,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선량한 흑인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매뉴얼은 결국 방망이를 손에 쥐게 된다.

사회는 교묘하게 그를 외면하고, 분노는 재빠르게 그 자리를 꾀어 찼다.

핀켈스틴 5인의 이름을 외치며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늑대들.

누가 진정한 늑대인가!

 

그 시대

감정적인 태도는 당당하지 않으며, 최고의 자질은 진실됨과 당당함과 총명함이다. 나는 내 한계 내에서 최대한 진실되고 당당하다. 감정적으로 행해진 진실-흐리기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초래한 주요인이었다.

 

단기 대전.

장기 대전.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인간은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

감정과 배려와 애둘러 표현하는 그 방법들 때문에 커다란 전쟁을 겪은 이후 인간은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너의 자연출생이 실수였다는 사실, 그리고 네 어머니의 모성이 초래한 무분별 때문에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말린의 인성 체계가 하나로 몰려 결합하는 바람에 외곬-인성자로 태어나자 두번 째 아이는 자연 출산을 감행한 결과 벤이 태어났다.

그러나 벤은 유쾌에 중독된다.

아무리 유쾌를 맞아도 그 기분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어쩜 벤은 인간의 모든 것을 느끼는 중인지 모른다.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법.

벤은 땅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머랜드

 

내가 하루에 천만 번, 이천만 번 가짜로 폭파되는 편이 진짜 아이가 살해되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보다 내겐 더 낫다. 누구든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한 번도?

 

지머랜드는 체험 학습관 같은 곳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월드 같은 테마파크다.

제이는 그곳에서 악당 역할을 맡아 사람들의 살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단골도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본 취지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에 관한 학습이다.

그로 인해 재판을 받고 그 체험에서 뭔가를 깨닫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항상 그 이상을 원하고, 도덕적인 깨달음은 금세 까먹고 만다.

하지만 제이는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곳에서나마 가장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결국 나이 제한을 없애버린다.

이젠 아이들도 그 살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지머랜드는 그런 곳이 되었다.

 

 

프라이데이 블랙

 

블랙 프라이데이는 사람들을 각기 다른 식으로 휘어잡는다. 가족들에게 특히 힘들다. 그들은 내가 듣는 말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블랙 프라이데이.

최대의 쇼핑 기간이지만 이곳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쇼핑 좀비들의 천국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누가 죽어나가도 상관없는 시간.

나는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려 가장 멋진 코트를 상품으로 받아서 엄마에게 선물하려 마음먹고 있다.

이 쇼핑몰에서 나만큼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왜?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 상황을 블랙 코미디처럼 묘사한 이 신세계는 정말 끔찍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4편의 단편들은 흑인으로서 차별과 편견과 오해를 몸에 장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분투기를 매번 연상시킨다.

다인종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 미국.

그곳에서 흑인들은 최하층민의 타이틀을 달고 살아내고, 버텨내고, 인내하고, 끈질겼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추세다.

올해 처음 읽은 롱 웨이 다운의 그 감각적인 이야기가 아직도 촉촉하게 가슴에 남아있다면

나나 크와메의 프라이데이 블랙의 단편들은 초현실적인 이야기에 자신들의 역사와 감정과 분노와 억울함을 강도 있게 담아냈다.

판타지처럼, SF처럼 읽어지는 이야기들은 굉장한 은유를 품고 있다.

 

현실에서 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이야기들 앞에서 색다른 감정이 생긴다.

백인들에 의해 그려진 흑인들의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흑인들에 의해 그려진 흑인들의 모습은 수류탄을 잔뜩 짊어지고도 안전핀이 빠지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자꾸 성가시게 건드려서 그 어떤 하나라도 터지기를 유도하는 비열한 백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읽고 나면 어딘가 짠하고

왠지 서글프고, 토닥여주고 싶고, 멍 때리고 싶고, 한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야기들을 자꾸 곱씹게 만든다.

 

단순한 생각으로 읽었다가 엉덩이를 세게 걷어 차인 기분이다.

문학에서 그들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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