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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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에세이가 섞인 이 책엔 동네 목욕탕에 얽힌 작가의 추억들이 담겼다.

비슷한 문화를 가졌기에 별생각 없이 읽어가던 이 목욕탕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부분도 담겨있다.

 

우린 남탕과 여탕의 구분이 명확한데 일본은 카운터가 남탕과 여탕에 걸쳐 있나 보다.

자연 카운터에 앉은 사람은 남탕 여탕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게 아무렇지 않다.

여탕에 주인아저씨가 들어와서 대야와 의자를 정리한다는 건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여기선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남탕과 여탕 사이의 벽은 위 천장 부분이 뚫려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부를 수 있다.

 

문화적 충격이다.




알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며칠 전 목욕탕에서 근사한 장면을 목격했다.

목욕하고 나온 아주머니 둘이 벌거벗고 탈의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데 거기에 카운터 청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동참한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어색함이라고는 없이 날씨 따위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세 사람을 보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앞을 가리네 마네 따위의 문제에서 완전히 졸업한 자들의 홀가분함이 저런 걸까.

여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수줍음을 알아야한다, 같은 말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나도 동네 목욕탕에서 저렇게 맨몸으로 카운터 청년과 잡담을 해보고 싶다.

 

 


 

 

이 부분은 내 정서랑은 맞지 않아서 곰곰이 음미해 본다.

문화적인 차이라고 이해해도 저 정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로망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접하게 되어 당연한 게 되었겠지만 비슷한 목욕 문화를 가진 내게는 그 자체가 쇼킹이다.

 

 

 

 

 

 

어쨌든 이 책엔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고 상당 부분은 내 어릴 때와 비슷하다.

요즘은 예전과 같은 동네 목욕탕 대신 사우나가 많아져서 대형화되어 동네 단위 소규모 목욕탕은 오래된 동네에 한 곳 정도 남아 있는 게 보통이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젤 당혹스러웠던 건 동네 꼬마 녀석들을 만났던 것.

목욕탕에서 아는 남자애를 본다는 건 그 애가 아무리 꼬맹이라도 훅~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캠프를 다녀와서 동생들 데리고 목욕 같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몽사몽간에 목욕을 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때였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목욕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목욕탕 간다고 했다가 동생들이 한바탕 난리를 쳤다.

"언니가 나 등밀어줬잖아. 생각 안 나?"

"언니가 나 머리도 감겨줬잖아? 우리 목욕 갔다 왔어. 어디 아파?"

 

마스다 미리.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글은 처음 접했다.

목욕탕에 대한 추억으로 책 한 권을 만들 정도라니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로서는 마스다 미리 입문으로 재미난 이야기와 충격적(?)인 이야기가 넘실대는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은 것이 그녀를 각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마스다 미리 하면 그녀의 로망을 떠올리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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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9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천은실 그림, 정지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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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책이었다.

고전 명작동화.

여러 번 읽었던 책이었지만 이 책을 받고 나서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 기억 속비밀의 화원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에서 낳고 자란 메리는 하룻밤 사이에 부모님을 콜레라로 잃고 혼자 살아남는다.

부모의 품에서가 아닌 하인들의 손에서 자란 메리는 고아가 되었어도 울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마르고, 성깔 있고, 안하무인이었다.

아름다웠던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못생긴 아이였다.

사람들은 메리를 후견인인 고모부가 살고 있는 요크셔 미셀스와이트로 보낸다.

그곳에서 메리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비밀의 화원.

3월 봄기운이 완연한 봄날이었다. 이 책이 내게 전해진 날은.

매일 밤 잠자기 전에 야금야금 읽어 나갔다.

메리가 컴컴한 황무지를 지나 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고, 매일 저택을 돌아다니다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는 걸 보았고, 콜린의 울부짖음을 듣고, 디콘을 만나 죽어가던 화원을 살려내는 걸 보았다.

아이들의 보살핌으로 비밀의 화원이 나날이 봄을 맞아 새롭게 피어나듯이 책을 읽는 나의 현실에도 조금씩 봄이 찾아 들었다.

 

익히 아는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이렇게 빠져든 적은 이 책이 처음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내가 좋아하는 양장본이기도 했고, 중간중간 들어있는 일러스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은실 작가의 그림은 세련되었고, 화려한 색감이 눈에 띄었으며, 묘하게 비밀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요크셔 사투리를 가장한 충청도 사투리에 있었다.

 

아이구, 메리 아가씨! 왜 그랬슈? 그러믄 안 되는디! 아가씨때미 내가 큰일 나게 생겼네유. 난 아가씨헌티 콜린 도련님 얘기는 입도 벙긋허지 않았는디. 아가씨 때미 큰일 나게 생겼어유. 보나마나 난 여기서 쫓겨날 거구먼유. 아이구, 우리 엄미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겄네!

 

이 사투리 때문에 이야기가 더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투리를 글로 읽는 느낌이 이런거였다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 가 아닐런지~

 

구수한 사투리와 더불어 황무지에서 부는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고, 흙 내음을 맡으며 나날이 살이 오르고, 물이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싱그러운 게 또 있을까?

메리, 콜린, 디콘.

이 세 아이는 10년 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의 화원을 조금씩 살려낸다.
화원이 살아날 때마다 아이들은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고, 웃음을 찾아갔다.

 

 

 

 

 

 

 

 

지난 세기에 사람들이 발견한 새로운 것 가운데 하나는, 생각이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전기만큼 강력하며 햇빛처럼 좋을 수도, 독약처럼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슬프거나 나쁜 생각이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면 성홍열균이 몸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그대로 계속 놓아두면 영영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

.

콜린처럼 기운 빠지게 만드는 나쁜 생각들이 마음속에 들어올 때 용기를 주는 좋은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단호하게 밀어낸다면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게 많이 아쉬웠다.

비밀의 화원에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는 동안 나의 세상에도 비가 오고, 바람이 따듯해지고, 꽃들이 폈다.

마사와 디콘이 사투리로 얘기하는 동안 내 마음 언저리에서도 그 사투리를 쓰던 어른들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이젠 곁에 없는 사람들을 잠시 추억했던 시간.

아마도 그러한 이유가 이 책을 조금씩 나눠 읽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없다...

나쁜 생각이 나를 좀먹어 갈 때마다 이 책을 펴들고 그림을 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찾아 읽고, 요크셔 사투리를 글로 누려봐야겠다.

나쁜 생각을 단호하게 밀어낼 좋은 생각들과 좋은 기운을 이 책이 담뿍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봄처럼 싱싱하고

봄처럼 따뜻하고

봄처럼 설레이는 책이었다.

 

내 마음에도 비밀의 화원이 생겼다.

좋은 생각들을 심어두는.

언젠가 그곳에 영글대로 영근 생각들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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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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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되도록 느리게 읽었다.

숨 가쁘게 읽어내리기엔 문장에서 느껴지는 급박함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한 달 가까이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에 읽었다.

 

9명의 사람들이 있다.

길게는 먼 조상들부터 짧게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전반부를 할애하며 펼쳐진다.

그들이 어떻게 나무와 숲으로 향하는지를.

 

 

나무는 땅과 하늘 사이의 통로다.

 

 

 

태곳적부터 나무는 존재했다.

나무에서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고 살아났다.

인간도 나무에서 갈라져 나왔다.

어디쯤에서 갈라진 DNA.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비해 갈라진 또 다른 종은 아낌없이 모든 걸 소비하고 있다.

 

인류는 끔찍하게 유해하다. 이 종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실험이다. 곧 세상은 건전한 지성, 집단 지성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군락과 군집으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과 전엔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눈앞에 두고 먹먹해진다.

나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무턱대로 다 있는 대로 써버리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이 땅에서 그들은 어떻게 숨 쉬고, 어떻게 먹을 걸 구하고, 어떻게 푸르름을 눈에 담고 살아갈까?

 

친산업적 산림청이라는 곡예단의 후원을 받는 부유한 벌목 회사가 이 지역에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수 세기 동안 자란 다양한 침엽수들을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권력의 공백기를 이용해 서둘러서 불법으로 베고 있다. 그녀는 이런 도난을 늦추기 위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는 의로운 행위까지도.

 

 

 

각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아홉 명의 준비된 사람들이 나무와 숲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 각자 어떤 나무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나무의 깊이.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급진적 환경주의자로 낙인찍고 처벌한다.

정작 처벌해야 할 대상은 놔두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신 처벌받는다.

?

벌목 회사와 환경보호자들.

각자에겐 각자의 이해와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지만 나무와 숲에 대한 이해는 없다.

 

인간종은 스스로 우월했다. 모든 종에 대해서.

그래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종들은 살려두고 그렇지 않은 종들은 멸종시켰다.

나무도 그리되어 가고 있다.

빨리 자라는 나무들이 벌목된 지역에 심어진다.

그렇게 나무를 심는다는 이미지를 남겨두고 벌목회사들은 수백 년, 수천 년 된 나무들을 단 몇 시간 만에 잘라내어 버린다.

그 나무들은 서로의 뿌리로 연결되어 이 지구의 또 다른 세계에서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서로의 연락망이 되어주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데 말이다.

그걸 이해하는 한 여자의 의견은 그녀가 단지 난청에 말을 버벅거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그녀가 단지 그녀. 라는 이유로 묵살당한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이 가고 그녀의 이야기가 맞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왔다.

나무는 서로 소통한다.

 

기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정점에 있는 생물종이 아니야. 다른 생물들, 더 크고, 더 작고, 더 느리고, 더 빠르고, 더 오래되고, 더 젊고, 더 강항 생물들이 지배하고, 공기를 만들고, 햇볕을 먹지.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고무나무에서는 수 세대 동안 고무를 채취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무를 자를 수 있는 건 한 번뿐이에요.

 

 

 

 

책을 읽는 동안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렇다.

그리고 내 곁에도 그 잘라낸 나무가 필요한 사람이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심각하게 직업전환을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다가 작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격했을까.

아낌없이 내어주기만 하는 나무들이 서서히가 아니라 단 몇 시간 만에 눈앞에서 잘려나간 모습을 보는 처참한 심경으로 이 글을 썼으리라.

 

환경에 대해

나무에 대해

숲에 대해

다른 생물에 대해

그동안 보고, 배우고,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이 이 책을 통해 느끼고 있다.

나무가 잘려 나가는 장면에서 내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어 괴롭게되고. 그리고 분노하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도 이야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렵고 힘든 숙제를 짊어진 느낌이다.

집안을 둘러본다.

나무의 숨결이 안 미친 곳이 없다.

공존하는 법을, 느리게 채취하는 법을 알아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나무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살기 때문에 이렇게 나무에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몰라.

 

 

이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우리는 고작 100년을 산다. 그렇게 된 지 몇 해 안되었다.

하지만 나무는 수백, 수천, 수만 년을 산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내가 잠시 빌린 것이라는 말이 귓가에서 울린다.

잠시 빌린 것뿐인데 그래서인지 아무렇게나 함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을 생각하는 동안

코 끝에 나무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책이야말로 나무의 잔재가 아니던가.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 그걸로 만드는 건 최소한 당신이 잘라낸 것만큼 기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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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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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고 쓴 리뷰라고 생각했다.

리뷰가 아니다.

책을 읽고 글로 쓴 수다이다.

이야기 잘하는 친구가 책을 읽고 감상을 얘기하는데 줄거리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가다듬어 조근조근 말해주는 이야기. 같다.

작가는 어릴 때 세계명작극장이라는 만화영화를 즐겨 보면서 자랐고 에세이 연재를 의뢰받았을 때 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오래, 꾸준히, 날마다 같은 느낌으로 제목만큼은 누구라도 아는 고전명작 읽어나가기.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챽들.

내가 읽었던 책들. 을 따져가며 읽을 이유가 없다.

나와는 다른 느낌과 방식으로 인물들에 몰입하는 작가의 수다는 그 작품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니까.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해지는 법이다. 마치 나보다 오래 세상을 산 친구에게 잔혹한 진실을 들은 듯 명치끝이 묵직해진다.

우리 범인(보통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상처받아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노라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이토록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간 주인공들.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고전 속 여주인공들에게서 느끼는 해방감. 당돌함. 시대를 앞선 생각이나 행동들을 짚어내어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되고

읽고 싶어진다. 그녀들을.

남자 작가들이 써 내려간 여주인공들은 저마다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고 보니 그들 역시 그 시대 여성들에 대한 부당함을 소설 속에서나마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쩜 순종적이고 시대상이 그리는 여성보다는 그 시대에 존재한다면 입살에 오르내릴게 뻔한 앞서가는 여성들을 더 원했는지도 모르지.

어쩜 주위에 이미 앞서가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가

읽고 싶은 책 목록만 열심히 부풀려 놓았다.

짬짬이 읽기 좋은 책

고전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

읽었지만 희미해졌거나 이름만 알고 있는 고전을 확인해 보는 책

나와는 다른 해석으로 색다르게 보여지는 인물들에 대한 탐색으로 좋은 책

무엇보다

정말이지 편하게 익히 안다고 생각되어지는 이야기들을 누군가 비슷한 눈높이에서 같이 수다 떨듯 얘기해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책이다.

다 큰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는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여자와의 수다가 참 매력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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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케이스릴러
김혜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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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천지 남은 가족이라곤 없는, 상냥하고 덜 배운 여자. 심지어 언제든 병자로 몰아가 필요한 만큼 쓰다 버릴 수 있는 아내.

그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엄마는 불의에 일어날 일을 남편이 예방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바람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사실 불의는 모두 그가 일으키고 있었다.

 

 

 

 

 

케이 스릴러.

 

한국형 스릴러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출간되는 유일한 스릴러 소설 브랜드이다.

한국 작가의 스릴러 기대되시나요?

 

 

엄마를 잃은 날 아이를 낳은 나는 1년이 넘도록 엄마의 무덤에 가 보지 못한다.

이래저래 방문을 미루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봤자 그곳에 엄마가 없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위 손에 죽었다.

그리고 엄마의 무덤엔 그 사위가 모아 둔 비자금 100억이 들어있다.

그게 내가 추측하는 전부다.

남편 혼자 하는 일인지. 시아버지의 사주가 있었는진 모른다.

나와 준이도 곧 엄마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캐리어에 준이와 돈을 넣어서 도망갈 준비를 한다.

예행연습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남편이 세미나로 집을 비우는 그때가 될 것이다.

나와 준이가 사라지는 날은.

 

 

숨 가쁘게 몰아가는 이야기

계속되는 의심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그녀의 의심이 어쩜 약간의 정신이상을 수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마 이 선이라는 캐릭터의 내내 불안한 모습과 엉성한 추리 때문에 그녀의 혼란한 정신 속에서 헤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도망칠 준비를 마친 그녀의 주변에서 계속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급기야 그녀가 몰래 숨겨 놓은 여권이 사라진다.

남편은 뭔가 아는 거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세미나를 떠나고 선은 준이를 데리고 도망치기 전 잠깐 바닷가를 거닐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틈에 준이까지 잃어버린다.

누가 준이를 데려갔을까?

선은 누군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느낀다. 그녀 주변에 몇 낯익은 얼굴들이 맴돈다. 이들 역시 남편의 사주를 받은 걸까?

아이의 실종 신고를 하고, 담당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지만 그녀의 말들을 믿지는 않는 거 같다.

사방팔방 모두가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남편이 돌아올 시간은 다가오고, 그전에 준이와 도망을 쳐야 하는 선이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한데...

 

 

급박하다.

그리고 100억이라는 돈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답답하다.

특히 돈을 포터에 싣고 도망 다닐 땐 조마조마하다.

 

 

돈이 없어도 걱정이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많은 돈은 정말 무덤 속에다 묻어 두어야 하는 거였다.

 

 

 

 

 

여자 잡아먹는 집구석

 

 

 

시아버지 저택에서 일하는 여자의 흘리는 말을 들은 나는 시어머니의 죽음도 돈과 관계되었다고 생각한다.

1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 앞에서 그 돈을 좇는 사람들과 선의 대립은 소름 돋게 끔찍하다.

 

속도감은 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돈.

그리고 누구에게 기댈 수 없이 홀로 아이와 자신을 지켜야 하는 주인공 선.

남편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건지 알 수 없기에 깨림직한 부분이 남아있다.

촘촘한 이야기의 구성은 아니었지만 글 자체가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쫄깃한 느낌으로 내내 긴장하며 읽었다.

 

 

액션 영화 한 편을 본 느낌.

약간의 개연성만 보완한다면 더 훌륭했었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살짝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아.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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