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죽은 딸의 슬픔에서 솟아오르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당신은 나 같은 여자들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몸을 던져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나는 수류탄 같은 사랑을 했던 여자, 삶이 자동차 사고의 연속 같았던 여자다. 나라는 여자아이와 내가 가진 여자아이를, 작은 인형 같은 딸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리디아의 글은 물 같다.

물처럼 흐르는 대로 길이 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문체 속에서 헤매었다. 사실인지 꾸며진 것인지가 중요했었다.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이 이야기를 꾸몄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나라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한 쪽 다리가 짧은 엄마의 다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리디아.

엄마 같은 언니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리디아.

수영 선수였던 리디아.

아버지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딸이 된 리디아.

 

아름답지만 착한 필립과

말론 브란도 같은 데빈과

마지막 안식처인 앤드류

그 외의 무수한 스쳐간 인연들

솔직한 이야기가 때론 점점이 각인되는 때가 있다.

불편하지만 불편한 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리디아에게만 있는 물의 힘이다.

 

내 몸속 피의 강물을 따라 아버지의 지성이 흘렀다. 그때 내 안에 있는 두 명의 나는 전면전을 벌였다. 하나는 가족과 몸을 떠나기 위해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닦아내기 위해서 구축했던 나였고, 또 하나는 만난 적 없고 존재하지는지도 몰랐던, 어쩌면 손가락 사이에서 웅크린 꿈처럼 숨어있던 나였다. 내 아버지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피해 일찍이 집을 나가 자신의 삶을 개척한 언니.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몇 번의 자살을 선택했던 엄마.

엄마는 두 딸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멀리 도망갈 수 있게 도왔다.

리디아를 텍사스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학원서를 써준 사람은 엄마였으니까.

 

약에 취해 섹스에 취해 수영 선수의 꿈마저 날려 버린 청춘은 아이까지 잃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가슴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언젠가 글이 되기 위해 꾹꾹 눌러져 담겨 있었다.

그녀의 물속에.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리디아에겐 엄마와 아빠의 피가 흐른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아버지와 한때 글을 쓰고자 했던 엄마의 피가 리디아를 따라 흘렀다.

그래서 그녀는 물처럼 아무렇게나 흘렀지만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 한없이 흐르고 있다.

 

되풀이되고, 두서없고, 난장판 같은 글은 사실 꽤 정교하고 논리적이고 흐름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의식의 흐름처럼 그녀의 글이 읽힌다.

언제나 아웃 사이더였던 그녀는 세상을, 삶을, 사람을, 사랑을 보는 관점이 물 같다.

모든 걸 안고 흐르는.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사실이라면

리디아는 한 번의 생으로 여러겁의 생을 살아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 시킨 사람이다.

수영으로 몸의 근육을 단련시켰다면, 글로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킨 시켰다.

그래서 정신없이 읽고 나면 정신이 사나워지는 게 아니라 정돈이 된다. 정숙하게.

 

차로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웃었는지 둘 다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어찌나 웃었는지 옆구라가 아팠다.

우리가 웃은 웃음은, 마침내 자신의 뿌리에서 해방된 여자들의 웃음이었다.

 

아버지의 재를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자매는 웃는다.

기억을 잃고 오랜 시간을 살다 간 아버지를 강에 뿌리 고야 자매는 웃을 수 있었다.

가해자는 기억을 잃었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없는 세상에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다.

이 가족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살았다는 이야기.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도 거리낌 없이 까발리고도 아름답게 살 수 있구나.

그 자신감과 당당함 앞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할 뿐이다.

 

고통은

모두에게 늘 주어진다.

삶과 고통은 쌍둥이와 같으니까.

그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다.

소리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미칠 거 같음을 뱉어 내라고 말한다.

소리 낼 수 없다면 글로 소리치라 말한다.

그것이 자신을 비워내는 길이므로.

그렇게 비워내야 살 수 있음으로.

 

숨을 참던 나날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날들로 내 인생을 바꿔갈 수 있다.

무수히 남모르는사람들에게 덜어낸 그녀의 고통이 희석되어 그녀에겐 활기찬 삶으로.

누군가에겐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그렇게 전달되리라 믿는다.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끄집어 내야 하는 시간인 거 같다.

이 가을은.

 

숨을 참던 나날들에서 숨을 쉬는 나날들로의 전진.

자신을 다 쏟아낸 사람의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

한 문장에 생명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한 몸에 담아내는 것도. 사랑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물속에서, 내가 갖게 된 이 몸은 꼬리에 과거를 단 채 촉촉함 속으로 미끄러져 왔다. 뭐 어쩌겠나, 그 속에 희망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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