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에세이가 섞인 이 책엔 동네 목욕탕에 얽힌 작가의 추억들이 담겼다.
비슷한 문화를 가졌기에 별생각 없이 읽어가던 이 목욕탕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부분도 담겨있다.
우린 남탕과 여탕의 구분이 명확한데 일본은 카운터가 남탕과 여탕에 걸쳐 있나 보다.
자연 카운터에 앉은 사람은 남탕 여탕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게 아무렇지 않다.
여탕에 주인아저씨가 들어와서 대야와 의자를 정리한다는 건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여기선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남탕과 여탕 사이의 벽은 위 천장 부분이 뚫려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부를 수 있다.
문화적 충격이다.
알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며칠 전 목욕탕에서 근사한 장면을 목격했다.
목욕하고 나온 아주머니
둘이 벌거벗고 탈의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데 거기에 카운터 청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동참한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어색함이라고는 없이 날씨
따위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세 사람을 보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앞을 가리네 마네 따위의 문제에서 완전히 졸업한 자들의 홀가분함이 저런
걸까.
여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수줍음을 알아야한다, 같은 말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나도 동네 목욕탕에서 저렇게 맨몸으로 카운터 청년과 잡담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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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내 정서랑은 맞지 않아서 곰곰이 음미해
본다.
문화적인 차이라고 이해해도 저 정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로망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접하게 되어 당연한 게 되었겠지만 비슷한 목욕 문화를 가진 내게는 그 자체가 쇼킹이다.
어쨌든 이 책엔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고 상당 부분은 내 어릴 때와 비슷하다.
요즘은 예전과 같은 동네 목욕탕 대신 사우나가 많아져서 대형화되어 동네 단위 소규모 목욕탕은 오래된 동네에 한 곳 정도 남아
있는 게 보통이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젤 당혹스러웠던 건 동네 꼬마 녀석들을 만났던 것.
목욕탕에서 아는 남자애를 본다는 건 그 애가 아무리 꼬맹이라도 훅~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캠프를 다녀와서 동생들 데리고 목욕 같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몽사몽간에 목욕을 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때였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목욕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목욕탕 간다고 했다가 동생들이 한바탕 난리를 쳤다.
"언니가 나 등밀어줬잖아. 생각 안 나?"
"언니가 나 머리도 감겨줬잖아? 우리 목욕 갔다 왔어. 어디 아파?"
마스다 미리.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글은 처음 접했다.
목욕탕에 대한 추억으로 책 한 권을 만들 정도라니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로서는 마스다 미리 입문으로 재미난 이야기와 충격적(?)인 이야기가 넘실대는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은 것이 그녀를 각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마스다 미리 하면 그녀의 로망을 떠올리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