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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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세상을 구하려 했고 또 한 사람은 자기 목숨을 구하려 했지. 하지만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들이 과연 그것을 구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유월절 일주일 전 성전에서 벌어진 네 번의 연쇄살인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사건을 추적하는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마티아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해야지만 그는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7일을 모티브로 이루어진 글이다.

기독교도가 아니어도 이 이야기는 많은 영화나 이야기를 통해 상식처럼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우리의 작가가 우리의 언어로 재현해 낸 이야기는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하다.

 

 

유월절을 며칠 앞둔 예루살렘은 성지순례 행렬이 넘쳐나고 곧 있을 유월절 행사로 들썩이는 가운데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성전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처참했다.

성전 수비대장 조나단은 사형수 마티아스를 불러내 사건 조사를 명함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마티아스는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어린 나이부터 밑바닥을 전전하며 밀정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마티아스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소문을 막아야 해! 소문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거든. 한번 들을 때는 근거 없는 말이라도 두 번 들으면 그럴싸하고 세 번 들으면 믿게 되는 거야. 핵심은 그자가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짓을 했다고 사람들이 믿느냐는 거야.

 

 

 

예수의 기적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가 곧 메시아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도시는 그를 비방하는 세력과 그를 믿고 따르는 군중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불씨만 당겨지면 화르륵 타오를 정도로 들끓고 있었다.

한편 총독 빌라도는 자신이 총애하는 테오필로스를 통해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하고, 테오필로스는 마티아스에게 같이 수사하기를 요청한다.

서로를 신뢰함과 동시에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결코 교환하지 않는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건 현장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종교를 떠나서 이 이야기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마치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묘사한 느낌도 난다.

 

 

 

증거가 있어서 체포하는 게 아니라 체포해서 족치면 혐의가 나오게 되어 있어.

 

 

 

빌라도의 욕망

각 단체들의 욕심

무언가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마음

무언가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의 종교만이 유일하다 믿는 믿음

믿음이 부족한 자를 믿게 만드는 힘

믿음을 주었어도 믿음을 배반하는 마음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이야기다.

 

 

역사적 배경과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도 껄끄러움이 없는 것은 작가가 치밀하게 준비한 12년의 세월이 책 속에 담겨있기 때문인 거 같다.

역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많은 이들이 사실이라 믿는 이야기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다시 재 조명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예수의 업적과 고난을 찬양하기 위한 모습들만 보다가 뭔가 더 객관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보게 되었다는 생각을 주는 작품이다.

밀정이자 살인자이고 사형수였던 마티아스를 통해 그가 결국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밝히고자 했던 그 진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테오필로스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겨짐으로 인해 역사는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속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진실은.

감춰질 수 없다는걸.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라는걸.

이 책을 통해 또다시 배우게 되었다.

 

 

 

역사를 현대사로 끌어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이다.

이정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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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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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세상이 편해지고, 기계가 사람이 할 일을 많이 줄여주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전보다 오히려 더 바쁘고, 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어째서 이렇게 사람들은 늘 바쁜 걸까?

 

우리는 갤리선의 노예처럼 은퇴를 향해 미친 듯이 노를 젓고, 마침내 은퇴에 이르러 채찍질에서 벗어나고나면, 어느덧 세상의 모든 시간 대신 끝없는 무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게으름이란 게 나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느낌을 주는 단어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이나 부정을 하게 마련이다.

게으름 예찬이란 제목만 보고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딜 가나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어딜 가나 눈총 받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난 정해진 규칙 없이 사는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이 보았을 때 게으른 축에 속한다.

그들이 제시간에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나는 제때 하지 않는다.

밥 먹는 거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청소, 잠자기, 일하는 거까지. 모두.

그냥 내 시간에 맞춰 한다.

그것이 주변인들이 보는 나의 게으름이다.

내가 보기엔 딱히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은 없다.

시간을 쪼개 써야지만 부지런한 건 아니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다.

 

 

이 책은 휴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뇌까지 쉬어주는 것이 진정한 쉼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건 도태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그 시간조차 맹렬하게 뇌가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맹렬함조차도 내려놓는 게 디세이의 게으름이다.

디세이가 말하는 휴식엔 다양한 예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으름은 독서와 걷기다.

 

무언가를 공부하기 위한 책 읽기는 공부지 게으름이 아니다.

그저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책을 고르는 자체도 휴식이자 게으름이다.

걷기 역시 천천히 목적 없이 유유자적하며 하느적 하느적 걷는 것이 휴식이자 게으름이다.

운동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곁을 돌아 볼 여유 없이 빠르게 걷는 건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지 휴식도 게으름도 아니다.

 

게으름 예찬은 결국 쉬어가라는 작가의 당부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결코 늘어지거나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다.

오히려 맹렬하게 사는 시간 속에서 잊혀지고, 무시되고, 빠뜨리는 삶이 중요한 순간들을 챙기라는 뜻이다.

 

의미 있는 것들만으로는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게서 위안을 받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별 소용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인생의 빚을 지게 되는 법니다.

 

정말 잘 산다는 건

잘 게으르게 휴식하는 법을 안다는 뜻이다.

 

느리고, 천천히 가도 모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은 같다.

유럽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질은 우리보다 넉넉하다.

우리에겐 그 넉넉함이 필요하고 그 넉넉함은 스스로 찾는 게으름의 여유에서 생겨난다.

 

옛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후손들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다.

디세이가 말하는 게으름 예찬을 먼 조상들은 몸소 실천했으니 말이다.

 

나만의 여유를 찾는 것.

그건 누구도 내게 주지 않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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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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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는 것은 야생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그들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아동심리상담사로 활약했던 애나 폭스는 지금은 광장공포증으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칩거 한지 일 년쯤 되었다.

그녀의 하루는 카메라로 창 뒤에서 이웃들을 관찰하거나 흑백영화 스릴러를 보는 것이 전부다.

일주일에 한 번 물리치료사가 다녀가고, 주치의 폴딩 박사가 상담차 들리고, 별거 중인 남편 에드와 딸 올리비아가 들리는 거 외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지하실에 세 들어 사는 데이비드는 제외다. 그는 가끔 그녀가 손대지 못하는 집안의 자잘한 문제들을 살펴주는 조건으로 싸게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녀의 주식은 와인이고, 간식은 처방약들이다.

절대같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같이 섭취하고 있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저 나름 평온한 삶을 살던 애나에게 맞은편에 새로 이웃이 이사 오면서 예상치 않은 만남을 갖게 된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양초를 들고 애나의 현관에 나타난 이선.

애나는 본능적으로 이선의 집안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낀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애나가 이선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할로윈을 맞아 동네 아이들이 애나의 집으로 계란을 투척하고 그것을 못 견뎌하던 애나가 밖을 나서자마자 실신을 하는데 그때 이선의 엄마 제인이 그녀를 도와준다.

그렇게 안면을 튼 두 사람은 단 하루 같이 몇 시간을 지내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며칠 후 애나는 밤중에 비명소리를 듣는다.

본능적으로 러셀가에 문제가 생겼다고 느낀 애나는 카메라를 들고 러셀가의 거실을 관찰하다 제인이 칼에 찔려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애나는 제인을 구하기 위해 911에 신고하며 밖을 나서지만 결국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실신한다.

깨어난 애나 앞에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만을 나열한다.

러셀가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가 알던 제인은 사라지고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제인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술과 약, 그리고 그녀가 보던 스릴러 흑백영화들 때문에 환상과 망상을 본 거라 말한다.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

이선마저도.

정말 그녀는 약과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걸까?

그녀가 본 것은 그녀의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나에게, 나를 통해, 위험하고 새로운 일이.

독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자라서 사방으로 뻗어간다.

덩굴은 나의 장기와 폐와 심장을 옥죈다.

이 이야기는 하루하루의 일을 적고 있다. 마치 일기처럼.

그래서 빠르게 읽히고, 더더욱 초초하게 만든다.

마치 시간의 그물이 촘촘하게 나를 엮어가는 기분이다.

중반을 넘어가게 되면 나조차도 애나를 의심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에 무한 신뢰를 가져야 하는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애나를 믿지 못하겠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묘미다.

애나와 같이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게 되면 나도 그녀의 진위를 헤아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병이 그녀를 갉아먹어가면서 종국엔 그녀가 어떠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읽게 된다.

작가는 어쩜 그녀가 본 것들이 그녀가 저지른 일들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필력을 가졌다.

그래서 이어지는 반전이 나를 강타하는 강도가 높아진다.

그럴 줄 짐작도 못했단 말이지!

 

나는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내 머리도 한때는 잘 정리된 문서 보관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낱장의 종이들이 이리저리 떠다닌다.

 

 

자신이 본 것을 믿는 그녀가 약과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고,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만약에 내 주위에 애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리틀 형사처럼 그녀의 손은 잡아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노렐리 형사처럼 선을 긋고 대하는 사람일까?

만약 내가 애나라면 그토록 확신하며 계속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사건을 짜 맞추는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곳에 서 있다. 주변은 고요하다. 시선을 떨궈 우산을 바라본다.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공허하다.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사투.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믿지 않는 모두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애나를 지켜보면서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옛 속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는 말이 떠오르는 마지막 사투는

모든 사람들의 본능 중에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생존에 관한 본능이었다.

 

 

나는 똑같은 일을 옥상에서 비를 맞으면서 해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싸웠다.

죽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리고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영화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인지 애나 역의 에이미 아담스의 얼굴이 겹쳐지는 바람에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영화를 본 거 같다.

그래서 더 실감 나게 읽은 작품이었다.

출판 편집자였던 작가라 그런지 독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아주 잘 집어낸 거 같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무엇을 예상하던 이 책은 당신의 허를 찌를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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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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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코를 초췌하게 만든 것은 인간의 존엄 그 자체를 죽이려는 듯한, 오만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광기에 찬 냄새였다.

처음 시작부터 참혹하게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수 많은 스릴러와 범죄소설을 읽었던 나에게 조차 섬뜩한 이미지로 남았다.

그렇게 잔혹한 이야기임에도 참고 읽데 되는 이유가 바로 도도 히나코 때문이다.

히나코가 맡은 형사부 업무는 문서 작업이나 서류 정리가 대부분이다. 여형사를 동경하며 형사부를 지망했지만, 배속되고 보니 내근직이라 현장에 불려나가는 일은 없었다. 히나코는 매일같이 산더미 같은 서류 업무에 쫓겼다.

 

 

그녀는 거의 사진과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물론 이런 능력의 소유자들이 요즘 많이 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도도 히나코는 일본 여형사다. 많은 제약이 있다. 그곳은 그런 곳이니까.

서류작업을 도맡아 하며 커피도 대령해야 하는 히나코의 기억력은 최근에 발생한 사건과 유사한 과거의 사건들을 추려내는 일을 하게 된다.

최근들어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특징이 있다면, 그들이 모두 용의자였던 사실이 있고, 모두 자신이 저질렀을 법한 사건의 피해자처럼 죽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들은 자살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프롤로그의 엄청난 사건 때문에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핑크색 사탕 봉지와 집을 구하려는 대학생

아무런 접점이 없을 거 같았던 그날의 그 참상은 기억의 봉인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도 전에 히나코는 동료 히토미를 잃는다.

잔인하게 살해된 히토미.

사건 현장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의 방식이 펼쳐진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타살인 게 확실한 죽음들.

누가 이런짓을 벌이는 걸까?

뇌의 일부에 불수의기능에 작용하는 스위치가 있음을 발견했던 겁니다. 격렬한 갈망에 충동질당해, 광기에 가까운 쾌감을 얻기 위해 반복되는 기억을 불러내는 사람에게만 흉기가 될 수 있는 두려운 스위치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기억을 재생하며 쾌감을 느끼는 범죄자들.

그것을 작동 시키는 순간 그들을 무력화 시키는 게 아닌 자살로 이끄는 스위치가 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 스위치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를 알 수 없었다.

알게 되었을 땐 이미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어떤 신념 하나가 뭉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은 그 어떤것으로도 치료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나는 치료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나서는 그럴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제21회 호러소설 대상 독자상을 수상한 도도 히나코 시리즈의 첫번째 ON.

조금은 건조한 매력을 뿜어내는 히나코의 매력이 잔혹함을 덜어내주는 느낌을 주는 범죄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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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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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제웬 체리스야.

하지만 동시에 슈오스 제다오기도 하지. 내가 누구든 간에, 아직 해야 할 싸움이 남았어.

 

 

 

새로운 SF의 탄생이다.

그것도 한국인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이야기는 휴고상에 최종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수많은 찬사들이 따르는 이 이야기엔 한국의 구미호가 등장한다.

우주로 소환된 구미호는 어떤 족적을 남길까?

켈 체리스 대위는 수학에 능하다. 그녀는 폭풍 생성기를 탈취하기 위한 전투에서 목표물을 코앞에 두고 소환된다.

그녀가 전투에서 사용한 진형 때문에 그녀의 중대는 해산되고 그녀는 다른 곳으로 불려간다.

그곳에선 최근 들어 반역자들이 펼친 역법을 소탕하려는 계획으로 함대를 보내기로 하고 그 후보자를 선출하려 한다.

7명이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체리스는 제다오 대장의 소환을 요청한다.

그녀의 요청은 즉시 반영되었고, 제다오는 부활하여 그녀의 그림자로 존재한다.

검은 요람의 망령을 되살리기 위해선 살아 있는 자가 필요하다는 거야. 망자와 생자를 서로 연결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를 '결박'이라고 부르지.

 

 

제다오는 400여 년 전에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을 모두 몰살시킨 사람이었다.

그 죄로 검은 요람에 가둬져 시급한 전투가 있을 때만 불려 나와 전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체리스의 소환으로 제다오는 체리스에게 결박 당한다.

그것이 그들이 운명이었다는 걸 그들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체리스의 세계는 광대했다.

켈 함대의 모든 근무자와, 이단자들에 맞서고 있는 보병대, 잠입병들, 요새와 그 안의 여섯 구역이 그녀의 세계를 차지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화력을 구성하는 온갖 숫자로 이루어진 세게. 그녀는 이 세계를 발포 명령과 침묵이라는 이진법의 언어로 이해했다. 다른 모든 사소한 요소는 숫자와 좌표, 화각과 교차하는 사선으로 응축할 수 있었다.

 

한 명의 전사자라도 덜 생기게 하려는 체리스와 누군가를 희생해서라도 승리를 거머쥐려는 제다오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결국 함대의 함장 네레보르가 스스로 포로가 되기로 하고 반군에게 잡힌다.

제다오는 자신들이 반군과 한편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반군을 섬멸하기 위한 작전을 짠다.

제다오의 생각과 그의 작전에 반대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체리스는 그의 명령에 따른다.

반군과의 접점을 코앞에 두고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공격을 가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켈이었다.

켈은 체리스의 함대에 폭탄을 투여하고 그 여파로 제다오가 소멸된다.

남은 파편을 포기한다면, 제다오는 진짜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럼 그가 오래도록 간직해온 끔찍한 반역 전쟁도 함께 사라질 테지. 반대로 남은 파편을 섭취한다면, 결국 그녀가 그의 전쟁을 이어받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 전쟁을 이어받은 사람은 더 이상 켈 체리스가 아닐 것이다.

 

 

 

시체의 파편을 먹으며 체리스는 제다오의 기억을 더듬어 간다.

그 기억들이 그녀를 제다오와 한 몸이 되게 만든다.

그리고.

제다오의 기억에선 그녀가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이 담겨 있었다.

제다오의 반란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단 하나가 바로 수학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제다오는 모든 걸 가졌다.

그리고 이이기는 이제 막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구미호의 아홉 개 달린 눈으로 바라보는 제다오.

불사의 몸으로 살아가는 쿠젠.

제다오와 결박된 체리스.

이 세 사람의 접점은 어디일까?

시리즈의 1탄은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끝났다.

공동체를 지향하다 결국 자신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칠두정.

그곳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모두 죽음으로 되갚아 주던 그들에게 철저하게 오랫동안 자신의 계획을 숨기고 때를 노린 제다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우주전쟁을 벌인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이 새로운 이야기는 많은 생소한 단어들 때문에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가면서 점점 이야기의 윤곽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많은 동양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시체의 파편을 먹음으로써 죽은이를 부활시킬 수 있다니.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소재였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400여 년이라는 세월을 검은 요람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온 제다오.

불사의 몸이라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기생하며 생명을 연장하는 쿠젠은 일찌감치 제다오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다.

제다오에게 절대 필요한 수학적 지식과 함께 자신의 육체를 공유하게 된 체리스.

이들이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는 아마도 거대한 우주의 반란일 것이다.

낯선 단어들에 대한 힌트나 주석이 달렸더라면 좀 더 편하게 읽혔을 거 같은 나인폭스 갬빗.

그와 체리스의 본격적인 활약이 돋보일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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