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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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3권 잃어버린 사랑을 읽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은 책은 나의 애꿎은 상상력을 무력화 시켰다.

제목만으로 유추했던 잃어버린 사랑의 잔상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통쾌하게 사라졌는지 신선하기까지 했다.

나쁜 사랑에 대한 나의 편협한 사고로 나는 거의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추억담만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기적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힘든 임무를 완수한 후 마침내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성인이 된 딸들이 아빠가 있는 캐나다로 떠나고 홀로 남은 레나의 심정을 접하는 순간 아이를 길러 보지 못한 내 감성에도 한 줄기 바람이 휘리릭 불어온다.

저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거 같다.

 

홀가분한 나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셈이다.

누군가를 보살필 의무 없이, 누군가의 시선 없이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

 

나는 다음 학기 수업에 필요한 택을 차에 잔뜩 싣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쾌청했고 열린 차창으로 건조한 여름 내음이 진하게 밀려 들어왔다.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휴가를 떠난 레나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엿본 게 되는 니나와 엘레나 모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나이에 딸 둘을 낳아 자신의 젊음과 커리어를 놓아버리고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처음엔 기쁨과 계획 속에서 그녀의 필수적인 일과였다면 두 번째 기회에서는 그녀 자신을 놓아버리는 시간이 되었다.

 

철저하게 자기의 시간을 주도하던 여자가 발목을 잡힌 채로 바쁘게 출장을 다니는 남편 덕에 두 아이를 양육해야만 했던 그 시절. 아마도 레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우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성애와는 별개로 레나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독박 육아는 그녀를 조금씩 갉아 먹었고, 급기야 아이들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끝을 알 수 없음에 아이들을 떠났던 레나는 자신의 시간을 찾지만 3년 동안의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자책감이 그녀를 갉아먹어갔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니나를 보며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충동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낀다.

 

페란테의 글은 감정을 낱낱이 드러냄과 동시에 신랄한 표현으로 그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까지도 그 상황을 겪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나의 충동과 니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로사리아의 준비되어 있는 모성애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이야기를 읽었다.

뭐라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이 모든 걸 뭉개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를 나도 모르게 원하게 되었다.

정말 모두가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해일 같은 일이 일어나서 모두가 구속에서 해방되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지기를 애태웠다.

 

엄마와 딸.

서로의 모순됨을 가장 잘 아는 관계.

엄마는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딸은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다.

비앙카와 마르타에게서 나와 닮은 면을 볼 때마다 나는 뭔가 찜찜했다. 딸들이 내 자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가장 뛰어난 면이 딸들의 육체에 제대로 접합되지 못한 것 같았다. 딸들이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은 레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힘든 시기였지만 아이들은 기억하기 싫어하고

레나는 자꾸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버림받은 사람은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고, 버린 사람은 속죄하고 싶은 시간.

 

니나를 통해 레나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그녀를 동정함과 동시에 경멸하기도 한다.

평범한 휴가지에서 평범하지 못했던 두 여인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잃지 않는다는 건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은 결국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아서 갖게 되는 상실감이 아닐까.

 

모성애를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는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그 부담감 사이에 갇혀서 어떻게든 쥐어짜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레나를 통해서 니나를 통해서 로사리아를 통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분신을 두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아 나섰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기 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걸 선택했고

한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그 자리를 꿰어 찰 날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잃게 될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무엇을 희생하던 결국 잃어버린 사랑의 상실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나 보답을 필수로 달고 다니지 않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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