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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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운영하는 독서클럽에서 리즈의 추천을 받아 알려지게 된 이 이야기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인 작가의 첫 소설로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과학자가 미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 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쓴 한 소녀의 성장기이다.

다만.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러브스토리이기도 하고

살인사건이 담긴 범죄소설이기도 하고

법정소설이기도 하다.

시작은

늪에 떠있는 한 청년이 발견되는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카야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에 닻을 내린 느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



카야.

습지 소녀.

어느 날 엄마가 뒤돌아 보지 않고 떠났다.

그 뒤로 두 언니가 떠나고

한 오빠가 떠나고

바로 위 조디와 카야만 남았다.

하지만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조디도 떠났다.

어린 카야만 남겨두고. 모두.

그리고 아버지도 어느 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카야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쏟지 않고, 아무도 그녀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지만 카야는 살아남는다.

50년대와 60년대를 관통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유색인보다 못한 습지 소녀 카야.

학교도 다니지 않고, 글도 모르는 소녀는 언젠간 엄마가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살아갈 궁리를 한다.

조개를 잡아 점핑에게 가서 판 돈으로 생필품을 구입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새벽에 일찍 몰래 마을을 다녀가는 카야.

그녀의 손을 잡아 준 유색인 점핑.

어느 날 한 소년이 카야에게 다가온다.

오빠 조디의 친구 테이트.

습지 동물의 표본을 모으는 카야에게 뜻밖의 선물을 해주던 테이트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친다.

첫사랑이다. 둘 모두에게.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고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카야을 돌보고 지켜주었던 테이트는 대학으로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다짐했다.

떠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카야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습지로 스며든다.

체이스는 배에서 내려 카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을린 갈색의 긴 손가락, 펼친 손바닥, 카야는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내어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찾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숨에 미국 전역을 석권하고

뉴욕타임스 37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입소문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힘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나도 사로잡혔다.

뼈저리게 느껴지는 카야의 고독이

테이트와 카야의 아름다운 사랑이

테이트가 지켜온 것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체이스의 공허함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 카야의 강인함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사람의 이야기이자

야생의 이야기다.

트릭 없는 진솔한 이야기의 힘.

첫 작품인데 아주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성장소설이자 배신의 이야기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의 이야기이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면서 법정 소설이기도 하며

비밀이 가득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체이스가 교묘하게 결혼 얘기를 꺼내 미끼를 던지고, 지체 없이 카야를 침대로 끌어들인 다음 헌신짝처럼 버리고 딴 여자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카야는 수컷들이 여러 암컷을 전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읽어 이미 알고 있었다.

.

카야는 엄마와 똑같은 덫에 걸려들었다.

'음흉한 바람둥이 섹스 도둑들.'




잘 나가는 미식축구 선수였던 잘 생긴 체이스는 여자를 가리지 않는 바람둥이였다.

하지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체이스가 어느 날 습지에서 죽은 체 발견된다.

사고사라고 생각했던 죽음이 살인사건으로 바뀌면서 카야가 용의자가 된다.

카야는 이제 습지의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성이자 습지 연구의 전문가로 책까지 낸 작가였다.

이래서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하는 거야.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난 사람들 없이 사는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재판을 받는 카야.

사람들은 카야를 범인으로 몰아가려 한다.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누군가가 그들의 상처를 메워줘야 했으니까.

물 흐르듯이 세월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듯 이야기도 흐른다.

마치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글씨를 쓰듯 쓰인 문장들 같다.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이 습지 가득 고여있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가도 더할 나위 없이 청량해지고, 그렇게 숨통이 틔였다가도 걷잡을 수없이 요동치게 만든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원하는 온갖 이야기를 읽었다.

글이 시처럼 읽힌다.

읽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듬뿍 담긴 이야기로 알지 못하는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 되돌아온 느낌이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카야.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글의 힘.

정말 오랜만에 길이 기억될 주인공을 만났다.

카야.

마지 걸.

습지 소녀.

그리고...

작가이자

생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여자.

자꾸만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

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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