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 죽을 만큼 원했던 이곳에서 나는 왜 죽을 것 같을까?
원지수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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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에서 카피라이터로, 유학생으로,

그리고 다시 있는 힘을 다해 회사원으로.

나름 마음의 소리를 좇아

인생에 큰 변화를 주며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대밭을 헤매는 무사마냥

두리번거리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고민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평생 정체성 찾기 싸움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한 싸움.

 

 

 

 

 

취직에 있어 큰 실패 없이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취준생들이 넘쳐나는 이 현실에서 취직한 사람이 무슨 고민이 있을까?

취직만 하면 장땡 아닌가?

웬만하면 참고 다니지.

여기나 거기나 다 고만고만한데.

 

어쩜 이런 생각들을 할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걸 위해 이직을 하고, 유학을 다녀오고 다시 취직하고 다시 퇴사한다.

왜 그럴까?

 

이 끝없는 고민의 정체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람의 마음가짐 같다.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 거 같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

언제든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는 그런 모습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많은 공감을 할 거 같다.

마음속에 꾹꾹 담아 두었던 생각들을 저자가 시원하게 까발려서 성토하고 있으니까.

 

마치 나는 생각만 하고 있는데 내 생각을 찰떡같이 알아버린 친구가 나 대신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자신과 맞지 않은 곳임에도 더 이상 이력서를 쓰기 싫어서

다른 곳을 알아내지 못해 또다시 취준생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어디든 같을 텐데, 그냥 시간이나 때우며 어울렁 더울렁 월급이나 받으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보다는 저자처럼 끝없이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지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회사생활에 대해

취직했음에도 불안정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노력하고 노력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읽다 보니

나 역시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회사생활에 대한 것들을 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짜 내가 나의 둥지에 있는 게 맞는지 한번 살펴볼 새도 없이, 지금도 그저 다른 이들과 섞이기 위해 숨이 턱에 차도록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불행한 이야기를 따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희망스럽다.

나에게 어울리는 둥지를 찾기 위해 자리바꿈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성실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스트레스는 있게 마련이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하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독이 된다.

그런 독을 품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모습도 이제는 인정받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거 같다.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만이 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은 영감을 주는 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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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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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물을 밟을 수는 없어. 곧, 아래로 가라앉고 말아.

무언가, 뭐라도 널 계속 떠 있게 해줄 것을 붙잡지 않는 이상.

29초.

세라가 누군가의 이름을 말한 통화 시간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이름.

첫 페이지를 읽으며 누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다음 장부터는 가슴에 불덩이를 담고 읽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재 우리 대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기에.

지성인을 길러내는 대학이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이름있는 학자이자 TV 진행자이고, 대학 내 가장 많은 연구비를 따내는 인물을 위해

눈감고.

귀막고.

입을 다문다.

그들의 철저한 이기가 보호해야 할 이들을 외면하고 지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를 철옹성같이 지킨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네 여자는

현재 괴롭힘의 희생자인 세라.

결국 그들에게 협력하고 마는 마리.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철벽녀가 되는 조셀린.

그리고 바위에 계란을 던져서 처절하게 터져버린 질리언이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 일을 지키기 위해 러브록과 잘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을 위해서?

대출금을 계속 갚아나가려면?

두 여자는 자신의 명예 외에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을 위해 끝없이 자신을 회유하는 갈등 앞에서 한없이 슬펐다.

지금 현실 속 누군가도 세라처럼 갈등하며 괴로워할 것이기 때문에.

세라처럼 행운 없이 그 모든 모욕을 감당해내야 하는 그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세라 역시 스스로의 계획과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돕는 일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눈여겨볼 이야기다.

물론 매끄러운 장치는 아니지만.

절실한 상황을 단지 내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사람도 있고,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어쩜 세라는 도망치는 아이에게서 자신의 딸을 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는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쳤으니 그 지나침에서 모든 문제를 외면하고 쉬쉬하는 이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쩜 그 무모했던 결정이 그녀에게 전투력이 되었을지도.

러브록이 자신의 원죄로 단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벌을 받게 되었으니 정의가 실현되었다. 라고 생각할밖에.

세상은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

시간 순삭.

이 말에 딱! 맞는 이야기 한 편이었다.

로건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그러기 전에 그의 전작 리얼 라이즈 부터 읽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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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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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소수의 깨어난 이들에 의해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알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내 인생의 편안함에 대해 나는 나도 모르게 빚을 졌다.

 

1924년 생.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유신독재와 광주항쟁과 민주화를 이룩하는 모든 과정을 겪어 온 분이다.

인권의 불모지 땅에서 인권을. 그것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온 분의 이야기 앞에서 숙연해진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당연한 자유는 그녀와 그녀의 동지들이 일구어 온 과정 위에 세워진 자유였다.

 

1920년대에 유치원을 다니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는 그 시대 여성들 중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여성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그쳤다면 그녀도 그저 그런 이름있는 댁의 사모님으로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동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렇게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가진 이들, 누리는 이들 편으로 갔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자리는 평생 사회적으로 억눌린 여성들 곁 낮은 자리였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하거나 그저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 앞에서 자신과 동등한 수많은 여성들이 이름 없이 가부장제의 종이 되어 삶을 연명하는 걸 그녀는 두고 보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바람과 욕구, 우리가 형성해온 관습, 역사에 뿌리박은 사회학, 실천을 위한 사회학을 해야 한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진 깨인 여성이었던 이이효재는 다방면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 당시에 먹고살기조차 숨 가빴던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았던 그녀는 여성의 힘이 곧 미래의 힘이라고 믿었다.

유신독재로부터 박해를 받고, 빨갱이로 몰리기까지 했던 수모를 견뎌내며 이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위해 총대를 멘 분이다.

그분으로부터 일구어져 온 지금의 대한민국 여성들은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를 거쳐 나의 세대를 지나치며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분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내가 참 모자란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나보다 힘겨운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손을 내밀었을까?

아무런 사심 없이.

그런 적은 없었다. 살아오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잘 못된 생각을 가지고 그분이 일구어 놓은 길을 편하게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인간에게 깊이 뿌리박힌 이기적인 생각을 쉽게 넘어서기는 어렵겠지만 공공의 이익과 혜택을 누린 세대는 저절로 사회를 위하는 공익적 마음이 길러질 거라고 믿습니다.

 

이 분의 말씀처럼 되어야 하는데 나조차도 공익적 마음보다는 사익적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한 번도 이렇게 깊고 넓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어른이라는 모습으로 너무 안이하게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분의 일대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젊은 여성들이 사고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선택을 즐기며 살아나가길 권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한다.

 

구순의 어른이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에게 전하는 말씀을 읽으니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마음이 설레어진다.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부지런히 내 뒤를 이어 올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여 조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좀 더 존중받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여성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 내 할머니와 어머니가 누리지 못했던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게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일구어진 이 권리와 자유를 내 뒤에 올 여성들에게 더 많이 물려주려면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여성들이 이이효재를 알았으면 한다.

그분의 발자취를 알고 갔으면 좋겠다.

이 아직도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녀가 우리에게 주는 힘과 용기를 알게 될 테니.

 

누군가의 일대기를 읽으며 스스로 부끄러웠던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 빚진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졌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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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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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딸의 슬픔에서 솟아오르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당신은 나 같은 여자들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몸을 던져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나는 수류탄 같은 사랑을 했던 여자, 삶이 자동차 사고의 연속 같았던 여자다. 나라는 여자아이와 내가 가진 여자아이를, 작은 인형 같은 딸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리디아의 글은 물 같다.

물처럼 흐르는 대로 길이 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문체 속에서 헤매었다. 사실인지 꾸며진 것인지가 중요했었다.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이 이야기를 꾸몄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나라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한 쪽 다리가 짧은 엄마의 다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리디아.

엄마 같은 언니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리디아.

수영 선수였던 리디아.

아버지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딸이 된 리디아.

 

아름답지만 착한 필립과

말론 브란도 같은 데빈과

마지막 안식처인 앤드류

그 외의 무수한 스쳐간 인연들

솔직한 이야기가 때론 점점이 각인되는 때가 있다.

불편하지만 불편한 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리디아에게만 있는 물의 힘이다.

 

내 몸속 피의 강물을 따라 아버지의 지성이 흘렀다. 그때 내 안에 있는 두 명의 나는 전면전을 벌였다. 하나는 가족과 몸을 떠나기 위해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닦아내기 위해서 구축했던 나였고, 또 하나는 만난 적 없고 존재하지는지도 몰랐던, 어쩌면 손가락 사이에서 웅크린 꿈처럼 숨어있던 나였다. 내 아버지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피해 일찍이 집을 나가 자신의 삶을 개척한 언니.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몇 번의 자살을 선택했던 엄마.

엄마는 두 딸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멀리 도망갈 수 있게 도왔다.

리디아를 텍사스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학원서를 써준 사람은 엄마였으니까.

 

약에 취해 섹스에 취해 수영 선수의 꿈마저 날려 버린 청춘은 아이까지 잃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가슴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언젠가 글이 되기 위해 꾹꾹 눌러져 담겨 있었다.

그녀의 물속에.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리디아에겐 엄마와 아빠의 피가 흐른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아버지와 한때 글을 쓰고자 했던 엄마의 피가 리디아를 따라 흘렀다.

그래서 그녀는 물처럼 아무렇게나 흘렀지만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 한없이 흐르고 있다.

 

되풀이되고, 두서없고, 난장판 같은 글은 사실 꽤 정교하고 논리적이고 흐름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의식의 흐름처럼 그녀의 글이 읽힌다.

언제나 아웃 사이더였던 그녀는 세상을, 삶을, 사람을, 사랑을 보는 관점이 물 같다.

모든 걸 안고 흐르는.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사실이라면

리디아는 한 번의 생으로 여러겁의 생을 살아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 시킨 사람이다.

수영으로 몸의 근육을 단련시켰다면, 글로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킨 시켰다.

그래서 정신없이 읽고 나면 정신이 사나워지는 게 아니라 정돈이 된다. 정숙하게.

 

차로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웃었는지 둘 다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어찌나 웃었는지 옆구라가 아팠다.

우리가 웃은 웃음은, 마침내 자신의 뿌리에서 해방된 여자들의 웃음이었다.

 

아버지의 재를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자매는 웃는다.

기억을 잃고 오랜 시간을 살다 간 아버지를 강에 뿌리 고야 자매는 웃을 수 있었다.

가해자는 기억을 잃었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없는 세상에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다.

이 가족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살았다는 이야기.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도 거리낌 없이 까발리고도 아름답게 살 수 있구나.

그 자신감과 당당함 앞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할 뿐이다.

 

고통은

모두에게 늘 주어진다.

삶과 고통은 쌍둥이와 같으니까.

그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다.

소리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미칠 거 같음을 뱉어 내라고 말한다.

소리 낼 수 없다면 글로 소리치라 말한다.

그것이 자신을 비워내는 길이므로.

그렇게 비워내야 살 수 있음으로.

 

숨을 참던 나날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날들로 내 인생을 바꿔갈 수 있다.

무수히 남모르는사람들에게 덜어낸 그녀의 고통이 희석되어 그녀에겐 활기찬 삶으로.

누군가에겐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그렇게 전달되리라 믿는다.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끄집어 내야 하는 시간인 거 같다.

이 가을은.

 

숨을 참던 나날들에서 숨을 쉬는 나날들로의 전진.

자신을 다 쏟아낸 사람의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

한 문장에 생명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한 몸에 담아내는 것도. 사랑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물속에서, 내가 갖게 된 이 몸은 꼬리에 과거를 단 채 촉촉함 속으로 미끄러져 왔다. 뭐 어쩌겠나, 그 속에 희망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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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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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대한 책임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는. 평생 한 번 있을 기회라는 거지.

 

세라는 대학 강사로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녀의 상사 러브록은 BBC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학 내에서 가장 많은 연구비를 따내는 학자로서 명망이 자자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많은 여성들을 성희롱했으며 이제는 승진을 미끼로 세라에게 접근해오고 있다.

점점 참을 수 없는 수위의 성희롱 앞에서 세라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꾹꾹 참아내기 신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승진의 고삐를 쥐고 있는 러브록은 그녀의 아이디어로 연구비 프로젝트까지 차지하고 말았다.

게다가 승진에서 탈락할 거라 경고하고 대학 내 비용 감축으로 인해 인원 감축이 있을 거라 말하며 그녀의 이름이 맨 위에 있다고 협박까지 하며 잠자리를 요구한다.

 

확~ 까발려서 러브록이 어떠한 인간인지 만천하에 알리고 싶지만 그랬다가 번번이 찍혀서 학계에서 모습을 감춘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대학은 늘 러브록의 편을 들었고, 결국 대항한 여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와 명예를 잃고 사라져가는 수모를 겪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그 찰나에 세라가 우연히 쫓기던 아이를 도망치게 도와준 일이 생기고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남자가 세라 앞에 나타난다.

 

내 고향, 러시아에서 나는 발세브니크라고도 불렸어요. 마술사. 난 뭔가를 사라지게 할 수 있거든.

 

72시간 내에

한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겠다.

이 솔깃한 제안에 세라의 머릿속에 뱅뱅거리는 이름은 하나였다.

 

뭔가 강단 있어 보이지만 참 우유부단한 세라 때문에

징글징글한 러브록의 희롱 때문에 속에서 천 불이 나는 이야기 한 판이었다.

밥줄이 걸린 우유부단함 앞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아무런 힘도 없이, 홀로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세라를 보며 그녀의 무력감에 나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 달, 1년, 얼마나 그랬는지가 중요한가요? 러브록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가 어떤 인간인지가 중요하죠. 러브록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대학도 마찬가지고. 절대 먼저 변하지 않을 거라고요.

 

철옹성 같은 러브록을 무너뜨리기 위해 세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당하기에는 그녀가 지켜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세라는 어떤 결정을 할까?

그리고 그 결정은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뭐. 읽어가면서 대충 예상을 했지만 그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 때문에.

그리고 더 당황스럽게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정말이지 끝을 볼 때 가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조마조마 함의 힘을 가진 책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 일을 지키기 위해 러브록과 잘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을 위해서? 대출금을 계속 갚아나가려면?

 

밥줄이 걸리고, 가족이 걸리면 우유부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교묘히 파고들어 자신의 힘을 그런 더러운 일에 쏟아붓는 자들이 언제나 득세하는 세상은 언제쯤 사라질까?

현실이 반영된 이 이야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하니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현실에선 세라처럼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옳지 않은 일을 서로 감싸주고 덮어주는 더러운 인맥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여자들이 밖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당신들도 손대지 못할 높은 인맥들 때문에 당신의 여자들이 수모를 당하고 수치심에 밤 잠을 못 자도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느냐고.

 

무엇이든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결국. 그 어떤 책임도 내가 질 수밖에 없으니까.

 

29초.

그 짧은 통화에서 내가 얻은 건 그것이다.

결국 내 인생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나는 내 인생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 되더라도 말이다.

솟아 날 구멍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할당되는 삶의 선물이다.

단. 그것은 싸울 태세가 된 사람에게만 열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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