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냉정 - 난폭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박주경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그 '온기'를 말하고자 합니다. 서늘한 냉소와 끓는 증오 대신 희망의 온기를 지피려는 데 간절한 소망이 닿아 있습니다. 이 글이 땔감이라면 아궁이는 독자들의 마음이겠지요. 거기서 군불이 지펴지면 얼어붙은 마을의 굴뚝에 다시 연기가 돌 것이고 저 멀리 희망의 봉수대에도 횃불이 피어오를 것임을 믿습니다.

 

 

전직 기자이자 현직 KBS뉴스 앵커의 글을 읽어 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맛'을 본 그의 글은 날카로움을 온기와 유머로 적당히 버무려 놓은 글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는 쉽고 재밌게 읽었지만 뒷맛은 곱씹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운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좌절하고, 안타까워하고, 감동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모든 일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긁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성능 좋은 효자손처럼.

좀 더 명료한 언어로

좀 더 냉철한 다짐으로

좀 더 따뜻한 감정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기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사람으로서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무언가로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적이어서 좋다.

 

날카로움에 베인 상처에 덧나지 말라고 반창고를 붙여준 느낌이랄까.

 

우리 교육은 원점으로 돌아가 이런 기본 미덕을 가르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외워서 사지선다 답안을 채우는 일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초 덕목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 것들이 실생활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교양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영국에 있는 동안 내가 절실하게 느낀 기분이 저 글에 담겨있다. 우리가 그동안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다 놓친 것들 말이다.

'듣기'에서 딱 멈추기가 사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꼭 무언가 말을 덧붙이고 반응을 보이고 나아가 상대의 문제를 '고쳐주고 싶어' 무리하게 파고들다가 도리어 상대 감정을 진흙탕 속으로 잡아끄는 경우가 많다.

 

이 대목에서 반성 많이 했다.

어릴 땐 과묵할 정도로 말없이 듣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정신없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기질이 그러했던지라 쉽게 고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의 남은 인생 동안 '듣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행동이나 이목구비는 당장 바꿀 수 있어도, 얼굴에 묻어나는 삶의 이력은 쉽게 '성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대를 살고 있다.

내 얼굴이 어떤지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울적했다.

지금부터라도 멋진 삶의 흔적을 남기도록 노력해 보자.

많은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다.

그만큼 공감 가는 문장이 많다.

누군가의 글은 한없이 날카롭기만 하고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곧기만 하고

어떤 이의 글은 늘 감정적이고

어떤 이의 글은 언제나 암울했다.

 

이 글은 날카로움의 온기가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사실.

난 박주경 앵커의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새벽 뉴스를 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뉴스를 거의 안 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뉴스가 하루 종일 전달자의 얼굴과 목소리만 달라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재생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날부터 뉴스는 하루 한 번만 보거나 요즘은 아예 안 본다.

그래서 이분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른다.

하지만 글로서 그를 그려 본다면 그는 냉정 맞은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일 것이다.

이토록 많은 것을 다루는 목소리가 한결같은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한결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온기가 독자들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띄울 것이다.

작은 불씨야말로 언젠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될 터이니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아궁이의 불씨를 잘 지켜가도록 해야 할 거 같다.

언젠가 화르르 불타오르 게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살맛이 나지 않았을 그동안의 삶에 작은 희망을 일구어 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걱정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우리의 냉랭했던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날 생에 첫 계단에 발을 내딛던 아이의 뒷모습이 마치 '데자뷰'처럼 아버지 뒷모습에 겹친다. 내 늙은 아버지의 등을 보는 일은 어느 순간 내 어린 아들의 등을 보는 일과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언론은 국민들의 등 뒤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옳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옳은 결정을 유도해야 하니까.

한 달 살이를 하고 돌아온 내 나라는 공사판보다 더 시끄러운 정치판의 생쇼를 지켜보느라 내내 씁쓸했었다.

어제 기자 간담회 사이사이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많은 기레기들이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단 한 사람을 보았기에 우리의 미래가 당당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주경 앵커가 앞으로도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줄 진정한 언론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비에 젖는 것을 개의치 않기 때문에 우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산은 내게 언제나 미스터리인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비가 오기 직전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우산들은 도쿄 지하의 작은 아파트에 모여 사는지도 모른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만나게 해주는 인연.

내게 브라우티건의 책이 몇 권 있는데 정작 읽은 것은 바로 이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이다.

그러니 이 책이 나와 브라우티건을 만나게 해준 다리였다.

이 이야기는 짧은 생각의 연속이다.

마치 자려고 누웠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밤을 꼴딱 새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 밤에 머릿속에 끝없이 떠오르던 생각의 단상들을 한 줄도 빼먹지 않고 써 내려간 느낌이다.

사실과 환상과, 상상과 공상의 경계를 나누지 못할 모호한 이야기들의 발상으로 가득한 한 권이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




이 작품은 도쿄에서 몬태나 주까지 가는 특급열차가 중간에 서는 정류장의 기록이라고 브라우티건은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정거장 만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고 간결하고 한 페이지 남짓하는 이야기들의 이야기.

그곳엔 서로 다른 문화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던 자신의 모습과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긴 여행의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한 단상들과

소소한 일화들이 뒤섞여서 엮어진 환상특급 같은 말들이 담겨있다.

고양이는 멜론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고양이가 멜론을 먹는 걸 보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멜론이 무슨 맛일지 상상해봤다. 고양이가 매일 먹는 먹이 중 멜론 맛이 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단편이라기에는 모자란 단상들의 모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아쉽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생각의 타래를 옮긴 글들이 마구잡이로 정형화된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질 때도 있고

킥킥거리며 웃음 지을 때도 있고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도 있고

아! 하며 탄식이 나올 때도 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글을 만난 기분을 표현할 길 없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그 사람이 여자란 걸 알아차린 순간, 다른 모든 것은 배경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복병처럼 만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별뜻 아닌데도 별뜻처럼 읽히고

별일 아닌데도 별일처럼 해석되는 그런 문장들.

읽는 내내 나도 그 기차 안에서 덜컹거렸다.

수많은 정거장마다 뜻 모를 이야기들의 단상들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도쿄 몬태나 특급 열차는 나와 브라우티건의 사이를 정거장마다 당겨놓았다.



문제는 우리가 나눌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예전에 만났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었더라면 나는 이 글들의 정체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를 추억할 글들이 내겐 없기에 나는 그에 대해 이 짧은 글들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 글이 그와의 추억이 되어 다음 글들에선 추억거리를 나눌 만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3권 잃어버린 사랑을 읽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은 책은 나의 애꿎은 상상력을 무력화 시켰다.

제목만으로 유추했던 잃어버린 사랑의 잔상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통쾌하게 사라졌는지 신선하기까지 했다.

나쁜 사랑에 대한 나의 편협한 사고로 나는 거의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추억담만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기적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힘든 임무를 완수한 후 마침내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성인이 된 딸들이 아빠가 있는 캐나다로 떠나고 홀로 남은 레나의 심정을 접하는 순간 아이를 길러 보지 못한 내 감성에도 한 줄기 바람이 휘리릭 불어온다.

저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거 같다.

 

홀가분한 나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셈이다.

누군가를 보살필 의무 없이, 누군가의 시선 없이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

 

나는 다음 학기 수업에 필요한 택을 차에 잔뜩 싣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쾌청했고 열린 차창으로 건조한 여름 내음이 진하게 밀려 들어왔다.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휴가를 떠난 레나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엿본 게 되는 니나와 엘레나 모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나이에 딸 둘을 낳아 자신의 젊음과 커리어를 놓아버리고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처음엔 기쁨과 계획 속에서 그녀의 필수적인 일과였다면 두 번째 기회에서는 그녀 자신을 놓아버리는 시간이 되었다.

 

철저하게 자기의 시간을 주도하던 여자가 발목을 잡힌 채로 바쁘게 출장을 다니는 남편 덕에 두 아이를 양육해야만 했던 그 시절. 아마도 레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우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성애와는 별개로 레나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독박 육아는 그녀를 조금씩 갉아 먹었고, 급기야 아이들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끝을 알 수 없음에 아이들을 떠났던 레나는 자신의 시간을 찾지만 3년 동안의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자책감이 그녀를 갉아먹어갔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니나를 보며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충동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낀다.

 

페란테의 글은 감정을 낱낱이 드러냄과 동시에 신랄한 표현으로 그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까지도 그 상황을 겪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나의 충동과 니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로사리아의 준비되어 있는 모성애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이야기를 읽었다.

뭐라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이 모든 걸 뭉개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를 나도 모르게 원하게 되었다.

정말 모두가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해일 같은 일이 일어나서 모두가 구속에서 해방되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지기를 애태웠다.

 

엄마와 딸.

서로의 모순됨을 가장 잘 아는 관계.

엄마는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딸은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다.

비앙카와 마르타에게서 나와 닮은 면을 볼 때마다 나는 뭔가 찜찜했다. 딸들이 내 자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가장 뛰어난 면이 딸들의 육체에 제대로 접합되지 못한 것 같았다. 딸들이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은 레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힘든 시기였지만 아이들은 기억하기 싫어하고

레나는 자꾸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버림받은 사람은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고, 버린 사람은 속죄하고 싶은 시간.

 

니나를 통해 레나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그녀를 동정함과 동시에 경멸하기도 한다.

평범한 휴가지에서 평범하지 못했던 두 여인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잃지 않는다는 건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은 결국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아서 갖게 되는 상실감이 아닐까.

 

모성애를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는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그 부담감 사이에 갇혀서 어떻게든 쥐어짜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레나를 통해서 니나를 통해서 로사리아를 통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분신을 두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아 나섰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기 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걸 선택했고

한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그 자리를 꿰어 찰 날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잃게 될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무엇을 희생하던 결국 잃어버린 사랑의 상실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나 보답을 필수로 달고 다니지 않음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덤을 파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더는 궁금해할 필요 없다. 엄청나게 오래 걸리니까. 얼마를 예측하든, 그 시간의 두 배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혼여행지에서 바닷속에 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마크와 에린.

그들은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 채로 호텔로 돌아온다.

일등석 비행기와 초호화 리조트. 겉으로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신혼부부인 마크와 에린의 속 사정도 그렇게 이상적일까?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다음날의 바다는 많은 것을 숨겨 놓았다.

그들이 건져올린 가방도 그중에 하나였다.

돈다발과 다이아몬드.

그들은 건지면 안 되는 것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가지면 안 되는 마음을 가졌고, 부려서는 안되는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겉모습은 사실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

왜냐하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1인칭 에린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도입 부분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덤을 파는 여자.

남편의 시체를 묻으려는 여자.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만 그것으로 가는 단계는 예측하기 어려워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이야기다.

 

에린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는 에린 때문에 짜증을 유발한다.

그녀의 생각을 읽어가며 나도 모르게 소리치게 된다.

- 그만 잊으면 안 되겠니?

- 그냥 그것으로 만족하고 일 좀 만들지 마!

- 그냥 멈춰!!!

 

여름용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여러 가지 씁쓸한 상황들 때문에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사랑의 시작과 끝.

누군가의 일방적인 이야기는 자신의 모순점을 교모하게 감춰버리지. 그래서 우리는 마크에 대한 에린의 생각을 읽었을 뿐 진정한 마크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이 몹시도 교묘한 함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이 이야기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게 된다.

 

 

 

 

5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지만. 어쨌든 문 안쪽으로 들어오니 좋기는 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막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다른 차원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좋다고 여기던 것이, 단지 비교를 통해 갑자기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러니 아예 안 보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돈을 손에 쥐게 되면 그다음은 더 쉬운 법이다.

그리고 계속 갈망하게 된다.

에린이 그랬다.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한 발 더 내디딘 세상의 '맛'을 본 에린은 나아가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뱃속의 아이마저 숨기고 자신을 합리와 하며 마크를 속였다.

마크 역시 멈출 줄 모르는 에린의 성격을 이용해 더 많은 걸 가지려 했다.

마크가 정말 그랬을까?

어디까지나 에린의 자기 편의 대로의 해석과 자기 합리화 적인 성격이 마크를 그렇게 규정지은 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생각을 강요한 게 아닐까?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야 이 모든 게 트릭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완전 범죄 앞에서 얌전하게 세뇌당했던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잘라내고 달아나버리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낀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갖기 위해.

.

내 선택이 바로 나다. 내가 이 가족을 원하나? 그런가? 아니면 뭔가 다른 걸 원할까?

 

 

 

에디가 편했던 건 아마도 자신의 뒤를 봐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겠지.

마크는 돈을 챙겨서 영국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흔적이 남은 영국이 아닌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을 수도 있다.

모든 걸 돌려놓기에는 늦었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려면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들이 꾸려놓은 터전에서 보란 듯이 살기는 어려웠을 테니.

 

죽은 자는 말이 없음으로.

마크는 처음부터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에린의 입장만 헤아릴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기 전에는 그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아 버린 나는 에린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

 

 

이것은 완벽한 범죄다.

자신의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모든 걸 차지한 여자의.

 

 

 

 

 

영국에서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읽자니 배경 묘사 하나하나가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아서 더 즐겁게 읽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죠?

 

도시 여성 스릴러라는 호기심 어린 타이틀로 시작한 퍼펙트 마더.

제목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완벽한 엄마는 어때야 하는 걸까?

 

출산 전부터 맘 카페에 가입하여 아이가 태어나고도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육아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던 맘 카페 회원들이 어느 날 회원 중 한 명인 위니가 싱글 맘인 것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위니를 위해 엄마들은 하루 날을 잡아 아이를 맡겨두고 자유의 시간을 즐기기로 한다.

거절하는 위니를 계속 설득해서 모임에 나오게 만든 넬.

아이들의 사진을 재미 삼어 찍어주는 호기심 많은 프랜시.

시장의 전기를 대신 써서 대박 난 대필 작가 콜레트.

이렇게 셋은 엄마들의 모임 주축 멤버로서 그날의 모임을 이끈다.

겨우 설득 끝에 모임에 참석한 위니의 아기 마이더스가 바로 그날 실종되는 일만 없었다면 그날은 그렇게 모두가 행복했을 것이다.

 

왜 안 돼? 나도 누구 못지않게 하룻밤 나가서 놀아도 괜찮은 사람이야. 재미있게 놀 자격이 있어. 왜 집에 남아서 아기에게만 집착해야 해? 다른 엄마들은 다들 나가서 잘만 노는데. 기념일도 축하하고, 술도 한 잔하잖아? 그 엄마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참 쉽게도 헤쳐 나가고 있잖아. 너무나도 평온하게.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짜증나도록 완벽하게.

마이더스의 실종은 위니의 정체를 탄로나게 하고, 예전에 하이틴 배우였던 위니를 둘러싼 각종 가십들이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그날 모임을 이끌었던 엄마들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이야기는 끝을 알 수 없게 달려간다.

그리고 진실한 트릭이 이야기 속 이야기에 잘 숨겨져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다.

어떤 게 진실인지 읽는 이들을 오락가락하게 만든 이야기 솜씨가 좋았다.

그리고 정말 오지랖 넓은 프랜시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녀 때문에 많이도 짜증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했을지 생각해보니 프랜시야 말로 이 이야기의 일등 공신이 아닐까 한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한달음에 헤쳐 나가야 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잘 써 내려갔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여자들의 입장과 현실과 감정의 들숨날숨들이 곳곳에서 불을 뿜는다.

 

 

 

 

 

 

 

'여자들이 전부 다 누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봅니다.

 

 

아이의 실종에서 아이 엄마의 과거로

아이 엄마의 과거에서 그날 모임에 참석했던 엄마들이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에 초점이 모아진다.

하루 단 몇 시간의 일탈이 그리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까?

이 이야기는 단락마다 이메일 형식으로 육아 상식에 관한 글들이 적혀 있다.

맘 카페 회원들에게 매일 발송되는 메일이다.

그 육아 상식들을 읽자니 복잡한 마음이 든다.

과연 이 상식이 모든 아기들에게 올바르게 적용되는 상식일까?

초보 엄마들의 아기 키우기는 옆에서 잘 도와주는 남편이 있다 해도 어려운 법이다.

서로 각자의 정보를 공유하다 해도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상실의 아픔을 겪었던 사람에겐 더더더욱...

여자들의 이야기다.

용감한.

돈을 주고 모르는 사람에게 아기를 돌봐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작 엄마라는 사람은 아기 발 사진이나 보면서 몇 시간을 보내다니 얼마나 우스운 짓인가.

 

지구상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자의 분신들이 이 이야기 속에 있을 거라 생각된다.

콜레트처럼 아이의 발육이 늦어져 속을 끓이거나, 프랜시처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니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거나, 넬처럼 자신의 아이를 떼어놓고 출산휴가를 앞당겨 끝내야 하는 마음들이 곳곳에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 불안정한 심리들은 그녀들의 호르몬 탓일까?

왜 아이에게 생긴 문제들은 모두 엄마 탓이어야만 할까?

이런 생각 뒤에 오는 반전이 너무 급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에 이야기의 맥이 잘 나가다 끊긴 느낌이다.

그 부분을 좀 잘 다듬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였다.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 때문에 조금 허무했지만 읽는 내내 숨 가쁘게 느껴졌던 긴장감이 좋았던 스릴러였다.

육아는 전쟁이다.

어쩜 전쟁보다 더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렴.

사람을 길러내는 일임에 그것은 갖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

앞표지의 당당했던 여자들의 모습은 뒷 표지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더해졌다.

 

 

"아기를 낳았다고? 축하해! 이제 모든 게 네 잘못이 될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