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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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가 자신의 고향 오사카에 대한 단상을 적은 글이다.

고향인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 살면서 느끼는 고향.

오사카 사람은~ 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대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담겼다.

이럴 때 오사카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알면 편리하다. 오사카 사투리라는 필터를 거치면 어쩐지 관대하게 봐줄 것 같아서다.

할 수 없지, 오사카 사람이잖아... .

 

 

 

 

 

 

 

 

애바르고, 웃음 코드가 특별하고, 친절하고, 스스럼없는 오사카 사람들.

 

아마도 그곳에서 살았을 땐 느끼지 못했던 지역적 특성을 대도시에 살게 됨으로써 느끼게 되고,

그 대도시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막연하게 아는 바와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세간의 기대를 헤아리고 우쭐해져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때때로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결국 웃음 쪽을 택하는 시원한 일면이 있는 터다.

재미있다, 웃기다, 웃음이 먹힌다, 이게 이토록 중대사인 곳은 일곤 아니 세계 어디를 뒤져도 여기뿐 아닐까.

 

 

다코야키, 한신 타이거즈가 오사카의 명물이란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일본어를 몰라서 그 언어유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오사카의 언어적 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사투리가 익숙한 전라도나 경상도로 설정해서 읽어 보았다.

그래야 이 책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잘 느낄 수 있어서^^ 아마도 지방에서 태어나 대도시로 이사 와 살게 된 사람들 중에 자신의 고향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나 그리움 또는 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대해 본 사람들이라면 마스다 미리와 같은 심정으로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여탕, 오사카

이응 삼부작 중 두 권을 읽었다.

소소한 일상을 꾸밈없이 간결하게 풀어낸 글.

이것이 마스다 미리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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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방 - 2019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진유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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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는다는 건 시간 감각을 잃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했던 그 모든 사건을 잃는다. 잊는 게 아니라 잃는다. 마치 검은 구멍 속으로 시간이 쑥 빠져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처럼, 잃는다. 점점 시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다가, 앞뒤가 없는 시간속을 떠돌게 되고, 그러다 영원히 시간 속의 미아가 되는 것이 치매 환자들이었다.

 

 

 

탈북자 무해에겐 4년 전 위암으로 죽은 남편과 하나뿐인 딸 모래.

그리고 친구 영주가 있다.

탈북자란 신분을 숨기고 살았던 무해에게 어느 날 병이 찾아온다.

초로기 치매라는 이름으로.

 

 

무해의 병은 매일 조금씩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요했고, 은밀했으며, 야만스러웠다.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다.

치매라는 병도

탈북자라는 신분도

아무나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늙음과 죽음을 배운 자만이 인생의 절정을 배울 수 있다.

 

 

 

점점 기억을 읽어갈 무해는 모래를 위해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에 대한 기록.

혜산.

무해의 고향 압록강 어귀에서 바라보던 창바이는 빛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냄새는 굶주린 혜산 사람들을 강으로 이끌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 속에 무해도 있었다.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혜산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다.

가보지 못한 곳.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묘사가 소름 돋게 한다.

무사히 강을 건넜지만 무해에게 무해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혜산 보다 더 깡촌으로 팔려간 무해는 다리 없는 남편 대신 고달픈 농사일을 떠맡아야 했다.

아들이 아닌 딸을 낳은 무해는 그 아이의 앞날에 자신이 설자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탈출한다.

카스테라의 달콤한 내음을 담고 있는 아이를 남겨두고.

 

늙기도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녀는 누구나 쉽고 당연하게 노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노인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사히 행운이 지속되어야만 노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치매는 무해를 급격히 늙게 만들었다.

기억의 어귀에서 멀건 눈으로 헤메이는 무해를 보며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모래는 두려워진다.

무해의 방.

이곳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

환영처럼.

무해를 통해 나는 그 길을 미리 가 보았다.

해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나이 들어간다는 자체를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해처럼 갑자기. 한순간에.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2019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이다.

가까지만 절대 갈 수 없는 나라의 사람이었던 그녀 무해.

언제든 코밑으로 은밀하게 스며들어 기억을 갉아먹을 수 있는 기생충 같은 치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었는데 마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써 내려간 글들이 사무치게 절절하다.

무심한듯한 글 속에 담긴 무심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읽고 있을 때 보다 읽고 나서 더욱 마음에 스며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해는 이제 살아온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 계획을 세워야 했다. 상상하지 않았던 삶. 기정사실화된 삶.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정해져버렸다.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사라졌다.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삶을 살아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해는 잊어 가겠지만

모래는 고스란히 기억하게 될 시간들.

 

병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요란한 파편을 남겨두고 사라진다.

삶을 살면서 가장 잘 준비해야 하는 일이 죽음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노인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거라는 걸 여지껏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무해와 함께 미리 체험한 것들을 깊이 되새기며 살아야겠다.

결국 삶에 대해 겸손한 마음만이 행복한 죽음을 가져올 테니 말이다.

 

 

여운이 남아서 자꾸 뒤돌아 보는 이별처럼

나는

무해의 방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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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개념어사전 - 키워드로 읽는 문화.예술의 세계 마리서사 지혜의 숲 1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이동인 옮김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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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이라도 미술 용어인가 음악 용어인가에 따라 각각 미묘하게 그 용어가 해당되는 시대나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신문에도 나오는 수준의 문화예술 관련 인문학 개념어를 모아 해설해 놓은 것이 이 책입니다.

 

 

키워드로 읽는 문화.예술의 세계. 라는 부재가 있는 예술 개념어 사전.

작가의 설명처럼 문화예술 관련 인문학 개념어를 모아 해설해 놓은 책이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거나 그쪽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은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 게 사실이다.

뜻도 모르고 누구나 사용하니까 나도 그저 사용하는 용어들이었다.

누구도 일삼아 그 용어들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았고, 설명을 들었다 해도 관심이 없었던 시절엔 흘려듣고 말았기에 익히 아는 용어인데도 누군가가 그 뜻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 대답도 못할 용어들이 많다.

 

 

 

 

 

 

이 개념어 사전은 전문가가 깊이 있게 들어가서 설명한 게 아니다.

정말 나처럼 용어는 알아도 그 용어가 무얼 뜻하는지 그 용어의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전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잡지사 편집장이었는데 클래식 저널 편집장으로서 아마도 이런 용어들을 많이 접했을 거라 생각된다.

저자도 어쩜 나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늘 쓰는 말이기는 한데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는 용어들에 대해서 정리된 게 없을까? 하는.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용어들은 복잡한 말없이 담백하게 일반인들이 딱 알아야 할 것들만 적혀있다.

제목 그대로 개념어 사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책이다.

 

 

제가 가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전문 분야를 침해하거나 망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술 업계나 음악 업계, 연극 업계, 영화 업계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것에 신경 쓰지 않고 용감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알기는 아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 답답함을 딱 적당한 수준에서 헤아려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딕이 고트족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바로크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가 어원이라니 내가 아는 바로크는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불균형과 변칙성, 별난 것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니 의외의 발견이다.

몽타주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몽타주도 있지만(범인의 인상착의를 그린 것이나, 얼굴의 부분 사진을 모아 하나의 얼굴로 만든 사진)

영화에서는 편집과 동의어로 쓰인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용어라도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음악과 미술에서 바로크가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것처럼.

집에 한 권 두고

용어들의 뜻이 궁금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할 때 꺼내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음엔 우리나라 저자의 우리느낌이 담뿍 담긴 예술 개념어 사전도 나와주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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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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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 하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떠오른다.

작품 속 주인공 이름으로만 알았는데 동명의 성이 실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이책을 통해.

뒤마의 가장 전성기에 지어진 성이었고, 엄청난 건축비가 들어간 이 성에서의 삶.

그 자잘한 일상을 매의 눈으로 포착해서 글을 썼다.

이 책은 뒤마의 신문에 실린 글들은 모은 책이다.

뒤마는 흑인 혼혈이었다. 이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안다고 했는데 알았던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작품 몇 개를 읽었을 뿐.

뒤마가 다작가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책은 그런 뒤마를 조금 더 알게 되는 책일 거 같다.

19세기 흑인 혼혈 다작가 뒤마

그럼에도 꼬인데 없이 느긋하고 유쾌했던 그를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프리차드라는 개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각종 사고를 도맡아 일으키고,

알렉시라는 흑인 하인의 당돌함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는데 뒤마가 호인이었는지 호구였는지 나도 헷갈린다.

이 에세이는 뒤마라는 작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글마다 위트가 넘치고, 뛰어난 관찰력 덕분에 그가 사람을 얘기하는 건지 동물에 대해 얘기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동물들의 행동을 빗대어 인간을 설명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차드가 등장했다. 두 귀가 나란히 바르고 겨자색 눈에다 누리끼리한 털 그리고 꼬리 부분에 멋진 깃털을 달고 있었다. 사실 그 꼬리 깃털 빼고는 못생긴 동물이었다. 그런데 내가 세네카의 『비종교성 작가들 선집』에서 배운바 인간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는 “옷차림새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이런 판단이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개에게도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터.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있어서 그런지 마치 내가 뒤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간혹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어법 때문에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도 든다.

 

 

 

 

 

 

나는 고독을 아주 좋아한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고독은 안주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일을 하는 사람, 특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이다. 사회는 육체를 달래주고, 사랑은 마음을 달래주고, 고독은 영혼의 종교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고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천국의 고독, 다시 말해 동물로 가득 차 있는 고독을 좋아한다.

 

 

짐승은 싫어하지만 동물은 좋아한다는 뒤마.

그래서인지 그의 성은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았다.

원숭이 3마리, 앵무새 2마리, 고양이 한 마리, 꿩 한 마리, 수탉 한 마리, 12마리의 암탉, 독수리 한마디, 다섯 마리의 개들.

조그만 동물 왕국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애도하는 뒤마의 이야기는 짤막한 에피소드와 함께 다채롭게 이어진다.

두께에 비해 가벼운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짬짬이 읽기에 좋다.

명성에 걸맞은 대작들만 남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남긴 뒤마의 모습에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 갑자기 가까운 사람이 된듯한 기분이다.

뭔가를 알아가는 게 즐거운 건 당연한 거지만, 몰랐던 누군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책은 알렉상드르 뒤마를 새롭게 되살려 놓은 책이다.

만약 뒤마가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삼총사나 몽테크리스토 백작같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다스러운 삼촌의 옛이야기를 남김없이 들어준 조카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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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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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운영하는 독서클럽에서 리즈의 추천을 받아 알려지게 된 이 이야기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인 작가의 첫 소설로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과학자가 미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 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쓴 한 소녀의 성장기이다.

다만.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러브스토리이기도 하고

살인사건이 담긴 범죄소설이기도 하고

법정소설이기도 하다.

시작은

늪에 떠있는 한 청년이 발견되는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카야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에 닻을 내린 느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



카야.

습지 소녀.

어느 날 엄마가 뒤돌아 보지 않고 떠났다.

그 뒤로 두 언니가 떠나고

한 오빠가 떠나고

바로 위 조디와 카야만 남았다.

하지만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조디도 떠났다.

어린 카야만 남겨두고. 모두.

그리고 아버지도 어느 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카야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쏟지 않고, 아무도 그녀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지만 카야는 살아남는다.

50년대와 60년대를 관통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유색인보다 못한 습지 소녀 카야.

학교도 다니지 않고, 글도 모르는 소녀는 언젠간 엄마가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살아갈 궁리를 한다.

조개를 잡아 점핑에게 가서 판 돈으로 생필품을 구입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새벽에 일찍 몰래 마을을 다녀가는 카야.

그녀의 손을 잡아 준 유색인 점핑.

어느 날 한 소년이 카야에게 다가온다.

오빠 조디의 친구 테이트.

습지 동물의 표본을 모으는 카야에게 뜻밖의 선물을 해주던 테이트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친다.

첫사랑이다. 둘 모두에게.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고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카야을 돌보고 지켜주었던 테이트는 대학으로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다짐했다.

떠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카야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습지로 스며든다.

체이스는 배에서 내려 카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을린 갈색의 긴 손가락, 펼친 손바닥, 카야는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내어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찾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숨에 미국 전역을 석권하고

뉴욕타임스 37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입소문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힘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나도 사로잡혔다.

뼈저리게 느껴지는 카야의 고독이

테이트와 카야의 아름다운 사랑이

테이트가 지켜온 것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체이스의 공허함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 카야의 강인함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사람의 이야기이자

야생의 이야기다.

트릭 없는 진솔한 이야기의 힘.

첫 작품인데 아주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성장소설이자 배신의 이야기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의 이야기이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면서 법정 소설이기도 하며

비밀이 가득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체이스가 교묘하게 결혼 얘기를 꺼내 미끼를 던지고, 지체 없이 카야를 침대로 끌어들인 다음 헌신짝처럼 버리고 딴 여자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카야는 수컷들이 여러 암컷을 전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읽어 이미 알고 있었다.

.

카야는 엄마와 똑같은 덫에 걸려들었다.

'음흉한 바람둥이 섹스 도둑들.'




잘 나가는 미식축구 선수였던 잘 생긴 체이스는 여자를 가리지 않는 바람둥이였다.

하지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체이스가 어느 날 습지에서 죽은 체 발견된다.

사고사라고 생각했던 죽음이 살인사건으로 바뀌면서 카야가 용의자가 된다.

카야는 이제 습지의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성이자 습지 연구의 전문가로 책까지 낸 작가였다.

이래서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하는 거야.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난 사람들 없이 사는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재판을 받는 카야.

사람들은 카야를 범인으로 몰아가려 한다.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누군가가 그들의 상처를 메워줘야 했으니까.

물 흐르듯이 세월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듯 이야기도 흐른다.

마치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글씨를 쓰듯 쓰인 문장들 같다.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이 습지 가득 고여있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가도 더할 나위 없이 청량해지고, 그렇게 숨통이 틔였다가도 걷잡을 수없이 요동치게 만든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원하는 온갖 이야기를 읽었다.

글이 시처럼 읽힌다.

읽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듬뿍 담긴 이야기로 알지 못하는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 되돌아온 느낌이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카야.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글의 힘.

정말 오랜만에 길이 기억될 주인공을 만났다.

카야.

마지 걸.

습지 소녀.

그리고...

작가이자

생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여자.

자꾸만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

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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