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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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북로드의 신작 열세 번째 배심원이 출간되었다.

좋은 기회에 가제본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스티브 캐버나는 인권 변호사 겸 작가이다.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묘사가 현실감 있다.

 

법정 스릴러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리이다.

늘 스릴 있고, 반전이 있으며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범인과 변호사

범인과 검사

때론 검사와 변호사와의 접전은 법정 스릴러의 묘미이다.

 

바비 솔로몬과 아리엘라 블룸은 지금 가장 핫한 영화배우 커플이다.

어느 날 바비가 늦게 귀가하고 보니 아내와 경호원 칼이 같은 침대에서 숨져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바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마치 치정이 얽힌 살인사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맡은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 루디 카프가 플린을 찾아와 변호인단에 합류하라고 제의한다.

 

에디 플린.

변호사 이전에 사기꾼이었던 전력이 있다.

절대 유죄인 사람은 변호하지 않는다.

아내와 별거 중이다.

경찰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변호사인데 그에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과거가 있다.

그것이 그를 변호사가 되게 만들었고, 그가 죄가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변호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아무도 어떤 사람을 옹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누군가는 선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죠. 제가 넘어진다면, 누군가 나타나서 제 자리를 가져가야겠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급적 오래 서 있으면 됩니다.

 

 

케인.

살인의 쾌감을 가진 연쇄 살인범으로 분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특기가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범죄에서 빠져나온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그는 배심원이 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누명을 쓴 범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배심원들을 조정해왔다.

누명 쓴 이들은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꽤 치밀하고 인내심 많은 범인을 만났다.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플린과 케인 두 사람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하면 전개된다.

그래서 더 애간장이 탄다.

 

케인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연대감과 공감도 없었다. 케인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그의 밑에 있었다. 그는 특별했다.

 

 

 

첫 장부터 등장하는 케인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굴 응원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케인이 덱스터 같은 범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재판이 진행되고 바비에게 불리한 증거품과 증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바비의 숨겨진 비밀이 폭로되고

영화사의 지지를 받던 로펌은 더 이상 바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루디는 떠나고 플린은 남았다.

케인은 자신의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무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들을 하나 둘 처치하기 시작한다.

 

플린의 활략으로 절대 불리하던 바비의 재판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증거들과 증인들이 플린 앞에서 연거푸 무너지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플린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행되어 왔던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바비에게 누명이 씌었다는 걸 파헤치게 된다.

배심원 석에서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하는 케인.

FBI가 개입하고 금방 유죄 판결을 받을 거 같았던 바비의 재판은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갈까?

 

설정이 참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운 사람의 배심원이 되어 유죄 판결을 유도하다니.

영리해도 보통 영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그는 조력자도 있고, 무엇보다 무통각증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고통이 없는 사람이 남의 고통을 알리 없음이다.

 

 

"자기가 아메리칸 드림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군요."

 

 

케인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증오는 그것의 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복수. 주로 그는 동정을 느꼈다. 돈이나 가족, 기회, 힘지어 사랑이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동정.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케인에게는 위대한 미국의 거짓말이었다.

 

 

 

불운한 영혼이 만들어낸 사건들.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한순간의 행운으로 모든 걸 다 갖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뜻하는 거라면...

 

케인의 고통은 그것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어쩜 축복일 수도 있다고.

고통을 모르는 마음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스티브 캐버나.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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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스 브라더스
패트릭 드윗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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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놈이었지만, 이성을 잃고 폭발한 것이 후회된다. 통제력의 상실은 두렵다기보다 무척 당혹스럽다.

 

 

1851년 골드러시가 한창인 때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 형제는 제독의 임무를 받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허먼 커밋 웜이라는 금 채굴꾼을 찾아내 죽이는 것이 그들의 이번 임무다.

 

다혈질이고 과격한 형 찰리, 커다란 체구에 감수성을 겸비한 동생 일라이

두 사람이 웜을 찾으로 캘리포니아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자잘한 사건들과 갑자기 총질을 함으로써 상황을 종료 시키는 찰리 때문에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한없이 감성적이고, 자상하다가도 갑자기 폭발하고 마는 일라이 때문에 신나게 달리다 급제동이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카우보이 누아르라 해서 맥없이 총질이 난무하는 상황을 그렸던 내게 이 신선한 피는 정말이지 새로운 장르를 만난 기분이다.

캐나다 출신 작가의 미국 서부시대 카우보이 누아르. 는 서부시대와 카우보이의 정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작가들을 떠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총잡이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섬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일을 즐기나요?"

"건건이 달라요. 어떤 일은 별난 장난 같고, 또 어떤 일은 지옥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행위에 보수가 주어지면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한 일이 되죠. 한 사람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어딘지 모르게 철학적인 일라이는 가는 곳마다 정스러움을 담뿍 내려놓고 떠난다.

어째서 그가 그토록 잔인한 킬러로 이름이 나 있는지 모를 정도다.

무자비 한 총잡이인데 더할 나위 없이 여린 감수성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남자다.

형 찰리랑 끝없이 투닥투닥 하며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웃기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건 내가 여태 보아왔던 총잡이들은 잔인하거나 정의롭거나로 나뉠 수 있었는데 일라이를 지칭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일라이의 속내를 알면 알수록 그의 무심한 말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일라이에게 빠져들고 만다.

이러다 웜을 만나도 총은 꺼내지도 못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이없게 살인을 저지르는 그들을 본다.

이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당신 몸에는 낭만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 그렇죠?"

"우리 형제에게는 같은 피가 흘러. 그저 다르게 사용할 뿐이지."

 

 

 

 

 

캘리포니아에 다가갈수록 금광에 미쳐서 삶을 망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는 아름답지도, 낭만스럽지도 않다.

겨우 자신들 보다 먼저 파견되어 정보를 주었던 모리스를 찾아왔으나 모리스는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찾던 웜도 사라지고 없었다.

웜과 모리스를 뒤쫓은 찰리와 일라이.

금을 좇아 제독을 배신한 모리스와 제독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찰리와 제독의 밑에서 그만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라이 그들의 만남은 어떻게 끝이 날까?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모두가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고요."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은 금을 캐고 자신을 잃었다.

일라이에게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신나게 쏘고,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죽이고,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총잡이를 그렸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일라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여태까지 쌓여있던 총잡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이야기가 마치 단편처럼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과 감정선을 넘기는 과정이 몇 페이지로 나눠서 끊어간다.

그리고 두 편의 막간극이 첨가된다. 꿈속의 장면만을 따로 편집해 놓은 것처럼.

 

소설인데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싶어졌다.

어쩜 아마도 일라이가 보고 싶은 거겠지만.

 

 

 

 

"그럼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 살인의 시절이 되리라."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의 두 번째 시절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는 늘 그 뒷얘기가 궁금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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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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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일러스트이자 일본의 파워 불로거이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만화를 그린다.

 

설마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은 사람도 있고

우리도 동네에 한 분쯤 존재하는 사람도 있고

이 정도가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하는 사람도 있다.

 

 

 

 

 

옷 가게 에피소드에서 생판 모르지만 무채색 원피스를 들고 딸이 좋아할지 물어보는 아주머니.

작가는 나름 요즘 유행과 날씨 연령대를 고려해 성실히 대답해주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자기 사고 싶은 걸로 산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걸까?

 

근데 이런 경우는 나도 있다.

같은 디자인의 색깔이 다른 셔츠를 대보면서 어떤 게 어울리는지 자연스레 물어보시길래 조금 밝은 색이 어울린다 했더니 바로 내려놓고 어두운색을 골라 가셨다.

순간 어찌나 무안하던지.. 어르신들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마치 몇 십 년 지기처럼 하실 때.

생판 모르는 분이 자기보다 어리다고 막 반말할 때.

증말 민증 까자고 대들뻔했음.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꼭 일기를 썼다는 작가의 의도가 좋다.

나는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일이 있을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들쳐볼 때 엄청 내 인생이 우울하고 불행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 이야기도 적어두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썼다는 건 평소에 주변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뜻으로도 보아져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무심하게 살아가는 거 같다.

분명 내 주위에도 이 책 속에 그려진 사람들과 비슷한 이들이 있을 텐데 내가 전혀 모른다는 것.

 

좀 특이한 사람들과의 인연이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이다.

역과 지하철 동네에서 스치는 사람들에게 조금 관심을 준다면 나는 더 즐거운 일기를 남길 테고 내 인생이 꽤 재밌었다고 생각할 훗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엉뚱하고, 재밌고, 이상한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이 넓고도 좁듯이

사람 사는 게 정말 거기서 거기처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적 차이나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 해도

살아가는 방법이나 모습들은 참 같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인가 보다.

 

 

 

 

 

 

 

아이스티 한 잔 주세요.

 

따뜻한 아이스티 맞으십니까?

 

혹시라도 주문받는 분이 이렇게 대답해도 무안주지 말아요.

이 대답 때문에 가다가다 혼자 웃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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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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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이도 임신이 가능하다.

 

앤젤라 채드윅의 XX - 남자 없는 출생은 제목부터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뭔가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할 거 같은 예감이랄까?

 

 

 

난자 대 난자의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가능한 연구가 성공한다.

난난수정법이 법을 통과하고 합법적으로 난자 대 난자 인공수정이 가능해졌다.

기자인 줄스는 자신의 동성 연인 로지와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하고 이 프로젝트의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사실 줄스는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지만 로지가 아이를 갈망한다는 걸 알고는 로지와 자신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생기자 기뻐한다.

 

그래, 갑자기 왜 애를 갖고 싶어 하는지는 둘째 치고, 왜 그런 식으로 가지려는 거냐?

.

.

아직 안전한지 모른다며! 실험동물이 되려고?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로지의 부모님은 기뻐했지만 줄스의 아버지는 반대 의견을 보인다.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워온 아버지는 딸이 자신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가난한 동네에서 되풀이되는 여자들의 삶을 딸이 탈피하기만을 바랐던 아버지는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서 달라질 딸의 처지를 걱정한다.

 

무사히 서류와 면접을 통과한 줄스와 로지.

그러나 이 난난수정법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우리 딸이 태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세상에서 딸아이를 지켜내는 건 내 몫이다.

 

성을 가르는 염색체는 남자에게 존재한다.

XY로.

XX 염색체끼리는 XX만 만들 수 있다.

결국 이 난난수정법으로 인해 여성들만의 임신이 가능해지면 딸만 태어날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남자의 멸종을 가져올 거라 생각하는 반대자들이 계속 집회를 연다.

 

 

나한테는 남자아이 셋이 있어요.

이번 시술이 성공하면 그 애들이 어떤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요? 소수자가 되고 말겠죠.

 

 

정자를 기증받아야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레즈비언 커플들은 자신들만의 유전자로 자신들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자를 기증받아 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키운다는 게 줄스는 싫었다.

이젠 자신과 로지를 반반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남자들이 피 묻은 사슴을 동굴로 끌고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여자는 없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 없이는 아이를 만들 수 없잖아. 우리가 필요하니까, 그걸 우리가 상기시키니까 분노하는 거야."

 

"하지만 여자들이 다 이런 식으로 아기를 가질 것도 아니고, 인구 비율이 어쩌고 남자가 멸종하고 어쩌고, 이런 쓰레기들에 대응하는 사람이 왜 없어? 난 사람들이 이런 거짓이랑 선동을 너무 쉽게 믿는다는 게 걱정돼."

홍슈가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언론 탓이지."

 

비밀리에 진행되던 임상 실험은 누군가의 폭로로 줄스와 로지의 신원이 공개되고 만다.

줄스는 기자로서 언론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이가 아주 드물다. 직장 상사인 매튜는 한시도 줄스를 가만두지 않고 들들 볶는다. 기삿거리를 내놓으라고. 그리고 일부러 그녀를 난난수정 반대파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취재를 보낸다.

언론은 그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집까지 공개되어 줄스와 로지는 24시간 카메라에 노출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각종 SNS에서 그녀들을 비방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며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참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서 언론이 돌아가는 방식과 사람들이 비범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소한 차이로 법은 통과되었지만 앞으로 남자들이 멸종할 거라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한자리 꿰차려는 정치인

자신의 아들들이 나중에 소수자가 될 거라 미리부터 걱정하는 어머니들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치는 종교인들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달라질 딸의 삶을 걱정하는 줄스의 아버지

임신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마냥 행복해하는 로지

아이가 생기고 언론과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는 줄스

핏줄에 연연해하는 로지의 엄마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려고 했던 로지의 친구 앤서니

같이 임상실험에 참여 임신에 성공했으나 중간에 아이를 잃은 커플들의 태도 변화

묵묵히 줄스를 응원하며 그녀 편이 되어준 동료 톰과 애비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녹아들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매 챕터마다 새로운 긴장에 가슴 조이며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치 범죄 영화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당신들 아이는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거예요.

.

미안해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아이는 기적의 아이가 될 거고, 사람들은 궁금해할 거예요.

 

 

지독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세상에서 처음과,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줄스와 로지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그들의 아이는 난자와 난자로 이루어진 최초의 인간이 될 테니까.

 

재밌는 건 책 곳곳에도 나오지만 여성들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면 남자가 멸종 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사라지며 공평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정말 여자들만 태어나고 남자가 사라질까?

여태 우리는 남아 선호 사상 속에서 숱하게 희생되는 여자아이들을 보아왔다.

어릴 때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딸만 줄줄이 낳다 보니 딸이라고 판명되면 아이를 지우는 엄마들을 목격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멸종될 거란 생각을 한 여자들은 없었다.

근데 왜 남자가 멸종될 거라 지레짐작하게 될까?

 

이야기라 그렇다 생각하며 현실의 랑에게 물었다.

"만약 난자와 난자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 같아?"

"남자 수가 줄겠지. 여자들이 많아지면 전쟁은 사라지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여자들이 많아지면 정말 전쟁이 사라질 거 같아? 여자들도 전쟁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들었다.

모른다는 회피성 발언만 들었다.

같이 살고 있는 남자에게서 들은 이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남자들 자신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호전적이라는 것을?

아니면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지 않고 피난만 다니니까 여자가 많아지면 자연 전쟁도 없어질 거라 생각하는 걸까?

책에서 앞으로 경찰과 소방대원과 군인이 사라질 거라 발언하던 정치인 프라이어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이 많아지면 이런 직업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할까?

 

이 이야기 한 편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 정보를 듣고 있는 걸까?

언론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자신들 입맛대로 자신들 이익대로 짜 맞추어 가는 걸까?

 

만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난난 수정법이 성공해서 여자들끼리만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는 과연 이 법안에 찬성하게 될까?

이 이야기는 정말 여자들에게만 최적화된 이야기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지만 그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이야기가 상상에만 그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근 미래에 어쩜 난난수정이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생각은 어떨 거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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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 겨울의 약혼자들
크리스텔 다보스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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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기분이 나빴던 어느 날, 신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세계를 산산조각 냈다.



첫장부터 이야기가 범상치 않을거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읽어갈수록 마주하게되는 이 새로운 세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정말 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이야기의 탄생이다!




물건을 읽는 건 말이야, 잠시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의 과거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거란다. 하지만 거울로 드나드는 것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지. 배짱이 있어야만 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기 위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자기 얼굴을 감추는 사람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 실제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 그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손끝으로 사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오펠리는 거울을 통해 이동하는 재주도 지녔다.
평범하게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약혼자가 생긴다.
다른 아슈 출신의 남자. 키가 크고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그녀를 찾아온 약혼자는 그녀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가족과 이별할 시간도 주지않고 오펠리와 그녀의 샤프롱인 이모 로즈를 데리고 자신의 아슈인 폴로 떠나버린다.

그곳은 환영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얼음대륙처럼 차가운 곳에서 오펠리는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그녀의 약혼자에게 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중 고위 관리직이지만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조차도.

이제 오펠리는 그 살벌한 곳에서 살아남기위해 애를 써야한다.
사방이 적인 그곳에서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그의 약혼자와 그와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무리에 맞서야 하는 어리고 여린 오펠리의 이야기. 가 다는 아니라는데 이 이야기의 매력이 팍팍 터진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보적인 상상력으로 창조된 세계는 많은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다보스의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속의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세상이다.

신이 산산조각낸 세계는 아슈로 다시 태어나고 각각의 아슈는 정령을 구심점으로 개성에 맞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표지의 그림처럼.


클랜 사이의 적대 관계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진솔한 사람들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생각을 단련시키고 싶었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이것이 오펠리였다.
약하고 어리고 꾸미지 않아서 마냥 어리숙하게 보이는 이 소녀에겐 굳은 심지와 뚝심이 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강인함.
그것이 오펠리의 힘이다.

그런 그녀가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이야기는 상당히 감동스럽다.
어째서 이 작품이 이렇게 늦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애통할지경이다.
심지어 데뷔작인데 말이지~

1권 보다 더 흥미진진해질 두번째 이야기가 빠르게 출간되길 고대한다.

정말 색다른 세상을 여행하고픈 이들에게
판타지에 굶주린 이들에게
시리즈를 환영하는 이들에게
표지에 반한 이들에게 이야기에는 더 반할거라고 장담 합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탑승 준비가 되셨다면.
스스로 아무힘도 없이 나약하다고 생각한다면.
꿈을 꾸고 싶다면.
달달한 거 말고 고난을 이겨내는 사랑이 보고 싶다면.
거울로 드나드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색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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